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이에 칼이 있었네 - 세계를 균열하는 스물여섯 권의 책
강창래 지음 / 글항아리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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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이에 칼이 있었네!

무슨 스릴러 소설 제목 같지 않은가. 그 칼을 어느 한 쪽이 먼저 집어 들어 상대를 찌를 것만 같다. 하지만 이 책은 소설이 아니라 에세이다.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 <위반하는 글쓰기>, <책의 정신>등을 쓴 강창래 작가의 신작이다. 소설을 기대한 독자라면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책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반가워할 것이다. 목차를 훑어보면 읽은 책보다 읽어보지 못한 책이 더 많을 터인데 누구나 제목 한번쯤은 들어본 책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부제처럼 세계를 균열하는 스물여섯 권이라는 말이 직관적으로 다가오지 않을 사람이 더 많을 지도 모르겠다. 스물여섯권이 세계를 균열한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고 싶다면 일단 읽어야 한다.


작가는 한 권의 책을 서너 번은 읽는다고 했다. 물론 훨씬 더 여러 번 읽은 책도 있단다. 이 책을 한 번 읽고 글을 쓰려니 부끄럽기 그지없다. 그러니 감히 서평이라는 말은 붙일 수도 없다. 소개한 책들을 어떻게 읽으면 좋을지 알려주는 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글을 쓴다. 제목 우리 사이에 칼이 있었네부터 시작해야겠다. 작가 보르헤스가 마지막 부인이었던 마리아에게 자신의 묘비명으로 써달라고 한 문장이라고 한다. 그러나 보르헤스의 묘비에 저렇게 쓰여 있지 않으며 그 말을 했다는 것도 확인이 안 된단다.


이 문장으로 시작하는 소설이 한강의 <희랍어 시간>이다. 읽은 지 오래되어 그 문장이 나왔는지조차 까마득해서 <희랍어 시간>을 꺼내보았다. 앞부분을 확인하고 몇 장 더 넘겨보았는데 아, 처음 보는 글 같아서 덮어두고 <우리 사이에 칼이 있었네>로 다시 돌아왔다. 소설의 내용이 거의 기억나지 않으므로 강창래 작가가 설명해주는 내용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p.149

인간과 인간 사이에 놓인 서슬 퍼런 칼을 넘어서는 사랑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보여주는 이야기다. 그 의미를 확장해서 작가와 독자 사이에 놓은 칼을 넘어서는 방법에 대한 것으로 읽어도 좋을 것이다. 온 감각을 일깨우며 텍스트에 빠져들 때 진정한 사랑을 느낄 수 있으리라. 소설에는 감각 경험 없이 언어만으로는 해석되지 않는, 시적인 언어로 표현된 장면이 많이 나온다. 직접 경험해봐야 한다.


다시 읽어봐야겠다. 아니, 처음 읽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희랍어 시간>에서 뿐 아니라 강창래 작가는 다른 책들에서도 언어에 대해 계속 말한다. <구술문화와 문자문화>에서는 텍스트의 해석에 대해, <새로 태어난 여성>에서는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가 남근중심주의이며, <2의 성>에서 강 작가는 이 책을 읽고 나서야 혼란스러웠던 여성의 행동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소설은 상상력에서 뽑아내긴 하지만 작가의 삶이 투영되지 않을 수밖에 없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다. 작가는 카프카의 <소송>을 소개하면서 모든 작품은 작가의 일대기다라고 했다. 작가의 생을 이해하면 작품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강창래 작가는 이 파트에서 독자가 직접 읽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작품 안팎의의 맥락을 조사한다고 했다. 이런 순서다. <소송>을 네 번 읽는 과정에서 생긴 궁금증을 추적 조사한 다음 언급할 만 한 가치가 있는 내용을 고른다. 이 때 작가의 전기적 사실을 더 조사하여 카프카의 삶을 상상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부조리에 담긴 비유와 상징도 이해가 되었다고.


물론 일반 독자가 이렇게 읽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다보면 왠지 나도 좋아하는 작가의 책은 저렇게 여러 번 읽고 작가의 삶의 서사도 조사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다. 이 책의 단초는 학창시절 고도를 기다리며라는 카페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 때 시작한 인문학 공부가 이 책으로까지 이어졌으니 어떤 글이든 행간에는 작가의 일대기가 담겨있다는 말을 직접 증명하고 있다.


또 말도 안 되지만 비교해보았다. 내가 이렇게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이 미래의 언젠가 소환될 때가 올까? 이런 활동들이 무용에 그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 이건 나도 작가가 될 수 있을 거란 착각 혹은 부작용? 해석을 잘못한 오독인가.


이 책에서 소개하는 책들 중 도전해보고 싶은 책은 <우연과 필연>이다. 내가 생물학을 좋아하기도 하거니와 과학 비문학을 이렇게 간단하게 핵심만 추려 써보고 싶기 때문이다. 이 또한 부족한 실력으로 과도한 욕심을 부리는 것이다. 그러나 도전해보고 싶다. 강창래 작가처럼 영문판과 한국어판을 비교하는 그런 일은 못하지만...

 

 

 

**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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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펼침 (주책공사 5주년 기념판)
이성갑 지음 / 라곰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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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펼침>은 부산 동네 책방(혹은 독립서점), “주책공사책방지기의 에세이다. 주책공사가 부산 중앙동에서 영업을 시작할 때부터 나는 알고 있었다. 인스타로 팔로우하고 그곳의 행사나 책방지기가 소개하는 책들을 보고 있었지만 한 번도 가보진 못했다. 작년에 광안리쪽으로 이전한 후에야 방문하게 되었다. 작년 여름, 이문재 시인과 이병률 시인의 북토크에 참여했다. 억수같이 비는 쏟아지고 바람까지 세게 불어 우산을 잡고 부들부들 떨며 서점에 도착했다. 이문재 시인의 우리나라 남성들이 시를 읽어야 한다.”는 멘트에 격하게 공감하며 뿌듯한 맘으로 나왔더니 비는 그쳐 있었다.


올해는 주책공사에 책구독서비스 주책가방을 신청해서 받아보고 있다. 책방지기님은 자신이 읽은 책만 서점에 들이고 추천한다고 했다. 이 책에는 이런 내용과 함께 책방을 운영하며 만난 사람들,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까지 풀어냈다. 무엇보다 책이 얼마나 좋은지 책을 읽어야하는 이유들을 자신의 경험과 함께 들려주는데 글이 술술 읽힌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 동네 책방 나들이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으로 추천한다. 일상적인 일들을 책을 읽어야만 한다는 결론으로 이끌어내는데 고개 끄덕이게 한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자부심이 뚝뚝 묻어나며 소명의식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에 해당하는 문장이다.


한 권의 책이 인생을 바꾼다고 믿습니다. 그 바뀐 인생에 주책가방의 책들이 조금이나마 여양력을 끼친다면, 더할 나위 없겠습니다.”


나는 동네책방에 관심이 많았다. 10여 년 전부터 전국의 동네책방을 순례하듯 돌아다녔는데 처음으로 찾아 갔던 곳이 충북 괴산의 숲속작은책방이었다. 2014년에는 서울에 있는 책방들을 돌아보며 언젠가는 나도 이런 공간들을 만들고 싶다는 꿈을 꾸었다. 그런데 나는 꿈만 꾸었고 다른 사람들은 실천을 했다. 나는 차리지 못했지만 그동안 동네책방의 역사는 지켜보고 있었다. 그간 무수히 많은 책방들이 생겨났다. 유명인이 하는 곳, 매출 부족으로 사라진 곳도 있고, 꿋꿋이 버티는 곳도 있다. 그런데 예전에 비해 소비자들의 태도가 많이 변했음은 확실하다. 아직 온라인 서점을 이용하는 사람이 월등히 많긴 하다. 정가에서 10%를 할인 해주고 다양한 굿즈들로 유혹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네책방을 이용하는 것이 출판 생태계가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다는 것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늘었고, 동네책방도 여러 방식으로 마케팅을 하고 있다. 이렇게 주인장들이 자신의 책방을 소개하는 책을 내고, 독자들이 참여하는 프로그램이 많아지면 가까이 있는 책방을 이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이 책에서 얻은 꿀팁이 있다. 책방지기가 만년필을 쓰다가 잉크가 나오지 않을 때 하는 방법을 소개하는 글을 읽다가, 나도 쓰지 못하고 있는 만년필이 있는데 하면서 바로 실행해보았다. 펜촉을 물에 잠시 담궜다가 빼면 잉크가 나온다고 하기에 해봤더니 정말! 성공이었다. 고장났나, 버려야하나, 하다가 팽개쳐둔 만년필이었는데 이제 쓸 수 있게 되었다.


그 내용에서 공감한 부분이다.


삶은 만년필과도 같아서 틈도 필요하고, 구멍도 필요합니다. 그 틈과 구멍이 있기에 만년필이 작동하고 세상에 흔적을 남길 수 있으니까요. 틈과 구멍은 막힐 수도 있지만, 그 틈과 구멍 때문에 다시 회복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회복을 돕는 물은 가족일 수도, 친구일 수도, 책일 수도, 술일 수도, 커피일 수도, 여행일 수도, 영화일 수도, 운동일수도... 그 무엇일 수도 있을 겁니다. 이왕이면 책이면 더 좋겠지만요.


이렇게 그의 모든 글은 책으로 귀결된다.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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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생물학 - 내 몸을 누군가와 나눈다는 것
이은희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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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네이버카페 컬처블룸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이과 과목 중에 내가 유일하게 좋아했던 과목은 생물이었다. 지금까지도 뇌 과학 분야와 함께 즐겨 읽는 책은 생물 쪽이다. <하리하라의 과학 블로그>로 유명한 이은희 작가의 신간 <엄마 생물학>을 서평단 도서로 받아 읽었다


이 책은 엄마가 키워드이기 때문에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 벌어지는 전반적인 양상들을 생물학적 관점에서 훑어나간 다음 여성의 몸을 바라보는 사회학적, 철학적 관점으로 넓혀 나간다. 그러므로 임신을 준비하거나 임신 중인 여성에게 적극 추천하고 싶다. 물론 남편도 같이 읽길 권한다. 남자는 임신에 절반의 역할을 하긴 하지만 아이를 품고 낳는 과정에서는 타자일 수밖에 없다. 출산 후 양육을 분담해도 아빠보다는 엄마의 비중이 많다. 아내가 겪게 될 고충을 이 책을 통해 예습한다면 무심한 방관자가 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출산과 육아를 이미 경험했지만 이 책을 흥미롭게 읽었다. 작가 자신의 경험을 적극 공개한 부분은 시험관 아기 시술을 시도하고 있는 부부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내가 경험하지 않은 부분임에도 작가가 겪은 일련의 과정들이 눈에 보일 듯 그려졌고, 난임 분야의 기술 발전도 목도할 수 있었다. 작가는 인공수정으로 첫째를 낳았고 5년이 지난 어느 날 10년 전 보관해두었던 냉동배아의 보존 기간이 다 되었다는 전화를 받는다. 계약서에 따라 폐기하겠다는 말을 들으니 지금 눈앞에 있는 다섯 살짜리 아들과 한날한시에 만들어진 배아이기 때문에 혼란스러웠다. 그 배아들을 그저 세포덩어리로 볼 것인지, 아직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내 아이들로 볼 것인지는 오롯이 작가의 선택에 달려있었다. 작가는 임신 시도를 하여 쌍둥이를 낳았다. 첫째와는 다섯 살 차이지만 세 쌍둥이나 다름없다.


이 과정에서 과배란 때문에 난소 과자극 증후군을 겪은 일, 인공수정 과정 및 배아를 인간으로 규정하는 여러 시각들까지 다루면서 생명 윤리와 철학으로 확장시켜 독자들에게 상당한 정보를 줌과 동시에 사고 훈련을 하게 한다. 인공수정 과정 뿐 아니라 임신과 출산, 여성의 몸, 젠더 갈등, 생명과 죽음에 관해서도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서술했다. 이러한 형식이 바로 이 책의 가장 훌륭한 점이다. 너무나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준다는 것 또한 장점이다. 예비 부모 및 어린 아이를 양육하는 부모에게 필독이라고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나처럼 생물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도 아주 매력적인 책이다. 전문적인 분야를 일반인들이 읽기에 이토록 쉽게 쓸 수 있는 작가는 그리 많지 않다. 평소 이런 비문학 서적을 읽을 때 참고문헌 부분은 거의 열어보지도 않는데 이 책은 후주와 참고문헌까지 다 읽었다. 정말이지 참고하고 싶은 정보들이 많았다. 소개된 책이나 영화들은 리스트 업 해두었다. 생물학 전공자들에게는 모범적인 대중서의 예시가 될 것이다.


<엄마 생물학>은 임신과 모성에 깃든 사회적 시선이 여성에게 죄책감을 지게 만든 부분을 과학자이자 엄마의 시각으로 풀어내어 독자들이 수용할 수 있도록 돕는다. 터부시되거나 신화적 이데올로기로와 같은 극단적인 대중의 인식을 생물학 및 진화론적 관점으로 인식할 때 자연스럽다는 것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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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지키는 여자
샐리 페이지 지음, 노진선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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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말도 하지 마. 씨발, 한 마디도 하지 말라고.”

청소도우미 재니스가 B부인의 집에 처음 갔을 때 만난 개 데키우스가 그녀를 보며 한 말이다. 재니스는 4년 째 데키우스를 만나고 있는데 그녀는 데키우스를 너무나 사랑한다.


p.60

재니스는 두 손으로 강아지의 얼굴을 감쌀 때 느껴지는 복슬복슬하고 뻣뻣한 털의 감촉을 사랑한다. 발레리나처럼 발끝으로 사뿐사뿐 걷는 모습도 좋아하고, 배에 실을 묶어서 위에서 잡아당기듯이 통통 튀는 걸음걸이도 너무 사랑스럽다. 데키우스를 데리고 케임브리지의 들판과 초원을 산책할 때가 제일 행복하다. 마음속 도서관에 데키우스의 이야기를 넣기 위해 동물을 위한 코너도 만들까 생각 중이다.


나는 이 소설 <이야기를 지키는 여자>를 읽으며 데키우스가 나올 장면을 기다렸다. 몇 달 전 고양이 루키가 세상을 떠난 후로 책을 읽다 동물이 나오면 심장이 찌르르 했다. 데키우스는 로마 황제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는데 욕쟁이에다 촌철살인의 화법을 구사한다. 재니스와 함께 있을 때 그 상황에 꼭 맞는 표정과 멘트를 날려서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데키우스의 목소리는 재니스만 들을 수 있다. 재니스는 이야기를 수집하고 사람들의 말을 들어주지만 그녀는 정작 마음을 털어놓지 못한다. 자신의 위치가 그러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녀를 독보적인 청소도우미라 칭하지만 남편 마이크는 그녀의 직업을 하찮게 여긴다.


재니스가 어쩔 줄 모르는 상황에 놓이거나 뭐라 말해야 할지 난감할 때 데키우스는 그녀의 심정을 정확하게 꿰뚫어 그녀가 하고 싶은 말을 해주고 시원하게 욕도한다. 데키우스는 그야말로 신스틸러다. 재니스는 데키우스가 곁에 없을 때조차 데키우스의 목소리와 눈빛을 상상한다. 재니스의 귀에만 들리는 데키우스의 목소리는 어쩌면 그녀가 자신에게 하는 말일지도 모른다. 욕을 내뱉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고객 앞에서 울리는 내면의 목소리일 수도 있다.


내 눈을 빤히 바라보던 루키의 눈동자를 기억한다. 데키우스처럼 말을 하지는 못했지만 루키와 나는 눈으로 대화했다. 함께 있는 인간과는 대화가 안 됐는데 루키의 눈동자는 나를 위로해 주었고 내게 제 심장소리를 들려주었다. 소설이 끝날 때까지 데키우스는 살아있었지만 루키는 이제 내 곁에 없다. 충실한 반려인이 아니었던 남편 대신 재니스에게 데키우스가 있어 다행이었고, 버스 운전수 유언의 비중이 많아지면서 데키우스가 나오는 빈도가 줄어들어 아쉬웠다.


그러나 유언과의 관계가 진전되면서 재니스는 자신의 이야기를 밖으로 끄집어낼 수 있게 되었다. 후반부에 이르러서야 '재니스'가 미들 네임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호프라는 이름은 어릴 때 이후로 불리길 원치 않았다. 희망(호프)는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으며 이름대로 살지 못하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재니스가 청소하는 집과 그 사람들의 이야기로 주를 이루던 내용은 유언과 대화를 하게 되면서 점차 재니스의 이야기로 나아갔고, B부인에게 어릴 때의 비밀을 털어놓음으로서 서서히 자존감을 회복하게 된다.


재니스는 어릴 때부터 부모를 대신해 동생을 지켰고, 이른 나이에 남편을 만나 아들을 낳아 키우고 가정 경제를 책임졌다. 일생을 허투루 산 적이 없었다. 나는 누구보다 성실하게 살아온 재니스가 동물 아닌 사람에게서 공감받길 바랐다. 타인의 이야기를 모으면서, 이야기를 갖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완벽한 순간을 찾는 것임을 알게 된 그녀에게 완벽한 순간은 언제였을까. B부인은 재니스가 열두 살 때부터 짐 진 죄책감을 내려놓을 수 있게 해주었고 유언과는 책 이야기를 하면서 마음을 나누기 시작했다. B부인은 재니스가 유언을 만나 행복해졌다는 것을 바로 알아봤다. B부인은 엄마다운 엄마가 없었던 재니스 인생에 엄마 같은 사람이었다.


고진감래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결말이 자칫 식상할 수도 있지만 재니스가 만나는 인물들의 이야기가 현실적이고 연결도 촘촘하기 때문에 독자들은 충분히 공감할수 있다. 커피 한 잔 제 손으로 타먹지 않으며 여러모로 마누라 알차게 부려먹는 마이크 같은 남편들은 한국에도 널렸고, 부모 재산이 당연히 제 것이라 착각하는 자식들도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재니스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훌륭한 재능과 선함, 용기가 숨어 있다는 걸 보여주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런 사람이 바로 재니스다. 그렇기에 성실하게 살아온 주인공에게 통쾌한 일이 벌어지길 기대하며 읽게 되는데 이 소설은 그 욕구를 충족시켜 주었다. 앞으로 재니스의 인생이 반짝반짝거릴 것임을 알기에 흐뭇했다.


이야기의 힘을 믿는 재니스처럼 독자들도 그러하다. 내 이야기가 지금까지는 시시했더라도 이 소설을 읽은 뒤엔 즐겁고 행복한 이야기로 펼쳐지길 바랄 것이다. 어떤 이야기를 만들지는 자기 자신이 정할 것이므로 희망하는 대로 말



**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가제본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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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 가든
한윤섭 지음, 김동성 그림 / 푸른숲주니어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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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과 함께 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싶다. 나와 눈맞춤을 하는 저 생명이 내게 무슨 말을 하는 건지 궁금하다. 대화는 할 수 없지만 인간의 사고 한계 내에서 그들의 말을 상상할 따름이다. 지극히 인간 입장일 수밖에 없다. 동물이 될 수 없기 때문에 역지사지란 어불성설이다. 같은 인간끼리도 상대방의 입장은 커녕 반대쪽 논리엔 귀 막고 사는걸. 그러나 재미있는 동화 속에서는 동물과 이야기 나누며 그들의 입장을 들어볼 수 있다.


오랜만에 나온 한윤섭 작가의 신간 숲속 가든이 그런 책이다. 숲속 가든에는 단편 네 작품이 실렸다. 그 중 <숲속 가든><비단 잉어 준오씨>는 동물이 주인공이다. 나머지 두 편 중 <이야기의 동굴>은 이야기 신이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작가가 말하는 이야기의 재미를 맛볼 수 있다. 한 편의 동화 안에 또 하나의 이야기가 들어있는 액자 형식이다. <잠에서 깨면>은 치매가 소재인데 여자아이가 주인공이다. 할머니가 되었지만 어린 시절의 시간 안에 살고 있는 정아의 이야기가 애잔하다. 가족 중에 치매 환자가 있다면 가슴 먹먹할 것이다.


작년 연말, 사랑하는 내 고양이가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동물이 인간과 말을 하는 책이 손에 잡힌다. <숲속 가든>은 할아버지가 손주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시작하는데, 옛날에 도로에서 병아리를 주워 돼지갈비 식당을 하는 친척에게 가져다주었다는 것이다. 상자 안에 든 생명의 최후가 어떨지 뻔히 아니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살렸다고. 무려 삼 백마리가 넘는 병아리를 돼지갈비 식당에 가져다주었는데 몇 달만에 가보니 어느새 식당은 토종닭 전문점으로 바뀌어 있었다. 무럭무럭 자라나는 닭들을 요리해 팔지 않을 도리가 없었고 주인 아저씨도 닭을 잡는 일이 쉽지는 않다고 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닭장에 들어가니 닭들은 잡히지 않으려고 도망다닌다.


처음 구했던 그 병아리들은 이제 없지만 자신이 이 죽음의 게임을 만든 게 아닌지 자괴감이 들었다. 그리고 닭장 앞에서 만난 갈색 닭과 눈이 마주쳤을 땐 자신을 원망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2년 후 또 비슷한 상황, 언젠가 본 적 있는 그 눈빛을 만났고 닭의 눈에 맺힌 눈물도 보았단다. 여기까지 이야기한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 혹시 그거 아니? 인간에게 가장 많이 목숨을 잃은 동물이 닭이라는 사실을.”


<숲속 가든>은 죽을 게 뻔한 생명을 나 몰라라 할 수 없어 구했지만 그 행동이 더 많은 살육을 유발하게 된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육식을 하는 우리는 늘 이와 유사한 상황에 있다. 눈맞춤하고 반려하는 생명을 먹을 수는 없다. 그러나 인간의 생명 유지를 위해서는 필요하므로 다른 종류의 고기를 먹는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개고기 식용이 혐오스런 행동이 되었지만 모든 이들이 채식주의자가 되지 않는 이유다.


이 동화는 동물의 죽음이 인간의 의도에 따라 다르게 인식되는 모순된 감정을 보여준다. 사고로 인한 병아리들의 죽음은 불쌍하고 인간이 먹기 위해 닭을 죽이는 것은 당연하다. 글의 모순이 김동성 작가의 그림에서는 역전된 느낌으로 극대화된다. 노란색 병아리들과 도로에 떨어진 핏빛이 대비되고 눈물이 살짝 비친 닭의 표정은 보는 독자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게 한다.



 

<비단 잉어 준오씨><숲속 가든>보다 더한 인간의 행동을 보여준다. 인간이 재미를 위해 꾸며놓은 공간, 그곳에 풀어놓은 생명들. 하지만 필요성을 다했을 때는 가차 없이 죽여버린다.이 동화에서도 할아버지가 손주에게 이야기를 들려준다. 할아버지가 물고기 세 마리가 든 어항을 선물로 주면서 비단잉어 준오씨와의 추억에 대해 이야기했다. 잉어가 인간만큼 똑똑하며 말을 한다고. 작가는 인간과 비단잉어의 대화를 통해, 무질서해 보이는 이들이 움직임에 나름의 체계가 있으며 생존을 위해 계획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과학적인 근거를 토대로 한 것인지보다 연못 속 잉어의 움직임을 보며 작가가 그런 상상을 했다는 것이 놀라웠다.




할아버지는 준오씨를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평생 괴로워했을 것 같다. 그래서 비단잉어 이야기를 믿어줄 손주에게 전해주고 세상을 떠났다. 준오씨의 이야기를 들은 손주는 이 세상 하찮은 생명은 없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또 인간이 아닌 다른 생명의 목소리를 들을 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했을 것 같다.


한윤섭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어릴 때 어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좋아했다면서, 이 책이 어린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시작이라고 썼다. 너나없이 짧은 영상물에 중독되어가는 시대에 이런 이야기가 더 많이 읽히면 좋겠다. 그러면 작은 생명들을 함부로 대하지 않고 고운 눈길로 바라보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싶다. 한윤섭 작가님, 다작하셔야겠어요!!

 



**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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