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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 소녀
로버트 F. 영 지음, 조현진 옮김 / 리잼 / 201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고백을 해야 겠다.
이 책을 읽는 내내 그녀가 떠올랐다.
아니 리뷰를 쓰는 내내 그녀가 떠올랐다.
그녀라면 이 책의 리뷰를 어떻게 써낼까 싶었다.
난 간혹 시선이 시니컬한 편이다.
항상 그녀의 시선은 따뜻했었다.
내가 보기엔 그저 그랬어도, 그녀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그녀가 리뷰로 써내면 따뜻하고 세상은 살만한 곳이 되어 있곤 했었다.
이 책이 내겐 그저 그랬다.
책 날개 안쪽을 보니 ‘로버트 F.영’은 ‘공상과학소설가’로 분류된다.
그의 작품들이나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문제가 없는 데, 어디선가 한번쯤 등장했던 내용들이다 보니 신선함이 반감된다.
그렇다고 ‘내가 이런 종류의 책을 너무 많이 읽은거야’ 하고 퉁쳐 버리기엔 뭔가 개운치 않다.
1950년대,60년대에 쓰여진 작품들이 이제야 번역된 것이다.
내가 이 책을 흥미만 가지고 읽고 덮어버린다면, 앞으로도 계속 이런 식의 답보 상태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류의 소설을 시작하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재미를 붙일 수 있을만한 내용이다.
어느 걸 봐도 황당무개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럴듯한 개연성을 갖고 있고, 적당히 재밌다.
‘공상과학’을 하고 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그렇게 거부감이나 이물감은 없다.
표제작이기도 한 <민들레 소녀>는 일본 에니메이션 ‘클라나드’에도 소개되어 좀 유명한가 보다.
난 <별들이 부른다>도 좋았다.
소녀는 계속해서 말했다.“왜 별다른 운명을 가진 사람만 훌륭하다고들 생각하는지 모르겠어요.”그건 그들만이 외로움을 견딜 줄 알기 때문이지. 그들은 그저 묵묵히 외로움을 견뎌 낼 줄 알거든. 하버드는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말을 삼켰다.(85쪽)
“인정하죠. 당신이 나에게 방과 식사를 줬어요. 하지만 난 그에 합당한 돈을 지불하지도, 당신이 편하게 일을 하게도 못했죠. 하지만 그렇게 아낌없이 준 것들을 빌미로, 당신은 내가 인간의 존엄성을 가져보려고 할 때마다 내 영혼의 한조각도 인정하려 하지 않았죠.”
앨리스는 단호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누구도 영혼의 한 조각 같은 걸 신경 쓰지는 않아! 왜 그렇게 말하는 거니?”“걘 우주인이잖아.” 잭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우주에서는 그렇게 얘기하거든. 우주인들끼리 말이야. 그건 그들을 미치게 하거나 아니면 벌써 미쳤다는 걸 모르게 해 주지!”(92쪽)
문제는 나이를 먹을수록 나의 우주는 줄어들고, 외로움은 점점 자라나는 데 있다. 외로움은 지식의 회랑과 말로 이루어진 대성당에서도 도움이 되지 않으므로 단어와 말은 이제 더 이상 나에게 힘이 되지 못할 것이다. 심지어 그것은 내가 광인이 되는 순간까지 또는 심해 바닥에 가라앉은 널빤지에 들어앉을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다. 만약 수송선의 진로를 정하는 게 내 시간을 소모할 만큼 복잡한 과정이라고 해도, 조타실에서 혼자 배를 조종하는 시간들이 긴 밤이라고 해도, 외로움이 자라나는 상황과는 다를 것이다.(94쪽)
이 책은 별이라든가, 사랑이라든가, 외로움 같은 단어들이 이 시대에도 통용되는 언어들로 정의 되어 있다.
특히 이 책 전편을 흐르는 시에 대한 통찰력은 돋보인다.
책을 읽으며 이 시대를 사는 내가 슬펐던 건,
미쳐야 할 순간에 멀쩡하고, 상처받아야 할 순간에 아무런 아픔도 느끼지 못한 채,
그렇게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는 걸...순간 깨달아서 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