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저녁의 연인들
서윤빈 지음 / 래빗홀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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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를 임플란트하는 시대가 오면 기계의 부속품을 교체하듯 새장기로 바꿔 오래오래 살고 싶을까? 오래 살면 무얼 할 것인가? 많은 일들을 AI가 대체하고 인간이 돈벌이로 할 만한 일이 없는 시대에 오래 산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취미로만 살면 과연 즐겁기만 할까?

서윤빈 작가의 신간 <영원한 저녁의 연인들>의 소재가 특이해서 샘플북 서평단으로 신청했다. 소설의 배경은 장기 임플란트가 일상화된 미래이다. 책을 받기 전부터 이런 저런 생각들이 일어났다 스러지곤 했다. 비용이 만만치 않지만 지금도 인공관절이나 치아는 교체하는 시대인데 장기를 갈아 끼우는 게 일반적인 시대가 되면 돈 없는 사람은 또 힘들겠다. 더 흉흉한 범죄가 발생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 생각들...

나는 오래 살고 싶지 않다. 늙음이 공포로 다가오는 이유는 죽음보다는 질병 때문이다. 질병은 고통을 수반한다. 고통스럽기보다는 죽는 게 낫다. 인간적이지 못한 삶을 연명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래서 나는 내 죽음을 내 뜻대로 하고 싶다고 생각해왔다. 인간은 자유의지가 있다고 하지만 생과 사를 제 의지대로 할 수가 없는데 어불성설 아닌가. 원해서 태어나지 않았기에 생의 마감은 원하는대로 하고 싶다.

샘플북에 실린 작가 인터뷰를 통해 주요 등장인물과 줄거리 일부를 알 수 있었다. 작가는 인공 육체로 이주할 수 있는 시대가 되면 이주하겠다면서 통증과 감정이 제어되는 몸으로 살고 싶다고 했다. 안 아프게 죽을 수 있으니까 적절한 죽음의 시기를 정해 웰다잉 할것 같다고 말했다.

이러한 작가의 생각이 책에 반영된 모양이다. 주인공 유온은 장기 구독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죽음이 예정된 사람들을 유혹해 그들의 돈으로 살아간다. 서하는 남은 재산을 유온에게 남기고 그의 품에서 생을 마감한다. 사인은 임플란트 구독 기간 만료로 인한 심정지였다. 본문 엿보기에 소개된 내용이 도입부인지 마지막인지는 모르겠으나 서하와 유온의 서사가 더 있는지 궁금했다. 인터뷰에서 작가는 유온이 성아와 필요이상으로, 혹은 진심으로 가까워진다고 말했는데 둘의 스토리도 읽어보고 싶다.



이 소설은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그린 SF라고 소개되는데 작가는 로맨스 소설이라고 했다. 전기공학을 전공한 작가가 사랑이야기와 기술적 상상력을 버무린 것 같다. 샘플북에 소개된 본문은 임플란트 장기 구독에 해당하는 기술들을 잘 설명뒤 한 여성이 자신의 삶을 중지하는 장면으로 끝난다. 서하는 마지막을 지켜준 유온에게 남은 재산을 주었다. 사랑의 감정을 이용해 이런 식으로 살아가는 유온에게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작가가 언급한 '마중 나가는 걸 잘하는 사람'에서 눈길이 멈췄다. 허림 시인의 시 "마중"을 만났던 때가 떠올랐다. 사랑하는 이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아름답게 표현된 시인데 내가 시를 접했을 당시 많이 외로워서 그랬을까. 꽃으로 서있겠다고, 얼굴 마주하고 앉아 가만가만 사랑을 들려주겠다는 싯구에 그만 눈물이 핑 돌았더랬다. '꽃을 들고' 서있는 게 아니라 '꽃으로' 서있겠다는 것은 사랑하는 이를 향한 극치의 마음이 아닐까. 그렇게 마중나가 서있다 두 손 꼭 잡고 거니는 저녁은 요즘처럼 벚꽃 흩날리는 길이리라.

마중이라는 키워드로 생각이 옮아가니 유온이 성아를 어떻게 마중했을지 궁금해진다. 그 마중이 성아와의 영원한 저녁이 된걸까? 아, 그 전에 유온은 성하에게 어떻게 물들었는지도 궁금하다. 본책을 꼭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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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최초의 여성 의병장 윤희순 여성 인물 도서관 6
이진미 지음, 달상 그림 / 청어람주니어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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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5학년 2학기에 배우는 한국사에서 일제강점기 의병활동을 배우지만 여성 의병은 다루지 않습니다. 그러나 남자 못지않게 적극적인 활동을 했던 여성들도 있습니다. 그 중에서 최초의 여성 의병장 윤희순을 소개합니다. 청어람 주니어의 여성 인물 도서관시리즈 6번째 도서로 <윤희순>이 출간되었어요. 이 책은 초등학교 4학년 이상부터 읽으면 좋습니다. 시간의 흐름을 이해하고 어휘력이 뒷받침되어야 하며, 한국사에 대한 배경지식도 어느 정도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윤희순이라는 인물은 어른들도 처음 듣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기 때문에 학부모와 자녀가 함께 읽기에도 좋습니다.


▶ 책의 구성 소개

- ‘인물 소개 윤희순에 대해 간략한 요약.

- ‘인물 관계도와 연표에서 윤희순을 중심으로 남편과 자녀, 시아버지를 소개하고 출생과 사망까지를 연표로 정리

- 동화 형식으로 구성된 이야기는 여덟살부터 세상을 뜰 때까지의 주요 일화들을 역사적 사건과 연결

- 그때 그 사건에서는 일제강점기 주요 사건들을 다룸

- ‘인물 키워드에는 윤희순의 활동을 다시 한번 정리하고, 또다른 여성 독립운동가 남자현을 소개

-‘그때 그사람들에서는 1919년부터 1945년까지 활동한 주요 여성 독립운동가들까지 소개.

 

이 책은 윤희순이라는 인물이 어떤 성정을 가졌으며 얼마나 적극적인 활약을 펼쳤는지를 흥미진진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나라를 잃었을 때 숨죽이며 아무 말 못했던 이들이 있었고, 어떤 사람들은 일제에 빌붙어 제 잇속을 챙겼지요. 하지만 자기 목숨과 돈을 아까워하지 않고 나라를 되찾기 위해 나섰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분들의 숭고한 희생 덕분에 우리가 지금 주권국가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지요.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이 지극히 제한적이었던 백여년 전에 자신의 확고한 신념대로 행동했던 윤희순이라는 인물을 삶을 통해 어린이들이 역사에 재미를 느끼고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

 

▶ 출판사에서 서평단에게 제공한 독서활동지도 소개합니다.

 

독서전 활동지에는 인물관계도가, 독서중 활동지에는 낱말 퍼즐과 독서퀴즈를, 독서후 활동지에는 토의 토론을 할 수 있는 주제 세 가지가 실려있습니다. 책을 읽고 이렇게 꼼꼼한 활동지를 풀면 윤희순이라는 인물을 더 잘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

 

▶ 어른으로서의 소감

 

내가 알고 있던 윤희순에 대한 정보는 의병가를 만들고 여자도 남자를 도와 의병활동을 할 수 있다고 독려한 사람이었다는 정도였다. 그런데 이 책을 읽어보니 윤희순은 어렸을 때부터 남달랐다. 여덟 살에 장터에서 있었던 일화는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격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어린 나이임에도 어른에게 잘못된 것을 당당하게 말하여 바로잡는데 훗날 시부가 될 유홍석은 그녀의 떡잎을 일찌감치 알아보았다.

 

혼인 후 남편과 시아버지가 의병대를 만들어 봉기할 때 자신도 함께 하겠다고 나섰으나 남아서 할 일이 있을 것이라는 시아버지의 충고를 받아들인 후 안사람 의병가를 만들어 전파한다. 그 뿐 아니라 허기진 의병대들이 그녀가 사는 마을로 숨어들었을 때 아끼지 않고 그들에게 먹을 것을 제공했다. 아들을 볼모로 시아버지의 행방을 묻는 일본 순사에게 거침없이 대항하여 돌아가게 만들었다. 남편과 시아버지의 뒤를 따라 중국으로 가서 학교를 세우고 의병가를 계속 만들었으며 만세운동까지 했다.

 

그동안 교과서나 역사책에서 알려주는 독립운동가들은 모두 남자였다. 유관순 빼고. 그런데 윤희순의 활약상을 보니 남성 의병장 못지않은 활동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라를 잃으면 당연히 되찾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찾아서 하는 담대한 인물이었다. 또한 그녀는 공부하지 않았어도 군자의 도리를 몸으로 행했는데 그 바탕에는 인간에 대한 사랑이 깔려 있었던 것이다. 진심으로 존경스거웠다. 앞으로 학생들과 일제강점기 수업을 할 때 윤희순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어야겠다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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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
조승리 지음 / 달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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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마치고 열흘 만에 집으로 돌아오니 서평단 책 몇 권이 도착해 있었다.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라는 제목이 눈에 확 들었다. 어떤 책이었더라 잠시 고갤 갸웃거리다 이병률 시인의 추천사를 봤으나 감이 잡히질 않았다. 워낙 여러 군데에 서평단 신청을 했고 일상을 비운지 2주 가까이 되다보니 그랬다. 뒷표지를 펼치니 시각장애인의 이야기였다.


목차를 훑다가 가장 끌리는 제목이 마지막에 있었다. ‘사랑에 빠지는 60을 먼저 읽었다. 시각장애인의 사랑이야기일거라고 예상했던 나는 한 방 먹었다. 아이를 사랑할 수 없을 것 같다며 불안해하던 임신 7개월차 된 손님의 출산 후 고백에 이어 작가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엄마가 생활고 때문에 자신을 보육원에 맡기려고 했다가 차마 그러지 못했던 60일간의 이야기였다. 이 글 때문에 작가 모녀의 돈독한 애정 에피소드들이 있을거라 생각했으나 잇따라 읽은 마지막 글에서 더 크게 한 방 먹었다. 딸이 장애인이 될 거라는데 창피했다고 말하는 엄마, 그에 치열하게 대거리하는 딸의 이야기를 읽고 깜짝 놀랐다.


마지막 두 글을 읽은 후 일상 적응에 바쁜 나머지 며칠간 책을 덮어두었다. 그러면서도 계속 생각이 났다. 나는 귀국 후 곧바로 집으로 가지 않고 서울에서 하룻밤을 묵었고 26인치 캐리어를 들들거리며 서울 지하철을 몇 번 이용했다. 큰 캐리어를 끌고 사람 많은 지하철에서 에스컬레이터 이용은 무리였다. 엘리베이터를 찾아 뱅글뱅글 돌았고 금방 나갈 수 있을 길을 많이 둘러다녀야 했다. 열다섯 살까지 멀쩡하던 눈이 안 보인다면 얼마나 불편할까, 아니 비참했을까? 겨우 이틀간 크고 무거운 캐리어 때문에 불편했던 일을 겪어서 그랬는지 책을 펼치지 않아도 작가의 불편한 일상이 자꾸만 그려졌다.


이 책은 너무 가난해 어린 나이에 철이 들었고, 한창 예민할 사춘기에 시각 장애가 생겼고, 엄마를 일찍 여읜 여성의 에세이다. 하나같이 자신이 원한 일이 아니다. 제목처럼 참으로 지랄맞다. 작가의 일상은 분명 불편할 것이다. 그러나 그 지랄맞음이 축제가 될 거라는 제목처럼 작가는 긍정적이다. , 긍정적이라는 말로는 부족하다. 책을 다 읽고 보니 그녀는 이글이글거리는 불꽃같았다. 과거가 어떠했든 그녀는 지금 당당하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 있다. 첫 글 불꽃축제가 있던 날 택시 안에서에서 작가가 밝혔다시피 그녀의 내면에는 별과 불꽃들이 조금도 사그라들지 않았다고 하니 이 책을 시작으로 펑펑 불꽃을 터뜨릴 것 같다.


책에 실린 글들은 대부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엄마, 가족, 친척, 친구라 불렀던 이들, 장애인 보조 활동지원사, 그리고 마사지를 받으러 오는 손님들까지. 그녀의 직업은 마사지사다. 손님의 몸뿐 아니라 마음도 말랑말랑하게 마사지해준다. 마사지를 받고 간 손님들은 잠을 푹 잤을 것이다. 마사지를 잘 받아서 그렇다고 여기겠지만 분명 마음의 이완도 이루어졌을 것이다. 자신이 대나무숲이 된 것 같다고 표현했듯 말이다. 마사지사 경력이 오래되었다 해서 모든 손님들이 대하기 쉬운 건 아닐 것이다. 일상에선 편견어린 시선과 비하성 발언이 따라붙고,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손님들도 있다. 그러나 그녀는 만나는 사람들을 반면교사 삼는다.


장애인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책을 읽고 학생들은, 나는 저렇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다.’라는 식으로 글을 쓴다. 나는 무어라 피드백을 해야할 지 난감하다. 발달장애와 언어장애가 있는 시조카를 보며 내 자식이 그렇게 태어 태어나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장애가 불편할지라도 불쌍한 건 아니라고, 그들을 불쌍하게 여기면 안 된다고, 학생들에게 말하면서는 마음 한쪽이 뜨끔거린다. 자신의 잣대로 그녀에게 올바른 행동을 유도하는 보조활동사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런 내 이중적 태도를 들킨 것 같아 얼굴이 화끈거렸다.


이 책에서 애증의 심리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작가 모녀의 관계는 가장 놀라웠던 부분이다.그런 관계는 내 주위에서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친정엄마에게 자식의 도리라는 의무감만 남은 나는 이제 엄마를 사랑한다고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이다. 나는 딸이 없기 때문에 아웅다웅하다가도 금세 알콩달콩하는 모녀 관계를 상상할 수 없다. 이런 내 입장에서 작가와 엄마의 살벌하고도 애정 넘치는 사이는 언뜻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나 화끈하고 열정적인 모친의 성정을 빼닮은 작가는 오늘도 땀 흘리며 탱고를 배운다. 그리고 손님들의 말에 귀 기울인다. 자신의 편견을 발견하면 선뜻 사과한다.


조승리 작가는 샘터 수필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고 그간 써온 글들을 이번에 책으로 냈다. 이 펄떡거리는 글들에서 솟아나는 생명력에 눈이 부시다. 앞으로 축제 같은 글들을 팡팡 써낼 거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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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카스 수업의 장면들 - 베네수엘라가 여기에
서정 지음 / 난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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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라는 국가 이름만으로 연상되는 단어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나는 석유, 미인 정도였는데 우고 차베스와 구스타보 두다멜이 추가되었다. 하지만 10년도 더 전에 차베스에 대한 책을 읽은 기억만 남아있고, 두다멜은 코로나 전에 LA필을 이끌고 내한했을 때 예술의 전당에서 만났다. 주로 뒷모습이었지만이 정도가 내가 베네수엘라라는 이름으로 떠올리는 명사들이다. 베네수엘라의 수도 카라카스에 대한 책의 서평단을 모집한다기에 신청했다. 출판사는 서평단 참여자를 카라카스 학생이라 표현했다. 이 책으로 카라카스를, 베네수엘라를, 배우는 학생이 되어보려고 했다.


작가 서정씨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살아본 경험을 책으로 냈고 러시아어와 영어를 번역하고 있다. 그는 두 언어를 능숙하게 사용하지만 카라카스에서는 스페인어를 배워야 했다. 낯선 곳에 도착해 살 곳을 정하고 새로운 언어를 배우면서 그곳의 풍경과 사람들을 산책하듯 천천히 만난다. 나도 작가의 눈을 통해 카라카스를 만났다. 그가 소개하는 다양한 문학작품들에 오버랩되는 그곳을, 나는 공부하는 자세로 찬찬히 읽어보았다. 베네수엘라에 가본 적이 없고 너무나 무지하니 다소곳한 학생이 되었다.


1부에서는 차베스 사후에 불어닥친 경제 공황과 사회 혼란 때문에 어려운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작가와 같은 이방인에게는 더욱 녹록치 않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세계 여러 곳에서 살아온 경험들은 카라카스 곳곳을 누비며 노크했고 사람들은 응답해주었다. 2부는 카라카스의 문화를 다양하게 읽어주는데 음식, 미술, 음악, 건축 등을 베네수엘라의 역사와 촘촘히 엮어 알려준다.


카라카스는 물리적으로 너무나 먼 거리에 있어서 정보가 적기도 하지만 우리 관심 밖의 대상이다. 알아야겠다는 마음이 동하는 이도 적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을 여행 책이라고 생각하고 읽으면 카라카스 곳곳을 꼼꼼하게 훑어볼 수 있는 좋은 정보책이 될 것이다. 한 도시에서 한 달 살기 컨셉의 책이라 생각해도 좋겠다. 그곳으로 여행을 가거나 한 달 살기를 실천하지 못하더라도 현재 베네수엘라의 상황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많이 될 것이다. 그저 명소를 소개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역사와 문화에 대한 설명이 적재적소에 들어있기 때문이다.


1부의 대정전을 읽으며 석유 부자로 알고 있었던 베네수엘라에 왜 정전 사태가 일어났고 석유 공급이 원활하지 못하게 되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전기 공급이 끊긴 도시가 소설 <눈 먼자들의 도시>처럼 되지 않은 것을 읽으면서는 조용히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 시간들을 견뎌낸 작가는 절묘한 문학 작품을 소환하고 그 문장들을 덧붙였다. 이러한 구성이 바로 이 책의 묘미다.


2부에서 두다멜이 수혜를 받은 엘시스테마(베네수엘라 유소년 및 청소년 오케스트라와 합창을 위한 국가 시스템)과 전용 음악 센터를 소개해주어 반가웠다. 엘시스테마 출신은 두다멜 밖에 몰랐는데 테레사 카레뇨라는 음악가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녀는 만 7세 때인 1860년 첫 작품을 작곡했고 1863년에는 처음으로 작품을 출판했으며 1876년에는 <돈 조반니>에서 오페라 가수로 데뷔했다. 70여 편의 작품을 남겼고 유럽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다가 1880년대에 베네수엘라로 돌아와 오페라단을 조직하고 음악원을 설립했다.


앞서 여행책이라고 썼지만 가볍게 읽을 여행책이라면 서평단을 카라카스의 학생이라고 표현했을까? 이 책을 통해 카라카스가 어떤 곳이고 사람들은 이렇게 살아가고 있구나 정도로만 읽어도 될 것이다. 그러나 작가가 소개한 역사적 인물과 예술가들, 그리고 문학 작품을 순서대로 정렬한 뒤 벽돌 깨듯 하나씩 알아간다면 그야말로 공부하는 학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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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치킨 먹고, 사춘기! 책이 좋아 3단계
박효미 지음, 임나운 그림 / 주니어RHK(주니어랜덤)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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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미 작가의 신간 단편동화집 <일단 치킨 먹고, 사춘기!>를 서평단 자격으로 읽게 되었다. 이 책에는 5편의 단편 동화가 수록되어 있고 주 소재가 연애라서 초등 고학년 이상이 읽기에 적당하다. 아이들이 무슨 연애인가 싶겠지만 어리다 해서 사랑의 감정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사춘기에 접어들면 이성에 대한 관심이 더해지는 시기이지 않는가. 각각의 동화는 연애 감정 뿐 아니라 일상의 인간관계를 다루고 있다. 매일매일 학교와 학원을 오가는 것이 전부인 것 같아도 가족과 친구사이의 인간관계를 통해 아이들은 성장하는 것이다.


각 동화의 짧은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문자로 갑작스레 이별 통보를 받고 다이어트를 하지 않아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는 체중계의 사랑”, 혼자 연애의 감정에 휩쓸려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는 사랑의 물 분자”, 오래된 남사친이 제 언니에게 사랑고백을 하자 둘의 사이를 막으려고 하는 이야기 전류 차단의 원칙”, 고등학생 오빠를 짝사랑하게 되면서 SNS로 그 오빠를 스토킹 아닌 스토킹하게 되는 나는 여기 있다”, 전학 와서 단짝이 된 친구가 남자에게 관심을 보이자 어쩔 줄 몰라 하는 나는 괜찮나요?”


초등학교 고학년은 어린이라고 불리는 건 거부하고 싶어 해도 청소년이라 하기엔 애매한 나이다. 그럼에도 자신에게 솟아나는 마음들은 어른의 그것 못지않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에 푹 빠지게 되면 그것 외에 다른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 법이다. 세상의 전부가 되는 것이다. 사랑이 이루어지는 것, 그 사랑의 끝이 어디까지인지는 가늠하지 못하면서 제 마음이 상대와 같지 않다는 걸 알게 될 때 받는 충격은 엄청나다. 실패라 여기는 것이다.


이 동화집의 주인공들은 제 마음을 온전히 알아채지는 못하는 것 같고, 어긋나버린 감정을 어찌해야 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를 통해 다시 다가올 사랑에는 이전보다 조금은 성숙하게 대처할 것임을 어른 독자들은 안다. 어린이 독자라면 저와 유사한 경험을 하는 주인공에게 감정이입할 것이며 그들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추스르는 법을 배울 것이다. 아이들은 몸이 자라듯 다른 이들과의 관계 속에서 다양한 감정들을 배우고 커나간다그 안에서 자신을 만나고 제 감정의 실체를 또렷이 알아가는 것이다.


이 책은 요즘 아이들의 심리 상태를 알아보기에 좋은 책이다. 나는 책으로 초등학생들과 만나기는 하지만 그들과 사랑의 경험을 이야기 나누기엔 시간이 허락하질 않는다. 부모들이라 해서 자녀들과 속속들이 감정을 속속들이 나누지는 않을 것이다. 나 역시 그러했다. 매일 할 일을 점검하는 스케줄 매니저 역할에 급급했다. 나 같은 학부모들이 이런 책을 읽으면 자녀들과 세심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혹여 대화까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아이에게 이 책을 슬쩍 건네주면 좋겠다.



@체중계의 사랑 중에서

나는 내 몸을 시험지로 만들었다. 키의 점수는? 몸무게 점수는? 뱃살의 점수는? 뒤태의 점수는?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내가 내 몸에 점수를 매겨 떠들고 다녔다. 그러니 다른 사람 또한 나에 대해 멋대로, 함부로 말한 것이다. 그래도 된다고, 상관하지 않겠다고, 내가 허락했다는 걸 깨닫고야 말았다.


@사랑의 물 분자 중에서

경지완 말에 틀린 게 없었다. 경지완 주인은 경지완이다. 내 맘대로 경지완을 바꿀 순 없다. 산소와 수소가 만나면 물이 되지만, 우리는 산소나 수소 같은 원자가 아니다. 규칙이 있다고 해서 납을 금으로 만들 수도 없다. 나는 멍청하게 서서 문득 생각했다. 경지완은 경지완이고, 조하나는 조하나였다. 우리가 사귀어도 우리는 여전히 각자 자신인 것이다.


@나는 여기 있다 중에서

나는 유니컬 카페를 탈퇴했다. 오랫동안 잠자고 있던 인스타 계정도 없앴다. 가상의 세계는 날 끊임없이 불러들인다. 하지만 당분간은 이곳에만 있을 생각이다. 우리 집, 내 방, 내 책상, 진짜 내가 사는 곳. 나는 여기 있다.



**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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