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 - 공부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 인문학 인생역전 프로젝트 1
고미숙 지음 / 그린비 / 200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삶이 무어냐고 물으신다면, 산다는건 정치요, 예술이라고. 몇년동안 대답하던 레파토리가 있었다. 2008년 대한민국에서 살아내는게 내게는 정치투쟁이요 예술활동이므로 부끄럽지 않게 삶을 창조하리라! 뭐 이런식의 대답을 마련했더랬다.

 고미숙의 내공에 '그린비'의 기획력이 빛나는 작품이다. 공부'량'은 많아졌으나 '공부'의 알맹이를 잃은 이시대 청년들에게 '공부'의 맛과 '공부'의 힘을 전해주는 학습 지침서. 인문학책이라고 하기에는 무척이나 실용적이고, 출판시장의 70%를 차지한다는 학습지코너와는 불화하고, 서점에서 발에 채이는게 뻔할뻔자의 인생지침서라고 했을때 단연 독보적이라고 하겠다.

 평균학력은 높아져도 교양수준은 하향평준화되는 서글픈 현실. 활자중독증인 나야 내가 좋아서 책을 부둥켜안고 살고 있다만, 활자기피증인 친구들에게는 영상매체도 학습매체려니 인정하고 독서편력을 활자에 대한 취향의 문제로 간주했더란다. 그런데 고미숙씨가 아니랜다.

 책을 읽으란다. 나는 고전 한장 넘기는데 하루가 걸리는데 고전을 읽으랜다. 소리 내어 암송하란다. 내 소리를 감당할만한 만만하고 넉넉한 공간이 없음을 핑계삼아보지만 온몸으로 공부하란다. 사람들 앞에서 구술하란다. 수다는 자신만만하지만 발표는 영 어눌할지라도 끊임없이 소통하란다. 앎의 꼬뮌을 조직하란다. 유유상종이라고 독서모임 하자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일상에서 공부하라. 더이상 '공부'를 핑계로 학교에 연연해하지 않기로 했다.

 나 역시 갈길이 멀다. 내 짝꿍의 말마따나 '이르다고 느긋해 하지 말고, 늦었다고 체념말'아야 할 일이다. 배움은 계속될 터이니 지금부터 시작해도 될 일이다.

 운동권스러운 간판탓에 더이상의 재생산은 없다고 여겼던 동아리에 후배가 들어왔다. 그가 이 공간에서 상상력을 발휘해서 미래를 꿈꾸며 실천적인 삶의 투사가 되기를 바라며 이 책을 바친다.    

 

 - 밑줄긋기 -

 멕시코 신화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멕시코 원주민들의 조상은 옥수수신이란다. 옥수수신들이 처음 지상에 내려왔을 때, 신들은 질문을 해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질문하면서 걷고, 걸으면서 질문하기로 결정했다. 걸으면서 질문하기! 요컨대, 신들이 지상에 정착할 수 있었던 건 다름 아닌 질문의 힘이었던 것이다. 그렇다. 살아 있는 모든 존재들은 질문을 던져야 한다. 질문이 없으면 단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평생 남이 제출한 질문지에 답을 쓰느라 바쁠 테니까. 그건 실로 청춘에 대한 모독이자 삶을 노예화하는 지름길이다. - p.7

 학교는 교육을 위해 이용할 수 있는 자금, 사람, 그리고 선의를 독점하고 있을 뿐 아니라, 다른 사회제도가 교육에 관여하는 것을 단념하게 만들고 있다. - 일리히, 『학교 없는 사회』에서

 즉, 노동과 여가, 정치 활동과 가정생활 등 삶의 모든 것이 공부가 되는 것을 포기하도록 만들고, 나아가 "그것에 필요한 관습이나 지식을 가르쳐주는 것을 모조리 학교에 맡겨"버린다. 결정적으로, 그럼으로써 공부에 대한 모든 생각을 '학교식으로' 재편한다. 그 결과 전 사회를 '학교화'한다는 것. ...... 자격증 및 학벌, 경쟁을 강요하는 공부, 입시지옥 - 이런 것이 나쁘다는 건 온 세상이 다 안다. '공부'하면 동시적으로 스쳐지나가는 이미지들 - 지겨운 노동, 참고 견뎌야 하는 과정, 족집게 도사, 성적의 비결, 성공하면 남을 지배할 수 있고 실패하면 영원히 무릎 끓고 살아야 하는 것 등등 - 은 모두 그로부터 비롯한다. 그러나 이런 공공연한 것들은 차라리 덜 위험하다. 누구나 그게 틀려먹었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으니까. 따라서 이런 표면적 폐해보다 더 심각한 건 그 이면에 깔려 있는 무의식적 전제들이다. 그것들은 아주 보편적이고 심오한 진리처럼 행세하지만, 사실은 전적으로 학교가 세상에 퍼뜨린 거짓말에 불과하다. 그것도 아주 질이 나쁜 새빨간 거짓말에. 사람들을 아주 '체계적으로 그리고 일생 동안 노예로 만들어버린다'는 점에서 그렇다. 눈을 부릅뜨고 살펴보기 전엔 알아차리기도 쉽지 않다. 고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이 새빨간 거짓말들을 만천하에 까발리는 일이다. p.32-34

 콩도르세는 이렇게 말했다. "교육의 목적은 현 제도의 추종자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제도를 비판하고 개선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는 것이다." 즉, 기존의 배치를 거스르면서 전혀 다른 욕망의 지도를 그려낼 수 있는 과감성, 전혀 다른 삶을 창안할 수 있는 상상력, 뭐 이런 것들이 창의성의 진짜 의미에 값한다. 예를 들면 어떻게 하면 우리 시대에 돈 없이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혹은 사람마다 스스로 몸을 돌볼 능력을 터득하여 '병원 없는 사회'를 만들 수 있는 길은 없을까? 공부로 축제를 열면 어떻게 될까? 가족이 해체된 시대의 새로운 공동체는 어떻게 가능할까? 등등. 사람들은 다들 머리 싸매고 돈을 벌 궁리만 하고 있다. 넓은 아파트에 아이들 교육에 노후대책까지 몽땅 혼자서 다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친구들과 더불어 함께 해결한다고 생각해보라. 일단 기본 비용이 반의 반도 들지 않을 뿐더러, 함께 살면 먹는 거나 입는 것이 몇배로 풍족해진다. 또 굳이 노후 대책을 따로 할 필요가 없다. 함께 노년을 보낼 친구가 있는데, 무슨 대책이 또 필요하단 말인가? 중요한 건 의기투합하는 친구가 있느냐인데, 바로 어릴 때부터 이걸 훈련하면 된다는 것이다. 의리, 우정, 신의 - 창의적으로 산다는 건 바로 이런 가치를 몸에 익히는 것이기도 하다. p.66-67

 코뮌에 접속하는 능력은 달리 말하면 코뮌을 조직하는 능력이기도 하다. 지난 1980년대, 그 엄혹한 시대에 대학이 우리 사회의 중심이 될 수 있었던 건 바로 학생회관을 부글부글 끓게 했던 학습 동아리들 때문이었다 그때는 누구든 대학에 들어오면 이런저런 동아리와 접속하는 것이 당연지사였다. 경찰의 탄압과 학교 측의 징계, 그리고 가난한 부모님의 기대, 그 어떤 것도 그 욕망의 흐름을 막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 억압도 방해도 없건만 모든 학습망은 와해되어버렸다. 현장의 역동성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대신 화려한 건물, 촘촘한 학사관리, 제도적 시스템이 그 공백을 메워버렸다. 그 결과 모든 학교가 리모델링에는 성공했지만, 학생들은 스승도 없고 친구도 없이 그저 죽은 지식만을 재생산하고 있다. p.86

 낭송이 지니는 의미는 참으로 다양하다. 이미 언급했듯이, 그것은 소리를 통해 몸의 안과 밖이 연결된다는 점에서 근원적으로 집합적이다. 즉 혼자서 할 때조차 그것은 외부와의 소통을 전제로 한다. 소통에의 욕구가 없이는 낭송이 불가능하다. 사람들 앞에서 하거나 혹은 여러 사람고 ㅏ더불어 할 때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큰 소리로 글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자기의 목소리만큼 낯선 것이 없다. 실제로 녹음을 해서 들어보면 누구나 자기의 목소리가 자신이 평소 생각하던 것과는 아주 다르다고 생각할 것이다. 곧 목소리야말로 내 안의 타자인 것이다. 따라서 낭송이란 일상적으로 자기 안의 타자를 발견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또 집단적으로 암송을 하노라면 타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능력도 터득할 수 있다. 즉, 목소리에도 개성과 표정, 색깔이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한마디로 사람에 대해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가 있는 것이다. 동시에 나의 목소리와 타인의 목소리가 뒤섞일 때 전혀 다른 종류의 소리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생생하게 맛볼 수 있다. 무엇보다 이 과정을 통해 지식과 몸의 소외가 극복된다. 소리를 내려면 두뇌보다는 몸이 적극 반응해야 한다. 거꾸로 말하면, 낭송을 한다는 건 체력과 기운의 분포를 바꾸는 일이기도 하다. - 앎의 신체성! 이것이야말로 학교식 공부가 망실해버린 원리가 아니었던가 - p.94

사랑은 인간의 활동 가운데 가장 활발한 생명 작용에 해당한다. 그리고 생명은 안과 밖의 소통 속에서 이루어진다. 즉, 삶의 세계에 대한 통찰력이 내 몸의 내공을 결정짓는다. 따라서 사랑의 패턴은 삶의 패턴과 나란히 함께 간다. 사는 건 엉망인데, 사랑은 멋지게 되는 경우는 없다. 절대! 따라서 삶에 대한 통찰력이 없이 누군가를 지속적으로 사랑을 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이상형을 만나도 소용없다. 왜? 사랑은 내 존재의 깊은 곳이 울릴 때라야 비로소 가능한 것이지 외부에서 주입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제 눈에 안경이니, 눈에 콩깍지가 씌었느니 하는 말이 다 거기에서 연유한다. - p. 113

 『희망의 인문학』의 저자 얼 쇼리스는 빈민들에게 인문학을 가르친 것으로 유명하다. 먹고살기도 어려운데 웬 인문학? 그가 보기에 빈밀들이 겪는 박탈감은 경제적인 것이 아니었다. 빈민들에겐 그저 재활 교육이나 직업과 관련한 공부만 시켜주면 된다고 생각하는 건 그야말로 어설픈 동정심이거나 감상적 사치에 불과하다. 그들이 진정 박탈당한 것은 존재의 의미와 가치를 통찰할 수 있는 정식적 자산이었다. 한 번도 지적 풍요로움을 경험해 본 적이 없다 보니 늘 충동에 내몰리게 되고, 그러다 보면 범죄와 마약의 수렁에서 헤어날 길이 없는 것이다. 얼 쇼리스는 이렇게 주장한다. 빈민운동이란 빈민들이 스스로를 성찰하고 탐색할 수 있는 학습의 장을 마련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다시 말해, 그들이 철학적으로 무장하게 된다면, 그들은 더이상 충동에 몸을 내맡기지도 않을 뿐 아니라, 당당하게 정치적이고 공적인 실천의 장으로 나아갈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 p.121

 고전이 말하는 공부법은 "인생의 모든 순간들을 학습하고, 지식.기술.경험을 서로 나누어 가지고, 서로 도와주는 순간으로 바꾸어놓을 수 있는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교육망 형성이 바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과제"『일리히, 학교없는 사회』라는 '탈학교'의 전망과 아주 행복하게 조우한다. - p.146

 


댓글(0) 먼댓글(1)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호모 쿵푸스 실사판] 공부는 셀프!
    from 그린비출판사 2011-03-30 16:59 
    ─ 공부의 달인 고미숙에게 다른 십대 김해완이 배운 것 공부의 달인 고미숙 선생님. 몸으로 하는 공부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적절한 계기(혹은 압력?)를 주시곤 한다.공부가 취미이자 특기이고(말이 되나 싶죠잉?), ‘달인’을 호로 쓰시는(공부의 달인, 사랑과 연애의 달인♡, 돈의 달인!) 고미숙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공부해서 남 주자”고. 그리고 또 말씀하셨다.“근대적 지식은 가시적이고 합리적인 세계만을 앎의 영역으로 국한함으로써 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