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네 발의 철학자 - 타고난 철학자 '개'에게 배우는 단순명료한 행복의 의미
마크 롤랜즈 지음, 강수희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25년 5월
평점 :

**이 리뷰는 네이버카페 컬처블룸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동물과 인간의 가장 큰 차이점이 뭐냐고 인간에게 물으면 보통 이렇게 답한다. 인간에게는 이성이 있다고, 그렇기에 생각하고 성찰할 수 있다고. 그런데 인간은(특히 한국인은) 욕을 할 때, ‘개’를 접두어로 붙이거나 ‘개만도 못한 인간’이라고 한다. 이렇듯 우리는 개보다 우월하다고 자부한다. 과연 그러한가. 개와 평생을 살아온 철학자 ‘마크 롤랜즈’는 <네 발의 철학자>에서 아니라고 말한다. 인간은 성찰을 하는 도덕적 존재라고 여기는데 저자는 이에 개의 행동 사례를 조목조목 들어 인간과 비교한다. 유명 철학자들의 철학 이론을 가져와 설명함은 물론이다. 그래서 개를 좋아하는 철학서 애독자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개를 좋아하지 않아도 괜찮다. 전문적인 철학서적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10여 년 전 <철학자와 늑대>로 ‘마크 롤랜즈’를 처음 만났다. 당시 고양이를 키우고 있지 않았음에도 저자와 늑대 브레닌과의 우정을 읽으며 눈물을 쏟았다. 철학책인데도 동물과 인간의 교감에 대한 내용만 기억에 남았으니 저자가 철학적 내용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것일까, 내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일까. 저자의 이름은 내게 각인되었고 동물 관련 책을 찾아 읽는 계기가 되었다. 그런데 <철학자와 달리기>라는 책을 도서관에서 발견하고 읽었으나 완독하지 못했으니 아마 나는 이 철학자의 개가 궁금한 게 아닌가 싶다. 이번에 나온 신간 <네 발의 철학자>의 소개를 보고 저자가 마이애미에 정착하여 살면서 키운 개 이야기가 읽고 싶었다. 이 책을 서평단으로 받아 읽은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요즘 너무 여러 가지 일로 정신이 산란하여, 서평단 책이 아니었다면 서평은커녕 완독도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 이 글을 서평이라 하기에는 좀 부끄럽다.
출판사의 책 소개가 너무나 잘 정리되어 있다. 서평이랍시고 주요 내용을 상술했다면 어림도 없었겠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느낀 바를 몇 가지 쓰려고 한다. <철학자와 늑대>를 읽은 지 오래되었지만 저자와 함께 해 온 (늑대 브레닌 포함) 개의 이름과 특징이 나와서 반가웠다. 그리고 그 개들의 행동을 인간(철학)과 비교하여 아래 개념들(성찰, 공감, 몰입, 행복, 삶의 의미)을 설명해주어 흥미롭게 읽었다.

바위를 밀어올리는 시시포스와 마이애미 운하 제방의 이구아나들을 쫓는 개 섀도의 행동을 비교한 것이 가장 놀라웠다. 책의 시작에서 혈기왕성했던 섀도는 후반부에 이르러서는 꽤 점잖은 개가 되었다. 시간의 흐름과 함께 저자의 철학적 사고의 결과물로 이 책이 나오게 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최근에 나는 웃은 적이 거의 없다. 나도 모르게 인상을 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내가 하는 일이 좀처럼 성에 차지 않으니 의미 없는 짓을 하고 있다는 생각까지 들었는데, 정신적 그로기 상태가 아닌가 싶다. 그런데 저자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삶 속 의미의 유무를 심판할 수 없다."
우리가 삶에 대해 너무 과도하게 생각하고 집중하기 때문에 본질적인 삶과는 멀어진다고 설명한다. 인간은 두 개의 삶을 사는데 하나는 실제 삶을 사는 주체로, 다른 하나는 스스로를 관찰하는 객체이다. 우리는 삶의 배우이자 관객인 셈이다. 주체로서는 몰입하지만 객체로서는 평가하기 때문에 삶을 온전히 사랑할 수 없다. 이에 반해 개는 오로지 주체로서의 삶만 살기 때문에 매 순간 몰입한다고.
저자가 섀도 전에 길렀던 정반대 성향의 개 휴고의 마지막을 읽으면서 나는 또 울컥했다. 휴고는 자신이 가장 좋아했던 방어 소매를 주인(저자)에게 던졌다. 둘은 그렇게 몇 번을 던져주고 물어오기를 반복했다. 휴고가 죽기 10분 전에 보였던 그 행동이야말로 진정 삶을 사랑하고 몰입하는 것이었다. 휴고는 오롯이 주체로서의 삶을 살았다. 이렇게 저자는 중요한 설명을 하면서 가슴 찡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저자는 순수한 주관주의적 관점에 따르면 삶의 의미는 몰입하는 활동을 하는 것이고, 혼합이론에서는 객관적으로 가치 있는 활동을 할 때만 생겨난다고 했다. 톨스토이조차 객관적 가치라는 개념에 의문을 제기 했다며 <참회록>을 예로 들었다.

인간보다 개가 더 삶을 사랑한다며 휴고의 마지막과 이구아나를 쫓는 섀도의 본능으로 연결했다. 개는 본성에서 분출하는 기쁨, 즉 본성을 포착하고 표현하는 기쁨을 느낀다며 이것이 개의 삶 속에 의미가 있다고 설명한다.
견생이 인생보다 더 의미가 있는 이유는 인간의 본성은 불안정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삶 속의 의미, 진정한 행복은 본성에서 분출하는 그곳에 존재한다고, 개를 키우면 알게 된다고. 아, 나는 개를 키우지 않는데 어쩌나.(개 대신 이 책!)
그럼 나는 내가 몰입하고 매력을 느끼고 사로잡는 활동을 하고 있는가?
관성적인 행동만 하고 있다.
가치 있는 활동은 하고 있나?
미약하게나마 하고 있다.
이렇게 의미를 찾기에 인간 본성은 불안정하다고 했고, 저자는 자신의 본성은 고정된 것이 없으며 부드럽고 유약하기에 불안정하다고 했다.

나의 본성도 불안정하다. 최근 내 마음이 왜 이런지 이 책을 읽으면서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나는 타인과 비교하기 때문에 불안정하다. 그간 숱하게 확인했고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자위하며 살았는데 결국 제자리다. 이런 식의 사고 순환이 거듭되어 왔다. 그래도 다시 찾아야 한다. 내가 가치 있다고 느끼는 활동을 즐겁게 하고 싶다. 행복감을 느끼고 싶다.
더 읽어보기 좋은 책에서 저자는 카뮈와 사르트르가 낸 책은 다 읽어보라고 했다. 나는 사르트르는 좀 힘들겠고, 카뮈와 존 그레이의 책을 읽어볼 것이다. 존 그레이는 책에서도 자주 언급했는데 저자는 그의 작품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 추천하는 <하찮은 인간, 호모라피엔스>는 절판이라서 도서관에서 빌려야겠다. 그의 최근작 중에 <고양이 철학>에 눈길이 멈췄다. 마크 롤랜즈는 개로 철학을 이야기했는데 존 그레이는 고양이로! 냥집사가 그냥 지나칠 수 있나, 사서 보아야겠다. 급 의욕 충전된 기분이다. 아, 책읽기가 내 본성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