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 - 공부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 인문학 인생역전 프로젝트 1
고미숙 지음 / 그린비 / 200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삶이 무어냐고 물으신다면, 산다는건 정치요, 예술이라고. 몇년동안 대답하던 레파토리가 있었다. 2008년 대한민국에서 살아내는게 내게는 정치투쟁이요 예술활동이므로 부끄럽지 않게 삶을 창조하리라! 뭐 이런식의 대답을 마련했더랬다.

 고미숙의 내공에 '그린비'의 기획력이 빛나는 작품이다. 공부'량'은 많아졌으나 '공부'의 알맹이를 잃은 이시대 청년들에게 '공부'의 맛과 '공부'의 힘을 전해주는 학습 지침서. 인문학책이라고 하기에는 무척이나 실용적이고, 출판시장의 70%를 차지한다는 학습지코너와는 불화하고, 서점에서 발에 채이는게 뻔할뻔자의 인생지침서라고 했을때 단연 독보적이라고 하겠다.

 평균학력은 높아져도 교양수준은 하향평준화되는 서글픈 현실. 활자중독증인 나야 내가 좋아서 책을 부둥켜안고 살고 있다만, 활자기피증인 친구들에게는 영상매체도 학습매체려니 인정하고 독서편력을 활자에 대한 취향의 문제로 간주했더란다. 그런데 고미숙씨가 아니랜다.

 책을 읽으란다. 나는 고전 한장 넘기는데 하루가 걸리는데 고전을 읽으랜다. 소리 내어 암송하란다. 내 소리를 감당할만한 만만하고 넉넉한 공간이 없음을 핑계삼아보지만 온몸으로 공부하란다. 사람들 앞에서 구술하란다. 수다는 자신만만하지만 발표는 영 어눌할지라도 끊임없이 소통하란다. 앎의 꼬뮌을 조직하란다. 유유상종이라고 독서모임 하자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일상에서 공부하라. 더이상 '공부'를 핑계로 학교에 연연해하지 않기로 했다.

 나 역시 갈길이 멀다. 내 짝꿍의 말마따나 '이르다고 느긋해 하지 말고, 늦었다고 체념말'아야 할 일이다. 배움은 계속될 터이니 지금부터 시작해도 될 일이다.

 운동권스러운 간판탓에 더이상의 재생산은 없다고 여겼던 동아리에 후배가 들어왔다. 그가 이 공간에서 상상력을 발휘해서 미래를 꿈꾸며 실천적인 삶의 투사가 되기를 바라며 이 책을 바친다.    

 

 - 밑줄긋기 -

 멕시코 신화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멕시코 원주민들의 조상은 옥수수신이란다. 옥수수신들이 처음 지상에 내려왔을 때, 신들은 질문을 해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질문하면서 걷고, 걸으면서 질문하기로 결정했다. 걸으면서 질문하기! 요컨대, 신들이 지상에 정착할 수 있었던 건 다름 아닌 질문의 힘이었던 것이다. 그렇다. 살아 있는 모든 존재들은 질문을 던져야 한다. 질문이 없으면 단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평생 남이 제출한 질문지에 답을 쓰느라 바쁠 테니까. 그건 실로 청춘에 대한 모독이자 삶을 노예화하는 지름길이다. - p.7

 학교는 교육을 위해 이용할 수 있는 자금, 사람, 그리고 선의를 독점하고 있을 뿐 아니라, 다른 사회제도가 교육에 관여하는 것을 단념하게 만들고 있다. - 일리히, 『학교 없는 사회』에서

 즉, 노동과 여가, 정치 활동과 가정생활 등 삶의 모든 것이 공부가 되는 것을 포기하도록 만들고, 나아가 "그것에 필요한 관습이나 지식을 가르쳐주는 것을 모조리 학교에 맡겨"버린다. 결정적으로, 그럼으로써 공부에 대한 모든 생각을 '학교식으로' 재편한다. 그 결과 전 사회를 '학교화'한다는 것. ...... 자격증 및 학벌, 경쟁을 강요하는 공부, 입시지옥 - 이런 것이 나쁘다는 건 온 세상이 다 안다. '공부'하면 동시적으로 스쳐지나가는 이미지들 - 지겨운 노동, 참고 견뎌야 하는 과정, 족집게 도사, 성적의 비결, 성공하면 남을 지배할 수 있고 실패하면 영원히 무릎 끓고 살아야 하는 것 등등 - 은 모두 그로부터 비롯한다. 그러나 이런 공공연한 것들은 차라리 덜 위험하다. 누구나 그게 틀려먹었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으니까. 따라서 이런 표면적 폐해보다 더 심각한 건 그 이면에 깔려 있는 무의식적 전제들이다. 그것들은 아주 보편적이고 심오한 진리처럼 행세하지만, 사실은 전적으로 학교가 세상에 퍼뜨린 거짓말에 불과하다. 그것도 아주 질이 나쁜 새빨간 거짓말에. 사람들을 아주 '체계적으로 그리고 일생 동안 노예로 만들어버린다'는 점에서 그렇다. 눈을 부릅뜨고 살펴보기 전엔 알아차리기도 쉽지 않다. 고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이 새빨간 거짓말들을 만천하에 까발리는 일이다. p.32-34

 콩도르세는 이렇게 말했다. "교육의 목적은 현 제도의 추종자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제도를 비판하고 개선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는 것이다." 즉, 기존의 배치를 거스르면서 전혀 다른 욕망의 지도를 그려낼 수 있는 과감성, 전혀 다른 삶을 창안할 수 있는 상상력, 뭐 이런 것들이 창의성의 진짜 의미에 값한다. 예를 들면 어떻게 하면 우리 시대에 돈 없이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혹은 사람마다 스스로 몸을 돌볼 능력을 터득하여 '병원 없는 사회'를 만들 수 있는 길은 없을까? 공부로 축제를 열면 어떻게 될까? 가족이 해체된 시대의 새로운 공동체는 어떻게 가능할까? 등등. 사람들은 다들 머리 싸매고 돈을 벌 궁리만 하고 있다. 넓은 아파트에 아이들 교육에 노후대책까지 몽땅 혼자서 다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친구들과 더불어 함께 해결한다고 생각해보라. 일단 기본 비용이 반의 반도 들지 않을 뿐더러, 함께 살면 먹는 거나 입는 것이 몇배로 풍족해진다. 또 굳이 노후 대책을 따로 할 필요가 없다. 함께 노년을 보낼 친구가 있는데, 무슨 대책이 또 필요하단 말인가? 중요한 건 의기투합하는 친구가 있느냐인데, 바로 어릴 때부터 이걸 훈련하면 된다는 것이다. 의리, 우정, 신의 - 창의적으로 산다는 건 바로 이런 가치를 몸에 익히는 것이기도 하다. p.66-67

 코뮌에 접속하는 능력은 달리 말하면 코뮌을 조직하는 능력이기도 하다. 지난 1980년대, 그 엄혹한 시대에 대학이 우리 사회의 중심이 될 수 있었던 건 바로 학생회관을 부글부글 끓게 했던 학습 동아리들 때문이었다 그때는 누구든 대학에 들어오면 이런저런 동아리와 접속하는 것이 당연지사였다. 경찰의 탄압과 학교 측의 징계, 그리고 가난한 부모님의 기대, 그 어떤 것도 그 욕망의 흐름을 막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 억압도 방해도 없건만 모든 학습망은 와해되어버렸다. 현장의 역동성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대신 화려한 건물, 촘촘한 학사관리, 제도적 시스템이 그 공백을 메워버렸다. 그 결과 모든 학교가 리모델링에는 성공했지만, 학생들은 스승도 없고 친구도 없이 그저 죽은 지식만을 재생산하고 있다. p.86

 낭송이 지니는 의미는 참으로 다양하다. 이미 언급했듯이, 그것은 소리를 통해 몸의 안과 밖이 연결된다는 점에서 근원적으로 집합적이다. 즉 혼자서 할 때조차 그것은 외부와의 소통을 전제로 한다. 소통에의 욕구가 없이는 낭송이 불가능하다. 사람들 앞에서 하거나 혹은 여러 사람고 ㅏ더불어 할 때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큰 소리로 글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자기의 목소리만큼 낯선 것이 없다. 실제로 녹음을 해서 들어보면 누구나 자기의 목소리가 자신이 평소 생각하던 것과는 아주 다르다고 생각할 것이다. 곧 목소리야말로 내 안의 타자인 것이다. 따라서 낭송이란 일상적으로 자기 안의 타자를 발견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또 집단적으로 암송을 하노라면 타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능력도 터득할 수 있다. 즉, 목소리에도 개성과 표정, 색깔이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한마디로 사람에 대해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가 있는 것이다. 동시에 나의 목소리와 타인의 목소리가 뒤섞일 때 전혀 다른 종류의 소리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생생하게 맛볼 수 있다. 무엇보다 이 과정을 통해 지식과 몸의 소외가 극복된다. 소리를 내려면 두뇌보다는 몸이 적극 반응해야 한다. 거꾸로 말하면, 낭송을 한다는 건 체력과 기운의 분포를 바꾸는 일이기도 하다. - 앎의 신체성! 이것이야말로 학교식 공부가 망실해버린 원리가 아니었던가 - p.94

사랑은 인간의 활동 가운데 가장 활발한 생명 작용에 해당한다. 그리고 생명은 안과 밖의 소통 속에서 이루어진다. 즉, 삶의 세계에 대한 통찰력이 내 몸의 내공을 결정짓는다. 따라서 사랑의 패턴은 삶의 패턴과 나란히 함께 간다. 사는 건 엉망인데, 사랑은 멋지게 되는 경우는 없다. 절대! 따라서 삶에 대한 통찰력이 없이 누군가를 지속적으로 사랑을 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이상형을 만나도 소용없다. 왜? 사랑은 내 존재의 깊은 곳이 울릴 때라야 비로소 가능한 것이지 외부에서 주입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제 눈에 안경이니, 눈에 콩깍지가 씌었느니 하는 말이 다 거기에서 연유한다. - p. 113

 『희망의 인문학』의 저자 얼 쇼리스는 빈민들에게 인문학을 가르친 것으로 유명하다. 먹고살기도 어려운데 웬 인문학? 그가 보기에 빈밀들이 겪는 박탈감은 경제적인 것이 아니었다. 빈민들에겐 그저 재활 교육이나 직업과 관련한 공부만 시켜주면 된다고 생각하는 건 그야말로 어설픈 동정심이거나 감상적 사치에 불과하다. 그들이 진정 박탈당한 것은 존재의 의미와 가치를 통찰할 수 있는 정식적 자산이었다. 한 번도 지적 풍요로움을 경험해 본 적이 없다 보니 늘 충동에 내몰리게 되고, 그러다 보면 범죄와 마약의 수렁에서 헤어날 길이 없는 것이다. 얼 쇼리스는 이렇게 주장한다. 빈민운동이란 빈민들이 스스로를 성찰하고 탐색할 수 있는 학습의 장을 마련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다시 말해, 그들이 철학적으로 무장하게 된다면, 그들은 더이상 충동에 몸을 내맡기지도 않을 뿐 아니라, 당당하게 정치적이고 공적인 실천의 장으로 나아갈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 p.121

 고전이 말하는 공부법은 "인생의 모든 순간들을 학습하고, 지식.기술.경험을 서로 나누어 가지고, 서로 도와주는 순간으로 바꾸어놓을 수 있는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교육망 형성이 바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과제"『일리히, 학교없는 사회』라는 '탈학교'의 전망과 아주 행복하게 조우한다. - p.146

 


댓글(0) 먼댓글(1)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호모 쿵푸스 실사판] 공부는 셀프!
    from 그린비출판사 2011-03-30 16:59 
    ─ 공부의 달인 고미숙에게 다른 십대 김해완이 배운 것 공부의 달인 고미숙 선생님. 몸으로 하는 공부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적절한 계기(혹은 압력?)를 주시곤 한다.공부가 취미이자 특기이고(말이 되나 싶죠잉?), ‘달인’을 호로 쓰시는(공부의 달인, 사랑과 연애의 달인♡, 돈의 달인!) 고미숙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공부해서 남 주자”고. 그리고 또 말씀하셨다.“근대적 지식은 가시적이고 합리적인 세계만을 앎의 영역으로 국한함으로써 가장 ...
 
 
 
데이즈 인 런던 - 혼자 떠나기 좋은 런던 빈티지 여행
곽내경 지음 / 예담 / 2008년 1월
평점 :
품절


 

 산다(live)는건 사는(buy)것 아니겠니. 자본주의 도시에서 살아가는건 뭔가를 '생산'한다기보다는 어떻게 '소비'할까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니까. 그래서 부득불 '생산물'에 욕심을 부리고 있지만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변변치 않은 현재로서는 주도면밀한 소비로 위안하고 있어. 싸고 옳은 물건을 바른 방식으로 구입하겠다고.

 생면부지의 사람에게 가이드를 자처하며 '관광명소'가 아닌 '생활공간'을 안내해주는건 참 고마운 일이라지. 빗소리를 들으며 커피한잔 마시기 좋은 갤러리와 덜 붐비는 시간에 이용할만한 맛있는 식당에 대한 정보는 당신만이 줄 수 있는 귀한 정보였으니.

 산다는건 사는 것이므로 갤러리를 유람하고, 낯설을 풍경을 보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좋은 물건을 저렴하게 사는 것. 런던을 여행하겠다고 작정한 사람들에게는 알짜배기 정보만 모아놓았는데 난 자꾸 아쉬운거지. 제이미컬럼과 뱅크스, 트레이시 에민의 이야기가 참 즐거웠으니, 난 런던여행에 대한 '소개'를 기대한게 아니라 당신이 런던에서 '사는이야기'가 궁금했던 모양일세.

 열린 마인드로 다인종이 뒤섞여 독특한 스타일을 만들어 내는 그들의 문화가 부럽기도 하겠으나, 어디 런던뿐이겠는가. 유난히 단일민족에 집착하고 때려부수고 새로 만들어내기 바쁜 대한민국에 비한다면 역사와 전통의 멋과 조화로운 문화를 간직한 유럽의 도시는 여러곳이라지. 하지만 비싼 물가때문에 엄두도 내지 못했던 런던에 사소한 낭만을 품게 되었다오. 다시 한번 고맙소.

 예술계의 테러리스트, 뱅크시 www.banksy.co.kr

 이상한 나라의 트레이시 에민 www.tracey-emin.co.uk

 재즈계의 천재 소년, 제이미 컬럼 www.jamiecullum.com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샌드위치 위기론은 허구다 - 조직론으로 본 한국 자본주의의 본질적 위기와 그 해법 우석훈 한국경제대안 4
우석훈.박권일 지음 / 개마고원 / 200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이제서야 대학생활에 약간의 아쉬움이 있다면, '경제경영학'을 외면했던 내 마음가짐이다. 오붓하고 단란하게 두런두런 강의를 나누던 철학수업에 비해, 빠글빠글 미어터지는 경영학 수업은 비용대비 효율적인 측면에서 아무런 매력이 없었다. 게다가 전형적인 문과쟁이라 숫자놀음에는 '감동'이 없다고 쉽게 단정지었다. 약삭빠르게 처세를 익히기 보다는, 자연의 이치와 인간의 도리를 탐구하겠다는 철없던 시절의 객기덕분이다. '저널리스트'가 되겠다고 잡다한 분야를 닥치는대로 들쑤시긴 했지만, '경제경영'과 '과학기술'은 영 범접하기 어려운 미지의 영역이었다. 그나마 내가 떠드는 소박한 지식들은 다 '우석훈'님과 '강양구'님으로부터 가능했고, 인식의 지평을 단단하게 넓혀주었다.

 '대안경제학시리즈 2권'이라고 밝힌 '샌드위치 위기론은 허구다'는 이전의 '88만원 세대'에서보다 구체적인 사례들로 위기를 진단하고 설득력있는 해법을 제시한다. "이건 뭔가 잘못되었다"라고 막연하게 느꼈던 것들이 어떤 맥락과 이유로 '문제'를 유발하는지, 그 영향력의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지에 대한 전망이 '조직론'의 틀안에서 이루어진다. 내가 외면했던 경영학과목 '조직론'에서 말이다. 효율성이라는 좌표가 조직논리와 내부경재으로 양분된 지표위에서 협동진화로 수렴하기 위한, '주식회사 모델' 역시, '주식'이라는 말에 '투자열풍'만을 떠올리는 내 척박한 인식에 반전의 계기가 되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는 명제가 기업의 '영속성'을 어떻게 위협하는지, '성과'로 촉발되는 내부경쟁이 조직의 '협동진화'에 어떤 기여를 하는지. 두가지 발제를 염두하고 이 책을 살핀다면, 아마 지금 당장 바로 뭔가를 하고 싶은 마음이 꿈틀거릴 것이다. 실제 중국과 일본이라는 외부적인 요소에 경제침체의 원인이 있다라면, 변화를 추동할 운신의 폭은 넓지 않다. 변화의 가능성이 내 안에 있다는 것은 끊임없이 쏟아지는 '성공지침서'의 제1계명이 아니던가.

 예술적 감수성으로 무장하고 경제학을 도구삼아 거침없이 썰을 푸는 우석훈님 블로그와의 인연은 바야흐로 4년째에 접어들었다. 그의 블로그에는 정제되지 않은 생각들이 자동기술되어 감정의 편린이 노골적이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의 글은 명쾌하지만 수려하지 않고, 그의 입장은 분명하지만 이념적이지 않다. 그가 오랫동안 블로깅해주기를 기대하며 부지런히 그의 글을 리뷰하러 한다.

 

 - 밑줄긋기 -

 사실 주식회사는 그 형태나 운영방식 자체가 다른 형태의 회사에 비해서 상당히 사회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고, 다른 어떤 형태의 경제조직보다 복잡하고 까다로운 공개절차 및 사회적 감시체계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주식회사는 1인 소유주가 존재하지 않고, 일종의 회의체-이것을 이사회라고 부른다-에 의해서 운용되고, 중요한 결정은 소유관계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모이는 총회에서 결정하게 되어 있다. 주인이 무한의 책임과 동시에 전권을 갖는 무한책임회사와의 다른 방식으로 운용되는 주식회사는 그 자체로 상당히 민주주의적인 운용방식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고, 역사만을 따지면 프랑스 혁명 이후의 민주주의 역사보다도 더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 p.94 )

 앞으로 수 년 동안 지방에서 진행될 토목공사에 풀려나가서 수도권의 아파트 투기로 들어올 것으로 예상되는 돈만 간단히 계산해도 수십조 원 규모는 넘고, 적당한 일자리만 있다면 일하겠다고 하는 대졸 이상의 예비 실업자가 수백만 명이다. 지금 한국경제의 틀에서 부족한 것은 노동이나 자본의 문제가 아니라 이런 것들을 결합해서 '생산'이라는 아주 위험한 도약을 수행하는 바로 그 조직이다. 지금은 세계은행에서 자관을 받아 JP가 국내 업체들에게 차관 나누어주던 시절 같은 '차관경제'의 시절도 아니고, 외국에 유학 간 한국 학생들을 카이스트에 어렵게 유치하면서 과학기술의 기반을 만들어가던 시대도 아니다. 지금 우리에게 결여된 것은 오히려 기업의 또 다른 속성인 조직에 대한 기술과 관리에 관한 기법들이라고 할 수 있다.

 5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한국 조직은 아직 노동자들과 대화하고 노조에게서 협조를 끌어내는 방법을 잘 모른다. 세계 어느 나라보다 잘 교육되고 훈련된 한국의 여성드로가 일하는 법도 아직은 잘 모른다. 그리고 20대와 일하는 법을 모르고, 고령노동자들의 지식을 활용하는 법을 잘 모른다. 술 마시지 않고 조직의 중요한 일들을 결정하는 법을 잘 모르고, 접대를 하거나 봉투를 건네지 않고도 정부 기관과 협의하고 협조를 이끌어내는 법을 잘 모른다. 조직 내부에 다양한 방식으로 생겨난 비공식 조직들을 제어한느 법을 잘 모르고, 사회로부터 신뢰를 얻는 방법을 잘 모른다.

 한국의 생산부문에 제조업으로부터 시작된 이러한 위기가 증폭되어 이제는 사회적 위기로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간 것도 사실이다. 박정희가 국민경제 모델을 채택한 이후로 기업의 위기가 곧 생산의 위기고, 이러한 위기가 어쩔 수 없이 사회적 위기가 되는 것은 구조적인 문제이다. 1차적인 위기 요소를 내부에서 찾지 않고, 결국 외자유치가 최고의 방법이라는 일부의 주장은 좀 황당하고, 그야말로 연목구어가 아닐 수 없다. 국내에도 잉여자본이 넘쳐나고, 투기적 용처를 찾아다니는 돈들이 길을 잃고 부동산과 코스닥을 끊임없이 넘나들며, 결국 일본 부동산을 비롯해서 해외로 나가는 이 마다엥 외자 유치가 안 되는 것이 우리나라 경제의 가장 큰 문제점이라는 얘기는 정말 이상하다.

 산업자본에 위기가 온 것은 국민경제 모델의 역사적 흐름상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는 하지만, 이 위기를 대처하는 방법에서 문제가 생겼고, 그래서 이런 것들이 돌고 돌아서 더 큰 위기로 증폭되었다고 해석하는 편이 훨신 더 논리적이며 일관된 설명이다. ( p. 146 -147 )

 

 한국과 일본의 조직들은 다양성이라는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는 셈인데, 이들과 경쟁 중인 미국 기업들은 이들과는 반대로 전세계에서 가장 다양성이 높은 집단이다. 유색인종은 물론이고, '핸드캡드handicapped'라고 표현되는 소수 민족들의 조직 내 구성도가 상당히 높고, 당연히 여성진출도 활발한 편이다. 1990년대에는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마초집단이었던 미국 해군이 소수민족과 여성들에게 보다 조직의 문을 크게 열었고, 이렇듯 경제적 약자들이 조직 내에서 가지고 있는 핸드캡을 극복하고 의사결정권을 가진 상층부가지 진출할 수 있도록 하는 누에 보이지 않는 조직 내 배려가 생각보다 강려갛게 작동하는 것이 최근 흐름이다. 유럽 기업들의 경우도 이민자들과 여성의 기업 참여는 당연히 우리나라에 비해서 월등히 높다.

 이에 비하면 한국의 기업들은 상당히 높은 균질도와 '비非성과 경쟁'이라고 부를 수 있는 마피아 모델에 가까운 빨간펜형 구조가 오히려 강화되는 편이다. 아직 골프를 즐길 만큼의 경제적 여유가 없는 여성직원들도 입사 초기에 골프부터 배우고 폭탄주도 배워야 하는 상황은 '퇴행'이라고 부르는 역방향의 진화에 해당한다. 물론 이러한 주류 집단의 힝위 모델에 대한 의태가 개인 전략으로서는 중요할 수 있지만, 조직 자체로 본다면 다양성을 현저하게 약화시켜 오히려 40-50대 빨간펜들의 '역할 모델'이 강화되는 흐름을 만들게 된다.

 소위 '조직의 마이너'라고 부를 수 있는 여성, 지방대 출신, 그리고 저학력 숙련노동자들을 어떻게 제품개발을 비롯한 다양한 경영활동에 참가시키고 조직의 다양성을 높일 것인가는 포스트 포디즘 시대의 한국 조직들에게는 매우 어려운 도전이 아닐 수 없다. 현 상황에서 그냥 내버려두면 조직은 당연히 40대 빨간펜들에게 더 편한 방식으로 진화가 강화될 수 밖에 없다. 구 동구권의 조직들에게서 발생했던 내부 조직의 문제가 자본주의라고 해서 발생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모든 조직은 자연 발생적인 내부의 힘에 의해서 제어되지 않고 방치되면 언젠가는 관료화의 경직성과 내부 마피아에 의한 권력 독점이 발생하게 된다. ( p.189 - 190 ) 

 

 한국에서는 유럽보다 20년 정도 늦게 한국형 포디즘이 작동하게 되는데, 이 기간 동안 유럽의 심리상담소와 같은 사회적 장치가 등장하지 않았고, 이들의 빈 자리를 채웠던 것이 교회와 점집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 근대사를 관통하는 주요 종교기관인 기독교와 가톨릭 그리고 불교의 전통적 경쟁은 그대로 남아 있지만, 1990년대에 급격히 강화되기 시작한 '대형 교회 현상'은 왜 한국 사회에서 1960~70년대의 자본주의형 계몽시대에는 곧 사라질 것 같아 보였던 점집이 1990년대 이후에 오히려 대성공을 거두게 되었는가라는 질문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포디즘의 강황에 의해서 생겨난 개인들의 비정상 상태에 대해서 대형 교회와 심리상담소 그리고 점집은 대체적 재화의 관계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심리적 안정과 대화'라는 특수 서비스와 관련시켜 볼 때 심리상담소가 네오 케인지언 전통이 강했던 유럽 사회가 제시할 수 있었던 공공적 해법이었다면, 한국의 대형 교회는 공적 장치 없이 포디즘을 강화시킨 시대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구도에서 대형 교회가 포디즘의 방식으로 볼 때 집단적인 심리상담소라고 한다면, 점집은 포스트 포디즘에 적합한 명품 브랜드 방식에 의해서 운용되는, 그야말로 '하이엔드 마켓'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차별화된 고품격 심리상담 서비스'를 제공하는 점집은 대형 교회에 비하면 맞춤형 고급 서비스인 셈이다. 대통령에 출마하고자 하는 대선 후보들에서부터 새로운 투자를 앞두고 초조해하는 대기업의 총수들, 그리고 그야말로 별 몇 개를 달고 있는 군대의 장군들가지 자신들의 심리적 위안과 미래에 대한 고민을 상담하기 위해서 찾는 곳은 많은 경우 점집이다. ( p. 221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 미국 진보 세력은 왜 선거에서 패배하는가
조지 레이코프 지음, 유나영 옮김 / 삼인 / 2006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은 진정 '실무지침서'였다. 행여나 내가 '정치행동'을 작정했다면 별다섯개를 줬을만큼 구체적인 전략들이 가득하다. 이젠 다만 삶의 정치를 마음먹은고로 별 하나는 나에게 주기로 했다.

 나는 '어쩌다' 너와 다른 정치적 의견을 가지게 되었나. 에 대한 질문을 놓지 못한 적이 있더랬다. 조지 레이코프님이 분류한 '엄격한 아버지'와 '자상한 부모'도 고려되었던것 같고, 심지어는 '성악설'과 '성선설'이라는 애초의 철학적 질문으로 회귀하기도 했더랬다. '정치외교학'이라는 전공이 치명적인 계기였지만, '반골'근성의 이유가 되기에는 부족했다. 그러다 정치적 설득이 필요한 순간에는 나 역시 비슷한 종류의 욕망을 가진 갑남을녀, 장삼이사임을 강조하면서 '합리적'인 공통의 근거들을 만들고자 했다. 그러다 '벽'에 부딪혀 좌절하기를 여러번, '마이너'기질로 정리하고 나대로 살아내는 중이다. 주변에 '마이너'천지라 외롭지 않다는게 그나마 다행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합리'와 '불공정'은 날 화나게 하였으므로, 소통을 통해 '우리편'을 만들고 싶다는 절실함은 여전하다. '즐거운 불편'이나 '자발적 가난'이라는 생태관련 도서들의 제목을 인용해 주변의 '동의'를 구해봤지만, "그대의 꿈은 가상하나 현실에는 부합하지 않는다"라는 평가만 돌아왔다. '불편'이나 '가난'이라는 부정적인 어휘에 선뜻 마음이 움직인다면 그건 '정치'가 아닌 '종교'의 영역이었던게지. 이제서야 간신히 세속의 정치를 알아낸 기분인게다.

 졸업 논문 주제에 '이미지 정치'가 한창 유행이었다. 정치학 4년을 공부했는데 '문제는 내용이 아닌 포장이야'라고 말하는 듯한 세태가 살짝 슬펐다. 하지만 현대사회의 개인이 정치사회적 통찰력을 가지고 정책과 공약을 엄밀히 분석해 합리적인 결정을 내린다는건 정치교과서에나 등장할법한 이상향이다. 아젠다를 선점하고 유리한 언어프레임을 구축하는것. 풍부한 내용을 채우는 것 만큼이나 주도면밀한 전략이 수반되어야 할 과제임을 인정하기로 했다. 미국대선, '성경'에 근거해서 '동성애'가 정당할 수 있다고 주장한 '버럭 오바마'의 선전이 입증하고 있지 않은가.

 18대 총선이 코앞이다, '가난'을 몸소 체험해 공감하고 정책에 반영할 수 있는 사람을 뽑겠다는 주장에 "가난한 놈이 더 해먹더라"는 화살이 날아왔다. "국회의원이 똑같이 해먹어도, 당신처럼 가난했던 사람이 출세해서 해먹는게 못마땅한거 아니냐"는 까칠함으로 응수했으니 나도 아직 멀었다.

 

 - 밑줄긋기 -

 "우리 부모들은 세금을 통해 우리와 그분들의 미래에 투자했습니다. 그분들은 장거리 고속도로에, 인터넷에, 과학연구 및 의료 체게에 우리의 통신체계에, 항공체계에, 우주개발 계획에 그분들의 세금을 투자했습니다. 그분들은 미래에 투자했고, 우리는 그분들이 투자한 세금에서 얻어지는 혜택을 거두어들이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그분들의 현명한 투자로 얻어진 자산-고속도로,학교와 대학, 인터넷, 항공 등-을 지니고 있습니다." - 이러한 광고가 몇 년에 걸쳐 수없이 반복하여 게재되고 방송된다고 상상해 봅시다. 그러다 보면 어느덧 '세금은 미래를 위한 현명한 투자다'라는 프레임이 확립될 것입니다.( p.62 )

 언론은 우익의 프레임을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 기자들은 "게이 결혼에 찬성하십니까"라고 묻는 대신에 이렇게 질문할 수 있다. "주 정부에서 주민들에게 누구와 결혼하거나 결혼하지 말라고 명령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또는 "원하는 사람과 결혼할 자유가 법 앞의 평등에 관한 문제라고 보십니까?" 또는 "결혼이 평생의 헌신을 통한 사랑의 실현이라고 보십니까?" 또는 "사랑하는 두 사람이 공식적으로 평생을 약속하는 것이 사회에 도움이 됩니까?" 프레임을 다시 구성하는 것은 우리 모두가 할 일이다. 특히 기자들의 임무는 더욱 막중하다 ( p.105 )

 나는 정치의 인지적 측면을 이해하는 것이 엄청나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우리의 개념적 프레임이 무의식적인 형태를 띠고 있어 우리가 우리 자신의 은유적 사고를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사람들은 나를 '인지적 운동가'라고 부르며 나도 그 딱지가 나한테 잘 들어맞는다고 생각한다. 교수로서 나는 정치의 언어적, 개념적 쟁점을 분석하되, 가능한 한 정확하게 분석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그 분석적 행동은 정치적 행동이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인식이다. 어던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똑똑히 알고 말할 수 있다면 지금 벌어지는 일은-최소한 장기적 견지에서-변하게 할 수 있다. ( p.143 )

 이라크 전쟁이 근본적으로  - 석유 자원, 지역 경제, 정치적 영향력, 군사적 기반에 대한 - 이기적인 통제를 위한 것이라면. 이는 자기 방어도 이타적 해방도 아니다. 부시 대통령은 우리 군인, 의회, 미국 국민들의 '신뢰를 배신'했다. 배신이 쟁점으로 되었을 때, 단순한 거짓말은 사소한 문제에 불과하다. ( p. 149 )

 소송개혁을 예로 들어 보자. 기업 대상 소송 변호사들은 사실 '공공 보호 변호사'이고 불법 행위법은 공공 보호를 가능하게 하는 법으로서, 다시 말해 공공보호법이다. 불법행위법에서 손해배상 청구와 합의금의 상한을 제한하려 한다면, 이는 배심원의 권리를 빼앗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미국은 공개 재판에서는 손해배상 액수를 배심원이 결정한다.-옮긴이) 이는 법정의 문을 닫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고, 공개 법정이 아닌 비공개 법정을 만드는 것이다. 배심원이 있는 공개 법정에서 배심원들은 기소된 사건이 공공 보호의 문제인지 아닌지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대규모 배상금은 당면한 소송의 문제를 초월하는 공공 보호문제와 결부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공개 법정은 공중이 부도덕하거나 무책임한 기업과 전문직에 맞서는 마지막 보루이다. 보수주의자들이 집단 소송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면 그냥 '아뇨, 그건 천박한 소송이 아니에요"라고만 말하지 말고, 공공 보호와 공개 법정과 배심원의 결정권, 그리고 부도덕하거나 무책임한 기업에 맞서는 최후의 보루에 대해 이야기하라. ( p.201 )

 진보주의 사상이야말로 가장 미국적인 것이다. 진보주의자들은 정치적 평등을, 좋은 공립학교를, 건강한 어린이들을, 노인을 위한 보살핌을, 경찰의 보호를, 가족 농장을, 숨 쉬는 공기와 마실 물을, 개천의 물고기를, 거닐 수 있는 숲을, 새소리와 개구리를, 살기 좋은 도시를, 윤리적 경제 활동을, 진실을 말하는 언론인을, 음악과 춤을, 시와 예술을, 일하는 모든 사람들이 최소한의 생활을 꾸릴 수 있는 일자리를 바란다. 최저 임금을 위해, 여성 권리를 위해, 인권을 위해, 환경을 위해, 건강을 위해, 유권자 등록을 위해 일하는 진보주의 활동가들은 모두 미국의 애국자들이다. 그들은 더 나은 세상, 미국의 근본적인 가치와 원칙에 맞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이타적으로 헌신하며 일하고 있다. ( p. 293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I am a Photographer 나는 사진쟁이다 - 신미식 포토에세이
신미식 지음 / 푸른솔 / 2007년 7월
평점 :
절판


 

 반갑다. 그리고 고맙다. 그가 사진쟁이가 되었고, 여행을 떠났으며, 책을 출간해서 내게도 그의 감동을 나눠주었으니 참 감사한 일이다. 그 매순간의 용기에 감사한다.

 사진을 마음에 담을 수 있는 사람, 이제는 나도 "아주 짧은 순간의 사진도 결국 오랜 기다림을 경험한 사람에게 온다는"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있다. 나는 피사체 앞에서 늘 조급했다. 촛점과 노출을 맞추고 셔터를 눌러도 '찰나'에 대한 집착은 감동 이후의 흔적만 남겼고 '순간'은 없었다. 수줍은 카메라는 정적인 풍경만 쫓았고, 낯선사람에게 카메라를 들이댈 '용기'가 나는 아직 없다.

 그의 사진집이 빛나는 까닭은 그 때문이다. 낯선곳의 낯선사람에게 그렇게 환한 미소를 건네 받을 수 있다는 것. 그게 어디 쉬운일인가. 한 순간의 눈맞춤도 놓치지 않는 그는 타고난 사진가인게다. 그리고 꽤 부지런한 기록을 병행한다. 마다가스카르의 바오밥나무라던가 볼리비아 우유니 사막, 페루의 살리나스 염전따위의 이국적인 풍광에 담긴 삶의 내음, 그의 기록은 꽤 평범하고 무던하지만 그 공간에서 마주친 영혼들과의 스침을 오래도록 기억하려는 의지가 담겨있다. '여행사진가'라는 이름에 걸맞은 재능이 한권의 책에 오롯이 드러난다.

 "여행이란 내 안의 제한된 영역을 스스로 허무는 과정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