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받은 사람 중에 가장 축복받은
박지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람에겐 누구나 나가고 싶은 자기만의 벽장이 있다.” - p.90


벽장에 갇혀있다면 탈출이 목표다. 강제로 갇혔다면 그러할 것이다. 그럼 나가고 싶지 않을 수도 있을까? 계속 갇혀 있길 원한다면? 박지영 작가의 신작 <저주받은 사람 중에 가장 축복받은>은 갇힌 사람들의 이야기다. 1983년 벽장 속에 갇혔던 소년 조기준과 팬데믹 상황에서 격리된 우식의 이야기가 두 축으로 진행된다. 우식의 동료 마태공, 기준을 가둔 여자 안나도 다른 의미의 벽장에 갇혀 있긴 마찬가지다.


작가는 벽장이 물리적 장소로서의 의미 뿐 아니라 인간의 내면에도 있음을 등장인물들을 통해 보여준다. 불안과 공포, 죄책감과 죄의식, 거짓과 진실 등이다. 이것들은 남이 나에게 심어준 것일 수도 있지만 스스로 저지른 행동의 결과일 때도 있다. 그 결과로 일어난 상황 때문에 공포와 죄의식에 허우적거리다 점점 빠져나오기 어려워지게 되고 심지어 그 상태가 편안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어떤 행위가 자발적일지라도 실행으로 옮기는 데에는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을 리 없다. 이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스스로 한 행동에 대한 결과이기보다 타인(혹은 시대 상황)에 의해 빠져버린, 또는 어쩔 수 없이(연령에 상관 없이) 끌려간 경우였다.


독자들은 각 등장인물의 상황에 얼마나 공감하느냐에 따라 흥미도가 달라질 것 같다. 평범하게 살고 싶었으나 휴먼북 기준을 만나 혼란스러워진 우식, 딸의 잘못을 숨긴 것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사과를 팔며 큰 소리로 사과하는 마태공, 거짓과 진실과 반전을 뒤섞은 휴먼북 안에는 안나와 기준과 근배가 있다. 이들의 행동은 스스로의 선택이 맞지만 우식과 기준은 시대적 상황에 의한 피해자이다. 그럼에도 작가는 갇힌 벽장을 나가기 위해서 해야 할 것은 이것이라고 했다.

일단 나가고 싶다고 생각한다.’

이런 마음을 먹는 게 얼마나 큰일인지를 아는 사람은 안다.


나는 지금 겪고 있는 몹시 답답하고 황당한 상황에 목이 옥죄는 듯하다. 그래서 갇혔다가 나가니 한 10년이 지나 있으면 좋겠다는 소년의 말에 격하게 공감했다. 사기꾼에게 속은 자신이 한심스러워 스스로를 탓해도 몇 달 전으로 되돌아 갈 수 없고 내가 어떤 행동을 취해서 변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사기꾼의 행동을 기다리고만 있어야 한다. 이 무슨 저주지 억울하고, 어떤 것도 할 수 없어서 괴롭다. 안나 때문에 갇혀 살았던 기준은 나이가 어리기라도 했지 나는 뭔가. 자책만 하게 된다. 그래도 결국은 잘 될 거라는 지인의 말로 오늘 하루를 보냈다.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중 관계 레볼루션 - 기술 패권 시대, 변화하는 질서와 한국의 생존 전략
이희옥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APEC의 성공적 개최와 엔비디아의 GPU 26만대 공급 뉴스로 우리나라에도 기회가 온 것 같은 분위기다. 전 정권이 저질러 놓은 것들을 수습하고 AI시대를 대비하기 위해 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인 이 시점에 이재명 대통령이 국가수반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싶다.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수많은 부침을 겪어왔다. 강대국의 눈치를 보면서도 국민들의 역량으로 오늘날 세계 10대 강국의 위치에 올랐다. 반도체와 자동차, 조선 같은 산업 분야는 물론 문화와 정치에 있어서도 세계가 인정하는 국가가 되었다. 그러나 AI로 대표되는 기술 패권 시대에 한국이 헤쳐 나갈 길이 쉽지만은 않다.


<미중 관계 레볼루션>이라는 책을 읽어보니 현 상황을 직시할 수 있었다. 이 책은 성균관대 교수(정치외교학과, 경제학과, 공학과) 네 명이 대담한 내용이다. 1장 미국, 무엇을 원하고 어디로 가는가 에서는 MAGA현상의 정체와 트럼프의 대외 정책을, 2장 미중 경쟁,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는 미국과 중국의 경쟁 구도 속에서 한국이 취해야 할 입장을, 3장 한국, 생존할 것인가 도태될 것인가 에서는 한국이 기술 주권을 지킬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4장 길 없는 길 위에서 살아남기 에서는 앞으로 우리나라의 기술 산업 분야의 정책 방향을 제시한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참 바쁘다는 우스갯 소리가 있다. 생업에 종사하다가도 대통령이 잘못하면 길 위에서 구호를 외치고, 잘 시간에 계엄령 선포 소식에 국회로 뛰어가고, 새로운 정보나 상품은 발 빠르게 체험하고 분석, 비판한다. 이 책은 그런 대한민국 국민이 읽기에 딱 맞다. 미국이 쇠락의 길로 들어섰다는 평가가 있다.


이 책에서는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을 통해 AI시대에도 그들은 패권을 놓지 않으려 한다고 말한다. 너무나 빠른 속도로 진화하는 AI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고 그를 위해 국제 공동 규범이 필요하다는 것으로 의견이 모이고 있었다. 그러나 올 2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 3AI 행동 정상 회의에 참석한 미국의 밴스 부통령은 AI규제 합의문에 서명하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


미국에게는 지금 AI규제보다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우리는 AI를 국가적 수익과 이익을 위한 전략적 도구로 삼을 것이다.”


지난 7월 백악관 과학기술정책실의 보고서에서 재천명했는데, 이는 미국이 AI 생태계를 구축할 테니 다른 나라들은 그 생태계 안으로 들어오라는 뜻이다. 기존 NATOG7 같은 안보 동맹을 AI동맹으로 확장하려는 움직임이다. 미국의 AI질서에 들어오거나 독자 노선을 택하거나, 만일 후자를 선택하면 기술이나 데이터 접근이 제한될 수 있다. 우리나라 AI분야는 이미 미국에 깊이 엮여있는 상태이다. 앞으로 AI 안전 규제 관련하여 미국과 반대인 EU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아나갈 것인지가 숙제다.


이 책은 기술 패권 시대에 한국이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다. GPT를 자유롭게 이용하는 평범한 한국인일 뿐이지만 AI시대를 대비하는 중국과 미국의 상황을 읽으면서 걱정이 늘었다. 그나마 이런 좋은 책을 소개할 수 있어 다행이다.


책에서는 국가적으로 할 일을 이렇게 정리했다.


기후 위기 대응 차원에서의 인공지능 인프라 지속 가능성, 특히 원자력이나 신재생 에너지 등 탈탄소 기반의 지속 가능성 가이드라인을 먼저 제시해 해당 의제를 선점하고, 역내 국가 간 공통된 안보의 틀 안에서 가능한 기술 협력의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방안이 논의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일반 국민들에게는 이렇게 당부했다.


앞으로는 원하든 원치 않든 AI와 같이 살아야 하는데요, AI가 본인의 삶 속으로 들어오게끔 마음의 문을 여시되 지적 활동을 AI에 전부 외주를 주지는 마십시오. 자신의 지식과 지적 능력을 믿으시고, AI좋은 동반자혹은 툴 정도로 활용하시면 좋겠습니다. 세계 질서가 지금까지와는 달라질 가능성에 대비하시고, 특히 첨단 기술을 중심으로 하는 질서의 개편이 한국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시며 미래 계획을 세우시면 좋겠습니다




**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머리에 콕 입에 착 붙는 어휘 스도쿠 : 우리말 신나는 공부 게임
맹지현 기획, 배은영 지음, 안 뉴 그림 / 메가스터디북스 / 2025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머리에 콕 입에 착 붙는 어휘 스도쿠 우리말>은 재미있게 익힐 수 있는 우리말 책입니다. 초등학생이 꼭 알아야 할 우리말 100개를 상황에 맞게 만화로 구성했으며 스도쿠로 익힐 수 있도록 했습니다.




구성을 살펴볼까요하나의 어휘를 두 바닥으로 배울 수 있습니다.


⇑ 왼쪽에는 단어가 쓰이는 상황을 만화로 표현했고 아래에는 뜻과 상황, 비슷한 말을 설명합니다. 비슷한 말에는 우리말 뿐 아니라 관용어, 고사성어, 속담 등 다양한 어휘를 배웁니다.


⇑ 오른쪽은 스도쿠로 익히기 말 속에서 써보기글 속에서 유추하기’ ‘내용에서 유추하기’ ‘글 속에서 써먹기로 복습합니다.


이 책을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까요?

100개의 단어를 배우는 책이므로 한 번에 다 읽는 것보다 나눠서 읽으면 좋습니다. 저학년의 경우 하루 하나씩, 중학년은 2~3, 고학년은 5개씩 공부하면 됩니다. 이런 책은 익힌 단어를 생활에 활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려면 아이에게 책을 던져주고 공부하라고 하는 것보다 부모가 함께 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일주일동안 배운 낱말로 퀴즈나 스피드 게임을 하며 복습하거나 일기를 쓸 때 한 두 개 정도를 넣어서 쓰도록 하면 좋습니다. 일기에 넣기 힘들어한다면 한 두 단어를 넣어 문장 만들기를 해도 됩니다. 문장 만들기를 어려워하면 글 속에서 유추하기글 속에서 써먹기에 있는 문장을 베껴 쓰면 됩니다.


아이와 함께 게임하고 문장 쓰기를 하다보면 부모도 어휘력이 향상될 것입니다. 이 책에 나온 100개 중에 어른도 몰랐던 단어들이 있을 겁니다. 저도 안다미로와 건들장마, 두남두다는 처음 보는 단어였습니다. 죽을 때까지 배워야한다는 말이 맞네요.

 

 


**위 리뷰는 네이버카페 컬처블룸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철학은 결말을 바꾼다 - 삶의 무의미를 견디는 연습 철학은 바꾼다
서동욱 지음 / 김영사 / 2025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가제본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철학도 유행이 있는 건지, 아니다 철학자 좋아하는 것도 유행이 있는지, 니체 책이나 어록이 오래 유행했는데 최근엔 쇼펜하우어가 어땠다더라는 책 제목을 필두로 쇼펜하우어 바람이 불었다. 기실 철학 전공자가 아닌 다음에야 철학자가 했다는 말은 한 번 듣고 흘리기 쉽고 무슨 뜻인지도 정확하게 모른다. 따져 새기기에 일반인은 어렵다. 그런데 철학이 유행가 같을 때가 있다. 지금 내게 닥친 현실과 딱 맞아떨어지는 가사를 들으면 격하게 고개를 주억거리다 못해 눈물을 흘리기까지 한다. 노래와 철학을 같은 선상에 놓을 순 없겠으나 누군가에게는 이 둘 모두가 무관심한 대상이다가도 자신이 겪고 있는 상황과 맞으면 몹시 가깝게 느끼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 노래만 계속 듣는 것처럼 그 철학자의 책을 찾아 읽게 된다.


서동욱 철학자의 신간 <철학은 결말을 바꾼다>를 가제본 서평단 자격으로 받아 읽었다. 43편의 글들이 읽기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내가 최근 고민하는 것에 대한 내용에서 공감하며 읽었다. 이렇게 많은 철학자와 책 제목, 예술 작품을 언급하는 책일 경우 독자는 어쩔 수 없이 자신에게 맞는 것(현 관심사나 고민)만 취하게 된다. 그래도 읽을 게 적지 않다. 예를 들면, 2부의 여덟 번째 글 사랑과 질투에 언급된 책은 5권이고 그 중 철학서는 스피노자의 <에티카>이다. 바그너의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도 언급했다.(다른 글에 비하면 적은 편) 그 파트에 인용된 책들을 다 읽어야 하는 건 아니다. 저자가 철학을 여러 작품들과 연결해 독자에게 사랑과 질투를 잘 전달하려고 노력을 기울였을 것이고 우리는 덕분에 그 화두에 대해 색다르게 생각해볼 기회를 가지게 된다. 연결되는 여러 작품들을 소개받는 것은 덤이고 그 책들을 찾아 읽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다행이 인용된 작품의 주석이 첨부되어 있어서 일일이 찾는 수고를 덜 수 있다.


이런 책은 호불호가 있다. 너무 많은 정보가 담긴 책을 선호하지 않는 사람들이나 철학자를 많이 다루면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면 선택하지 않을 수 있다. 삶에서 만나는 여러 문제들을 두루두루 짚으면서 그에 맞는 철학으로 연결해 주는 것을 좋아한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이렇게 많은 철학자와 작품을 다루는 책은 목차를 보고 자신의 관심사를 먼저 읽으면 좋다. 그런데 끌리지 않는 제목의 페이지를 펼쳤다가 의외의 수확을 하게 되기도 하므로 천천히 두고두고 읽기 좋다.


사랑과 질투편으로 다시 돌아가 본다. 사랑이고 질투고 그런 감정이 내게 언제 있었나 싶을 정도로 까마득하여 사실 심드렁하게 읽었다. 후반부에 이르러 사랑 속에서 죽는 일을 숭고하고 선한 일로 여길지도 모른다자신에게 닥치는 손실에 대한 모든 계산을 넘어선 것, 한마디로, 죽어도 좋은 것에서 나는 사랑은 역시 힘들고도 어려운 것이라 생각했다. 각자의 가치관과 경험에 따라 지극히 다른 일이겠지만 나는 사랑하는 자식을 위해서 죽을 수 있다. 책에서는 이성과의 사랑에 한정해서 이야기했기 때문에 나는 모든 걸 바쳐 (자식 빼고)누군가를 죽을 만큼 사랑한 적이 있었나 생각해보니...


얼마 전 보았던 애니메이션 <LOST&FOUND>가 떠올랐다. 공룡은 사랑하는 친구(혹은 연인, 어쩌면 자식) 여우를 위해 자신이 사라지더라도(인간에겐 죽음에 해당) 그를 구하려고 했다. 털실로 만들어진 공룡은 물에 빠진 여우를 구하기 위해 뛰어가는데 그 동안 실이 다 풀려 버리고 몸 속의 솜도 모두 터져 나왔다. 7분이 채 되지 않는 그 애니매이션을 보며 가슴이 찡했고 요즘 저런 사랑을 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었다. ‘사랑과 질투의 마지막 줄, 자신에게 닥치는 손실에 대한 모든 계산을 넘어선 것을 읽다가 공룡 인형의 실이 다 풀려 그 끝이 여우에게 가닿는 장면이 오버랩 되었다.


1권태를 여행으로 극복해 볼까에서는 그동안 내가 했던 관광을 여행이라 불렀다는 게 낯부끄러웠는데, 생각지도 못했던 치부를 들킨 것 같아 얼굴이 심하게 달아올랐다. 저자는 하이데거의 <기술에 대한 물음>을 인용하여 이렇게 덧붙였다.


우리는 미지의 영역을 향해 여행한다기보다는 이윤을 계산해 개발에 뛰어든 관광청과 관광사의 사업장을 구경하는 셈이다.”


, 지난 달 장가계 패키지 여행을 다니며 들었던 내 생각이 정확한 문장으로 적혀있었다. 또한 내가 여행 때마다 하던 짓 역시 적나라하게 표현되어 있었다.


한마디로 여행자는 장소만 이동했을 뿐 늘 영위하던 일상을 거의 그대로 가져가는 셈이다. 애초에 여행에서 기대했던 것 가운데 한 가지는 무엇인가? 권태로부터의 탈출이다. 보통 우리가 관광이라고 일컫는 여행은 어떤 점에선 이 일상을 가능한 한 많이 여행 가방 안에 싸 가지고 다니는 여행이다.”


그간 나는 여행 가방을 싸면서 여행지에서 한 치의 불편함도 허용할 수 없다는 의지를 불태웠는데 딱 내 얘기가 아닌가! 장가계 여행에서 제공한 식사는 우리나라 식당에서 먹는 것과 다를 바 없었으며 가이드는 여행객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전전긍긍하는 것처럼 보였다. 남이 해주는 밥을 먹고, 내가 어지럽힌 것을 청소하지 않으며, 기암괴석을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로 불편함 없이 오르내렸다. 그 대가로 물품을 구매해야 했다. 구매를 강요하지 않았지만 기이한 좌불안석에서 눈치를 보아야 했다.


글의 마지막에 저자는 미셸 트루니에의 인터뷰를 인용했는데 또 나였다.

관광객(또는 나쁜 여행자)은 그에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은 채, 출발 시와 마찬가지로 그대로 되돌아옵니다. 반대로 훌륭한 여행자는 여행으로 인해 다른 모습으로 변모됩니다. 그는 여행 동안 고생을 하고 배워서 풍요해집니다.”


나는 나쁜 여행자다. 소비만 했을 뿐 풍요로워지지 않았다. 그동안 편리하다는 장점에 눈멀어 패키지 여행만 다녔던 어리석고 나쁜 여행자였다. 이번 장가계 여행 후에 들었던 허무함이 바로 이 때문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행에서 돌아와 찜찜했던 이유를 몰라 어리둥절했고, 나이를 먹으면 경험한 것에서만큼은 능숙해질 줄 알았으나 늘 시행착오라는 제자리를 맴돌 뿐이고, 인문학 공부를 하겠다며 책을 그렇게 읽어도 삶을 한 톨도 변화시키지 못했다. 이 책은 내 밑바닥과 가식을 드러나게 했다. 2경험이 삶의 스승이다에서 처절하게 확인했다. 저자는 사르트르의 <문학이란 무엇인가>를 인용하여 경험의 필수성을, 가다머의 <진리와 방법>으로는 경험은 우리가 어떤 유한한 존재인지를 깨닫게 해준다고 했다. 경험에서 배우지 못하고 유사한 실수를 또 저지른 나 자신이 한심스러웠다자신의 유한성 앞에서 겸손의 지혜와 극복의 의지를 배우게 된다고 했는데 절로 고개 숙여졌다. 경험으로 겸허를 배우지 못했으니 부끄럽다. 삶을 바꾸는 생각은 실패한 경험에서 오는 것 같다


이 책의 부제가 삶의 무의미를 건너는 법인데 나에게는 너의 민낯을 보는 법이 되었다. 모두에서 이 책은 호불호가 있을 수 있다고 썼다. 나는 이 책이 읽기 쉽지 않았으나 부끄러운 내 모습을 까발려주어서 좋았다. 이 무슨 SM성향인가 싶겠지만 이렇게 날 부끄럽게 한 책은 없었기도 하거니와 내가 긴가민가하거나 인지하지 못했던 것까지 콕콕 짚어주었다. 등짝을 후려칠 죽비가 필요할 때마다 이 책을 꺼내 읽어야겠다.


그리고 하나 더,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읽기에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동안 숱한 글이나 문학에서 인용되어 온 작품이지만 읽기를 시도하기엔 겁을 주는 멘트들이 적지 않아서 미루고 있었다. 그런데 저자가 자주 인용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일부들을 읽으며 원 도서의 맛을 알고 싶다는 생각이 슬슬 피어올랐다. 이 책의 수많은 각주 중 내가 픽한 책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건 진짜 비밀인데! 길벗어린이 문학
강경수 외 지음, 밤코 그림 / 길벗어린이 / 2025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건 진짜 비밀인데>가 정식 출간 되기 전 가제본 서평단 자격으로 송미경 작가의 <내 동생이 구멍을 만든 날>을 받아 읽었어요. 동생이 구멍을 만들다니, 무슨 구멍일까요? 제목부터 궁금궁금~~

누나가 남동생 이야기를 합니다. 동생 이름은 사드락! 남동생과 누나는 여러모로 정반대입니다. 사드락은 한 번도 빠짐없이 숙제를 해가요. 숙제를 다 하면 가방을 싸고 다음 날 입을 옷을 정리한 다음 책을 읽거나 강아지를 돌보거나 어른들의 잔 심부름을 하구요. 이른 저녁부터 잠옷을 입고 책을 읽다가 잠이 들어요. 용돈을 받으면 쓰지 않고 모으며 한 번도 지각을 하거나 거짓말도 하지 않았어요. 어른들이 좋아할 모범생이죠~~

어느 날 사드락이 구멍을 발견하고 그 곳에 사는 족제비를 만난 뒤에 아주 달라져 버렸어요. 갑자기 사라졌다 돌아온 사드락이 누나에게 비밀을 털어놓았답니다. 물웅덩이에서 구멍을 발견했고 말하는 족제비를 만났다는 것! 그 족제비들의 말에 의하면, 지나치게 정확한 인간 아이들 때문에 구멍에 갇혀 살고 있다고 하네요. 특히 사드락 때문에 땅 속 균형이 무너졌대요. 사드락 잘못이 너무 많다나요.

사드락 같은 아이가 하나의 구멍도 만들지 않으면 족제비 세계가 숨을 못 쉰대요, 인간 세상의 아이들이 틈을 만들고 틀리게 굴어 줘야 그 구멍으로 족제비들이 드나들 수 있어요. 누나처럼 실수하고 말썽부리는 아이들이 족제비들에겐 좋다는 사실! 사드락은 그곳에서 특훈을 받고 왔는데 누나가 그 모든 걸 다 동화로 쓰기 힘드니 독자 여러분이 생략된 부분은 상상해 보라고 하는군요. 아, 누나가 바로 작가!

이 동화는 어린이 독자들에게 무한 상상할 장을 열어줍니다. 뭐든 해도 된다고, 틀려도 되고 말썽 피워도 된다고, 소용없는 짓이란 없으니 다 해보라고요. 그리고 괜찮다고, 그런 것들은 어릴 때 해보아야 하는 거라고, 그동안 움츠려 있었다면 두 팔과 두 다리를 활짝 펼쳐 뛰어 보라고!!

이 세상은 작고 웃기고 쓸모없고 틀린 구멍들로 구성된 아름다운 그물망 같은 거라는 이 문장은 어른에게도 가슴 벅찼어요. 우린 어렸을 때 하지 말아야 한다는 금지어만 듣고 살았어요. 의문을 제기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고 교육받았고요. 요즘 아이들더러 가장 풍요로운 시절을 사는 세대라고 하지만 그들에겐 허튼 짓할 시간이 없어요. 해야 할 공부가 너무 많아서 다른 것을 해볼 틈이 없고, 침몰하는 배 안에서 가만히 있다가 죽음을 맞았지요. 요즘 아이들은 과연 우리와 다른 교육을 받는 걸까요? 어른으로서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한편, 누나가 자신은 틈과 구멍 사이 이야기를 찾는 사람이 되었다고, 어떻게 작가가 되었는지 알겠냐고 묻는 마지막 부분을 읽는 어린이 독자들도 동화작가가 되어보고 싶다는 마음의 씨앗을 품어봄직 합니다. 주위 사람들이나 동물들을 자세히 관찰하고 일기 쓰기를 시작하면 어떨까요. 말썽 부려보고 싶지만 실행하지 못하는 어린이들은 하고 싶은 그것!을 글로 써보는 거에요. 아이들이 맘껏 쓸 수 있도록 같이 읽은 어른들이 유도하면 좋겠습니다. 부디 글쓰기 카타르시스의 맛을 느낄 아이들이 많아지길 바랍니다.




​밤코 작가님 그림도 넘 귀여운데요, 본 책은 컬러로 나왔겠죠~~



👉 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가제본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