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년세세 - 황정은 연작소설
황정은 지음 / 창비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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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뜬금없이?'라는 말을 먼저 떠올렸던 작은 도전의 일정을 마무리했다.

늦은 시작은 없다고 하지만 적기는 언제나 있다.

적기가 아닐 때 하는 시작은 성공의 가능성과 효율성을 낮출 뿐 아니라 수행 과정에서도 상황에 따라 몇 배의 노력이 더 필요한 법이니까.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고, 쓸데없는 일이었다 생각될지도 모르겠지만 새로운 도전을 끝낸 나에게 대견하다고 얘기한다. 앞으로의 삶에 무엇이 어떤 일이 다가올지 모르니 미리 대비하는 우산이라 생각했다. 비 맞을 일이 없다면 더 좋겠지만.

황정음의 연년세세는 비 속에서 받쳐 든 우산 같은 이야기다.

질척거리고 쉽지 않은 길을 가지만 비가 들이치지 않는 작은 공간을 만들어주던 우산이 있어 걸을만했다는 위로가 있는 이야기다.

2020년 '소설가 50인이 뽑은 올해의 소설' 1위!라는 타이틀 때문에 샀는데 읽어보니 그 이유를 알겠더라.

같은 소설을 쓰는 사람들이지만 모두 이런 소설을 쓰고 싶었다는 말이기도 하구나 생각했다.

한 가족 세 모녀의 연작 이야기인데 하나의 단편들이기도 하지만 이어지는 한 가족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순일씨와 그녀의 딸, 한영진, 한세진의 이야기를 각각의 목소리로 들려준다.

유순일 씨가 본인의 이름을 순자라고 알고 있었던 시절의 회상으로 기록된 이야기는 그 시절을 산 사람들의 대부분이 느꼈을 절대치의 가난이었을 테지만 비슷한 듯 다른 아픔과 상처들을 읽으면서 울컥했다. 인공관절을 넣어야 하는 통증을 견디면서 딸 살림까지 도맡아 하고 있는 꿋꿋하고 아무렇지 않은 듯 사는 이순일씨께 괜히 감사했다. 내 엄마도 비슷한 삶을 살아왔음을 알기에.

백화점에서 이불을 팔며 감정도 함께 팔아야 하는 늘 피곤한 한영진이 엄마 이순일에게 늘 들어오던 '현명하고 덜 서글픈 쪽을 향한 진리. 하고 싶은 걸 다하고 살 수는 없으니까(p.82)'의 이야기를 할 때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지 못하고 그 한 줄에 눈이 걸려 오래 생각했다.

그래,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살 수는 없었지... 이전에도 지금도. 이순일도 한영진도 이 글을 읽고 있는 나도.

결혼하지 않고 글을 쓰며 사는 한세진의 이야기는 눅진한 생활의 냄새는 덜했으나 생활이 덜어졌다고 삶이 수월한 건 아님을,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란 땅에 떨어진 것 중에 먹을 만한 걸 골라 오물을 털어내고 입에 넣는 일'(p.142)이라는 걸 같이 사는 하미영의 말을 통해 대신 이야기해준다.

누구에게나 살아가는 일은 녹록지 않은 게다. 나에게도 너에게도.

격한 감동이나 찌르는 충격적인 이야기가 아니었다.

엄마 이순일을 통해 두 자매 각자의 이야기가 살아가는 일을, 살아가게 되는 일을 그러는 중에 우리는 무엇이고 누구이고 무엇을 향해 가는 사람들인가를 생각게 해주는 소설이었다.

그런데,

이렇듯 쉽게 쓰인 듯한 이야기가 이렇듯 깊게 젖어 오는지 모를 일이다.

빗속을 걸어가는 동안 비 오지 않은 작은 세계를 만들어주는 우산이 든든하기는 하지만, 빗속에서 온전히 우리를 지켜내지 못하는 걸 안다.

그래도 우리 손에 쥐어진 작은 우산이 얼마나 큰 위로이고 따뜻함인지 우산에 의지해 빗속을 걸어본 사람이라면 안다.

지치고 힘든 날들의 중간에 읽어 더 기억에 남는 책이었다.

잠깐 흘려들은 이야기가 온 밤을 지새우게 하는 그런 힘을 가진 소설이다.

추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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