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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유증 - 과학잡지 에피Epi 18호 ㅣ 과학잡지 에피 18
전치형 외 지음 / 이음 / 2021년 12월
평점 :
요즘 부쩍 과학 분야에 관심이 많아진 것은 내 MBTI가 ENFP에서 INTJ로 바뀌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과학관련 정보를 많이 습득하면서 INTJ로 바뀐 것일까...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선후관계는 별로 상관없는 듯 하다.(사실 이건 RNA와 단백질, 단백질과 핵산의 선후 관계와 최초의 세포와 생명의 기원에 대한 것까지 논쟁의 대상이 될 수 있는 데 아직 이 분야는 과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일치하지 않으므로 함부로 단정짓기 힘들다는 것이 내 결론이다)
단지 현재의 나는 과학에 관심이 많은 INTJ라는 것이 중요할 뿐...
이런 내가 요즘 읽고 있는 과학서적 중에 Epi라는 과학잡지가 있는데 최신 과학 소식들과 정보들을 해당 분야 전문가분들의 글을 통해 접할 수 있어서 아주 매력적인 책이다.
Epi는 이음출판사에서 일년에 4번 발간하는 계간지 형태이고 크기는 성인 손 크기 정도로 작은 편이지만 두께가 꽤 두껍고 사진이나 그림이 거의 없는 텍스트로만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분량은 꽤 많다고 느껴졌다.
다른 것보다 무채색으로만 이루어진(대부분은 블랙&화이트) 미니멀한 INTJ 취향 잡지라고 할 수 있다.
폰트도 가장 기본적인 폰트들 몇가지만 사용했으나 세련되고 독특해보이는 이유는 폰트의 크기와 배치를 매우 효과적으로, 그리고 이질적으로 사용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넘나 내 취향인 부분 ㅠㅠ)
이번 호는 후유증이라는 키워드로 제작되었는데 역시 '팬데믹'이라는 현 시대의 가장 큰 과학적, 의학적, 정치적 논쟁거리를 메인으로 다루고 있었다. 물론 팬데믹에서 파생되는 주제들 뿐 아니라 후유증이라는 키워드와 관련된 다른 과학적 이슈들도 많이 포함되어 있어서 팬데믹에 대한 견해가 다른 사람들이나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충분히 흥미롭게 끝까지 읽을 수 있으리라 본다.
나는 이 중에서도 3번째 챕터 AN-SI-BLE 갓 에 실린 내용들을 가장 관심있게 읽었다.
참고로 어슐러 르 귄의 소설 '로캐넌의 세계'에서 처음 등장한 갓(Ansible)이라는 단어는 변해가는 것들의 첫 순간을 의미하는 말이다. 빛도 천년을 달려야 닿는 곳에 실시간으로 소식을 전하는 것을 의미하는 단어이다.
기후변화, 선언은 선명하나 대응은 답보 상태
요즘 기후와 환경에 대한 잘못된 정보들이 너무 많고, 특정 국가나 기업들의 이익에 따라 입맛에 맞게 다른 기준을 내세우거나 불리한 정보는 숨기고 이익이 되는 정보만을 내세우는 식으로 환경보호운동과 기후변화협약 자체도 변질된 지 오래되었다. 덕분에 일반인들은 기후변화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인지하지 못하고 불편함을 감수하며 열심히 노력하고 있지만 실제로 얼만큼 효과가 있는지조차 알기 어려운 시대라고 할 수 있다.
Epi 18호에서도 이런 부분에 대해 객관적인 사실만을 전달하면서도 다소 비판적인 논조를 유지하고 있는 듯 하다.
개인적으로는 지구온난화에 인류가 미치는 영향이 미미한 수준이라고 생각하는 편이긴 하나, 만약 내 생각이 틀렸다고해도 탄소중립위원회를 통해 만들어 진 탄소중립 시나리오, 탄소중립기본법으로 실제 지구 온난화를 늦추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일부 선진국들과 관련 기업들의 이익만을 위해 진행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Epi의 과학뉴스에서는 양측의 입장과 모순점들을 일부 확인할 수 있다)
실패는 실패다, 단 1퍼센트의 실패라도
대표기자로 뽑혀 얼마 전 실패로 끝났던 누리호 발사 현장취재까지 갔었으나 낙종(특종의 반대말)을 했던 기자분의 이야기다. 기사 제목이 누리호 실패만을 의미하는 줄 알았는데 사실은 거기에 더해 기사를 쓴 기자분의 실패에 대한 일종의 에세이 같은 내용이었다. 기자분이 처음에 언급한대로 조금 두서없는 내용이어서 혼란스럽긴 했지만 누리호 현장의 취재분위기라든가 관련 기사들의 뒷얘기를 알 수 있어서 흥미로웠던 부분이었다.
휴전선 앞에서 멈춘 과학적 지성
물리학과 북한과학기술정책사를 전공한 강호제 교수님이 쓸 글.
앞의 기사에 나온 누리호와 연결되는 내용이 많이 있었는데 앞의 기자분의 글은 문과감성이라면 강교수님의 글은 완전히 이과감성, 과학잡지에 기고되는 글이라면 이래야 된다는 느낌을 받게 하는 글이었다.(내가 가장 좋아하는...)
간단한 물리학 이론을 통한 인공위성의 원리 설명, 누리호의 실패와 성공, 시험과 실험에 대한 단어의 정의와 논리적인 설명들이 정말 마음에 들었고
감정적으로 접근하는 사람들이 특히 많은 '북한'과 관련된 부분에 대해서도 어떤 것이 합리적이고, 어떤 것이 비과학적인가에 대해 명확히 짚어 주는 글이라서 읽는 내내 머리 속이 맑아지는 느낌이 드는 좋은 글이었다.
당신은 당신의 뇌가 아니다
과학을 전공한 출판 담당 기자의 눈에 띈 신간을 소개하는 코너.
이번 호에는 앨런 재서노프의 <생물학적 마음>을 소개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이해하기 어려워서 여러 번 읽었던 부분이다.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요즘 내가 뇌과학에 별로 관심이 없기 때문이고 뇌 과학에 대한 연구가 아직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정확히는 연구 결과의 신뢰가 가지 않는다는 뜻)
<생물학적 마음>은 인류가 (다른 신체 부위에 비해)뇌를 얼마나 이상화하고 이원론적 관점에서 다뤘는가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뇌를 이해불가능한 영역으로 복잡화하고 추상화하여 몸과 단절된 부분으로 인지하는 것에 대해 비판하는 입장이라고 할 수 있는데 나는 일부는 동의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가장 큰 이유는 다른 신체에 비해 뇌에 대한 연구가 굉장히 미미하며 기술이 발전하고 연구가 거듭될수록 과거의 결과들이 뒤집어지는 경우가 수두룩한 분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 들불 번지듯이 번지고 있는 트랜스 휴머니즘 문화에 대한 <당신은 당신의 뇌만이 아니다>라는 저자의 우려의 메세지에 대해서는 깊이 공감하는 편이다.
'기자분의 책 소개가 굉장히 매력적이어서 전문을 꼭 한 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학잡지 Epi는
단지 과학적 이론이나 사실만을 제시하거나, 특정 성향의 주장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현시대의 이슈들을 전달해주어서 참 좋다.
스스로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하고 확증편향에 빠져버린 대중들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급류에 휘말린 이들이 합리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를 할 수 있도록 붙잡아주는 뗏목같은 역할을 해주는 잡지가 아닌가 싶다.
그래서 매우 만족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