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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 가든
한윤섭 지음, 김동성 그림 / 푸른숲주니어 / 2025년 3월
평점 :

반려동물과 함께 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싶다. 나와 눈맞춤을 하는 저 생명이 내게 무슨 말을 하는 건지 궁금하다. 대화는 할 수 없지만 인간의 사고 한계 내에서 그들의 말을 상상할 따름이다. 지극히 인간 입장일 수밖에 없다. 동물이 될 수 없기 때문에 역지사지란 어불성설이다. 같은 인간끼리도 상대방의 입장은 커녕 반대쪽 논리엔 귀 막고 사는걸. 그러나 재미있는 동화 속에서는 동물과 이야기 나누며 그들의 입장을 들어볼 수 있다.
오랜만에 나온 한윤섭 작가의 신간 《숲속 가든》이 그런 책이다. 《숲속 가든》에는 단편 네 작품이 실렸다. 그 중 <숲속 가든>과 <비단 잉어 준오씨>는 동물이 주인공이다. 나머지 두 편 중 <이야기의 동굴>은 이야기 신이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작가가 말하는 이야기의 재미를 맛볼 수 있다. 한 편의 동화 안에 또 하나의 이야기가 들어있는 액자 형식이다. <잠에서 깨면>은 치매가 소재인데 여자아이가 주인공이다. 할머니가 되었지만 어린 시절의 시간 안에 살고 있는 정아의 이야기가 애잔하다. 가족 중에 치매 환자가 있다면 가슴 먹먹할 것이다.
작년 연말, 사랑하는 내 고양이가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동물이 인간과 말을 하는 책이 손에 잡힌다. <숲속 가든>은 할아버지가 손주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시작하는데, 옛날에 도로에서 병아리를 주워 돼지갈비 식당을 하는 친척에게 가져다주었다는 것이다. 상자 안에 든 생명의 최후가 어떨지 뻔히 아니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살렸다고. 무려 삼 백마리가 넘는 병아리를 돼지갈비 식당에 가져다주었는데 몇 달만에 가보니 어느새 식당은 토종닭 전문점으로 바뀌어 있었다. 무럭무럭 자라나는 닭들을 요리해 팔지 않을 도리가 없었고 주인 아저씨도 닭을 잡는 일이 쉽지는 않다고 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닭장에 들어가니 닭들은 잡히지 않으려고 도망다닌다.
처음 구했던 그 병아리들은 이제 없지만 자신이 이 죽음의 게임을 만든 게 아닌지 자괴감이 들었다. 그리고 닭장 앞에서 만난 갈색 닭과 눈이 마주쳤을 땐 자신을 원망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2년 후 또 비슷한 상황, 언젠가 본 적 있는 그 눈빛을 만났고 닭의 눈에 맺힌 눈물도 보았단다. 여기까지 이야기한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 혹시 그거 아니? 인간에게 가장 많이 목숨을 잃은 동물이 닭이라는 사실을.”
<숲속 가든>은 죽을 게 뻔한 생명을 나 몰라라 할 수 없어 구했지만 그 행동이 더 많은 살육을 유발하게 된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육식을 하는 우리는 늘 이와 유사한 상황에 있다. 눈맞춤하고 반려하는 생명을 먹을 수는 없다. 그러나 인간의 생명 유지를 위해서는 필요하므로 다른 종류의 고기를 먹는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개고기 식용이 혐오스런 행동이 되었지만 모든 이들이 채식주의자가 되지 않는 이유다.
이 동화는 동물의 죽음이 인간의 의도에 따라 다르게 인식되는 모순된 감정을 보여준다. 사고로 인한 병아리들의 죽음은 불쌍하고 인간이 먹기 위해 닭을 죽이는 것은 당연하다. 글의 모순이 김동성 작가의 그림에서는 역전된 느낌으로 극대화된다. 노란색 병아리들과 도로에 떨어진 핏빛이 대비되고 눈물이 살짝 비친 닭의 표정은 보는 독자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게 한다.


<비단 잉어 준오씨>는 <숲속 가든>보다 더한 인간의 행동을 보여준다. 인간이 재미를 위해 꾸며놓은 공간, 그곳에 풀어놓은 생명들. 하지만 필요성을 다했을 때는 가차 없이 죽여버린다.이 동화에서도 할아버지가 손주에게 이야기를 들려준다. 할아버지가 물고기 세 마리가 든 어항을 선물로 주면서 비단잉어 ‘준오씨’와의 추억에 대해 이야기했다. 잉어가 인간만큼 똑똑하며 말을 한다고. 작가는 인간과 비단잉어의 대화를 통해, 무질서해 보이는 이들이 움직임에 나름의 체계가 있으며 생존을 위해 계획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과학적인 근거를 토대로 한 것인지보다 연못 속 잉어의 움직임을 보며 작가가 그런 상상을 했다는 것이 놀라웠다.


할아버지는 준오씨를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평생 괴로워했을 것 같다. 그래서 비단잉어 이야기를 믿어줄 손주에게 전해주고 세상을 떠났다. 준오씨의 이야기를 들은 손주는 이 세상 하찮은 생명은 없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또 인간이 아닌 다른 생명의 목소리를 들을 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했을 것 같다.
한윤섭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어릴 때 어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좋아했다면서, 이 책이 어린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시작이라고 썼다. 너나없이 짧은 영상물에 중독되어가는 시대에 이런 이야기가 더 많이 읽히면 좋겠다. 그러면 작은 생명들을 함부로 대하지 않고 고운 눈길로 바라보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싶다. 한윤섭 작가님, 다작하셔야겠어요!!
**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