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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카스 수업의 장면들 - 베네수엘라가 여기에
서정 지음 / 난다 / 2024년 1월
평점 :

베네수엘라라는 국가 이름만으로 연상되는 단어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나는 석유, 미인 정도였는데 우고 차베스와 구스타보 두다멜이 추가되었다. 하지만 10년도 더 전에 차베스에 대한 책을 읽은 기억만 남아있고, 두다멜은 코로나 전에 LA필을 이끌고 내한했을 때 예술의 전당에서 만났다. 주로 뒷모습이었지만. 이 정도가 내가 베네수엘라라는 이름으로 떠올리는 명사들이다. 베네수엘라의 수도 ‘카라카스’에 대한 책의 서평단을 모집한다기에 신청했다. 출판사는 서평단 참여자를 카라카스 학생이라 표현했다. 이 책으로 카라카스를, 베네수엘라를, 배우는 학생이 되어보려고 했다.
작가 서정씨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살아본 경험을 책으로 냈고 러시아어와 영어를 번역하고 있다. 그는 두 언어를 능숙하게 사용하지만 카라카스에서는 스페인어를 배워야 했다. 낯선 곳에 도착해 살 곳을 정하고 새로운 언어를 배우면서 그곳의 풍경과 사람들을 산책하듯 천천히 만난다. 나도 작가의 눈을 통해 카라카스를 만났다. 그가 소개하는 다양한 문학작품들에 오버랩되는 그곳을, 나는 공부하는 자세로 찬찬히 읽어보았다. 베네수엘라에 가본 적이 없고 너무나 무지하니 다소곳한 학생이 되었다.
1부에서는 차베스 사후에 불어닥친 경제 공황과 사회 혼란 때문에 어려운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작가와 같은 이방인에게는 더욱 녹록치 않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세계 여러 곳에서 살아온 경험들은 카라카스 곳곳을 누비며 노크했고 사람들은 응답해주었다. 2부는 카라카스의 문화를 다양하게 읽어주는데 음식, 미술, 음악, 건축 등을 베네수엘라의 역사와 촘촘히 엮어 알려준다.
카라카스는 물리적으로 너무나 먼 거리에 있어서 정보가 적기도 하지만 우리 관심 밖의 대상이다. 알아야겠다는 마음이 동하는 이도 적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을 여행 책이라고 생각하고 읽으면 카라카스 곳곳을 꼼꼼하게 훑어볼 수 있는 좋은 정보책이 될 것이다. 한 도시에서 한 달 살기 컨셉의 책이라 생각해도 좋겠다. 그곳으로 여행을 가거나 한 달 살기를 실천하지 못하더라도 현재 베네수엘라의 상황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많이 될 것이다. 그저 명소를 소개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역사와 문화에 대한 설명이 적재적소에 들어있기 때문이다.
1부의 “대정전”을 읽으며 석유 부자로 알고 있었던 베네수엘라에 왜 정전 사태가 일어났고 석유 공급이 원활하지 못하게 되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전기 공급이 끊긴 도시가 소설 <눈 먼자들의 도시>처럼 되지 않은 것을 읽으면서는 조용히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 시간들을 견뎌낸 작가는 절묘한 문학 작품을 소환하고 그 문장들을 덧붙였다. 이러한 구성이 바로 이 책의 묘미다.
2부에서 두다멜이 수혜를 받은 엘시스테마(베네수엘라 유소년 및 청소년 오케스트라와 합창을 위한 국가 시스템)과 전용 음악 센터를 소개해주어 반가웠다. 엘시스테마 출신은 두다멜 밖에 몰랐는데 ‘테레사 카레뇨’라는 음악가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녀는 만 7세 때인 1860년 첫 작품을 작곡했고 1863년에는 처음으로 작품을 출판했으며 1876년에는 <돈 조반니>에서 오페라 가수로 데뷔했다. 70여 편의 작품을 남겼고 유럽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다가 1880년대에 베네수엘라로 돌아와 오페라단을 조직하고 음악원을 설립했다.
앞서 여행책이라고 썼지만 가볍게 읽을 여행책이라면 서평단을 카라카스의 학생이라고 표현했을까? 이 책을 통해 카라카스가 어떤 곳이고 사람들은 이렇게 살아가고 있구나 정도로만 읽어도 될 것이다. 그러나 작가가 소개한 역사적 인물과 예술가들, 그리고 문학 작품을 순서대로 정렬한 뒤 벽돌 깨듯 하나씩 알아간다면 그야말로 공부하는 학생이 될 것이다.
**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