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 사람, 하정우
하정우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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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여행, 맛집, 요리 등 자신의 경험을 적는 책이 한참 나왔다.

전문가들이 주로 내다가 유명인들, 일반인들 순으로 나름의 경험과 노하우와 재미를 담아 과히 홍수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쏟아져 나왔는데,

지금은 더 나오고 있다!

고대 로마의 문인이자 철학자, 변론가, 정치가인 키케로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세상이 타락했다. 잡것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책을 내려고 한다!"

예를 들 수 있는 잡것들을 거론하자면, 포경선 선원이었던 경험으로 모비딕을 쓴 허먼 멜빌, 우체국 직원으로 일하며 성을 쓴 프란츠 카프카, 세관원으로 일하다 주홍 글씨를 쓴 나다니엘 호손, 어린 시절의 고난이 투영된 올리브 트위스터를 쓴 찰스 디킨스 같은 사람들이다.

이쯤 되면 잡것들의 전성시대라 할만하다.

코로나 시대에 혼자 지내는 시간이 늘면서 개인의 경험이나 직업에 대해 적어 책을 출판하는 사람이 엄청 늘어났다는 기사를 봤다.

1인 미디어 시대와 더불어 개인의 직업, 취미, 경험 등을 담은 책이 쏟아져 나오고 있고, 그중에는 좋은 반응을 얻어 꾸준히 출판되고 있는 책도 있다는 이야기를 읽었다.

대단하고 부지런한 사람들이라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다.

개인의 신변잡기를 적은 책들은 거의 읽지 않는다.

타인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지 않기도 하거니와 별로 재미가 없다.

한참 지구 곳곳 한 곳의 오지도 빼놓지 않고 훑은 듯한 여행책이 우후죽순처럼 쏟아져 나왔을 때 몇 권 읽기는 했지만, 경험담 위주의 책은 그만 읽고 싶어지고( 내 경험이 아니고 나도 똑같은 경험을 하리란 법이 없어서), 안내서는 딱딱해서 읽기가 싫었다.(방향치에 길치라서 지도를 보여주며 이리 가고 저리 가면 된다가 입력이 되지 않았다.)

암튼,

키케로의 말을 빌리자면, 정말이지, 너 나 없이 책을 내고 있다. 나도 한 번 써 봐? 싶을 정도다.

뭣에 대해서?가 잡히지 않아 그냥 앉아 있다.

잡것의 무리 중 누가 세계적인 대 문호의 반열에 오를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잡것들의 움직임이야말로 민심이고 또 다른 한 세계를 키우는 원동력이었다. 역사적 고증을 살펴볼 때.

그런 의미에서 언젠가 나도 그 잡것들의 대열에 합류할 수 있기를 바라며 잡것들의 약진을 응원한다. 매우.

하정우의 책이다.

걷는 사람, 하정우!

아이덴티티가 딱 살아있는 책 제목, 좋다.

출판 당시에도 이슈가 되었으나 신변잡기는 별로라 안 읽었는데, 장 보러 갔다가 아름다운 가게에서 발견한 책이다.

최근 집에서 놀면서 하정우 영화를 스트레이트로 보고 있어 호감도가 급상승해 있는 상태고, 없이 살다 보니 돈 드는 운동 말고 장비가 필요 없는 걷거나 뛰는 쪽에 관심이 있는지라 제목에 혹했다.

결론은 아주, 나이스!

2011년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에서 '남자 최우수 연기상'을 수상하게 되면 그 트로피를 들고 국토 대장정에 오르겠다는 해 본 소리로 정말 팀을 꾸려 서울에서 해남까지의 거리 577km를 걷게 된 577프로젝트의 에피소드, 걷기의 최적화된 도시 하와이, 함께 걷는 친구들, 자신의 영화 이야기, 그림 이야기, 감독 실패기, 음식, 책 이야기들이 적혀 있었다.

사실, 내용은 그냥 그냥 그랬다.

자신이 느낀 대로 있는 대로 쓰는 것이 에세이니 남에게 큰 감동을 기대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어디서 나이스였냐?

첫 번째는 책 속의 사진에서다.

글. 사진이 하정우니 본인이 다 쓰고 찍었다는 건데, 연예인들이 보여주는 이미지에 대한 가식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걷는 이야기니 주로 운동복에 런닝, 팬츠 사진이 많았는데 이렇게 내츄럴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꾸미지 않고 생활감이 묻어 나오는 사진들이었다. 원래 멋있으니 꾸밀 필요를 못 느꼈겠지만, 분장기가 전혀 없음에도 멋짐이 뚝뚝 흐르더라. (내가 하정우 영화를 열 편 이상 봐서 하정우에 도취되어 있는 영향도 좀 있다.)

두 번째는 정말 걷는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시상식에서의 말도 평소에 걷고 있었으니 또 걸으면 되지! 하는 걸어본 자의 경험과 자신감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보통 2-3만 보를 걷고 10만 보 걷는 날도 있었다 하니 할 수 있을까? 가 아니라 하면 되지!가 자연스러웠던 거다.

걷는 게 생활화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읽을 수 있었고, 걷기의 열정을 샘솟게 해 주었다.

책을 읽고 새로운 결심을 좀체로 하기 힘든 사람인데 이 책이 나에게 걷기의 열망을 심어 주었으니 어찌 땡큐하지 않겠는가?

서울에서 해남까지의 여정을 담은 다큐영화 '577프로젝트'도 네플릭스로 보았는데, 재밌었다.

아, 나도 저 대열에 합류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코로나만 아니면 당장 나도 지인들을 모아 비슷한 프로젝트를 실행해 볼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영화를 보는 내내 들었다. 기회가 되시면 한 번 보시기를 추천한다. 강추는 아니지만, 도전욕과 깨알 재미가 있더라.

책이 나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뜻밖에도 알게 해 주어서, 고마운 책이었다.

바로 비행기 티켓을 예약했다.

제주 올레길 도전!!

편도다. 걸을 때까지 걸어보다 도저히 못 걷다 싶을 때 돌아올 것이다.

하루가 될지 열흘이 될지 아무도 모른다.

다음 주엔 서평을 쓰지 못할지도 모른다.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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