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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수고했어요 - 붓으로 전하는 행복, 이수동의 따뜻한 그림 에세이 ㅣ 토닥토닥 그림편지 2
이수동 지음 / 아트북스 / 2013년 9월
평점 :
오지랖이 넓기로 치면 열두폭치마와 어울려서도 부족하고,
온갖 잡기에 관심을 보인게 어제, 오늘의 얘기는 아니다.
우물을 파도 한우물을 파야 한다는 옛말대로라면, 난 될 성부르기는 커녕 싹수가 노랗다.
그런데 어쩌겠는가?
3씨(마음씨, 솜씨, 맵씨)가 되어주시는 관계루다가,
좀더 솔직히 고백하자면 변덕이 죽 끓듯 한 관계루다가,
나의 잡기에 대한 관심사는 철철이로도 부족해, 달달이 바뀌는 실정이다.
얼마전까지는 헝겁으로 수제 인형을 만들어댔고,
친구가 저 대문에 걸린 그림을 그려 보내준 무렵과
된장님이 이 귀한 그림을 보내주신 후부터,
그림에 재미를 붙였다.
특히 내가 관심을 보이는 분야는 인물화인데,
연필로만 그려서 흑백과 명암 처리하기도 하고,
수채색연필을 써서 간편하게 채색을 하기도 하는데,
생각보다 어렵거나 번거롭지도 않을 뿐더러, 재미가 쏠쏠하다.
근데, 인물화랍시고 그리면서 깨달은게 하나 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얼굴에 대해서,
다시말해 보여지는 액면 그대로에 대해 기대치가 높다는 거다.
사실에 가까운 그림을 보여주면 만족하지 못하고,
못 그렸다는 둥,
구도가 이상하다는 둥,
노안이 벌써 왔냐는 둥, 해가며 놀려먹으면서,
사실과는 연관이 없이
만화그림이나 많이 보아왔던 일러스트 그림처럼 그려내면 잘 그렸다고 한다.
눈에 많이 익은 친숙한 그림체를 가지고는 이쁘다, 잘 그렸다, 해가며 설레발을 친다.
이건 그림을 평하는 사람들의 얼굴이 아니라,
내가 내 자신의 얼굴을 그린 것이어도 적용되는 불문율이다.
때로 그림에 너무 집중해서,
선을 여러번 겹쳐그려서 주름살을 너무 많이 만들어 내면,
나이보다 늙어 보인다며 못 그렸다고 한다.
또 찰고무나 지우개로 하이라이트를 주어 주름과 올록볼록 엠보싱들을 지워내면 젊어보이는게 이쁘다고 한다.
내가 딴 그림까지 얘기할 깜냥은 안 되고,
이제 재미를 붙인 인물화만 갖고 얘기해 본다면,
인물과 닮게 그리는 게 좋은 것일까, 아니면 인물의 캐릭터를 잡아 개성있게 그리는게 좋은 것일까?
이도 저도 아니고 그냥 이쁘게만 그리는게 좋을까?
저 '좋을까?' 자리에 '잘 그리는 것일까?'가 들어가면 느낌이 좀 달라진다.
옛날에 사석원이 그린 그림을 두고, 사람들이 크리스마스 카드 그림이라고 폄하했단다.
근데 난 사석원의 그림들을 보면,
다른 건 몰라도 적어도 예쁘고 좋고 즐거운 것이,
마음 속에서 하트가 뿅뿅 생겨나고,
그리하여 희망과 행복을 얘기하고 싶어지는 것이,
인생은 살만한 것이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 화가가 또 한명 있는데, 이 책 '오늘 수고했어요'의 이수동이다.
이분 또한 무명시절을 보내다가, 그림이 텔레비젼 드라마를 통하여 알려지게 된 케이스다.
크리스마스 카드 그림이라는 소리는 안 들었을지 몰라도,
이분의 그림 또한 이쁘고 다정하고 정감있는 그림체를 가지고 있어서,
그림을 보는 이들에게 무한 위로가 된다.
게다가 요번 책엔, 전작에서 보여주던 자작나무나, 하늘과 나무와 꽃 등 이쁘기만한 정물 말고도,
인물에 대한 그림이 여러점 눈에 띈다.
요번 그림이라고 하여,
이쁘고 다정하고 정감있는 그림체라는 것에서는 예외가 없지만,
인물의 특징을 잘 잡아내서,
그림 만으로 충분이 말을 하고 메세지를 전달해 준다.
간혹, 사람들이 이렇게 이쁘고 만화같은 그림체를 가지고 있는 화가는,
사실적인 인물화를, 작품성 있는 그림이라는 말로 혼동하여, 못 그린다고 하던데,
이 그림을 보고 쓸데없고, 부질없이 지어낸 얘기라는걸 알게 됐다.
이 정도면 됐지, 무얼 더 바라겠는가?
또 한가지,
사석원도 그렇고 이수동도 그렇고,
글도 좋다는 거다.
그러고 보면,
사람들이 이들의 그림을 이쁘기만 해서 좋아하는게 아니라,
그림의 깊이, 다시 말하면 이들 그림이 담고 있는 보이지 않는 마음까지를 읽어내고 좋아하는 것 같다.
다시 나의 인물화로 돌아가,
사람들이 나의 그림을 보고 이러쿵, 저러쿵 얘기하는건 어쩜,
보이는 그림만을 보고 좋다, 나쁘다 하는게 아니라,
그림이 담고 있는 마음까지를 읽어내고 하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나도 좋은 인물화를 그리고 싶다면,
사석원이나 이수동에게 그림 잘 그리는 비법을 사사받는 것도 좋지만,
아무래도 이들이 마음밭을 일구고 가꾸는 걸 엿보고 터득하는게 빠르겠다.
얼굴이 사람의 마음을 담고 있는 것도 당근이지만,
그림 또한 사람의 마음을 잘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고보면 이수동은 여러가지 점에서 나랑 닮은 것 같다.(언감생심~--;)
바쁜 일상에 쉼표를 찍을 줄 아는것도 그렇고,
무거운 몸과 마음을 비우고 산다는 게
어디 쉽습니까?
하지만 비우지 않고는
새로운 것들을 들여놓을 수 없습니다.
쉰다는 것ㆍㆍㆍㆍㆍㆍ
그것은 앞으로의 멋진 일과 멋진 사람을 맞을,
'아주 즐거운 준비'의 다른 말입니다.
그러니, 비우시지요.
이춘풍을 닮고 싶어하는 풍류 또한 그렇다.
이춘풍
이 봄바람을 어찌할 거나?
나름 수양했다는 수양버들도
저리 흔들리는데,
대충 산 나야ㆍㆍㆍㆍㆍㆍ
당연히 못 참고 달려야지.
구름 한점을 선물로 주는 호기로움도 닮고 싶고,
선물
바람 따라 가는 그대에게
선물 하나 드리겠습니다.
구름 한 점.
높은 곳에서 자유로우라는
나의 응원입니다.
그러나, 난 구름 한 점보다는, 마냥 넉넉한 햇살이고 싶다.
햇살 좋은 날,
나는 당신의 의자입니다
햇살 좋은 날,
일상의 무게를 내려놓고
잠시 쉬고 싶을 때,
나는 당신의 의자가 되겠습니다.
값비싼 의자는 아니지만,
늘 당신 곁에 있는 그런 의자ㆍㆍㆍㆍㆍㆍ
암튼, 이 책을 읽고,
어쭙잖게 인물화를 그리고 하면서,
느낀 점이 있다면,
그 사람이 먹는 것이 곧 그 사람이라는 말이 있지만,
그 사람이 보여주는 것이 그 사람의 전부는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진심은...더디더라도
어떤 방법을 통해서든지 어떻게고 전달되게 마련이고, 전달될 날이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난,
행간을...
그림의 이면을...
읽을 수 있는 마음의 눈을 키워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