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
조지 오웰 지음, 김기혁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얼마 전까지 조지 오웰의 <1984>를 읽을 생각은 없었습니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와 브래드버리의 <화씨 451>을 읽은 터였고, SF 소설을 썩 좋아하는 것도 아닌데다가 <1984>식 통제 시스템을 여러 SF영화에서 보았기에 그다지 흥미를 느낄 수 없었습니다. 말하자면 <1984>에 영향을 받은 다양한 작품을 접했기에 오히려 원전에 관심이 희미해진 거죠.

길지 않은 작품의 분량에 혹해서 펼쳐든 <1984>는 뜻밖이었습니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만큼 흥미로웠지만 보다 더 어두웠고, <화씨 451>만큼 풍자적이었지만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깊이 있었으며, 그 어떤 사회과학서적보다 논쟁적이고 정치적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쉽게 휘리릭 읽어 치울 만한 내용이 아니었습니다. 요약하면 <1984>는 어둡고 풍자적이며 정치적인 미래소설입니다.

<1984>가 그리고 있는 미래사회는 그 유명한 빅 브라더가 지배하는 독재 사회입니다. 그냥 주는 대로 먹고, 보여주는 것만 보고, 생각 따위는 하지 말고 그냥 ‘닥치고 있으라!’는 것이 권력을 가진 자의 요구입니다. 이 점이 참으로 무섭습니다. 이는 비단 독재자가 군림하는 사회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작품을 통해 오웰이 말한 것처럼 이는 권력을 쥔 자들의 속성이지 독재자만의 특성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1984>에 등장하는 통제 시스템과 음험한 지배 논리는 권력이 존재하는 어디에나 존재했고, 존재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웰의 끔찍한 통찰력은 6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를 전율케 만듭니다.

<1984>는 총 3부로 구성되어있습니다. 윈스턴이라는 주인공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미래 사회의 이야기는 각 부마다 전혀 다른 분위기로 읽힙니다. 1부는 엄격하게 통제된 전체주의 사회 속에서 철저하게 고립된 한 남자의 고독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2부는 이른바 금서인 ‘그 책’을 등장시켜 이 남자의 각성과 행동의 배경을 설명하고 있고, 3부는 좌절에 관한 씁쓸한 풍자극입니다. 거칠게 재단하면, 1부는 소설이고, 2부는 정치이론서이며, 3부는 고문과 심문을 소재로 한 연극을 보는 듯 합니다. 독자들은 각성-행동-좌절의 과정을 주인공 윈스턴과 함께 고스란히 경험하게 되는데, 그 패배감은 독자를 더욱 몸서리치게 만듭니다.

책을 읽으며 메모를 하거나 열심히 밑줄을 긋는 성실한 독자가 아닙니다. 더구나 최근에는 휘리릭 읽어치울 수 있는 소설을 주로 읽는 터라 더욱 그러했습니다. 그런데 <1984>를 읽는 동안 비교적 열심히 밑줄을 그었습니다. 그만큼 오웰의 흥미로운 통찰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중 하나가 커피와 담배, 설탕에 관한 설정입니다. 빅 브라더는 초콜릿과 커피, 설탕, 담배의 배급을 이용하여 사람들을 통제합니다. 사람들 역시 그 어떤 것보다 초콜릿과 커피, 설탕, 담배의 품질과 배급량에 예민하게 반응합니다. 품질 좋은 커피를 마시고 진짜 설탕을 맛보는 것이 통제에 대한 일탈로 그려지기도 합니다.
기호품은 인간의 생존과 직접 관련이 없죠. 다만 인간의 정신적인 면, 즉 욕망과 관련이 있죠. 섹스 역시 당의 엄격한 통제 아래 이뤄집니다. 그들을 지배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욕망을 철저하게 움켜쥐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어떤 분의 리뷰를 보니 문학동네 판 <1984>의 번역에 대한 문제를 거론하며 민음사 판 <1984>와 비교하시더군요. 저는 이번에 <1984>를 처음 읽는 지라 여러 판본의 번역본들을 서로 비교할 처지는 못 됩니다. 다만 읽는 내내 <1984>는 번역이 쉽지 않은 작품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빅 브라더는 언어를 정신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는데, 실제로 작품 속에는 ‘신어’라는 새로운 언어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문학적 향취가 물씬 풍기는 심리 묘사와 사회과학서에 버금가는 정치이론이 혼재되어있으니 말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개인적으로 문학동네 판 <1984>의 고지식한 번역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원문의 뉘앙스가 살아있는 고지식함 말입니다. 작가와 함께 생각할 여유가 느껴지거든요. 아무래도 고전은 천천히 씹어 삼켜야 깊은 맛을 알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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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s 2009-10-17 0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리뷰가 참 맛깔납니다. 북마크해서 종종 들르고 있어요.오늘도 잘읽고 갑니다^^

lazydevil 2009-10-17 01:13   좋아요 0 | URL
이크.. 게으름으로 관리소홀한 이곳에 종종 들리신다니...
긴장해야겠네요. 감사합니다.^^;;
 
스탠드 1 - 바이러스 밀리언셀러 클럽 70
스티븐 킹 지음, 조재형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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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장, 도무지 숨을 쉴 수가 없어. 다른 건 바라지도 않는다구. 숨 좀 돌리게 해줘.

몇 개월 동안 계속되는 공세에 이제 녹초가 됐어. 맞서 싸우는 것조차 힘겨워 헐떡거리다가 이젠 자포자기 상태에 빠졌다구. 그런데 희한하게도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네. 이렇게 버티다보면 뾰족한 수가 생기겠지?하는 무책임한 생각이 강력한 힘을 발휘한 걸까? 홀가분하지만 대책 없는 반전이야. 젠장.

stand. 버팀. 저항. 여하튼 목적지가 어디든 간에 폭주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간절한 터에 <스탠드>는 적잖이 도움이 되었어. 작가가 ‘에고 신난다’하고 무책임하게 써댄 장편소설의 첫 권을 읽는데 현실의 짜증스러움이 슬며시 잊히더라. 물론 사라진 건 아니야. 잠시 망각한 것일 뿐. 그래도 상관없어. 그게 어디야. 그만큼 <스탠드1>는 재미있는 이야기로 가득해.

이 책의 또 다른 장점은 산발적인 책읽기도 가능하다는 거야. 그냥 띄엄띄엄 읽어도 충분히 재미있거든. 스토커들의 공세에 체력도 바닥나고 머리도 복잡해서 책이란 걸 도무지 읽을 엄두가 나지 않은 상황이었거든. 그런데 <스탠드1>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어. 마치 단편소설집을 읽는 것 같았어. 대재앙을 몰고 올 바이러스가 노출된 후 어떻게 각지로 퍼져나가는지 여러 등장인물들의 일화를 통해 보여주고 있거든. 그게 전부야. 첫 번째 권을 읽었는데 본격적인 이야기는 시작도 되지 않았어. 그런데도 불만은 없어. 여기 담긴 에피소드들이 정말 재미있거든. 특히 뮤지션 래리와 미혼모 프래니의 이야기는 정말 멋져. 그들의 이야기만 똑 잘라내서 단편으로 읽어도 흠잡을 데 없을 정도야. 아니 어쩌면 작가 자신의 최고의 단편이 되었을 지도 몰라.

아까 말했듯이 첫 번째 권이 끝났는데 아직도 사건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지 않았을 뿐더러 인물 소개도 끝나지 않았어. 솔직히 사건은 별로 궁금하지도 않아. 바이러스가 창궐하고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픽픽 죽어가는 이야기에 무슨 새로운 걸 기대하겠어.(우리는 진짜 현실 속에서 이런 상황을 너무 잘 알고 있잖아!) 게다가 이 소설을 쓴 사람이 스티븐 킹이잖아. 늘 비슷비슷한 이야기를 재탕 삼탕 우려먹는 백만장자 소설가 말이야.

그럼에도 <스탠드>를 끝까지 읽을 게 분명해. 일단 예측 가능한 뻔한 설정 속에 숨어 있을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궁금하기 때문이야. 그리고 재탕 작가가 만들어내는 인물들도 보고 싶어. 늘 그런 생각을 했지만 스티븐 킹이라는 작자는 인물 만들기에 탁월한 재주가 있는 사람이야. <스탠드>에서도 그 솜씨가 그대로 드러나더군. 난 한 번도 미국을 가보지 못했지만 이 사람의 소설을 읽다보면 미국에 사는 사람들이 보이고, 그들이 어떻게 사는 지도 보이는 듯 해. 이미 내가 알고 있는 걸 이 사람이 보여준다는 착각에 빠질 정도야.

젠장, 도무지 숨을 쉴 수가 없어. 다른 건 바라지도 않는다구. <스탠드>의 나머지 권들을 읽으며 숨 좀 돌리게 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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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05 22: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0-05 23: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를 바라는 기도 밀리언셀러 클럽 48
데니스 루헤인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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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무지 패트릭 켄지가 어떤 인물을 종잡을 수 없습니다. <가라, 아이야, 가라>를 읽을 때도 그랬지만 <비를 기다리는 기도>는 정도가 심합니다.

전작에서 앤지와 헤어진 켄지는 싱글의 신분을 씁쓸히 누리고 있습니다. 어느 날 카렌이라는 아가씨가 스토커를 쫓아달라며 찾아오죠. 켄지는 부바와 함께 무지막지한 완력을 앞세워 스토커를 혼내줍니다. 당해도 싸다싶은 놈이지만 켄지와 부바의 폭력과 협박은 분명히 지나칩니다. 더티 해리 식의 과격한 해결! 이것은 <비를 기다리는 기도>에서 켄지가 보여줄 컨셉인가싶었는데, 아닌 게 아니라 정말 그랬습니다.
이 사건은 6개월 후 카렌의 자살로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듭니다. 그런데 어쩐지 누군가 치밀하게 꾸민 상황에 떠밀려 카렌이 자살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켄지는 카렌이 죽기 전 요청한 도움을 한차례 외면했다는 죄책감에 못 이겨 사건을 조사합니다. 그리고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사건과 사고를 배후 조종한 얼굴 없는 살인마의 존재를 감지하게 되죠.

<비를 바라는 기도>에 등장하는 켄지는 조울증 환자 같습니다. 때로는 세상의 모든 슬픔과 고독을 짊어진 남자처럼 센치하게 행동합니다. 그러다가 돌연 분노를 표출하죠. 아주 폭력적인 방법으로요. 그 와중에도 쉬지 않고 시시껄렁한 농담을 늘어놓습니다. 도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 스탭을 밟아야할 지 모르겠더군요. 이렇게 폭력과 농담, 분노가 뒤죽박죽 섞여있는 이상한 상황을 낄낄거리며 신나라하는 인물들이 있습니다. 바로 켄지와 앤지, 부바 트리오입니다. 도대체 저들이 뭐 때문에 목숨을 걸고, 뭐 때문 과도한 폭력을 행사하는지, 그 상황에 농담 따먹기나 하면서 좋다고 키득거리는 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켄지는 도대체 어떤 인물일까요?

비교해보면 <가라, 아이야, 가라>는 좋은 작품입니다. 켄지의 캐릭터를 선뜻 이해하기 힘들기는 그 작품도 마찬가지지만, <비를 바라는 기도>와 전혀 다른 차원입니다. 앞선 작품에서 켄지는 이성과 감정, 행동의 불일치로 고민하는 우유부단한 캐릭터라면, 이 작품의 켄지는 분열증을 겪고 있는 환자같습니다. 웃어야할 때와 울어야할 때를 구분 못하고, 조금 전까지 자기가 울었다는 사실도 기억 못하고 시시껄렁한 농담을 던지는 환자말입니다.

시종일관 불만을 털어놓았지만 이 작품은 경우에 따라 재미있게 읽힐 수 있습니다. 폭력과 분노, 농담 등의 요소가 골고루 섞여 있고, 흥미로운 캐릭터도 등장하니까요. 하지만 데니스 루헤인이라는 이름값을 생각하면 실망스럽습니다.

역자는 데니스 루헤인의 대표작이 <미스틱 리버>나 <살인자들의 섬>이 아니라 켄나와 제나로 시리즈라고 믿어 의심치 않더군요. <미스틱 리버>는 읽지 않아서 모르겠고, <살인자들의 섬>이 대표작이 아니라니 다행입니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켄지와 제나로 시리즈가 데니스 루헤인의 대표작이라지만 <비를 기다리는 기도>가 그의 대표작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다섯 편짜리 시리즈물 말고 두 편 밖에 내놓지 않은 작가에게서 시리즈물이 대표작이라고 단언하는 것도 좀 웃기기는 하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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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베이 2009-10-03 2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lazydevil님^^ 추석 알차게 보내세요~
오랜만에 안부인사 전합니다.

lazydevil 2009-10-05 17:37   좋아요 0 | URL
오랜만이네요.(저도 제 서재에 오랜만이에요^^;;) 쥬베이님, 자주 뵈요~
 
가라, 아이야, 가라 2 밀리언셀러 클럽 47
데니스 루헤인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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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들의 섬>과 <가라, 아이야, 가라> 단 두 편을 읽었을 뿐이지만 데니스 루헤인이 뛰어난 작가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왠지 이 작가에 격한 호감이 생기지 않습니다. 도대체 무슨 이유 때문일까요?
<살인자들의 섬>에 관해 남아있는 기억. 재미있었다. 그 뿐이네요. 흔히 말하는 훅을 느끼지 못했기에 데니스 루헤인은 솜씨가 괜찮은 대중작가 정도의 인상만 남기고 관심 밖으로 밀어놓았습니다.
영화 <미스틱 리버>는 대단한 작품입니다. 개인적으로 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좋아하기도 합니다만, 사건과 인물을 둘러싼 설정이 빼어난 작품입니다. 영화만 봐도 원작의 힘이 분명히 느껴집니다. 그럼에도 원작을 읽지 않았습니다. 영화를 거의 열 번 이상 본 터라 선뜻 원작에 손이 가지 않더군요. 영화는 영화고, 원작은 원작인데도 말입니다. 아무튼 <가라, 아이야, 가라>는 데니스 루헤인을 직간접적으로 만난 세 번째 작품이네요.

<가라, 아이야, 가라>는 <살인자들의 섬>보다 <미스틱 리버>가 떠오르는 작품입니다. 매사추세츠, 보스턴이라는 사건이 벌어지는 공간도 그렇고, 아동 대상 범죄가 이야기의 모티브가 된 것도 그렇거니와, 선악의 모호한 경계와 아이러니, 뒤틀린 운명, 절망 등등 여러모로 흡사한 점이 많아 흥미로웠습니다. 탐정 켄지가 사건에 연루된 범죄자들과 어린 시절부터 친구라는 설정도 그렇고요.
웃기는 일이죠, 켄지&제나로 시리즈를 엉뚱하게 <미스틱 리버>와 비교하다니 말입니다. 그것도 원작도 아니고 영화와 말이죠. 제멋대로인 독자에게 자비를!! 그나저나 <미스틱 리버>와 공통점을 말하다보니 <가라, 아이야, 가라>의 주된 얘깃거리를 전부 말해버렸네요.

여러모로 부족함이 없는 작품인데도 작가와의 궁합을 운운하는 건 패트릭 켄지라는 탐정의 캐릭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패트릭 켄지는 그야말로 정의파 탐정입니다. 그런데 그 정의의 척도가 오락가락해요. 때론 더없이 온정적인 이미지를 보여주다가도, 때로는 매우 냉소적입니다. 또한 들끓는 분노를 주체하지 못해 상대의 머리통을 45구경으로 박살내다가고, 법에 목멘 원칙주의자처럼 행동합니다. 솔직히 후반부 켄지가 납치범을 경찰에 넘기는 설정은 이해하기 힘듭니다. 켄지와 제나로의 대립으로 작품의 주제인 아이러니가 한껏 증폭되지만 그동안 보여준 켄지의 행동을 떠올리면 선뜻 동의하기 힘들었습니다.

<가라, 아이야, 가라>에서 패트릭 켄지는 영국 밴드 스미스(the smiths)와 영화감독 오우삼에 대해 언급하는 대목이 등장합니다. 개인적으로 무척 재미있었는데, 작가 데니스 루헤인이, 적어도 주인공 패트릭 켄지가 저와 얼마나 취향이 다른지 알 수 있었습니다.
패트릭 켄지와 그의 친구 부바는 주크박스에서 스미스의 음악이 흘러나오자 ‘자길 사랑해달라고 깽깽대는’ 쓰레기 같은 음악이라고 독설을 퍼붓더군요. 동시에 수잔 베가와 나탈리 머천트의 음악도 싸잡아 욕하더군요. 하하하. 맞는 소리이긴 하지만 스미스의 음악은 결코 쓰레기는 아닙니다. 수잔 베가는 잘 모르겠지만 나탈리 머천트 역시 도매급으로 넘어가기에는 억울한 뮤지션이고요.(밴드 리더의 이름을 ‘모리씨(morrisey)’가 아니라 ‘모리스’라고 표기했더군요. 이건 역자 혹은 편집자의 실수겠죠.)

오우삼에 대해 언급하는 대목도 재미있었습니다. 탐정 켄지와 브루사드 형사가 오우삼 영화를 싫어한다는 것에 공감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둘은 오우삼 감독의 영화를 감정적인 토대를 구축하지 않고 폭력장면만 스타일리쉬하게 보여주는 샘 패킨파 영화의 재판이라고 몰아세웠던 걸로 기억하는데... 오우삼의 영화와 샘 패킨파의 영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분명히 오우삼이 샘 패킨파에 영향을 받기는 했지만 폭력을 보여주는 정조가 다릅니다. 오우삼은 감상적이고 동시 낭만적이지만, 샘 패킨파는 철저하게 냉소적이거든요.

스미스와 오우삼의 경우, 누가 옳고 그른가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만큼 주인공 패트릭 켄지와 독자인 저의 성향이 다르다는 거죠. 그래서 주인공과 독자가 시종일관 조금씩 엇박자를 내며 삐거덕거렸던 걸까요? 아무튼 재미있었지만 아쉬웠습니다. 현재 켄지&제나로 시리즈가 두 편 더 출간되었죠. 기대됩니다. 패트릭 켄지와 계속 엇박자를 내는 것도 나름 재미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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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학 씨는 최근 이 쪽(?)에서는 꽤 알려져 있으며,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역자입니다. 번역도 그리 나쁘지 않고요. 나쁘지 않다는 기준은 매끄러운 우리말입니다. 중딩 영어 수준인지라 오역인지 아닌지 판단할 눈도 없고 능력도 없습니다. 다만 그가 번역한 작품이 대체적으로 무난했기에 괜찮은 역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전 조영학 씨가 역자로 이름을 올라오면 일단 거부감을 느낍니다. 조영학 씨가 번역한 작품에서 반복되는 사소한 몇 가지가 매우 거슬리기 때문입니다. 불필요한 곳에서 ‘오버’한다는 선입견 때문이죠.

일단 필요이상의 비속어를 남발하는 것이 눈에 거슬려요. 기본적으로 욕은 욕으로 번역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종종 과도하게 생동감을 부여하려는 듯 우리말 욕으로 번역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제임스나 데이비드같은 이름을 가진 미국인이 우리말 욕을 하는 것 같아 시쳇말로 깹니다. 원작의 분위기를 생생하게 전달하는 것도 좋지만 선이라는 것이 있거든요.

조영학 씨의 경우 간혹 캐릭터 특유의 말투를 살리기 위해 생경하고 말투를 쓰기도 합니다. 가령 <가라, 아이야, 가라>에서 풀레라는 형사는 늘상 “XX양아, ~~한다.” 식으로 말합니다. 마치 60년대 한국영화에서나 들을 수 있을 법한 말투죠.
“김양아,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뭐 이런 말투요.
도대체 어떤 영어를 구사하길래 이 형사는 다찌마와 리처럼 말하는 거죠? 시종일관 이런 말투를 고수하는 통에 정말 민망했습니다. “제나로 양아~”, “헨렌 양아~”
얼마나 민망했냐면, 중반 이후 큰 부상으로 사건 전개에서 아웃되었을 때 쾌재를 불렀습니다. 이제 민망한 말투를 읽지 않아도 돼!!!

또 다른 불만은 작품해설입니다. 불확실한 정보를 불변의 사실인양 소개하는 용기와 중요하지 않은 정보를 침소봉대하는 무모함을 몇 차례 보았습니다. 사용하고 있는 용어에 대한 이해조차 의심스러운 대목도 간혹 있었고, 언급하는 인물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걸까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습니다. 문외한인 제가 봐도 특정 장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이 보였거든요.
장르문학을 번역하는 번역자가 모두 전문가일 필요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전문가인 양하는 것은 거부합니다.

물론 이런 실수는 대부분 초기 번역 작품에서 주로 발견한 것입니다. 솔직히 요즘은 조영학 씨가 쓴 작품해설은 읽지 않습니다만 이런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돌이켜보니 조영학 씨가 번역한 작품 중 상당히 많은 작품을 읽었고, 현재도 읽고 있으며, 앞으로 읽을 것 같군요. 그러기에 투덜거려봤습니다. 게다가 이런 불만조차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일 뿐이죠.

아래 작품들은 조영학 씨가 번역한 작품들이자 앞으로 읽으려고 마음 먹은 작품들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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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27 17: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8-28 10: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카스피 2009-08-27 2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생각에 장르 소설의 번역이 문제가 되는것은 기본적으로 장르 소설 자체에 대한 이해가 보족해서 그런게 아닌가 싶더군요.개인적으로 추리 소설의 경우 정태원씨의 번역이 가장 믿음이 가고 sf소설은 강수백(건즈벡에서 따온 필명인데 요즘은 본명으로 번역하시는데 이름이 가물가물)씨등이 믿음이 갑니다.
하지만 워낙 번역 작품이 적다보니 번역이 부실해도 그냥 감수하고 사시는 독자들도 많지요ㅜ.ㅜ

lazydevil 2009-08-28 1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솔직히 조영학 씨는 때때로 오버하는 거 말고는... ㅎㅎㅎ 좋은 역자인 것 같습니다.
강수백 씨는 좋은 정보가 많이 담긴 해설이 돋보이는거 같아요^^: 본명은 저두 가물가물...ㅎㅎ

그나저나 황금가지 편집 실수 정말 웃깁니다. 전에는 어떤 책에서는 축구공만한 표지 글자에 오자를 날리더니, <가라, 아이야, 가라>에서는 주먹만한 중간 제목 글자에 오자를 남기고 웃겨요, 웃겨...

카스피 2009-08-28 16:17   좋아요 0 | URL
황금가지(제가 말하는것은 환상문학시리즈)의 번역이 엉성하다는 것은 아시는 분은 다 아시는 사실이죠.
하지만 나름 열심히 내주시 넘 고마운 출판사입니다^^

lazydevil 2009-08-28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맞아요, 맞습니다. 그래도 기왕이면 조금만 더 분발하라는 의미루다가...^^;;;;

Forgettable. 2009-09-07 1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지금 스트레인 읽고있는데..
대공감이네요. 정말-_- 특유의 말투이긴 한데,, 욕이 너무 구시대적이에요 ㅠㅠ 좋은 역자인건 알겠지만 그 말투는 정말 세련된 기괴 + 호러틱한 분위기를 다 깨요. 너무나도 b급 욕이라..;; 말씀하시고자 하는 바가 뭔지 딱 알겠네요 ㅎㅎㅎ

lazydevil 2009-09-07 17:11   좋아요 0 | URL
ㅎ 저도 스트레인 책장에 대기중입니다.
이것저것 골치 아픈 일만 줄줄이 생겨서 기예르모하고 놀아볼까 했는데..., 조씨 번역작을 연짱으루 세 편 읽을 생각하니 쫌 거시기하더군요^^..ㅎㅎ

김삿갓 2010-08-02 1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레이지-침소봉대가 아니라 침소붕대.
카스피-이해 보족이 아니라 부족.

lazydevil 2010-08-02 16:21   좋아요 0 | URL
삿갓-침소붕대? 새로 나온 붕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