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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함께한 마지막 열흘
모모이 카즈마 지음, 조찬희 옮김 / 자음과모음 / 2012년 3월
평점 :
절판
아내: 나 죽으면 어떻게 할 건데?
나: 화장(火葬)해서 납골당에 모셔야지
아내: 뜨거운 거 싫어! 그냥 양지 바른 곳에 묻어 줘.
아내: 아무래도 내가 당신보다 먼저 죽을 것 같아. 그럼 어떡할꺼야?
나: 걱정하지마. 당신 가기 하루 전에 내가 먼저 갈게.
아내: 안돼! 나보고 당신 뒤처리하라고?
신혼 초에 케이블 TV에서 아내가 불치병으로 죽게 되는 젊은 부부 이야기를 그린 영화 - 드라마였는지 영화였는지도 가물가물하지만 - 를 함께 보면서 별 생각 없이 나눈 농담 같은 대화이다. 양가 부모님이 들으시면 무슨 끔찍한 소리냐고 화를 내실 소리지만 당시만 해도 둘 다 앞으로 30~40년은 거뜬히 살 거라는, 오히려 100세까지 산다는 요즈음 노후 문제를 걱정하는 게 더 현실적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작년에 내가 수술을 받게 되면서 저런 농담이 현실이 될 수 도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철렁했었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어본 경험이 없는 우리 부부 - 조부모님이나 친가, 외가 쪽 친척들은 돌아가신 분들이 있지만 고맙게도 직계인 양가 부모님과 형제들은 무탈하다 - 에게 서로 중 누군가를 잃는다면 남은 사람은 정말로 가슴이 찢어지고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그런 슬픔을 느낄 것이다. 이번에 읽은 “모모이 카즈마”의 <아내와 함께 한 마지막 열흘(자음과 모음/2012년 4월)>은 이처럼 아내를 갑작스레 잃게 된 한 남자의 가슴 아픈 이야기이다.
평소와 전혀 다르지 않은 5월 9일 아침, 아내는 “다녀오겠습니다”라는 인사말을 남기고 회사 출근 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 서둘러 나선다. 이제 막 초등학교 6학년에 올라간 딸과 나는 평소와 다름없이 거실에서 아침을 먹으며 복도 너머 현관에 서 있는 아내를 배웅했고, 그녀를 현관까지 배웅하러 나와 준 건 여느 때처럼 키우고 있던 고양이 “모모”였다. 이처럼 이날 우리 집에서 있었던 일은 여느 때와 다름없는 아침의 ‘이별’이었다. 그날 저녁, 친구들과 술자리를 하고 있던 나에게 딸이 엄마가 회사에서 쓰러졌다고 전화를 해온다. 아내에게 전화를 해보니 아내 대신 회사 동료로 짐작되는 낯선 여자가 전화를 받는다.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아내가 쓰러졌으며, 지금 병원으로 옮겨질 예정으로 그리로 오라고 이야기한다. 물어보기 무서운 질문이지만 숨을 깊게 들이쉬고 다시 크게 내쉬며 의식은 있나요 라고 물어보니 묵직하고 갑갑한 침묵 끝에 없다는 답이 들려온다. 술집을 뛰쳐나와 아내가 실려간 병원으로 간 나는 의사에게서 청천벽력과 같은 소리를 듣는다. 아내의 증상은 동맥류 파열에 의한 “지주막하출혈(subarachnoid hemorrhage, 蜘蛛膜下出血)”이라는 것이다. 이 병이 발병할 경우 최초 출혈로 3분의 1이 사망하고, 3분의 1은 살지만 중증 장애를 얻게 되며, 후유증 없이 회복될 수 있는 경우는 3분의 1이나 그 이하에 불과한 심각한 병이라는 것이다. 응급수술은 무사히 끝났지만 이미 아내는 돌이키기엔 너무 늦어 사실상 뇌사(腦死) 상태에 빠져 버린다. 많은 사람들이 기적을 바랬지만 아내는 결국 쓰러진지 열흘 째인 5월 18일 세상을 떠나고야 만다. 장례를 마치고 집으로 함께 돌아온 딸이 나에게 내일부터 열심히 일하기로 약속하자며 새끼손가락을 걸어온다. 나는 그런 딸의 모습에서 지난 2주 동안 소녀에서 당찬 어른으로 한걸음 내디딘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이처럼 건강한 모습으로 출근한 아내가 회사 화장실에서 갑작스레 쓰러지고, 30여 분이나 지나 늦게 발견한 탓에 부랴부랴 병원으로 후송했지만 이미 손을 쓰기에는 너무 늦은 상황이 되어 열흘 동안 아내의 “죽음”을 지켜보게 되는 남편의 이야기이다. 작가가 실제로 겪은 이야기인지라 그 어떤 소설이나 드라마보다도 생생하고 현실감이 느껴지는데, 아내가 입원한 병원을 찾아가다가 잠시 들른 편의점에서 충격으로 십분 동안 기절했던 장면, 장모님 또한 아내의 병세를 의사에게 듣고 충격에 잠시 동안 기억을 상실하는 장면, 담배를 피러 나왔다가 도로변에 거니는 한 쌍의 비둘기를 보며 그만 목이 메는 장면 등 책에는 안타까운 장면들이 참 많이 나온다. 특히 엄마가 쾌유되겠지 하는 기대감을 갖고 있던 딸에게회복하기 어렵다며 엄마의 병세를 설명하고는 딸에게 이별의 시간을 주기 위해 병실로 나오자 딸이 엄마를 부르며 오열하는 장면은 이 책에서 가장 안타깝고 슬픈 장면이었다.
딸에게 사실대로 말한 것은 정말 잘한 일일까......확신할 수 가 없다. 내가 결정적인 실수를 저지른 것인지도 모른다. 이 상황이 딸의 마음에 깊은 상처로 남는다면 부모로서, 아니 한사람의 인간으로서 어떻게 책임질 수 있을까.(중략) 딸에게 엄마라는 존재는 스스로의 몸을 깎아내는 고통을 참아내며 자신을 낳아준 존재이다. 두 사람 사이에는 남자인 내가 끼어들 수 없는 애틋함이 있다. 둘만 남은 병실에서 ‘엄마, 엄마’ 하며 몸을 쥐어짜듯 오열하는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 P.191~192
그렇다고 이처럼 슬픈 장면만 기록해놓은 것은 아니다. 암보험과 딸을 위한 보험은 여러 개 들었지만 막상 필요한 보험을 들지 않아 병원비 부담을 걱정하고, 전혀 예기치 않았던 상황이라 아내가 떠난 후의 삶에 대하여 정신적으로, 그리고 경제적으로 막막해 하는 남편의 현실적인 걱정 또한 가감 없이 기록해놓았다. 여기에 사진가이자 저널리스트로 르완다, 러시아, 인도네시아, 사라예보 등 세계 각지의 분쟁 지역을 돌아다니며 그가 경험한 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매 장(章) 도입 부문에 배치해 놓아 비록 처지와 그 이유는 다르겠지만 누구에게나 슬픔이자 아픔인 “죽음”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처럼 참 가슴 아프고 슬픈 이야기인데 내 눈물샘을 자극할 만한 그런 감동은 아쉽게도 느끼지 못했다. 이렇게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이야기는 여러 책이나 드라마, 영화를 통해서 자주 접해볼 수 있는 흔하다면 흔한 이야기 - 물론 그 일을 직접 겪은 분들에게는 세상에서 단 하나 뿐인 슬픔일 테니 지극히 실례가 되는 말이겠지만 - 데다가 앞에서 말한 대로 세계 분쟁 지역의 다양한 “죽음”들이 일견 죽음의 의미를 상기시키는 역할을 하지만 아내의 죽음에 대해 남편이 느끼는 슬픔과 아픔에 집중하는 데 “방해”하는 역할 또한 하기 때문이었다. 여기에 리얼리티(Reality)를 살리기 위해 매 장 말미에 삽입한 병원 진료 기록 카드 또한 감정선을 유지하는 방해 요소 중 하나였다고 할 수 있겠다. 그래도 이 책, 앞서 말한 딸이 오열하는 장면과 무슨 일이 있어도 나를 받아들여준 사람들에 관한 책을 쓸 것과 내 딸에게 엄마의 삶과 일, 사고방식에 관해 제대로 알려주는 일을 이루지 못한 동안에는 언제가 되는 죽을 수 없다고 말하는 아내의 일기장을 읽는 장면, 그리고 마지막 아내의 장례식 장면만큼은 울컥하게 만드는 슬픈 장면이었다.
아쉬운 면이 있지만 그래도 이 책, 사랑하는 가족을 잃는다는 것이, 특히 평생을 내 옆에서 영원히 지켜줄 것 같은 아내를 갑작스레 잃는다는 것이 얼마나 아프고 슬픈 지를 간접으로나마 경험해보게 해준 책이었다. 오늘도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많은 분들이 사랑하는 가족들과 이별을 준비하고, 또는 이별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분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슬픔과 아픔이겠지만 하느님이 시련과 함께 그것을 벗어날 길도 마려해주셔서 그 시련을 견디어 낼수 있게 해주신다는, 이 책 말미에 인용한 성경 구절(고린도전서 10장 13절)처럼 슬픔을 금세 이겨내시기를 바래본다. 그리고 이기적이지만 이 책의 이야기가 결코 우리 부부에게는 일어나지 않기를 또한 간절히 바래본다.
고통을 품은 모든 사람에게
오늘도 조용하고 온화한 밤이 찾아올 수 있기를 - P.266. 마지막 구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