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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명연설 : 사회편 ㅣ 세상을 바꾼 명연설
정인성 지음 / 답(도서출판) / 2021년 10월
평점 :
말의 힘은 얼마나 강력할까.
내가 어릴 때부터 가장 자주 썼던 (정확하게는 속으로 혼자 되뇌였던...) 표현 중에
"생각하는 대로 말하게 되고, 말하는 대로 행동하게 되며, 행동하는 대로 이루어진다." 는 말이 있다.
한 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시크릿' 이라는 책에서도 비슷한 뉘앙스의 표현이 있지만
내가 저런 생각을 한 건 초등학교 저학년 무렵이었으니까 저작권(?)에는 문제가 없으리라 본다.
나는 또래들과는 조금 다르게 어릴때부터 말의 힘,
특히 언령이나 저주 같은 강력한 말의 힘에 대해 관심이 많았는데
생각해보면 내가 이루고 싶은 걸 해냈을 때는 주문처럼 '할 수 있다'는 말을 수시로 되뇌였던 것 같다.
심리학이나 뇌과학에서도 이런 언어적인 암시의 힘에 대해서는 상당부분 인정되고 있는 듯 하다.
개인적인 차원에서도 이러할진데 대중을 상대로 하는 정치인, 작가, 과학자 같은 유명인들의 연설에 강력한 힘이 있다는 건 말할 필요가 없다.
그 중에서도 시공간을 초월해 강력한 메세지를 전달하고 있는 9명의 명연설을 모아놓은 책이 있어서 읽어봤다.
정인성님의 '세상을 바꾼 명연설' (사회편)이라는 책이다.
이 책에는 알버트 아인슈타인, 하비밀크, 레이첼카슨, 패트릭헨리, 프레드릭더글라스, 수전B앤써니, 플로렌스켈리, 버지니아울프, 마틴루터킹 의 연설이 수록되어 있다.
연설의 배경이 되는 시대들이 대체로 18~20세기 정도로 꽤 오래전이고 연설을 한 사람들도 유럽이나 미국인들이기 때문에 9명 모두를 자세히 아는 사람은 드물 것이라 생각된다.
그래서 연설마다 중심 테마가 해시태그로 보기 좋게 나와 있고, 연설이 이뤄지는 장면의 묘사와 시대적 상황에 대해서도 친절하게 설명이 되어 있다.
연설 내용은 원문과 함께 해석이 같이 실려 있기 때문에 누구나 이해하기 쉽고, 한 편으로는 원문을 직접 읽을 수 있기 때문에 오류없이 내용을 해석할 수 도 있다. (번역도 잘되어 있더군요)
자유와 혁명, 노예제도나 여성의 참정권, 아동 노동과 인류애, 환경과 동성애까지 다양한 주제의 연설들이 실려 있다. 시대의 모순과 불합리에 저항하고 투쟁했던 인물들이 많았는데 연설이 행해진 당시에는 비난과 탄압을 받았던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 샌프란시스코 시의원이자 미국 최초의 게이 정치인이었던 하비밀크의 경우 암살까지 당했었다.
하지만 그들의 희생과 명연설들로 인해 세기가 지난 지금 우리는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살해당하지도 않으며, 흑인을 노예로 부리지도 않고, 여성들에게 참정권을 빼앗지도 않는 세상에 살게 된 것이다.(물론 아직도 개선되어야 할 것들이 많지만)
이 책의 연설들을 읽다보면 언어의 힘, 특히 좋은 연설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 그리고 시대를 초월해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아인슈타인과 버지니아 울프의 연설이 실려 있어서 참 좋았는데,
아인슈타인의 연설이 강력한 기술의 힘을 가진 이들이 평화를 위해 가져야하는 책임의식에 대해 빈틈없이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는 분자구조같은 느낌을 주는 반면에
버지니아 울프의 연설은 어찌보면 두서없이 쓰여진 감정의 편린 같이 보이기도 하지만, 특유의 감수성과 아름다운 표현들로 좋은 문학작품을 읽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좋았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에 실려 있는 사람들이 어떤 일을 했고, 어떤 말을 했는 지는 알지만 이렇게 원문 전체를 글로써 읽어보는 경험을 해본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다른 이들을 통해, 혹은 후대의 매체들을 통해 단편적으로 습득한 정보가 아니라
이렇게 실제로 그 사람들의 생각을 직접 들어보고 곰곰히 곱씹어볼 수 있는 책이라서 연설마다 훨씬 깊은 울림을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 책에 실린 이들이 연설을 통해 추구했던 가치들, 바꾸려고 했던 세상을 떠올리며
과연 나는 얼마나 세상을 바꾸기 위해 살아가고 있으며, 내가 추구하는 가치는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 계속해서 생각하게 해주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