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발의 철학자 - 타고난 철학자 '개'에게 배우는 단순명료한 행복의 의미
마크 롤랜즈 지음, 강수희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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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네이버카페 컬처블룸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동물과 인간의 가장 큰 차이점이 뭐냐고 인간에게 물으면 보통 이렇게 답한다. 인간에게는 이성이 있다고, 그렇기에 생각하고 성찰할 수 있다고. 그런데 인간은(특히 한국인은) 욕을 할 때, ‘를 접두어로 붙이거나 개만도 못한 인간이라고 한다. 이렇듯 우리는 개보다 우월하다고 자부한다. 과연 그러한가. 개와 평생을 살아온 철학자 마크 롤랜즈<네 발의 철학자>에서 아니라고 말한다. 인간은 성찰을 하는 도덕적 존재라고 여기는데 저자는 이에 개의 행동 사례를 조목조목 들어 인간과 비교한다. 유명 철학자들의 철학 이론을 가져와 설명함은 물론이다. 그래서 개를 좋아하는 철학서 애독자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개를 좋아하지 않아도 괜찮다. 전문적인 철학서적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10여 년 전 <철학자와 늑대>마크 롤랜즈를 처음 만났다. 당시 고양이를 키우고 있지 않았음에도 저자와 늑대 브레닌과의 우정을 읽으며 눈물을 쏟았다. 철학책인데도 동물과 인간의 교감에 대한 내용만 기억에 남았으니 저자가 철학적 내용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것일까, 내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일까. 저자의 이름은 내게 각인되었고 동물 관련 책을 찾아 읽는 계기가 되었다. 그런데 <철학자와 달리기>라는 책을 도서관에서 발견하고 읽었으나 완독하지 못했으니 아마 나는 이 철학자의 개가 궁금한 게 아닌가 싶다. 이번에 나온 신간 <네 발의 철학자>의 소개를 보고 저자가 마이애미에 정착하여 살면서 키운 개 이야기가 읽고 싶었다. 이 책을 서평단으로 받아 읽은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요즘 너무 여러 가지 일로 정신이 산란하여, 서평단 책이 아니었다면 서평은커녕 완독도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 이 글을 서평이라 하기에는 좀 부끄럽다.


출판사의 책 소개가 너무나 잘 정리되어 있다. 서평이랍시고 주요 내용을 상술했다면 어림도 없었겠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느낀 바를 몇 가지 쓰려고 한다. <철학자와 늑대>를 읽은 지 오래되었지만 저자와 함께 해 온 (늑대 브레닌 포함) 개의 이름과 특징이 나와서 반가웠다. 그리고 그 개들의 행동을 인간(철학)과 비교하여 아래 개념들(성찰, 공감, 몰입, 행복, 삶의 의미)을 설명해주어 흥미롭게 읽었다



바위를 밀어올리는 시시포스와 마이애미 운하 제방의 이구아나들을 쫓는 개 섀도의 행동을 비교한 것이 가장 놀라웠다. 책의 시작에서 혈기왕성했던 섀도는 후반부에 이르러서는 꽤 점잖은 개가 되었다. 시간의 흐름과 함께 저자의 철학적 사고의 결과물로 이 책이 나오게 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최근에 나는 웃은 적이 거의 없다. 나도 모르게 인상을 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내가 하는 일이 좀처럼 성에 차지 않으니 의미 없는 짓을 하고 있다는 생각까지 들었는데, 정신적 그로기 상태가 아닌가 싶다. 그런데 저자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삶 속 의미의 유무를 심판할 수 없다."


우리가 삶에 대해 너무 과도하게 생각하고 집중하기 때문에 본질적인 삶과는 멀어진다고 설명한다. 인간은 두 개의 삶을 사는데 하나는 실제 삶을 사는 주체로, 다른 하나는 스스로를 관찰하는 객체이다. 우리는 삶의 배우이자 관객인 셈이다. 주체로서는 몰입하지만 객체로서는 평가하기 때문에 삶을 온전히 사랑할 수 없다. 이에 반해 개는 오로지 주체로서의 삶만 살기 때문에 매 순간 몰입한다고


저자가 섀도 전에 길렀던 정반대 성향의 개 휴고의 마지막을 읽으면서 나는 또 울컥했다. 휴고는 자신이 가장 좋아했던 방어 소매를 주인(저자)에게 던졌다. 둘은 그렇게 몇 번을 던져주고 물어오기를 반복했다. 휴고가 죽기 10분 전에 보였던 그 행동이야말로 진정 삶을 사랑하고 몰입하는 것이었다. 휴고는 오롯이 주체로서의 삶을 살았다. 이렇게 저자는 중요한 설명을 하면서 가슴 찡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저자는 순수한 주관주의적 관점에 따르면 삶의 의미는 몰입하는 활동을 하는 것이고, 혼합이론에서는 객관적으로 가치 있는 활동을 할 때만 생겨난다고 했다. 톨스토이조차 객관적 가치라는 개념에 의문을 제기 했다며 <참회록>을 예로 들었다



인간보다 개가 더 삶을 사랑한다며 휴고의 마지막과 이구아나를 쫓는 섀도의 본능으로 연결했다. 개는 본성에서 분출하는 기쁨, 즉 본성을 포착하고 표현하는 기쁨을 느낀다며 이것이 개의 삶 속에 의미가 있다고 설명한다.


견생이 인생보다 더 의미가 있는 이유는 인간의 본성은 불안정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삶 속의 의미, 진정한 행복은 본성에서 분출하는 그곳에 존재한다고, 개를 키우면 알게 된다고. , 나는 개를 키우지 않는데 어쩌나.(개 대신 이 책!) 

그럼 나는 내가 몰입하고 매력을 느끼고 사로잡는 활동을 하고 있는가

관성적인 행동만 하고 있다

가치 있는 활동은 하고 있나

미약하게나마 하고 있다


이렇게 의미를 찾기에 인간 본성은 불안정하다고 했고, 저자는 자신의 본성은 고정된 것이 없으며 부드럽고 유약하기에 불안정하다고 했다.




나의 본성도 불안정하다. 최근 내 마음이 왜 이런지 이 책을 읽으면서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나는 타인과 비교하기 때문에 불안정하다. 그간 숱하게 확인했고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자위하며 살았는데 결국 제자리다. 이런 식의 사고 순환이 거듭되어 왔다. 그래도 다시 찾아야 한다. 내가 가치 있다고 느끼는 활동을 즐겁게 하고 싶다. 행복감을 느끼고 싶다.


더 읽어보기 좋은 책에서 저자는 카뮈와 사르트르가 낸 책은 다 읽어보라고 했다. 나는 사르트르는 좀 힘들겠고, 카뮈와 존 그레이의 책을 읽어볼 것이다. 존 그레이는 책에서도 자주 언급했는데 저자는 그의 작품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 추천하는 <하찮은 인간, 호모라피엔스>는 절판이라서 도서관에서 빌려야겠다. 그의 최근작 중에 <고양이 철학>에 눈길이 멈췄다. 마크 롤랜즈는 개로 철학을 이야기했는데 존 그레이는 고양이로! 냥집사가 그냥 지나칠 수 있나, 사서 보아야겠다. 급 의욕 충전된 기분이다. , 책읽기가 내 본성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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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드힐 스토리에코 2
하서찬 지음, 박선엽 그림 / 웅진주니어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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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은 어린이도 아니고 어른도 아니다. 이쪽도 저쪽도 아닌 청소년기에는 자신의 자리를 찾기 위해 이리저리 표류하는 섬과 같다. 섬은 고정되어 있지만 청소년은 제 뿌리를 내릴 곳을 찾는다. 자신의 자리를 찾느라 흔들릴 수밖에 없는 시기이기 때문에 웅크리고 있기도 하고 이곳저곳을 기웃거리기도 한다. 하서찬 작가의 청소년 소설 <샌드힐>의 주인공, 지훈과 라희는 부모님 따라 중국에 와서 학교를 다니고 있다. 지훈은 아픔이 많은 아이다. 싸우는 게 일상인 부모님 때문에 집 밖으로 나갔다가 형의 교통사고를 목격했고 그 때문에 큰 죄책감을 안고 산다. 엄마는 2년 째 깨어나지 못하는 형의 옆을 지키기 위해 한국에 있고, 아빠는 지훈을 데리고 중국으로 왔다. 물론 지훈은 원하지 않았다. 지훈은 혼자 토기 인형을 만들고 라희는 이른바 일진인 집단에 들어가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지훈과 라희의 부모는 자식의 의사와 상관없이 그들이 세운 계획대로 자식을 조종하려 든다.

 

기댈 곳 하나 없는 두 아이가 서로를 의지하려는 몸부림이 처절하다. 지훈은 어딘가에 소속되고 싶어 하는 라희를 이해할 수 없지만 도와주고 싶어한다. 라희가 지훈에게 함부로 말하지만제 속마음을 털어놓는 이 역시 지훈 뿐이다. 책을 읽으면서 작가가 지훈과 라희를 너무 극한으로 몰아붙이는 게 아닌가 싶어 원망스러웠고 두 아이의 상황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가제본 서평단 자격으로 받아 읽었기 때문에 결말은 알 수가 없다. 부모들이 잘못을 깨닫기를 기대해 본다. 자신들도 어떤 게 정답인지 몰라 갈팡질팡했지만 그래도 어른이니까 아이들에게 먼저 손 내밀어 일으켜 세워주길, 같이 흔들릴지언정 기댈 수 있는 품 넓은 나무가 되어주길.

 

자신이 못 이룬 꿈을 자녀가 이루길 바라는 부모들이 있다. 아이가 원하지 않는 것들을 강제하고 억압하면서 이게 다 너 잘 되라고 하는 거라고 말한다. ‘내가 너한테 투자한 게 얼만데라면서 자식을 투자 상품으로 취급하는 부모도 있다. 진정 부모가 해 주어야 하는 게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이다. 자식을 제 소유물로 여기는 태도를 버리지 못하면 둘 다 불행해지고 그 여파는 대를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런 청소년 소설을 읽을 때마다 매번 같은 생각을 한다. 부모가 꼭 먼저 읽어야 한다고. 아이들의 행동은 다 부모를 보고 배운 것이라고 하지 않는가. 자신은 어떤 부모인지 돌아보고, 내가 아이에게 하는 것들이 과연 자식을 위한 게 맞는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출판사의 책 소개를 보니 제목 샌드힐은 영국의 자유로운 학교 서머힐의 반대 의미라고 한다. 제목이 너무 부정적인 게 아닌가 싶지만, 토기 인형을 만드는 지훈이가 탄탄한 모래 언덕을 만들면 좋겠다. 이 책의 부모들도 아이들이 거뜬히 딛고 넘어갈 수 있는 든든한 언덕이 되길 기대해 본다. 부모란 자식을 믿고 기다려주는 존재여야 하니까

 

 

 

**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가제본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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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23 - 피아니스트 조가람의 클래식 에세이
조가람 지음 / 믹스커피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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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예술 서적을 즐겨 읽는데 음악 관련 책은 신간이 나올 때마다 챙겨 읽으려고 노력한다. 이번에 믹스커피 출판사에서 나온 <Op.23>를 서평단 자격으로 받아 읽었다. 저자 피아니스트 조가람씨는 자신의 전문 분야를 한껏 살려 피아니스트와 연관된 작품 위주로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은 단순한 피아노곡 소개 책이 아니다. 제목의 작품 번호 23번을 필두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책에서 소개하는 예술가들이 온전한 자기다움으로 예술혼을 꽃피웠듯 독자에게도 각자의 Opus(작품)을 써나가길 바란다고. 모든 생은 예술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앞서 밝혔듯 이 책을 피아노 곡을 소개하는 책으로 접근하면 어려움에 부딪힐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저자가 다루는 작품을 상세히 설명하는 부분에서 꽤 전문적인 내용이 나오기 때문이다. 곡 해석부터 각 악장의 연주 기법까지, 전공자이거나 조예가 깊어 어느 정도 전문 지식이 있는 감상자라면 저자의 해석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그러나 감상 초심자라면 이 부분에서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그렇다고 어려우니 읽지 말라는 뜻은 아니다. 연주자들의 삶이나 예술관, 공연에 대한 정보가 많기 때문에 읽으면서 배울 내용이 쏠쏠하다. 초심자가 읽기에 굳이 불편한 점을 꼽자면 QR코드가 없다는 것이다. 유명 곡이나 연주자 위주로 간단하게 소개하는 책들의 경우 대개는 연주 영상 QR코드를 첨부한다. 그러나 이 책에는 없기 때문에 저자가 소개하는 유명 연주는 찾아보아야 한다.


이 책은 세 파트로 구분되어 있는데, PART1에서는 8명의 피아니스트를 소개한다. 나는 이 책에서 디누 리파티알프레드 코르토를 처음 알게 되었다. 평소 음악 서적을 읽고 클래식 음악도 즐겨 듣는 편임에도 모르는 연주자가 있다. 그래서 계속 이런 책을 읽을 수밖에 없고 또한 발견하는 기쁨이 크다. 코르토와 리파티의 관계, 비운의 음악가 리파티의 삶에 대해 알았고 그의 연주도 찾아 들었다. 29살에 백혈병으로 사망한 리파티의 음반이 많지 않은 이유는 그의 생이 너무 짧았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1950년 프랑스 브장송에서의 마지막 콘서트를 유튜브로 들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저자의 설명을 읽고 들으니 더욱 좋았다.


PART2는 저자가 고른 피아노곡들이다. 클래식 음악 중에 피아노곡 작품이 얼마나 많은가. 나도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이 늘 듣던 곡 위주로 듣는다. 그런데 이런 책을 읽으면 또 새로운 곡을 소개받게 된다. 이 파트에서 낯설게 다가온 곡은 생상스의 피아노 협주곡 5번이다. 1악장 도입부를 들어보니 귀에 익었다. 그러면 아주 처음인 곡은 아니라는 건데, 계속 듣다 보니 전혀 새로웠다. 책의 설명을 다시 읽고 연주를 감상했다. 이 곡을 발견한 기쁨을 저자가 드뷔시의 말을 빌려 써놓아서 또 한 번 놀랐다.


소실되지 않았음에도, 작곡가가 널리 알려진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발굴되지 못한 미지의 명곡들은 은하수의 숱한 별처럼 셀 수 없이 많다. 클로드 드뷔시는 이렇게 말했다.

수세기 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인물의 비밀을 우연히 알아냈을 때의 심정보다 더 아름다운 감정이 있을까? 그것이야말로 유일하게 가치 있는 명제다.”


PART3은 피아니스트 조가람의 이야기다. 1,2PART를 지나 세 번째에 도달하니 저자의 목소리가 더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다. 글을 이렇게 잘 쓸 수밖에 없는 이유, 예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어떻게 펼쳐왔는지 이해되었다. 모든 생이 예술이므로 독자만의 삶을 예술로 만들어나가라는 당부가 진실되게 다가왔다.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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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남로의 잔 다르크 서해문집 청소년문학 37
박경희 지음 / 서해문집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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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희 작가의 신작 <금남로의 잔 다르크>가 출간되었다. 그동안 탈북 청소년이나 역사 속 인물을 소재로 한 소설을 써왔는데 이번에는 역사 속 여성 다섯 명을 단편에 담았다. 이 단편집에서 작가는 일제 강점기부터 1970년대까지 근현대사 속 여성들을 조망한다. 우리가 배우는 역사는 대부분 왕조 이야기이거나 남성 이야기다. 세상의 반은 여성임에도 역사 속에서 만날 수 있는 여성은 지극히 적다. 그러나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현장에 여성이 없었을 리가. 생생한 역사 속 장면에서 만나는 여성들의 목소리와 활약에 심장이 뜨거워졌다. 그들의 발자취를 좇다보면 지금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님이 분명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첫 작품은 <사진 신부의 꿈>이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지만 너무나 공부가 하고 싶었던 금례는 미국에 가면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무작정 하와이행을 선택한다. 신랑될 남자의 사진만 보고 감행한 무모한 결정은 그녀 앞에 파란만장한 삶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통영의 꽃, 국희>는 경남 통영기생조합 소속이었던 기생 국희가 3·1 만세 운동에 참여한 이야기다. 3·1운동을 다룰 때 여성은 유관순이다. 물론 만세운동에 참여한 일반인들도 있었지만 기생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한 활동에 참여한 깨알 같은 소수가 있었다는 것을 이렇게 책으로 알게 되어 반갑고 작가에게 고맙다.


<암탉이 울어야>는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변호사 이태영의 이야기다. 부잣집에서 태어났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가세가 기울어 꿈이었던 변호사는 요원해질 뻔 했다. 법과 관련 없는 학과에 진학했지만 결혼 후 남편의 지지에 힘입어 자신의 꿈을 이룬다. 이태영 변호사는 사회적 차별에 맞섰고 죽을 때까지 남녀차별을 없애기 위한 활동을 했다.


<금남로의 잔 다르크>라는 제목을 보고 5.18 광주 이야기일거라고 예상했는데 그보다 20 년 전 이야기였다. 19603.15 부정 선거를 목도한 광주의 여학생 진숙은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어른들과 선생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경희 언니를 위시한 여학생들은 금남로에서 떨쳐 일어났다. ‘민주주의 만세를 외치며 목련꽃잎처럼 산화한 1960년 광주의 여학생들의 이야기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마지막 <들꽃들의 함성>YH무역 농성사건 현장으로 데려간다. 일제강점기 우리나라에 공장이 생기면서부터 오늘날까지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흘린 피와 땀은 숱하다. 강주룡부터 전태일, 김진숙은 물론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노동자들까지. 그들이 요구한 것은 당연한 권리였으나 그것이 이루어지는 길을 길고도 험난했다. 이름 없는 들꽃 같은 수많은 경숙이들이 산업역군이라는 이름으로 착취당하여 이룬 것이 일명 '수출 금자탑'이었다.


이 책은 오늘날 대한민국을 만든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 중에서도 주류로 다루어지지 않는 인물들, 여성 이야기다. 초등학교 고학년 이상이면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부모나 교사가 함께 읽고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 각 단편이 길지 않아 학생들이 읽기에 부담없지만 행간에 숨은 이야기를 꺼내면 풍부한 역사 이야기를 할 수 있다. 각각의 인물에 대해 더 알아보는 활동을 해보기를 추천한다. 그 인물을 자세히 다룬 책을 읽고 만약 나라면 어땠을지 이야기해보거나 그 시대에 해당하는 역사책을 읽고 현장에 가보는 것도 좋다. 이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의미있지만, 추가 활동으로 가지를 뻗어나가면 어떨까. 한 권의 책 씨앗이 가지를 뻗으면 독자만의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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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이에 칼이 있었네 - 세계를 균열하는 스물여섯 권의 책
강창래 지음 / 글항아리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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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이에 칼이 있었네!

무슨 스릴러 소설 제목 같지 않은가. 그 칼을 어느 한 쪽이 먼저 집어 들어 상대를 찌를 것만 같다. 하지만 이 책은 소설이 아니라 에세이다.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 <위반하는 글쓰기>, <책의 정신>등을 쓴 강창래 작가의 신작이다. 소설을 기대한 독자라면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책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반가워할 것이다. 목차를 훑어보면 읽은 책보다 읽어보지 못한 책이 더 많을 터인데 누구나 제목 한번쯤은 들어본 책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부제처럼 세계를 균열하는 스물여섯 권이라는 말이 직관적으로 다가오지 않을 사람이 더 많을 지도 모르겠다. 스물여섯권이 세계를 균열한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고 싶다면 일단 읽어야 한다.


작가는 한 권의 책을 서너 번은 읽는다고 했다. 물론 훨씬 더 여러 번 읽은 책도 있단다. 이 책을 한 번 읽고 글을 쓰려니 부끄럽기 그지없다. 그러니 감히 서평이라는 말은 붙일 수도 없다. 소개한 책들을 어떻게 읽으면 좋을지 알려주는 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글을 쓴다. 제목 우리 사이에 칼이 있었네부터 시작해야겠다. 작가 보르헤스가 마지막 부인이었던 마리아에게 자신의 묘비명으로 써달라고 한 문장이라고 한다. 그러나 보르헤스의 묘비에 저렇게 쓰여 있지 않으며 그 말을 했다는 것도 확인이 안 된단다.


이 문장으로 시작하는 소설이 한강의 <희랍어 시간>이다. 읽은 지 오래되어 그 문장이 나왔는지조차 까마득해서 <희랍어 시간>을 꺼내보았다. 앞부분을 확인하고 몇 장 더 넘겨보았는데 아, 처음 보는 글 같아서 덮어두고 <우리 사이에 칼이 있었네>로 다시 돌아왔다. 소설의 내용이 거의 기억나지 않으므로 강창래 작가가 설명해주는 내용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p.149

인간과 인간 사이에 놓인 서슬 퍼런 칼을 넘어서는 사랑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보여주는 이야기다. 그 의미를 확장해서 작가와 독자 사이에 놓은 칼을 넘어서는 방법에 대한 것으로 읽어도 좋을 것이다. 온 감각을 일깨우며 텍스트에 빠져들 때 진정한 사랑을 느낄 수 있으리라. 소설에는 감각 경험 없이 언어만으로는 해석되지 않는, 시적인 언어로 표현된 장면이 많이 나온다. 직접 경험해봐야 한다.


다시 읽어봐야겠다. 아니, 처음 읽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희랍어 시간>에서 뿐 아니라 강창래 작가는 다른 책들에서도 언어에 대해 계속 말한다. <구술문화와 문자문화>에서는 텍스트의 해석에 대해, <새로 태어난 여성>에서는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가 남근중심주의이며, <2의 성>에서 강 작가는 이 책을 읽고 나서야 혼란스러웠던 여성의 행동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소설은 상상력에서 뽑아내긴 하지만 작가의 삶이 투영되지 않을 수밖에 없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다. 작가는 카프카의 <소송>을 소개하면서 모든 작품은 작가의 일대기다라고 했다. 작가의 생을 이해하면 작품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강창래 작가는 이 파트에서 독자가 직접 읽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작품 안팎의의 맥락을 조사한다고 했다. 이런 순서다. <소송>을 네 번 읽는 과정에서 생긴 궁금증을 추적 조사한 다음 언급할 만 한 가치가 있는 내용을 고른다. 이 때 작가의 전기적 사실을 더 조사하여 카프카의 삶을 상상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부조리에 담긴 비유와 상징도 이해가 되었다고.


물론 일반 독자가 이렇게 읽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다보면 왠지 나도 좋아하는 작가의 책은 저렇게 여러 번 읽고 작가의 삶의 서사도 조사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다. 이 책의 단초는 학창시절 고도를 기다리며라는 카페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 때 시작한 인문학 공부가 이 책으로까지 이어졌으니 어떤 글이든 행간에는 작가의 일대기가 담겨있다는 말을 직접 증명하고 있다.


또 말도 안 되지만 비교해보았다. 내가 이렇게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이 미래의 언젠가 소환될 때가 올까? 이런 활동들이 무용에 그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 이건 나도 작가가 될 수 있을 거란 착각 혹은 부작용? 해석을 잘못한 오독인가.


이 책에서 소개하는 책들 중 도전해보고 싶은 책은 <우연과 필연>이다. 내가 생물학을 좋아하기도 하거니와 과학 비문학을 이렇게 간단하게 핵심만 추려 써보고 싶기 때문이다. 이 또한 부족한 실력으로 과도한 욕심을 부리는 것이다. 그러나 도전해보고 싶다. 강창래 작가처럼 영문판과 한국어판을 비교하는 그런 일은 못하지만...

 

 

 

**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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