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드 1 - 바이러스 밀리언셀러 클럽 70
스티븐 킹 지음, 조재형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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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장, 도무지 숨을 쉴 수가 없어. 다른 건 바라지도 않는다구. 숨 좀 돌리게 해줘.

몇 개월 동안 계속되는 공세에 이제 녹초가 됐어. 맞서 싸우는 것조차 힘겨워 헐떡거리다가 이젠 자포자기 상태에 빠졌다구. 그런데 희한하게도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네. 이렇게 버티다보면 뾰족한 수가 생기겠지?하는 무책임한 생각이 강력한 힘을 발휘한 걸까? 홀가분하지만 대책 없는 반전이야. 젠장.

stand. 버팀. 저항. 여하튼 목적지가 어디든 간에 폭주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간절한 터에 <스탠드>는 적잖이 도움이 되었어. 작가가 ‘에고 신난다’하고 무책임하게 써댄 장편소설의 첫 권을 읽는데 현실의 짜증스러움이 슬며시 잊히더라. 물론 사라진 건 아니야. 잠시 망각한 것일 뿐. 그래도 상관없어. 그게 어디야. 그만큼 <스탠드1>는 재미있는 이야기로 가득해.

이 책의 또 다른 장점은 산발적인 책읽기도 가능하다는 거야. 그냥 띄엄띄엄 읽어도 충분히 재미있거든. 스토커들의 공세에 체력도 바닥나고 머리도 복잡해서 책이란 걸 도무지 읽을 엄두가 나지 않은 상황이었거든. 그런데 <스탠드1>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어. 마치 단편소설집을 읽는 것 같았어. 대재앙을 몰고 올 바이러스가 노출된 후 어떻게 각지로 퍼져나가는지 여러 등장인물들의 일화를 통해 보여주고 있거든. 그게 전부야. 첫 번째 권을 읽었는데 본격적인 이야기는 시작도 되지 않았어. 그런데도 불만은 없어. 여기 담긴 에피소드들이 정말 재미있거든. 특히 뮤지션 래리와 미혼모 프래니의 이야기는 정말 멋져. 그들의 이야기만 똑 잘라내서 단편으로 읽어도 흠잡을 데 없을 정도야. 아니 어쩌면 작가 자신의 최고의 단편이 되었을 지도 몰라.

아까 말했듯이 첫 번째 권이 끝났는데 아직도 사건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지 않았을 뿐더러 인물 소개도 끝나지 않았어. 솔직히 사건은 별로 궁금하지도 않아. 바이러스가 창궐하고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픽픽 죽어가는 이야기에 무슨 새로운 걸 기대하겠어.(우리는 진짜 현실 속에서 이런 상황을 너무 잘 알고 있잖아!) 게다가 이 소설을 쓴 사람이 스티븐 킹이잖아. 늘 비슷비슷한 이야기를 재탕 삼탕 우려먹는 백만장자 소설가 말이야.

그럼에도 <스탠드>를 끝까지 읽을 게 분명해. 일단 예측 가능한 뻔한 설정 속에 숨어 있을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궁금하기 때문이야. 그리고 재탕 작가가 만들어내는 인물들도 보고 싶어. 늘 그런 생각을 했지만 스티븐 킹이라는 작자는 인물 만들기에 탁월한 재주가 있는 사람이야. <스탠드>에서도 그 솜씨가 그대로 드러나더군. 난 한 번도 미국을 가보지 못했지만 이 사람의 소설을 읽다보면 미국에 사는 사람들이 보이고, 그들이 어떻게 사는 지도 보이는 듯 해. 이미 내가 알고 있는 걸 이 사람이 보여준다는 착각에 빠질 정도야.

젠장, 도무지 숨을 쉴 수가 없어. 다른 건 바라지도 않는다구. <스탠드>의 나머지 권들을 읽으며 숨 좀 돌리게 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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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05 22: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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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05 23:3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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