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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 무덤의 남자
카타리나 마세티 지음, 박명숙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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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총각·도시처녀 백여 명 합동 맞선(동아일보, 1982.7.14.)

농촌총각 도시처녀 어우러진 짝짓기 ‘함박웃음’(한겨레, 1990.2.6.)

‘짝’ 25기 농어촌 총각들과 도시 처녀들의 이야기(머니투데이, 2012.3.15.)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시골 총각들의 결혼 문제는 별로 달라진 것이 없는 것 같다. 그렇다 보니 위의 기사들처럼 지방자치단체나 TV에서 주최하는 시골총각과 도시처녀들의 대규모 맞선이 화제꺼리가 되기도 하는데, 그다지 큰 효과를 거두지는 못하는 것 같다. 요즈음 들어 도시에서 살다가 농촌으로 이사하는 “귀농(歸農)” 인구가 늘어나고 있다고 하지만 아직도 도시 여성들에게 “시골”에 대한 이미지는 모 개그 프로그램처럼 하루 종일 힘들게 소·돼지 키우고, 논일, 밭일에 매달린다는 이미지가 큰 것 같다. 위의 세 번째 기사에서 맞선 프로그램에 나온 한 남성이 “사실 이 직업이 시원찮다. 농업 한다고 하면 여자들이 배우자로 좋아하질 않는다”며 “시골에 산다는 것을 자체를 싫어한다, 말 그대로 자기가 소를 자신이 키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는 기사가 바로 이런 인식을 잘 나타낸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이런 인식은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이번에 스웨덴 소설 “카타리나 마세티”의 <옆 무덤의 남자(원제 Grabben i graven bredvid/문학동네/2012년 2월)>을 읽어보니 말이다.

 

(이하 스포일러가 있으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결혼 5년 만에 불의의 사고로 남편을 잃은 후 졸지에 30대 독신녀가 된 “데시레”는 점심시간을 이용해 주중에는 몇 번씩, 그리고 주말에도 최소한 한 번은 남편의 무덤을 찾아가 한 시간씩은 머물다 간다. 억지로라도 슬퍼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지만 사실은 그곳에 머무는 시간의 반은 남편에 대한 분노로 보낸다. 그런데 몇 주 전, 남편의 무덤 옆에서 한 남자를 본다. 자신의 또래로 보이는 남자는 촌스러운 누빔 점퍼에 귀마개를 덧댄 두툼한 모자를 쓰고 있었는데 무덤 주위의 흙을 고르고 화단을 청소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였다. 모자에 쓰인 “산림조합”이라는 글자 때문에 산림조합원 남자라고 부르는 그 남자는 벤치 옆자리에 앉아 흘끗거리며 날 관찰하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요상한 냄새를 풍겼고, 왼손에 손가락이 세 개 밖에 없었다.

 

도시에서 차로 30, 40분 거리의 시골마을에서 소를 키우는 30대 미혼 남성인 “벤니”는 농장에서 정신없이 일하다가 어머니 묘지를 찾아와 땅을 고르고 화초를 심고 부지런히 할 일을 마친 다음 겨우 앉아서 쉬는 벤치를 차지하고 있는 저 베이지 색 옷을 입은 여인이 영 못마땅하다. 최근 몇 년간 어머니는 그에게 ‘나가서’ 여자를 만나라며 성화셨지만 어머니는 ‘시골 농장에 사는 매력적인 독신남’의 아내가 되는 꿈을 꾸는 젋은 여자들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알지 못했다. 여자들은 보육교사나 간호사가 되기 위해 모두 도시로 떠나 기계공이나 판매사원과 결혼하여 도시에 예쁜 집을 장만하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 결국 서른이 넘도록 결혼을 못하고 혼자서 농장 일이며 그동안 어머니가 돌봐온 집안일까지 모두 떠맡아 하고 있는 그는 단 몇 주 만이라도 저 여자 없이 혼자 있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한다.

 

그저 지켜보기만 하던 두 남녀에게 전혀 예상치도 못한 일이 일어난다. 평소처럼 벤치에 앉아 남편의 무덤을 바라보는 그녀는 자신을 힐끔힐끔 쳐다보는 남자의 시선을 무시한 채 손가방에서 꺼낸 수첩에 시(詩)를 적고 있었다. 그런데 산림조합원 남자의 무덤 바로 옆 무덤에 찾아온 어린 소녀와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웃음 짓는 그녀와 역시 미소를 짓고 있는 그의 눈길이 마주치게 된다. 그 순간 여자는 둘 사이로 무지개 같은 환한 빛이 솟아 오르고, 여자는 자신의 난자(卵子)가 펄쩍펄쩍 뛰어오르더니 찰랑찰랑 공중제비를 돌기 시작하는 느낌을 받는다. 남편과의 잠자리에서 별 만족을 못 느꼈던 그녀에게는 정말 놀라운 느낌이었다. 남자 또한 그녀의 미소에 가슴이 환해지는 그런 느낌을 받으면서 자신이 애써 짜낸 우유를 그녀 때문에 모두 버려도 아깝지 않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른다. 며칠 후 남자는 여자가 일하는 도서관에 찾아가게 되고, 사랑은 그렇게 시작한다. 그러나 둘의 사랑은 결코 쉽지가 않다. 자신의 가정을 돌보면서 같이 젖소를 키워줄 “아내”를 원하는 남자와 도시에 살면서 함께 책을 읽고 영화를 보며 “라캉”의 시에 대해 토론하길 원하는 여자 사이에는 너무 큰 간극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잡은 손을 쉽게 놓지 못하는 두 사람. 과연 이 로맨스의 끝은 어딜까?

 

시골 남자와 도시 여자의 만남과 로맨스를 그린 이 책, 사실 “뻔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너무나도 다른 환경에서 살고 있는 두 남녀가 우연찮게 만나 불같은 사랑에 빠지지만, 그 사랑이 현실의 간극을 메우지 못하고 결국 헤어지고 말 것이라는 결말이 너무 쉽게 예측되기 때문이다. 물과 기름 같은 존재들이었지만 다리 사이 난자가 요동치고 공중제비를 돌 정도로 찰떡궁합 같은 둘의 사랑으로 매일 한 가지씩 견디면서 지내는 법을 배우며 계속 이렇게 지내기를 바래보지만, 먼저 결혼한 선배들이 결혼을 앞둔 후배에게 충고처럼 들려주는, 이제는 식상하기까지 한 오래된 격언인 “연애는 이상(理想)이지만 결혼은 현실(現實)”이라는 식상한 말을 다시금 확인시켜 주는 셈이라고 할까? 그런데 이 책, 뻔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재미있으면서도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작가의 글솜씨만큼은 결코 범상치가 않다.

 

책에는 매 챕터를 남녀 주인공이 번갈아 가면서 이야기하는 형식으로 전개되는데, 같은 사건을 두고 서로 다르게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두 남녀의 심리를 꽤나 현실감있고 섬세하게 그려내어, 읽으면서 내가 남자이다 보니 가정을 원하는 남자의 평범한 바램에 공감을 느끼다가도, 나라도 이제 겨우 자리 잡은 직장과 나서 자란 도시 생활을 모두 버리고, 시골에 살라고 한다면 역시나 쉽게 결론내리지 못할 것 같아 여자의 망설임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이처럼 두 남녀 사이에서 벌어지는 로맨스를 서로 다른 시점에서 읽는 재미가 꽤나 쏠쏠하다. 일견 남녀간의 로맨스를 마치 심리학 서적이나 철학책을 읽는 것 마냥 너무나도 시시콜콜히 해체하고 분석하던 “알랭드 보통”의 글을 읽는 듯한 느낌도 드는데, 그보다는 덜 부담스럽고 훨씬 현실감 있고 피부에 와닿는 그런 느낌이었다.

 

여기에 남녀 간의 사랑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육체적인 사랑에 대해서도 숨기거나 부끄러워하지 않고 거침없이 직설적으로, 그렇다고 외설적(猥褻的)이지 않게 적절히 표현한다. 이 책에서 가장 기가 막히고 기발한 표현이라면 역시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여주인공이 남자와의 만남에서 주체할 수 없는 강렬한 성적 매력을 느꼈을 때를 “난자가 찰랑찰랑 공중제비 도는” 이란 말로 표현한 것을 들 수 있겠다. 남자 없이 살다보니 이렇게 될 수 도 있겠지 하면서도 그런 자신의 모습에 당황스러워 어쩔 줄 모르는 여자의 모습에 웃음이 절로 터져 나오면서도 상상해보면 왠지 얼굴이 화끈거리게 만드는 그런 표현이라고 하겠다. 작가는 결말에도 작은 “반전(反轉)”을 숨겨 놓았는데,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구체적으로 말할 수 는 없지만 현실의 벽에 부딪혀 결국 헤어지고야 마는 두 남녀의 사랑이 아직은 끝나지 않았고 다른 양상으로 계속 이어간다는 그런 결말이라고만 밝혀둬야겠다. 그런데, 이 결말이 심정적으로 올곧이 이해가 되진 않는다. 아마도 속편이라는 <가족무덤>까지 읽고 나서야 그네들의 “선택”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서두에서 시골 남자와 도시 여자의 결혼 문제로 이 글을 시작했는데, 다 읽고 나서 서평을 쓰다 보니 이 책의 로맨스를 그 문제로만 한정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 같다. 이 책처럼 서로 다른 현실의 벽에 부딪혀 좌절하고 또는 극복해내는 연인들의 로맨스는 국가, 인종, 종교, 이념, 빈부·신분 격차 등 수많은 경우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뭏튼 이 책, 오늘도 지구 곳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새롭게 만나고 사랑을 나누고, 이별하는, 어쩌면 “평범한” 일상과도 같은 셀 수 없는 많은 사랑들이 누군가에게는 “특별한” 사랑이라는 것을 다시금 일깨워 주는 재미있는 책 이었다고 평가하고 싶다. 이 책의 두 남녀의 사랑이 어떻게 결말을 맺는지 속편인 <가족무덤> 또한 곧 만나 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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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터스 블랙 로맨스 클럽
리사 프라이스 지음, 박효정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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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망가질 정도는 아니지만 슬슬 몸에 불편한 곳들이 하나 둘씩 생기는 것을 보니 나이가 들긴 들었나 보다. 그렇다면 “젊음”을 다시 찾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 이제 막 중년에 접어든 나이인데 이런 소리하면 어르신들께서 혀를 끌끌 차실 지도 모르겠다^^ - 이 있을까? 무협소설(武俠小說)을 보면 오랫동안 수련(修練)을 하면 뼈대와 체형이 바뀌며(“반박귀진(反樸歸眞)”), 빠진 이(齒)가 다시 나고 흰머리가 검어지는 경지(“반로환동(返老還童)”)에 이른다고 하는데, 아직 그런 경지에 이르렀다는 사람을 실제로 본 바가 없고, 이천여 년 전에 “불로초(不老草)”을 찾아 나선 “서복(徐福)” 일행은 아직까지 감감 무소식인 것을 보면 불로초는 이 세상에 없는 것이 분명하며, <은하철도 999>의 주인공 “철이”가 그렇게 소원하던 “기계 몸”은 수천 년 후에나 가능할 테고 정서상 기계 몸을 거부하는 사람들도 많을 테니 어쩌면 젊음을 되찾는 방법은 아예 “없다”고 해도 되겠다. 결국 누구나 다 알지만 실천하기 어려운, 운동 열심히 하고 술·담배 안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겠지만 너무 평범하고 재미가 없다. 그런데 만약 자기 몸이 젊어지는 것이 아니라 아예 다른 젊은 사람의 몸으로 바꿀 수 있다면 어떨까? 그것도 균형 잡힌 몸매에 누구나 다 반할 법한 미모의 완벽한 십대 청소년의 몸으로 말이다. 아마 <개그콘서트> 대사 마냥 “눈이 번쩍 귀가 쫑긋” 하는 분들이 몇몇 있을 것 같다. “리사 프라이스”의 로맨틱 스릴러 <스타터스(원제 Starters / 황금가지 / 2012년 3월)>은 이처럼 누군가에게는 끔찍한 상상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거부할 수 없는 치명적인 유혹일, 젊음을 돈으로 살 수 있는 어느 미래 이야기다.

 

 

시대를 알 수 없는 어느 미래, 세상은 지금과는 전혀 다르게 변해 있다. 태평양 연안국들의 전쟁으로 미국에 치명적인 생물학 폭탄이 강타하면서 백신을 맞지 못한 중장년층은 대부분 사망하고, “스타터”라 불리는 10대 청소년들과 “엔더”라 불리는 노인들만 살아남는다. 엔더들은 법과 제도를 바꿔 자신들의 기득권을 공고히 하고 과학 기술에 힘입어 100 세를 훌쩍 넘게 수명을 누리는 반면, 전쟁 통에 보호자를 잃은 아이들은 길거리로 내몰려 집행관들의 눈을 피해 할렘화된 도시 외곽 폐허 속에서 근근이 살아간다. 세상 권력과 부를 독점한 엔더들 사이에 최근 비밀스럽게 유행하고 있는 유희가 있었으니, 바로 거액을 들여 젊고 건강한 스타터들의 신체를 일정 기간 빌리는, 이른바 “신체 대여”- 책에서는 몸을 빌리는 사람을 “렌터”라고, 몸을 제공하는 사람을 “기증자”라고 부른다 -를 하여 젊은 육체를 즐기는 것이다. 전쟁 중에 부모를 잃고 졸지에 고아가 되어 7살 어린 남동생을 부양해야 했던 16세 소녀 “나(캘리 우드랜드)”는 병약한 동생의 약값을 벌기 위해, 그리고 동생, 친구와 편히 쉴 집을 얻기 위해 “기증자”로 나선다. 짧은 두 번의 대여를 마치고 마지막 일주일간의 세 번째 대여를 위해 수술대에 오른 “나”는 이제 동생과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겠구나 하는 기대감에 부풀어 잠에 빠져든다. 여느 때처럼 꿈을 꾸던 나는 깨질 듯한 갑작스런 두통 때문에 눈을 뜨게 된다. 그런데 이곳은 자신이 잠들었던 수술대가 아니라 젊은 남녀들이 가득한 호화로운 클럽이 아닌가. 거기에 몸 또한 자신의 몸 그대로였고, 머릿 속에는 자신을 부르는 낯선 목소리가 들린다. 아직 대여 기간이 끝나지 않았는데 정신을 차린 켈리는 모든 상황이 어리둥절하기만 하다. 과연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이야기는 켈리가 자신의 몸을 렌터한 엔더가 밝히는 신체 대여에 숨은 음모가 실체를 드러내면서 이야기는 후반부로 갈수록 더욱 숨 가쁘게 전개된다.

 

 

(이하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으니 주의하기 바랍니다)

 

최근 미래를 소재로 한 소설이나 영화들의 공통된 경향이라고 할 수 있는 “디스토피아”적인 미래를 그리고 있다고 하니, 올해 들어 읽은 디스토피아적인 미래를 그린 소설만 해도 다섯 손가락은 넘을 정도로 자주 만났던 터라, 그리고 편견은 많이 희석되었지만 아직도 선뜻 손이 가지 않는 “로맨스 판타지” - 출판사 홍보글에는 “로맨스 스릴러”라고 되어 있는데 로맨스를 강조했다는 면에서는 장르적으로 큰 차이가 없다 - 소설이라니 큰 기대 없이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페이지가 넘어갈 수 록 드러나는 거대한 음모(陰謀)의 실체와 그에 맞서는 주인공의 아슬아슬한 위기와 활약이 숨 가쁘게 전개되면서 눈길 돌릴 새도 없이 어느새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야 말았다. 그렇다면 이 소설의 “무엇”이 나에게 그렇게 강력한 몰입감과 재미를 불러 일으켰을까? 앞서 장난스럽게 언급한 여러 “불가능한” 회춘(回春) 방법들과는 달리 이 책에서의 “신체대여” 방법이야 말로 어쩌면 미래에서 가장 실현 가능한 방법이라고 느껴지는, 즉 “신체대여”라는 흥미로운 소재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책에서 “스타터”들인 10대들이 자신들의 젊은 신체를 내어 놓는 데는 저마다 이유가 다르다. 전쟁으로 부모를 여의고 도심 외곽의 폐허 속에서 위험스러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주인공 켈리는 바로 병약한 “동생” 때문에 자신의 신체를 내어 놓는다. 그런데 켈리의 신체를 렌터한 엔더 “헬렌”의 손녀는 부족함 없이 풍족한 생활을 하지만 할머니가 성형 수술비만큼은 지원해주지 않자 반발심에 성형 수술비를 벌기 위해 신체 대여를 나서지만 그만 실종되고 만다. 이처럼 누군가는 “생존” 때문에, 누군가는 “허영심” 때문에 자신의 신체를 내놓지만 그들의 신체를 렌터하는 “엔더”들은 과연 어떤 마음에서일까? 헬렌이나 그녀를 돕는 몇몇 엔더들은 자신들의 실종된 손자, 손녀를 찾기 위해서 신체를 렌터하지만 어쩌면 특수한 경우라고 할 수 있겠고, 대부분 엔더들은 바로 “젊음”이라는 치명적일 정도로 매력적인 “유희”를 위해 기꺼이 거액의 돈을 지불한다. 그네들의 입장에서라면 수백 년의 고달픈 수련 없이, 불로초를 찾아 헤맬 필요 전혀 없이, 그리고 기계 몸의 부작용 염려 하나 없이 전신 성형을 거친 최상의 상품을 돈을 지불하고 얻을 수 있다니, 그리고 옷을 갈아입듯이 수시로 갈아 치울 수 있다니 이 얼마나 멋지고 신나는 일일까? 어쩌면 “젊음”에 대한 욕망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다 열망하는 원초적인 욕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돈으로 젊음을 살 수 있다니 비윤리적이고 비현실적인 이야기라고 꾸짖는 분들도 있겠지만 과연 작금의 현실은 얼마나 윤리적이고 도덕적일까? 지구 한 편에서는 수많은 어린 생명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지만 다른 한 편에서는 다이어트와 성형수술에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 붇고 있는 현실이 하루 이틀 상관의 일이 아니며, 서구권 부유층 환자들을 위해 빈민 국가들에서는 장기 밀매와 인신매매가 빈번이 일어나고 있으며, 심지어 모 기업 총수는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젊은이들의 피를 수혈했다는 유언비어까지 있으니 작금의 현실에서 그 정도와 방법만 다를 뿐 이런 “신체 대여”와 유사한 일들이 비일비재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아마도 이 책처럼 과학기술이 발달해서 10대들의 젊은 신체의 대여가 가능해진다면, 이 책의 엔더들처럼 거액의 돈을 지불하고 나서라도, 또는 불법이라는 위험을 무릅쓰고서 젊음을 돈으로 사려고 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켈리와 같은 자의에 의해 제공된 청소년들의 신체들 뿐만 아니라 암거래를 통해 육체를 사들이거나 또는 DNA 복제를 통해서든 갖은 방법을 동원해서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신체 대여”는 책에서 설명하는 과학적 설정의 개연성이나 가능성은 차치하고 머지않은 미래에 반드시 일어날 수 있는 가장 실현 가능성이 높은 상상이라고 하겠다.

 

 

그래서 우리가 앞으로 마주하게 될 미래는 이 책처럼 누군가에는 끔찍하기만 한 “디스토피아” 로, 누군가에게는 바라 마지않는 “유토피아”가 될 수 있다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동시에 존재할 것이라는 추측은 어쩌면 당연하다고 할 것이다. 물론 이렇게 서로 상반된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가 동시에 존재하는 것은 비단 미래의 일만은 아닐 것이다.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현실에서도 이런 사례는 금방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자면 다시 떠올리기조차 싫은 국가 부도 사태인 IMF 상황에서 구조조정에 급여 삭감에 고통스러웠던 국민들이 대다수였지만 일부의 누군가는 오히려 부(富)가 급격히 증가했다고 하니 말이다.

 

 

이렇게 흥미로운 소재와 빠른 이야기 전개, 스릴과 로맨스를 적절히 조화시킨 스토리 라인 등 장점이 많은 소설이지만 아쉬운 점도 없지 않다. 우선 신체 대여의 합법화와 영구적인 신체 대여를 가능케 하기 위해 음모를 꾸미지만 주인공에 의해 무산되는데, 수용소 갇힌 켈리가 탈출하는 장면이나 음모를 꾸민 상원의원 - 물론 그도 결말에서는 손자가 인질로 잡혀 있어 협박에 의해 어쩔 수 없이 가담하게 된 일이었지만 -의 반대편 상원의원을 끌어 들여 해결하는 과정이 너무 “쉽고”, 동생과 친구 또한 별 탈 없이 구해내는 해피엔딩으로 끝내는 점 등 결말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들에 대한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점을 들겠다. 또한 이 모든 사건의 진정한 배후라 할 수 있는 “올드맨”의 정체와 의도를 분명하게 밝히고 있진 않은데 속편을 염두해 둔 설정으로 보이지만 개인적으로는 매듭지지 못하고 읽다 만 느낌이 들어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 글에서는 책의 주제와 의미를 쓸데없이 주저리주저리 늘어놓긴 했지만 이 책, 굳이 어떤 의미를 찾으려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신체 강탈”이라는 흥미로운 소재와 긴박감 넘치는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히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재미있는 소설이기 때문이다. 보다 거대해지고 위험해질 올드맨의 음모와 그를 막아내는 켈리의 활약이 펼쳐지는 속편이 나오기를, 그리고 영상으로도 만나보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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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함께한 마지막 열흘
모모이 카즈마 지음, 조찬희 옮김 / 자음과모음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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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나 죽으면 어떻게 할 건데?

나: 화장(火葬)해서 납골당에 모셔야지

아내: 뜨거운 거 싫어! 그냥 양지 바른 곳에 묻어 줘.

 

아내: 아무래도 내가 당신보다 먼저 죽을 것 같아. 그럼 어떡할꺼야?

나: 걱정하지마. 당신 가기 하루 전에 내가 먼저 갈게.

아내: 안돼! 나보고 당신 뒤처리하라고?

 

신혼 초에 케이블 TV에서 아내가 불치병으로 죽게 되는 젊은 부부 이야기를 그린 영화 - 드라마였는지 영화였는지도 가물가물하지만 - 를 함께 보면서 별 생각 없이 나눈 농담 같은 대화이다. 양가 부모님이 들으시면 무슨 끔찍한 소리냐고 화를 내실 소리지만 당시만 해도 둘 다 앞으로 30~40년은 거뜬히 살 거라는, 오히려 100세까지 산다는 요즈음 노후 문제를 걱정하는 게 더 현실적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작년에 내가 수술을 받게 되면서 저런 농담이 현실이 될 수 도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철렁했었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어본 경험이 없는 우리 부부 - 조부모님이나 친가, 외가 쪽 친척들은 돌아가신 분들이 있지만 고맙게도 직계인 양가 부모님과 형제들은 무탈하다 - 에게 서로 중 누군가를 잃는다면 남은 사람은 정말로 가슴이 찢어지고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그런 슬픔을 느낄 것이다. 이번에 읽은 “모모이 카즈마”의 <아내와 함께 한 마지막 열흘(자음과 모음/2012년 4월)>은 이처럼 아내를 갑작스레 잃게 된 한 남자의 가슴 아픈 이야기이다.

 

평소와 전혀 다르지 않은 5월 9일 아침, 아내는 “다녀오겠습니다”라는 인사말을 남기고 회사 출근 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 서둘러 나선다. 이제 막 초등학교 6학년에 올라간 딸과 나는 평소와 다름없이 거실에서 아침을 먹으며 복도 너머 현관에 서 있는 아내를 배웅했고, 그녀를 현관까지 배웅하러 나와 준 건 여느 때처럼 키우고 있던 고양이 “모모”였다. 이처럼 이날 우리 집에서 있었던 일은 여느 때와 다름없는 아침의 ‘이별’이었다. 그날 저녁, 친구들과 술자리를 하고 있던 나에게 딸이 엄마가 회사에서 쓰러졌다고 전화를 해온다. 아내에게 전화를 해보니 아내 대신 회사 동료로 짐작되는 낯선 여자가 전화를 받는다.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아내가 쓰러졌으며, 지금 병원으로 옮겨질 예정으로 그리로 오라고 이야기한다. 물어보기 무서운 질문이지만 숨을 깊게 들이쉬고 다시 크게 내쉬며 의식은 있나요 라고 물어보니 묵직하고 갑갑한 침묵 끝에 없다는 답이 들려온다. 술집을 뛰쳐나와 아내가 실려간 병원으로 간 나는 의사에게서 청천벽력과 같은 소리를 듣는다. 아내의 증상은 동맥류 파열에 의한 “지주막하출혈(subarachnoid hemorrhage, 蜘蛛膜下出血)”이라는 것이다. 이 병이 발병할 경우 최초 출혈로 3분의 1이 사망하고, 3분의 1은 살지만 중증 장애를 얻게 되며, 후유증 없이 회복될 수 있는 경우는 3분의 1이나 그 이하에 불과한 심각한 병이라는 것이다. 응급수술은 무사히 끝났지만 이미 아내는 돌이키기엔 너무 늦어 사실상 뇌사(腦死) 상태에 빠져 버린다. 많은 사람들이 기적을 바랬지만 아내는 결국 쓰러진지 열흘 째인 5월 18일 세상을 떠나고야 만다. 장례를 마치고 집으로 함께 돌아온 딸이 나에게 내일부터 열심히 일하기로 약속하자며 새끼손가락을 걸어온다. 나는 그런 딸의 모습에서 지난 2주 동안 소녀에서 당찬 어른으로 한걸음 내디딘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이처럼 건강한 모습으로 출근한 아내가 회사 화장실에서 갑작스레 쓰러지고, 30여 분이나 지나 늦게 발견한 탓에 부랴부랴 병원으로 후송했지만 이미 손을 쓰기에는 너무 늦은 상황이 되어 열흘 동안 아내의 “죽음”을 지켜보게 되는 남편의 이야기이다. 작가가 실제로 겪은 이야기인지라 그 어떤 소설이나 드라마보다도 생생하고 현실감이 느껴지는데, 아내가 입원한 병원을 찾아가다가 잠시 들른 편의점에서 충격으로 십분 동안 기절했던 장면, 장모님 또한 아내의 병세를 의사에게 듣고 충격에 잠시 동안 기억을 상실하는 장면, 담배를 피러 나왔다가 도로변에 거니는 한 쌍의 비둘기를 보며 그만 목이 메는 장면 등 책에는 안타까운 장면들이 참 많이 나온다. 특히 엄마가 쾌유되겠지 하는 기대감을 갖고 있던 딸에게회복하기 어렵다며 엄마의 병세를 설명하고는 딸에게 이별의 시간을 주기 위해 병실로 나오자 딸이 엄마를 부르며 오열하는 장면은 이 책에서 가장 안타깝고 슬픈 장면이었다.

 

딸에게 사실대로 말한 것은 정말 잘한 일일까......확신할 수 가 없다. 내가 결정적인 실수를 저지른 것인지도 모른다. 이 상황이 딸의 마음에 깊은 상처로 남는다면 부모로서, 아니 한사람의 인간으로서 어떻게 책임질 수 있을까.(중략) 딸에게 엄마라는 존재는 스스로의 몸을 깎아내는 고통을 참아내며 자신을 낳아준 존재이다. 두 사람 사이에는 남자인 내가 끼어들 수 없는 애틋함이 있다. 둘만 남은 병실에서 ‘엄마, 엄마’ 하며 몸을 쥐어짜듯 오열하는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 P.191~192

 

그렇다고 이처럼 슬픈 장면만 기록해놓은 것은 아니다. 암보험과 딸을 위한 보험은 여러 개 들었지만 막상 필요한 보험을 들지 않아 병원비 부담을 걱정하고, 전혀 예기치 않았던 상황이라 아내가 떠난 후의 삶에 대하여 정신적으로, 그리고 경제적으로 막막해 하는 남편의 현실적인 걱정 또한 가감 없이 기록해놓았다. 여기에 사진가이자 저널리스트로 르완다, 러시아, 인도네시아, 사라예보 등 세계 각지의 분쟁 지역을 돌아다니며 그가 경험한 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매 장(章) 도입 부문에 배치해 놓아 비록 처지와 그 이유는 다르겠지만 누구에게나 슬픔이자 아픔인 “죽음”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처럼 참 가슴 아프고 슬픈 이야기인데 내 눈물샘을 자극할 만한 그런 감동은 아쉽게도 느끼지 못했다. 이렇게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이야기는 여러 책이나 드라마, 영화를 통해서 자주 접해볼 수 있는 흔하다면 흔한 이야기 - 물론 그 일을 직접 겪은 분들에게는 세상에서 단 하나 뿐인 슬픔일 테니 지극히 실례가 되는 말이겠지만 - 데다가 앞에서 말한 대로 세계 분쟁 지역의 다양한 “죽음”들이 일견 죽음의 의미를 상기시키는 역할을 하지만 아내의 죽음에 대해 남편이 느끼는 슬픔과 아픔에 집중하는 데 “방해”하는 역할 또한 하기 때문이었다. 여기에 리얼리티(Reality)를 살리기 위해 매 장 말미에 삽입한 병원 진료 기록 카드 또한 감정선을 유지하는 방해 요소 중 하나였다고 할 수 있겠다. 그래도 이 책, 앞서 말한 딸이 오열하는 장면과 무슨 일이 있어도 나를 받아들여준 사람들에 관한 책을 쓸 것과 내 딸에게 엄마의 삶과 일, 사고방식에 관해 제대로 알려주는 일을 이루지 못한 동안에는 언제가 되는 죽을 수 없다고 말하는 아내의 일기장을 읽는 장면, 그리고 마지막 아내의 장례식 장면만큼은 울컥하게 만드는 슬픈 장면이었다.

 

아쉬운 면이 있지만 그래도 이 책, 사랑하는 가족을 잃는다는 것이, 특히 평생을 내 옆에서 영원히 지켜줄 것 같은 아내를 갑작스레 잃는다는 것이 얼마나 아프고 슬픈 지를 간접으로나마 경험해보게 해준 책이었다. 오늘도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많은 분들이 사랑하는 가족들과 이별을 준비하고, 또는 이별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분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슬픔과 아픔이겠지만 하느님이 시련과 함께 그것을 벗어날 길도 마려해주셔서 그 시련을 견디어 낼수 있게 해주신다는, 이 책 말미에 인용한 성경 구절(고린도전서 10장 13절)처럼 슬픔을 금세 이겨내시기를 바래본다. 그리고 이기적이지만 이 책의 이야기가 결코 우리 부부에게는 일어나지 않기를 또한 간절히 바래본다.

 

고통을 품은 모든 사람에게

오늘도 조용하고 온화한 밤이 찾아올 수 있기를 - P.266. 마지막 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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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뒷면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39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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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침팬지의 DNA 구조가 98.5% 일치한다고 하니 인간이 영장류(靈長類)에서 진화(進化), 또는 인간과 영장류(靈長類)가 같은 조상을 가졌다는 “진화론(進化論)”은 이제는 과학적인 정설(定說)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런데 진화론 중에는 인간이 수중 포유류에서 분기(分岐)해서 바다나 얕은 개울에서 생활했다가 육지로 올라왔다는 “수생인류설(水生人類說)”이 있다고 하는데, 그 증거로 인간이 전신에 털이 덮여 있는 침팬지와는 달리 돌고래나 고래처럼 몸에 털이 나지 않고, 인간이 모든 동물 중 두발로 서서 걷는 이유도 물이 약간 깊은 곳에서 머리를 내밀고 호흡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며 유선형의 몸매에 호흡을 조절할 수 있다는 것 또한 수생 생물의 증거라고 주장한다. 화석(化石)에 의한 증거가 없어서 학계에서는 묵살당하는 “소수파” 의견이지만 처음 이 주장을 접하고 괜히 정수리나 목덜미나 고래처럼 숨구멍 - 수생 포유류에는 “아가미”가 없고 “숨구멍”이 있다 - 흔적이 있나 싶어 더듬어 보았던, 꽤나 재미있게 느껴졌던 이야기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런데 이번에 “온다 리쿠”의 <달의 뒷면(원제 月の裏側 / 비채 / 2012년 4월)>을 읽고 나서 엉뚱하게도 제일 먼저 든 생각이 바로 이 “수생인류설”이었다. 물론 "온다 리쿠“가 이 가설을 염두에 두고 쓴 책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말이다.

 

 

(이하 스포일러가 있으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대형 음반 회사 신인 발굴 부서 소속 프로듀서인 “쓰카자키 다몬”은 불가사의한 일들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되는 “이상한” 남성이다. 다몬은 마침 큰 프로모션이 끝나고 한숨 돌리며 다음 일에 착수하기에는 아직 이르다고 생각하던 차에 학교 은사(恩師)이자 대학 여자 후배였던 “아이코”의 아버지인 “미쿠마 교이치로”의 초대로 별 생각 없이 태평하게 후쿠오카의 유명한 물의 도시 “야나쿠라” 시에 찾아오게 된다. 아니나 다를까. 다몬은 수로(水路)에 인접한 집에 살고 있던 고령(高齡)의 노인(老人)들이 깜쪽 같이 실종되었다가 며칠 만에 기억이 상실한 채로 집으로 돌아오는 기이(奇異)한 사건에 대하여 쿄이치로에게서 전해 듣는다. 교이치로는 이 사건들이 수로(水路)와 연관이 있다고 생각하고는 수로에 면한 자신의 집을 버려 두고는 수로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낡은 집으로 이사와 있는 상태였다. 도쿄에서 요정을 경영하다가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온 “미쿠마”는 다몬에게 이상한 소리를 한다. 오래전 노인들처럼 실종되었다가 돌아왔던 작은 아버지 내외가 생김새는 실종 전과 똑같지만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대체되었다는 것이다. 특히 그런 특성은 무의식 상태에서 나타나는데 사람들의 밥 먹는 속도가 정확하게 똑같다거나 무의식 중에 같은 행동을 하고 있는 점들이 바로 그 예이다. 그러면서 미쿠마는 어릴적 마을 신사(神社)가 살아 있는 생명처럼 꿈틀 거리는 “수막(水膜)”에 갇혀 있던 것을 목격했던 경험담을 털어놓는다. 도시 곳곳을 흐르고 있는 수로에 뭔가 이상한 존재가 있음을 진작부터 알고 있던 쿄이치로의 동료는 그 존재를 일본 민담에 나오는 물의 요정인 “갓파(かっぱ, 河童, 또는 가와타로(川太郎))”로 여긴다. “그것”들이 사람을 납치 - 책에서는 그것들에 의해 ‘도둑맞다’라고 표현한다 - 해서는 뭔가 다른 존재로 만들어서 돌려 보낸다는 것이다. 시내 도서관에서 미쿠마가 어릴 적 경험했던 기이한 현상을 고스란히 다시 겪게 된 다몬과 미쿠마는 “그것”의 존재를 느끼게 되고, 다몬과 미쿠마, 교이치로, 그리고 지역 신문사 국장이자 교이치로와 함께 실종자들을 인터뷰 하면서 역시 뭔가 이상하다고 느껴온 “다카야스”, 이렇게 넷은 이 사건과 “그것”의 존재에 대해 본격적으로 조사에 나선다. 그런데 밤새 장맛비가 심하게 내리던 다음날 아침,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다. 라디오와 TV는 전파를 수신할 수 없어 지지직 거리는 소음만 들려오고, 핸드폰이며 전화도 연락 두절이 되어 버린, 외부와 철저히 고립된 그런 상황 말이다. 더욱 이상한 일은 출근길에 붐벼야 할 도로에서는 자동차 한 대 찾아볼 수 없고, 사람들로 북적북적 대야 할 시내와 기차역 주변에는 개미 한 마리 찾아 볼 수 없다는 표현이 제격일 정도로 텅 비어 버린 것이다. 야나쿠라 시 전체 시민들이 한꺼번에 실종(失踪)되어 버린, 아니 사람 뿐만 아니라 하늘의 새며 땅의 가축 등 모든 생명체가 물 속의 “그것”에 “도둑맞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 실제로 벌어진 것이다!

 

 

종종 안개나 외계 생명체 등 정체불명의 존재에 의해 사람들이 실종된다는 이야기들은 몇 몇 공포 소설이나 SF 소설에서 접해본 흔한 소재라 할 수 있는데, “온다 리쿠”는 자신만의 감성과 이야기로 “전혀” 다른 공포를 선사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녀가 선보인 전혀 다른 공포의 실체는 어떤 것일까? 나는 그 키워드를 바로 “의외성”으로 요약하고 싶다.

 

 

우선 낯익고 친숙한 일상이 예기치 못하는 공포의 대상이 되었을 때 느끼게 되는 “의외성”을 들 수 있겠다. 책에서 공포의 주체는 우리에게 너무 익숙한 바로 “물(水)”이다. 수로가 도심 곳곳을 가로 지르는 “야나쿠라”는 “물의 도시”, 그 자체라고 부를 수 있는 그런 도시이다. 이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수풀이 우거진 수로변을 거닐며 도심을 가로 질러 흐르는 수로의 물들을 바라보는 것과 늦은 밤과 새벽녘에 자욱하게 내려앉은 물안개를 마주하는 것은 바로 “일상” 그 자체일 것이다. 그런데 하루에도 열 두 번은 넘게 마주칠 익숙한 “일상” 속에 감히 상상치도 못한 공포의 존재가 숨어 있다면, 그리고 때로는 아무도 알아챌 수 없을 정도로 천천히, 때로는 알아차릴 겨를도 없이 갑작스레 몰아닥치는, 아닌게 아니라 그런 물의 속성에 대해 근원(根源)적인 공포심을 가지고 있는 인간들에게 물 속 깊은 곳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초자연적인 존재가 도사리고 있다는 상상은 그 상상만으로도 공포를 한층 배가(倍加)시키는 그런 의미가 될 것이다. 온다 리쿠는 익숙한 것이 가장 공포스러운 대상이 된다는 예기치 못한 의외성이 공포의 크기를 걷잡을 수 없게 만든다는 사람들의 심리를 제대로 짚어냈다고 할 수 있겠다. 마치 연쇄살인 현장에 어김없이 나타나는 “눈사람”이 상상만으로도 그렇게 끔찍하고 두려운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요 네스뵈”의 <스노우맨>처럼 말이다.

 

 

그리고 은유적이면서 다소 밋밋하기까지 했던 기존 작품들의 경향을 벗어나 이번 작품에서는 보다 실제적이고 현실감 있게 구체화시킨 “의외성”을 들 수 있겠다.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그녀의 다른 공포소설인 <우리 집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나 함께 출간된 “쓰카자키 다몬” 시리즈인 단편집 <불연속 세계>가 읽는 동안보다 다 읽고 나서 상상해보면 더 무섭다는 느낌의 은근하면서도 묘한 공포감을 선보인다면, 이 책에서는 보다 더 끔찍하고 한층 거대한, 그러면서도 구체적인 공포를 직접 선보인다고 할 수 있겠다. 특히 모든 사람들이 실종되어 버린 상황에서 야나쿠라 시에 남겨진 다몬 일행들이 도시 곳곳을 둘러보며 주인공들이 느꼈을 공포심이 고스란히 느껴질 정도로 너무나도 생생하고 현실감 있게 묘사하고 있다. 그렇다 보니 주인공들에 의해 하나씩 베일에 벗겨지는 공포의 실체들과 주인공들에게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 위기에 대한 치밀하고 생생한 묘사들은 자꾸만 빨라지는 페이지 넘김 속도와 그 속도 만큼이나 호흡도 가빠지게 만들고, 자꾸만 뒷 페이지를 열어 보게 만드는, 온다 리쿠 작품 중 이렇게 몰입하게 만드는 작품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최고의 몰입감과 재미를 느끼게 만든다. 이처럼 물이라는 친숙한 소재 속에 숨은 공포와 그간의 작품과는 전혀 다른 느낌의 “의외성”이 이번 작품을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라고 감히 평가하고 싶다.

 

 

이 외에도 전편인 <불연속 세계>처럼 온다 리쿠가 생각하는 “공포”의 의미에 대한 문구도 찾아볼 수 있는데, 특히 공포 영화에서 남녀 주인공이 사랑에 빠지게 되는 이유를 설명하는 다음 대목과 다른 이야기지만 남녀 관계에 있어 자꾸 핀트가 어긋나기만 하는 이유 - 특히 여성 작가가 남성의 입을 빌어 그 이유를 설명하는 대목이  참 신선하고 독특하다 - 에 대한 다음 설명도 꽤나 재미있다.

 

 

문득, 공포와 애정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중략). 영화에서나 소설에서나 공포는 애정을 낳는 게 정석이다. 공포를 같이 체험함으로써 사랑 에너지가 증강된다. 공포에 관해 이야기하다보면 그 반동으로 사랑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어진다. 사람들은 공포를 이야기함으로써 사랑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 p.148

 

 

여자는 재미있단 말이지. 내장된 벡터의 방향이 전혀 달라.

방안에 이렇게 화살표 모빌이 잔뜩 매달려 있다 쳐. 남자는 말이지. 가끔 따로 노는 녀석도 있지만 대개는 화살표가 같은 방향으로 잔뜩 매달려 있거든. 하지만 여자는 방향이 다른 화살표가 잔뜩 매달려 있는 거야. 그렇기 때문에 남자는 자기 화살표하고 여자 화살표의 방향을 맞추려고 하는데, 여자 화살표는 방향이 전부 같은 게 아니니까 어느새 다른 화살표하고 정면충돌 한다든 지 입체적으로 교차하고 그래. - p.146

 

 

그렇다면 맨 처음에 언급한, 뜬금없는 “수생인류설”과 이 책은 무슨 연관이 있을까? 작가는 인간은 물 속에서 사는 신체 그대로 갑자기 뭍에 올라온 것처럼 여겨진다고 말하는데, 바로 이 대목이 “수생인류설”을 짐작케 한다. 여기에 작가는 원래라면 시간을 들여 천천히 육지에 적응했을 텐데 적응할 수 없을 정도로 갑작스럽게 올라온 이유가 바로 무서운 일, 즉 물 속에 있는 '그것'을 피해 도망쳐왔다고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왜 물 속의 “그것”은 야나쿠라 시민들을 다시 물 속으로 끌어들인 것일까? 여기서 더 나가면 가장 강력한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까 여기까지만 언급하자^^

 

 

책 발간 순서로 보면 이 책이 먼저이고 <불연속 세계>가 다음이니 나는 거꾸로 읽은 셈이다. 그러나 <불연속 세계>를 먼저 가볍고 부담 없는 “애피타이저(Appetizer, 前菜料理)”로 맛보고 난 후 깊고 풍부한 맛의 메인 요리인 <달의 뒷면>을 즐기든, 아니면 메인 요리부터 맛보고 나서 그 충격과 여운이 가시기 전에 가벼운 <디저트(Dessert, 後食料理)>를 즐기든, 어떤 식으로 즐겨도 “온다 리쿠”가 차려 놓은 “공포”의 성찬을 즐기는 데는 충분할 것 같다. 그래서 연이어 만난 <쓰자자키 다몬> 시리즈 서평의 마지막은 먼저 쓴 <불연속 세계>의 서두로 마무리해야겠다. 온다 리쿠, 그동안 만나본 많은 일본 작가들 중에 작가 이름만으로 선뜻 책을 택하게 되는 몇 안 되는 작가라고 말이다. - “자기표절(自己剽竊)”이라고 비판하실 분들도 있겠지만 그냥 “수미쌍관(首尾雙關)”식 마무리라고 봐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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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연속 세계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40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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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만나본 많은 일본 작가들 중에 작가 이름만으로 선뜻 책을 택하게 되는 작가는 몇 명이나 될까? 관리하고 있는 책 목록을 펼쳐 한 권 한 권 헤아려 보니 “다나카 요시키”, “미야베 미유키”, “아사다 지로”, “이사카 고타로”, 그리고 지금부터 소개할 책의 저자인 “온다 리쿠(おんだ りく)”, 이렇게 한 손에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이야기의 연금술사”, “노스탤지어의 마법사”라는 호칭이 자연스럽게 따라 붙는 “온다 리쿠”는 그녀를 처음 만나게 된 작품이자 온전히 그녀에게 포로가 되었다는 느낌을 받게 한 <삼월은 붉은 구렁을> 시리즈, <삼월은~> 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어서 처음에는 당황했었지만 그녀가 장르를 초월한 탁월한 이야기꾼이라는 것을 알게 해 준 성장소설 <밤의 피크닉>, 읽는 동안은 몰랐지만 읽고 난 후 상상해보면 더 무섭다는 느낌이 드는 은근하면서도 묘한 느낌이 참 매력적인 공포소설 <우리 집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등 읽은 작품이 몇 권 되지 않는 데도 불구하고 모두 인상이 강렬했던 작품, 즉 개인적으로 한 번도 선택에 실패하지 않은 그런 작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녀의 신작 출간 소식에 늘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이번에 1년 여 만에 그녀를 “쓰카자키 다몬”이라는 독특하고 색다른 느낌의 인물이 연속으로 “주연(主演)”을 맡은 두 권의 소설로 만나게 되었다. 우선 단편소설인 <불연속 세계(원제 不連續の世界/비채/2012년 3월)>부터 이야기해보자.

 

책은 “쓰카자키 다몬”이 겪게 되는 다섯 가지 사건을 담고 있다. 대형 음반사에서 신인가수를 발굴하는 프로듀서인 다몬은 대박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마니아 팬들을 거느리는 밴드들을 잇달아 발굴한 실력 있는 기획자이다. 남자치고는 가녀린 몸집에 갸름하고 중성적인 이목구비를 가지고 있는 이 남자에게는 늘 불가사의하고 미스터리한 사건들이 따라다닌다. 마치 연쇄 살인을 불러 오는 소년 탐정 “긴다이치(金田一)” 처럼 말이다. <나무 지킴이 사내>에서는 불길한 징조인 “나무 지킴이 사내” 목격담을 다룬다. 다몬은 밤낮이 따로 없는 생활을 하다 보니 평일 오후 3시, 강가 산책길을 걷는 사람들이라고는 일반적인 생산 활동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시간대에 산책하면서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르는 곳에 있다는 게 기이하게 느껴지는, 이런 기이한 감각을 맛보고 싶어서 틈날 때마다 강변을 산책한다. 새로 데뷔할 밴드의 이름이 마뜩지 않아서 고민하던 그는 산책 길 벤치에 앉아 있던 대학 선배 “다시로”에게서 그가 요즈음 연속해서 꾸고 있다는 “이상한” 꿈 이야기와 함께 “나무 지킴이 사내(고모리오토코)”라는 단어를 듣게 된다. 그리고는 산책길 옆 놀이터에 있는 푸릇푸릇하게 우거진 느티나무 꼭대기에 머리와 수염을 기르고 갈색 기모노를 입은 해골 같은 남자가 들러붙어 있는 것을 목격한다. 그런데 옆에서 그 사내를 같이 목격한 사내 아이가 이상한 말을 한다. 요새 나무지킴이 사내가 이 주변에 출몰한다고, 할아버지 말로는 나무지킴이 사내가 나오면 도쿄가 불바다가 된다고, “도쿄 대공습” 전날인 1945년 3월 9일에도 출몰했었다고. 과연 나무지킴이 사내의 정체란 무엇일까? 1990년 대 초반에 다시 나타난 이유는 무엇일까? 책에는 이 외에도 죽음을 부르는 노래 이야기인 <악마를 동정하는 노래>, 영화 촬영하는 장면을 보면 주변 사람이 죽는다는 아이돌 로커의 이야기인 <환영 시네마>, 거대한 모래구멍인 “사구(砂丘)”가 하룻밤 사이에 깜쪽같이 사라졌다 나타나는 미스터리한 사건을 그린 <사구 피크닉>, 어느새 중년의 나이가 된 다몬 - 첫 편에서는 미혼(未婚)이었던 그가 마지막 편에서는 첫 편에 등장했던 프랑스 여인 “잔”과 결혼했다. 그리고 이 마지막 작품에서는 그의 아내인 잔의 실종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다 - 과 그의 중년친구들이 야간열차를 타고 가면서 무서운 이야기를 서로 나눈다는, 그런데 그 공포의 주인공이 바로 다몬이었다는 깜짝 반전이 인상적인 <<새벽의 가스파르>가 연이어 펼쳐진다.

 

다섯 편 모두 이처럼 분위기나 소재 만큼은 으스스하지만 결론에서는 말 끝맺음을 분명히 하지 않고 얼버무리듯이 “명확”하게 결말을 맺지 않는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수십 년 만에 다시 나타난 나무지킴이 사내의 정체는 분명하지 않고, 다만 90년 대 초 불어 닥친 일본 장기 불황 사태의 전조(前兆) 쯤으로 그려낸다. 산의 불길한 울음소리인 “산소리(<악마를 동정하는 노래>)”나 “인지 오류 밀실”이나 무의식 중에 죽음을 예견하는 일종의 “트라우마”(<환영의 시네마>), 달빛에 의한 착각 쯤으로 짐작되는 “사구 실종”(<사구 피크닉>), 그리고 다몬이 직접 겪지만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는 이상한 사건(<새벽의 가스파르>) 결말 모두 주인공 다몬의 추측 또는 예상일뿐 명확하게 결말을 맺진 않는다. 그렇다 보니 각 단편들마다 읽고 나서 전체 이야기를 다시 한번 떠올려 보며 각자 그 결말을 추측하고 해석하게 만드는, 일종의 “열린 결말” 형식을 띤다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 보니 뭔가 분명하고 확연한 결말을 기대한 분들에게는 왠지 2% 부족한 느낌을 받을 수 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몽환적이면서 상상의 여지를 남겨 놓는 이런 결말이 더 인상적으로 느껴졌다고 평가하고 싶다. 대놓고 직접 이야기하는 것보다 읽고 나서 이야기 하나 하나 떠올려 보면 참 무서운 이야기였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되는, 그제서야 오싹한 기분에 뒷통수가 서늘해지는 그런 결말 말이다. 일본 대표 공포 영화 <주온(呪怨, 2002)> - 일본 공포 영화 중 제일 무서웠던 작품이다. 이 영화를 보고 며칠을 밤잠을 설쳤던지 지금 생각해도 몸서리쳐진다 - 처럼 직접적이고 끔찍한 묘사들은 없지만 공포를 차츰 차츰 고조시키는 이야기 전개만큼은 여느 소설이나 영화보다도 탁월한, 즉 텍스트를 읽을 때 마다 “상상”할 때 더 무섭고 그런 공포가 바로 온다 리쿠 식 “공포”라고 정의한다면 억지일까?

 

그렇다면 온다 리쿠는 많은 소재들 중에 왜 “공포”를 선택했을까? 그 이유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중년들이 야간열차를 타고 괴담을 주고받는다는 <새벽의 가스파르> 편에서 잘 나와 있다.

 

무서운 이야기.

그런 것은 굳이 찾지 않아도 주위에 얼마든지 뒹굴고 있다. 사고, 지진, 병, 구조조정, 스토커, 석면. 그러나 요새 실록 괴담이 점점 더 인기를 끄는 것은, 고전적인 유령이나 저주 이야기가 오히려 향수를 자극하고 누구나 공유할 수 있어 안도감을 주기 때문이 아닐까. 세계가 이토록 세분화되어 세대 및 집단 간에 가치관의 차이가 현저해진 지금, 공유할 수 있는 것은 공포감뿐인지도 모른다. - P. 238

 

즉 인간의 가장 원초적 감정이 바로 “공포”이며 그런 공포는 명확하고 실증적인 천재지변(天災地變)이나 사회 문제들보다는 그 정체가 불분명하고 인지 범위를 벗어나는 초자연적인 현상에 대한 두려움이 훨씬 크며 또한 모든 세대가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공통 감정일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마치 앞에서 흉기를 들고 쇄도하는 남자는 시각적인 두려움이 주를 이루지만, 목덜미에 소름이 쫙 돋게 하는 미지의 정체가 소곤거리는 목소리는 오감(五感)을 자극하는 그런 두려움을 느끼게 하듯이 말이다. 어쩌면 온다 리쿠는 현실 세계 속에 벌어지는 온갖 끔찍하고 잔혹한 사건들 때문에 어느새 무의식 기저로 숨어 버린 미지(未知)에 대한 두려움이자 원초적인 감정선을 수면 위로 끌어내고 싶었던 지도 모르겠다. “노스탤지어의 마법사”라는 자신의 별명처럼 일종의 “그리움”과 같은 그런 감정을 말이다.

 

이 작품, 그래서 “온다 리쿠” 식 공포의 정체가 어떤 것인지를 “제대로”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그래도 “온다 리쿠” 식 공포는 너무 밋밋하고 심심하다고 느끼는 분들이 있다면 아직 그 판단은 뒤로 미뤄도 좋을 것 같다. 보다 끔찍하고 보다 거대한 공포를 담고 있는 쓰카자키 다몬의 또다른 시리즈 <달의 뒷면>이 기다리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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