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 아이야, 가라 2 밀리언셀러 클럽 47
데니스 루헤인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6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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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들의 섬>과 <가라, 아이야, 가라> 단 두 편을 읽었을 뿐이지만 데니스 루헤인이 뛰어난 작가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왠지 이 작가에 격한 호감이 생기지 않습니다. 도대체 무슨 이유 때문일까요?
<살인자들의 섬>에 관해 남아있는 기억. 재미있었다. 그 뿐이네요. 흔히 말하는 훅을 느끼지 못했기에 데니스 루헤인은 솜씨가 괜찮은 대중작가 정도의 인상만 남기고 관심 밖으로 밀어놓았습니다.
영화 <미스틱 리버>는 대단한 작품입니다. 개인적으로 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좋아하기도 합니다만, 사건과 인물을 둘러싼 설정이 빼어난 작품입니다. 영화만 봐도 원작의 힘이 분명히 느껴집니다. 그럼에도 원작을 읽지 않았습니다. 영화를 거의 열 번 이상 본 터라 선뜻 원작에 손이 가지 않더군요. 영화는 영화고, 원작은 원작인데도 말입니다. 아무튼 <가라, 아이야, 가라>는 데니스 루헤인을 직간접적으로 만난 세 번째 작품이네요.

<가라, 아이야, 가라>는 <살인자들의 섬>보다 <미스틱 리버>가 떠오르는 작품입니다. 매사추세츠, 보스턴이라는 사건이 벌어지는 공간도 그렇고, 아동 대상 범죄가 이야기의 모티브가 된 것도 그렇거니와, 선악의 모호한 경계와 아이러니, 뒤틀린 운명, 절망 등등 여러모로 흡사한 점이 많아 흥미로웠습니다. 탐정 켄지가 사건에 연루된 범죄자들과 어린 시절부터 친구라는 설정도 그렇고요.
웃기는 일이죠, 켄지&제나로 시리즈를 엉뚱하게 <미스틱 리버>와 비교하다니 말입니다. 그것도 원작도 아니고 영화와 말이죠. 제멋대로인 독자에게 자비를!! 그나저나 <미스틱 리버>와 공통점을 말하다보니 <가라, 아이야, 가라>의 주된 얘깃거리를 전부 말해버렸네요.

여러모로 부족함이 없는 작품인데도 작가와의 궁합을 운운하는 건 패트릭 켄지라는 탐정의 캐릭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패트릭 켄지는 그야말로 정의파 탐정입니다. 그런데 그 정의의 척도가 오락가락해요. 때론 더없이 온정적인 이미지를 보여주다가도, 때로는 매우 냉소적입니다. 또한 들끓는 분노를 주체하지 못해 상대의 머리통을 45구경으로 박살내다가고, 법에 목멘 원칙주의자처럼 행동합니다. 솔직히 후반부 켄지가 납치범을 경찰에 넘기는 설정은 이해하기 힘듭니다. 켄지와 제나로의 대립으로 작품의 주제인 아이러니가 한껏 증폭되지만 그동안 보여준 켄지의 행동을 떠올리면 선뜻 동의하기 힘들었습니다.

<가라, 아이야, 가라>에서 패트릭 켄지는 영국 밴드 스미스(the smiths)와 영화감독 오우삼에 대해 언급하는 대목이 등장합니다. 개인적으로 무척 재미있었는데, 작가 데니스 루헤인이, 적어도 주인공 패트릭 켄지가 저와 얼마나 취향이 다른지 알 수 있었습니다.
패트릭 켄지와 그의 친구 부바는 주크박스에서 스미스의 음악이 흘러나오자 ‘자길 사랑해달라고 깽깽대는’ 쓰레기 같은 음악이라고 독설을 퍼붓더군요. 동시에 수잔 베가와 나탈리 머천트의 음악도 싸잡아 욕하더군요. 하하하. 맞는 소리이긴 하지만 스미스의 음악은 결코 쓰레기는 아닙니다. 수잔 베가는 잘 모르겠지만 나탈리 머천트 역시 도매급으로 넘어가기에는 억울한 뮤지션이고요.(밴드 리더의 이름을 ‘모리씨(morrisey)’가 아니라 ‘모리스’라고 표기했더군요. 이건 역자 혹은 편집자의 실수겠죠.)

오우삼에 대해 언급하는 대목도 재미있었습니다. 탐정 켄지와 브루사드 형사가 오우삼 영화를 싫어한다는 것에 공감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둘은 오우삼 감독의 영화를 감정적인 토대를 구축하지 않고 폭력장면만 스타일리쉬하게 보여주는 샘 패킨파 영화의 재판이라고 몰아세웠던 걸로 기억하는데... 오우삼의 영화와 샘 패킨파의 영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분명히 오우삼이 샘 패킨파에 영향을 받기는 했지만 폭력을 보여주는 정조가 다릅니다. 오우삼은 감상적이고 동시 낭만적이지만, 샘 패킨파는 철저하게 냉소적이거든요.

스미스와 오우삼의 경우, 누가 옳고 그른가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만큼 주인공 패트릭 켄지와 독자인 저의 성향이 다르다는 거죠. 그래서 주인공과 독자가 시종일관 조금씩 엇박자를 내며 삐거덕거렸던 걸까요? 아무튼 재미있었지만 아쉬웠습니다. 현재 켄지&제나로 시리즈가 두 편 더 출간되었죠. 기대됩니다. 패트릭 켄지와 계속 엇박자를 내는 것도 나름 재미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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