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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의 위로 - 빛을 향한 건축 순례
김종진 지음 / 효형출판 / 2021년 11월
평점 :

얼마 전, 무채색으로 이뤄진 화려하지 않은 책 한 권을 받았습니다.
가제본이라 표지에는 어떤 장식도 없으며 가장 기본적인 정보들만을 표기한 무덤덤한 1도의 글씨들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Thou Art That (그대가 그것이다) 라는 문장으로 시작한 책은
한장 한장 넘길 때마다 하나의 예술품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소제목과 페이지를 나타내는 폰트들의 크기와 위치들...
절묘하게 배치된 사진들과 여백을 보며, 이 책 자체가 잘 만들어진 중세시대 성곽 같다는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신중하고 빈틈없는 설계도에 의해 지어져
담담하게 오랫동안 제 자리를 지켜온 작은 성 같은 책입니다.

저는 빠르게 책을 읽고 한 번 읽은 부분은 다시 읽지 않는 편인데,
이 책은 꼼꼼히, 여러번 뒤로 돌아가며 다시 읽었습니다.
시간에 따라 빛이 다른 방향으로 들어와 분위기가 바뀌는 스테인드글라스 창을 가진 성당처럼
이 책은 다시 뒤로 돌아가 읽을 때마다 글의 맛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건축물에 대한 지식을 전달하는가 싶다가도, 아름답고 조용한 중세시대 풍경들이 눈앞에 펼쳐지다가
나이가 지긋한 노교수에게 인생얘기를 들으며 풀밭을 산책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남프랑스의 르 토로네 수도원을 비롯해 8개의 공간을 인간의 감정과 그림자와 빛이 주는 경험, 느낌, 개념들로
설명하고 있는데, 결코 이해하기 쉬운 책은 아닙니다.
하지만 여러번 읽고 느끼고 생각하며, 머리와 가슴 그리고 영혼으로 받아들이다보면
이 책의 참 맛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정식 출간본이 정말 기대가 되는 책입니다. (가제본 상태가 너무 좋아서, 이대로 출판했어도 좋았을 것 같은데... )


그림들은 이 책을 읽으며 낙서처럼 끄적였던 것들입니다.
책을 통해 좋은 영감을 받았음에도 표현할 실력이 없다는 점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