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중순이 되어 여름 휴가를 다녀왔고,
책 몇권을 이렇게 저렇게 건드리고 있는데,
난독증에 걸린 것마냥 글이 비껴간다.
호킹지수 98.5%를 자랑한다던 황금방울새는 내 개인적인 기준으론 뻥인듯
1.5%라고 해도 믿어줄까 말까이고,
'도나타트'의 '황금방울새'의 모티브가 되었다는 '카렐 파브리티우스'의 '황금방울새'
'대지의 기둥'을 '켄 폴릿'의 '20세기 3부작 시리즈' '거인들의 몰락'은 1,2권 완간되었건만
'3부작 시리즈'라는 수식어에 눈이 멀어 여지껏 3부작이 완간되기만 기다리다 며칠전 주문을 넣었다.
그리고 '먹는 존재' '읽는 인간'이런 책들도 읽었고,
'야생초밥상'과 '윤태영의 글쓰기 노트'를 읽었다.
난 일본작가의 책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오에 겐자부로 또한 마찬가지이지만,
그것과 인간으로서 존경을 표하게 되는 것은 다른 일,
제목 또한 내공을 짐작할 수 있게 '읽는 인간'이다.
먹는건 숨쉬고 살아가기 위해선 누구라도 해야하는 일이지만,
읽는 건 인간이 먹는 존재와 차별화 될 수 있는 특징이다.
살기 어려워지고 각박해진다고 하지만,
그건 알라딘서재를 비껴간 일들로 인식되었었다.
책을 읽는다는건,
등 따숩고 배 부른 후에 충족시킬 수 있는 욕구라고 생각했었다.
먹고 살기 위하여,
잠 자고 쉴 시간도 부족한데,
책 읽을 시간이,
또는 독후감이나 리뷰를 끄적거릴 시간이, 어디 있으며,
책 얘기를 빙자하여 노닥거리거나 이웃 서재를 마실 다닐 시간이 어디 있겠나 말이다.
이건 육체나, 정신 모두에 적용되는 말이다.
알라딘 서재에 들어와서 책 얘기를 하는 사람들은,
적어도 단순히 그저 '먹는존재'를 넘어선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었다.
나처럼 나이 먹어가고,
깜박깜박 하는 기억력을 붙들어두기 위하여 기록으로 남기려는 사람들도 있지만,
누군가 들어줄 귀를 위하여,
또는 누군가와 얘기를 나누고 싶어서,
또는 자신의 지적 허영을 과시하기 위해,
또는 파워리뷰어를 가장한 지름신들도 있고,
책 얘기로 위장해서 진심을 알 수 없는 사람들도 있다.
이게 조금조금씩 엮여 있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더라.
행복한 가정은 모두
고만고만하지만 무릇 불행한 가정은 나름나름으로 불행하다.
는 박형규 님의 안나 까레니나 한 구절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왜 나만 이토록 아프고,
왜 나만 이렇게 지지리 궁상을 떨면서 사나 하지만,
어떤 의미로든 아프지 않거나 궁상 떨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통각을 느끼는 역치가 다르거나 궁상을 받아들이는 척도가 다를 뿐이지...사는 건 다 비슷비슷하다.
하지만, 책 읽고 글을 쓰고 책이라도 낸다고 하는 사람들은 뭔가 달라야 한다 생각했나 보다, 난.
그래서 실망감이랄까 상실감이 더한가 보다.
책이 삶을 변화시키지 못한다면,
글을 써서 반성하고 돌이켜 나아지지 못한다면,
그럴거면,
책은 읽어 모하며...글은 써서 모하냔 말이다.
'먹는 존재'와 '읽는 인간'이 달라야 하는 까닭이고,
그동안 나의 난독증의 근원이라면 근원이랄 수 있겠다.
거인들의 몰락 1
켄 폴릿 지음, 남명성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7월
거인들의 몰락 2
켄 폴릿 지음, 남명성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7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