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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
김중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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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장에 꽂힌 책들의 저자이름을 눈으로 훑어가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건... 공동묘지잖아. 실로 그랬다. 책장을 채우고 있는 이름들은 적게는 수십 년 전, 많게는 수 천 년 전 죽은 이들의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나무-숲 관계의 반대버전이었다. 나무 한 그루, 작가 개개인의 개별적인 작품과 약력을 봤을 때 이들은 그저 비범한 재능과 비상한 성실성으로 대단한 성취를 거둔, ‘성공한 사람들 중 한 명이었지만 그들이 모여 숲을 이루고 있는 풍경을 보니 이들을 한데 묶는 어떤 근원적인 에네르기의 존재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몇 천 년 전부터 내려져온 신화에서부터 가장 전위적인 언어로 쓰인 현대시에 이르기까지 색깔(인종), 모양(외모), 장르도 제각각이었지만 나무로 만들어졌다는 물질적 근친성 때문인지 텍스트라는 기표적 통일성 때문인지 그들이 한 가족처럼 느껴졌다. 이들을 함께 흐르게 하는 뿌리의 정체는 무엇인가. ‘문학의 신같은 낭만적, 추상적 표현보다 좀 더 실재적, 구체적인 표현을 찾고 싶었다. 입을 꾹 다물고 있는 책의 등뼈를 응시해본다..세상의 모든 것을 향해 줄기를 뻗으며 곧게 서 있는 뿌리의 뿌리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지금의 나로선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고독


고독은 내면 깊은 곳에서 진정한 자신을 만나게 하고(릴케),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스스로를 갱신하며(고독의 발명-폴 오스터), 그렇게 실존적 고독을 통해 고독의 실존자가 된 이들은 고독이란 근본감정 속에서 연대한다(고독의 연대-은희경). 모든 문학이 고독을 다루지 않는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모든 문학이 고독의 자궁에서 나오지 않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최근 만난 책들 중에 가장 섹시한 뒤태의 소유자였던 김중혁 작가의 <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 이동진 영화평론가와 함께 진행하는 팟캐스트 빨간책방을 통해 간간이 들을 수 있었던 그 소설이 소설’, 정확히 말하면 이런소설이란 걸 알게 되고 약간의 고충에 시달리게 되었다. 어떻게 리뷰를 쓸 것인가. 그의 스텝은 경쾌하다. 경쾌한 상상력과 유머로 무장해 좀 더 느슨한 세상”(빨간책방에서 언급)을 지향하는 그의 소설은 신형철 평론가의 느낌의 공동체에서 적었듯 37.5도의 미지근한 열정이 느껴진다. 독자를 주눅 들게 하면서 동시에 작가를 경탄하게 만드는 압도적인 문장력이나 인간과 세상에 대한 대가적 통찰은 그의 소설의 무기가 아니다. 김천 출신 문인 3인방 김연수, 김중혁, 문태준을 놓고 각각 도서관형, 박물관형, 마을회관형이라 표현한 것처럼 김중혁의 세계는 박물관, 세상에 잡다한 존재들이 한데 모여 그들만의 독특한 온도와 분위기, 질감을 만들어내는데 그 느낌이 꼭 밴드음악과 닮았다. 보컬과 기타, 베이스, 드럼 혹은 트럼펫, 키보드 같은 악기들이 처음엔 좀처럼 섞이지 않을 것 같더니 투덕거리며 시간을 함께 견뎌가면서 조화를 이루는 모습이 연상된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내게 볼매. 뇌쇄적이고 치명적인 매력으로 어필하기보다 보면 볼수록 사랑스러운 매력으로 천천히 마음에 스미는 정든 친구 같은.

 

 실제로 '모든 게 음악' 음악에세이를 낸 작가이기에 밴드 이야기를 조금 꺼내봤다. 그의 부드러운 칼날은 무엇을 겨냥하고 있는가. 멀어져가는 휘파람 소리처럼 은은하게 유혹해오는 책의 뒤태를 살펴보자.

 

제 귀는 아주 깊은 우물입니다

당신의 비밀을 말해주세요

 

나를 둘러싼, 내가 모르는 세계로 향하는 비밀의 문

여기가 구동치 사무실이 맞습니까?”

 

당신은 그토록 무미건조한 월요일에 나를 찾아왔군요. 이 세상의 덧없음을 아는 사람이여, 나에게 비밀을 말해주세요. 비밀의 그림자는 국경을 넘고 바다를 건넙니다. 우리의 사랑만이 덧없는 세상을 이겨낼 수 있는 힘, 나에게 비밀을 말해주세요. 비밀의 그림자는 월요일처럼 길어요.

 

 뒤표지의 그림이나 전체적인 느낌의 김영하의 살인자의 기억법과 제법 닮았다. 비밀의 은유로 그림자가 자주 쓰이다 보니 그런 것 같다. 빛을 받으면 내 안에 숨어 있던 어둠이 내장처럼 길게 늘어진다. 인간은 태생적으로 비밀을 품고 있는 존재다. 인간에 내재한 어둠 속에 고이는 비밀은 인간이 스스로를 이성(빛의 언어)으로 정복할 수 없게 만든다. 근원적 한계이자 일종의 안전장치라 볼 수 있다. 존재 내 이질성, 내가 아닌 나, 내가 아니라고 할 수 없는 나, ‘라는 확고한 주체에 포섭되기를 거부하는 작은 나()와의 끊임없는 불화를 통해 페소아나 이상 같은 시인들은 헤테로의 언어를 발명해냈다. 비밀이 그 자체로 문학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좋은 문학은 비밀의 비밀을 꿰뚫고 있다. 비밀은 인간의 불완전성을 가장 잘 나타내는 형식 중 하나이다. 인식론의 문제나 물 자체를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인간은 뭔가를 아는 존재라기보다 아무 것도 모르는 존재에 가깝다. 광활한 우주에서 코딱지보다 한참 작은 지구에 살지만 우리는 당장 옆집에 사는 이의 이름조차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사실진위를 가려낼 수 있는 정보의 영역은 물론이요, 진위를 가려내기 어려운 진실의 영역이 천 길 물속보다 알기 힘들다는 사람들 마음속에, 그러니까 70억 이상의 마음속에 있기 때문이다. 우주의 대부분을 이루는 것이 단지 중력의 존재로 말미암아 추측할 수 있는 암흑물질이라고 하니 그런 점에서 볼 때 어쨌든 우리는 우주의 섭리에 잘 따르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한 가지 재밌는 점은 비슷한 문장을 다른 탐정 이야기에서 들은 적이 있다. 명탐정 코난 극장판 10기 탐정들의 진혼가에서 한 남자는 비밀은 남녀의 사랑을 돈독하게 해준다고 했다. 자신의 일부지만 그 일부로 인해 전부인 자신이 파괴될 수 있는 비밀을 누군가와 공유한다는 것은 그 누군가에게 자신의 운명을 맡긴다는 뜻이 될 것이다. 관계는 상대방과 자신만이 알고 있는 비밀을 많아지면서 깊어지기도 한다. 재밌는 것은 어느 한계선을 넘어가면 비밀과 관계의 역학 그래프가 변곡점을 찍을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공범이 아닌 이상 상대방의 살인사실을 알게 된 두 사람의 신뢰가 굳건히 유지되리라 생각하기 힘들다. 비밀에 의한 신뢰도 형성에도 브레이크 포인트, ‘알면 다치는판도라의 상자가 있는 것이다.

 

 구동치는 사람들의 비밀, 다른 사람에게 보이고 싶지 않는 자신의 모든 기록들을 딜리팅하는 직업을 가진 전직 경찰 겸 사립탐정 겸 딜리터(deleter)이다. 줄거리를 자세하게 적어 독자들의 서사를 따라가는 재미를 빼앗고 싶지 않다(고 핑계를 댄다). 비밀을 둘러싼 다양한 인간들의 각축전을 작가는 노련한 솜씨로 능수능란하게 그려낸다. 그의 소설에 잘 등장하지 않는다는 섹스묘사도 비록 영화 속 장면이긴 하지만 있다(그것도 떼로).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면서 타는 남녀 주인공의 밀당이나 조금은 엉뚱한 매력을 어필하는 조연 캐릭터의 존재가 그의 전작 장편 좀비들을 연상시켰다. 당신의 그림자의 월요일의 후배탐정과 좀비들의 뚱보가 오버랩됐다. 어떤 매너리즘에 대해 지적하려는 게 아니라 김중혁 세계의 고유성, 그만의 느낌에 대해 언급하고 싶었다. 김중혁 월드의 입구에는 그림자가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을 것이다. 딱 귀여운 매력을 어필할 수 있을 정도의 수상한 포즈로.

 

 나의 기억은 나만의 것이 아닐 수 있다. 정소윤이 그랬듯 나의 기억은 우리의 기억일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것은 사회적 존재로서 인간의 숙명이다. 기억하고 싶지 않지만 기억해야 하는 기억, 우물을 들여다보는 시인의 자세에서(이영광 우물) 윤리를 논할 수 있는 건 이 때문일 것이다. 지식은 체계화된 기억이다. 90%이상 소멸되는 죽음의 늪을 지나 살아남은 기억이 장기기억이 되고, 그 기억이 말로, 글로, 음악으로, 영상으로 다음 세대에 전해져 인간은 현생에서 수많은 영혼이 농축된 오래된 현재를 살고 있다.

 하지만 망각의 문제 역시 논하지 않을 수 없다. 공공선을 침해하지도, ‘일리아드‘let it be’처럼 기억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면 망각될 자유를 누릴 수 있게 해줘야 하지 않을까. 작가는 자신의 기록을 지워 저승에서까지 이생에서 좋은 인간으로 기억되고 싶은 욕망을 이기적이라 지적했지만 팟캐스트 방송을 통해 반영구적으로 보존돼 자연스럽게 망각, 정신적 차원에서의 죽음을 맞지 못하고 이승을 떠도는 기억에 대한 문제의식을 피력한 바 있다. 이는 마지막 딜리팅의 대상인 사진을 피오르드 바다에 던짐으로써 망각의 세계를 지배하려는 인간에게 우의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을 기록하면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있을까? 기억은 하드디스크에 파일이 저장되듯 기계적으로 이뤄지는 작업이 아니라 이성의 영역의 정보의 감각과 감성의 영역이 뒤섞인 총체적 감각에 의해 이뤄진다. 단순암기라 생각되는 작업의 경우에도 우리는 텍스트를 읽어 청각적 자료로 변환하거나 머릿속에 시각적 이미지를 떠올리는 등 감각과 감성을 이용한다. 또한 기억할 수 있는 양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개인의 지향성에 의해 선택된기억만이 생을 이어갈 수 있다. 물론 무의식의 영역으로 들어가면 얘기가 또 달라지지만 인간이 기억과 망각의 세계를 오가며 자신의 빛과 그림자를 재단하는 존재라는 점은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지구만 지키지 말고 그림자도 지켜야 할 것이다. 이승에 버려진 그림자가 발이 바닥에 닿지 않아 물에서 허우적대는 이처럼 길을 잃지 않도록 기억(망각)의 책임이 있는 자들은 고민해야 할 것이다. 생사를 결정하는 천계의 심판관처럼 무엇을 기억하고(잊고) 살 것인지, 무엇으로 기억되고(잊히고) 죽을 것인지.

 

p.s 이제야 읽는 김애란 작가의 <달려라, 아비> 중 종이물고기에서 공동묘지에 대한 비슷한 생각을 발견했다. 기억이여, 당신은 언제나 태어날 것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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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푼짜리 오페라 - 베르톨트 브레히트 희곡선집 열린책들 세계문학 200
베르톨트 브레히트 지음, 이은희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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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전까지 브레히트는 읽어야 하는 작가였다. 서사극의 대가, 망명생활을 하면서 조국 나치를 진실한 목소리로 비판하는 데 거리낌이 없었던 사람, 탁월한 이론가이면서 동시에 민중의 목소리를 작품에 담아낸 극작가이자 시인. 그의 이름이 가장 강하게 각인된 에피소드는 아마도 브레히트 - 아도르노 - 첼란의 '서정시' 쓰기에 대한 코멘트였던 것 같다. 

 

브레히트의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Schlechte Zeit Fur Lyrik  

 

분량이 짧으니 전문을 한 번 읽어보도록 하자. 

 

 나도 안다, 행복한 자만이

 사랑받고 있음을 그의 음성은 

 듣기 좋고, 그의 얼굴은 잘 생겼다. 

 

 마당방의 구부러진 나무가

 토질 나쁜 땅을 가리키고 있다. 그러나

 지나가는 사람들은 으레 나무를 

 못 생겼다 욕한다. 

 

 해협의 산뜻한 보우트와 즐거운 돛단배들이 

 내게는 보이지 않는다. 내게는 무엇보다 

 어부들의 찢어진 어망이 눈에 띌 뿐이다. 

 왜 나는 자꾸 

 40대의 소작인 처가 허리를 꼬부리고 걸어가는 것만 이야기하는가?

 처녀들의 젖가슴은

 예나 이제나 따스한데. 

 

 나의 시에 운을 맞춘다면 그것은 

 내게 거의 오만처럼 생각된다. 

 엉터리 화가에 대한 경악이 

 나의 가슴 속에서 다투고 있다. 

 그러나 바로 두번쨰 것이 

 나로 하여금 시를 쓰게 한다. 

(1939년)


아도르노는 아우슈비츠 이후 서정시는 없다고 선언했지만 전후 시인 중 가장 중요한 시인 중 한 명인 파울 첼란은 아도르노의 부정을 그의 시로써 부정했다. 


 브레히트의 시집 '살아남은 자의 슬픔'은 프리모 레비의 '살아남은 자의 아픔'과 함께 기억되었고, 시인 브레히트가 기억되는 동안 극작가 브레히트는 잠시 잊혔다. 


 극작가 브레히트를 불러낸 것은 다름 아닌 소리꾼 이자람이었다. 이자람이란 걸출한 아티스트를 알게 되고 그녀의 대표작 중 하나인 억척가의 원작이 브레히트의 '억척 어멈과 그 자식들'이란 사실을 알게 되면서 브레히트는 읽어야 하는 작가에서 읽고 싶은 작가가 되었다. 

 

 열린책들에서 출간된 서푼짜리 오페라는 서푼짜리 오페라와 억척 어멈과 그 자식들 두 작품을 수록된 희곡집이었다. 분량이 조금 아쉬웠지만 두 작품에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기조, '브레히트적'이라 말할 수 있는 예술관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았다. 

 

 서사극이란 장르, 그리고 이 장르를 개척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브레히트의 예술관과 시대적, 역사적 상황은 한나 아렌트의 유명한 말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사유하지 않는 것은 악이다. 이성의 시대에서 반합리주의를 내세우는 파시즘, 나치즘으로 서구가 몰락하기까지,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 - cogito ergo sum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에서 예루살렘에서 열린 재판에서 아이히만의 반성하지 않는, 절망하지 않는 무사유의 악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그 몰락의 시대를 살아가면서 예술가로서, 리얼리스트로서 브레히트는 연극무대를 가상의 공간이 아닌 현실로 만들 필요가 있었다. 

 

 

 일반 사람들보다 잘난 사람들이 나와 몰락하는 과정을 통해 관객들에게 카타르시스를 불러일으키는 비극이 아닌 소위 말하는 밑바닥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 고상하고 고매한 정신적 갈등이 아닌 저열하고 이기적이고 경우에 따라 거리낌없이 비겁해지는 욕망이 서로 물고 늘어지는 이야기, 영웅이나 신화 속 인물이 아닌 내 주변의, 우리네 이야기. 

 

 작품을 낭독하면서 나름대로 이미지를 머릿속에 그려봤는데 억척 어멈이 끄는 수레는 영화 '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극장'에 등장한 수레를 떠올렸다. 온갖 잡다한 물건을 싣고 다니는 '없는 게 없는' 수레, 그래서 정말 있어야 할 것은 없는 수레. 억척 어멈은 수레가 있었기 때문에 집을 가지지 못했다. 아니 사실은 이 문장은 이렇게 고쳐야 더 적절할 것이다. 집을 가질 수 없었기 때문에 수레를 끌게 된 것이라고,  하지만 그렇게 소라게처럼 수레와 평생을 동고동락하며 떠도는 삶을 선택했기 때문에 종국에 가서 억척 어멈은 전쟁을 환영하는, 우리가 평소에 알고 있는 '전쟁광'의 이미지에서 한참 벗어난 특이한 전쟁광의 모습을 하게 된다. 그녀의 곁에는 전쟁이 끝났다고 말해주는 친구도 없었고, 남자들에게 해코지당하지 않으려면 차라리 얼굴에 상처가 나는 게 낫다고 생각할 정도로 연약(하다고 생각되는)한 벙어리 딸과 아들들만 있었을 뿐이다. 

 

 최근에 개봉한 스티브 맥퀸 감독의 '노예 12년'의 대사를 조금 바꿔보면 그녀는 생존해야 했다(have to survive). 그리스에서 말하는 의미 있는 비오스bios의 삶이 아닌 생명 그 자체로의 조에zoe, 의미 있는 삶live이 아닌 심장이 뛰고 피가 도는 생존survive, 당장 내일 눈을 뜰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삶을 말하는 건 그녀에게 사치였을 지도 모른다. 그야말로 억척스럽게 어떻게든 살아남는 것이 지상과제가 되는 삶도 있었고, 이 예외적 삶의 방식은 전쟁이란 바이러스가 퍼지는 곧바로 규칙이 될 수 있는 것이었다. 죽음이 일상이 돼서 삶이 기형이 되는, 죽음이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 돼서 죽은 자들을 대신해 살아'남은' 것 같아 죄스러워지는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나는 모른다. 아직까지 그야말로 삶만을 생각하며 살아본 적이 없다. 더 나은 삶eu zen에 대한 생각을 거미줄처럼 뿌리고 뿌렸을 뿐 삶zen 그 자체가 이뤄지는 콧구멍과 똥구멍을 응시해본 적 없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내가 살아온 이 땅이 OECD 국가 중 자살율 1위라는 것을, 최근에도 불의의 사고로 인해 수많은 죄없는 생명들이 아직까지 캄캄하고 차가운 바닷 속에 '있다'는 것을, 있어야 할 곳이 아닌 곳에 있을 수밖에 없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 거짓말처럼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Ich, Der Uberlebende   살아남은 자의 슬픔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 남았다. 그러나 지난 밤 꿈 속에서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한 자는 살아 남는다."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베르톨트 브레히트, 살아남은 자의 슬픔, 1944년)

70년이 지난 지금 누가 살아 남았는가. 슬픔에서 자유로운 자의 살아남음을 우리는 기뻐해야 하는가, 슬퍼해야 하는가.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살아남았다면, 정말 그랬다면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슬픔은 계속 누군가를 미워하길 부추기도 있다. 이 낯선 선동 앞에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대학로에 가면 이런 글귀가 적혀 있다. '연극은 시대의 정신적 희망이다' 

희망이 진실이라면 희망을 보여주라. 하지만 오직 희망만이 희망을 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절망이 진실이라면 나는 절망을 보여주라 말하고 싶다. 절망의 끝에서('에밀 시오랑') 새로운 시작이 있을 것이다. 진실에 희망이 있다고 믿는 것, 진실이란 희망을 희망하는 것, 이것이 리얼리스트가 불가능한 꿈을 현실적으로 꾸는 방식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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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배우는 사람 창비세계문학 30
토머스 핀천 지음, 박인찬 옮김 / 창비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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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3, 4권(마르셀 프루스트)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새롭게 번역됐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처음 만난 건 고1 때로 기억하는데 독서력이 일정 수준 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 책을 들었으니 결과는 (안 봐도)'비디오'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재밌는 건 국일미디어 판으로 나온 이 시리즈를 7권까지 읽었다는 것이다(스피노자의 에티카나 칸트의 순수이성/실천이상 비판 같은 책에서 비슷한 사례를 찾을 수 있는데 그땐 정말 지금보다 미련했었던 것 같다. 좋은 교육자는 정말 필요한 것이다!). 아니 읽었다는 표현은 가당치도 않다. 봤다. 시각 정보를 책에서 머리를 운반했다. 문장이 어디서 시작해서 어디서 끝나는지 숫자 세듯 눈으로 좇았다. 때로 반 장을 가득 채우기도 하고, 하마터면 한 문장으로 한 장을 다 채울 뻔한, 혹은 채우기도 하는 '신기한' 문장들을 보면서 나름대로 내겐 특별한 독서경험이었다. 


재작년 파주 북소리축제에서 르 끌레지오가 마르셀 프루스트로 강연을 했는데, 그 이후로 발터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와 이런저런 강연이나 글귀에서 프루스트의 문학적 가치와 의의에 대한 이야기들을 주워들으면서 다시 한 번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왕이면 새롭게 번역된 책으로 새로운 마음으로 읽고 싶어서 리스트에 살짝 올려본다. 



3. 얼간이 윌슨(마크 트웨인)


창비 세계문학 전집 31번째로 마크 트웨인의 얼간이 윌슨이 출간되었다. 마크 트웨인, 참 이름은 많이 들어봤는데 정작 톰 소여의 모험 한 권밖에 읽어보지 못했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꼭 읽을 생각인데 요즘 소설을 잘 읽지 않다 보니... 언제가 될 지 기약할 수 없는, '통일' 같은 약속인 것이다. 한 가지 재밌는 에피소드는 문학동네 카페에 연재되었던, 지금은 단행본으로 묶여 출판된 '한국 작가가 읽어주는 세계문학'에서 톰 소여의 모험을 한 적이 있는데 읽어준 한국작가가 다름 아닌 박민규 작가였다. 나는 이 연재를 꼬박꼬박 챙겨봤는데 그 이유는 한 줄 백일장을 통해 당선된 이에게 책을 보내주었기 때문이다. 가면의 고백, 톰 소여의 모험, 수레바퀴 아래서, 총 세 번 당선된 걸로 기억한다. 그때 박민규 작가가 내 덧글에 덧글을 달아줘서 꽤 기분이 좋았는데 창비 홈페이지에서 피터, 폴 앤 매리 연재글을 보니 매 덧글마다 덧글을 달아준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되면서 그때의 기쁨이 조금 퇴색된 감이 없지 않다. 어쩄든 문학동네에서 덧글을 달아준 박민규 작가의 아이디는 killboy였고, 마크 트웨인의 얼간이 윌슨은 'killboy' 못지 않게 섹시할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4. 리틀 드러머 걸(존 르 까레) 


추운 나라에서 온 스파이,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같은 작품으로 친숙한 스파이소설의 대가 존 르 까레의 작품이다. 잘 몰라서 이하 생략.(근데 읽고 싶은... )





5. 느리게 배우는 사람(토마스 핀천) 


해럴드 블룸이란 미국평론가에 의해 돈 드릴로, 코맥 매카시, 필립 로스와 더불어 현존하는 미국의 4대 작가로 꼽히고 있는 포스트모더니즘 문학의 기수 토마스 핀천의 작품이다. 한 번 읽어보고 싶어서 제49호 품목의 경매를 샀는데 아직 못 읽어봤다... 느리게 배우는 사람과 함께 읽어야 겠다는, 통일 같은 약속을 다시금 해본다. 어쨌든 언젠가 이뤄질 약속이니까. 죽기 전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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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4-05-01 06: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얼갈이와 리틀드러머 읽고 싶네요. 카레.. 이 양반 확실히 매력덩어리입니다.
그보다는 마크 트웨인 할아버지가 한수 위죠... ㅎㅎㅎㅎㅎ
이 할아버지 정말 좋습니다.

rendevous 2014-05-01 12:54   좋아요 0 | URL
아서 왕 궁전의 코네티컷 양키! 제목이 쥑여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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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본행 야간열차 

파스칼 메르시어 작, 전은경 옮김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 술자리를 가졌다. 이 친구와 만나면 대부분 12시간은 넘겨야 헤어지기 때문에 기록수단을 이용하지 않는 이상 친구에 대한 애정만 커질 뿐 친구와 나눴던 대화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몇몇 편린들. 기형도 25주기, 함돈균 문학평론가, 미쉘 뷔토르 '변경', 알랭 로브그리예, 페르난두 페소아, 로만 야콥슨... (왜 우리는 잘 모르는 것에 대해 말할 때 더 유창해지는가!) 실상 이름만 알 뿐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는 무명으로 이뤄진 대화 속에서 리스본행 야간열차란 이름이 나왔다. 난 문지 시집 뒷장을 뒤적거리며 보았던 황인숙의 시집 제목을 떠올렸고 아는 척을 했으나(이 책도 역시 읽어보지 않았다) 그는 해외소설이라며 나의 허튼 수작을 단칼에 단죄했다. <변경> 뒷표지에 적힌 줄거리를 읽더니 친구는 그 책과 이 책의 유사성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었다. 기차라는 공간, 포르투갈이란 유럽이지만 약간 변방의 느낌을 갖고 있는, 옛날 같았으면 에우제비오와 루이스 피구, 파울레타, 콘세이상,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나라였겠지만 지금 내겐 페소아의 나라로 기억되는 나라. 2007년에 발간된 적 있는 이 책이 7년만에 단행본으로 묶여나오는 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된다. 


추천글 중 하퍼스의 글이 가장 인상적인데 저자의 철학적 면모를 사르트르에 비교하고, 작품적으로 토마스 만의 베네치아에서의 죽음과 아베 고보의 불타버린 지도에 비교하다니... 음... 닥치고 읽어야 겠다. 


 토마스 베른하트르 작, 배수아 옮김


번역가로서 맹작업 중이신 배수아 작가?번역가 님의 신작?이라고 해야 하나? 무튼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비트겐슈타인의 조카가 배수아의 손을 거쳐 97년 판에 이어 17년 만에 재탄생했다. 토마스 베른하르트는 문학동네 세계문학 '몰락하는 자'로 이름은 낯설지 않았지만 이 책 역시 읽어보지 않았으므로...(추천리스트를 쓰면서 자괴감이 점점 쌓여가네요...) 하지만 비트겐슈타인이란 20세기 천재 철학자와의 저자와의 요상한 인맥 - 실상은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조카이자 자신의 친구였던 파울 비트겐슈타인과 나눈 기이한 우정에 대한 회고록

이라고 하는 베른하르트의 자전적 소설. 


뭔가 에곤 실레 그림 같은 삐딱하고 불온한 표지 그림이 반은 먹고 들어가고?! 

뭔가 지적이고 어려울 것 같지만 읽어보고 싶은 느낌을 팍팍 주는 비트겐슈타인의 조카! 


 안토니오 타부키 작, 박상진 옮김


드디어 읽어본 작가 등장! 후훗. 인문 서가에 꽂힌 작가들 선집을 통해 '꿈의 꿈'이란 독특한 타부키의 세계를 만나본 기억이 있다. 이 책은 페소아를 사랑한 그가 보내는 연서, 이런 표현이 적절할 지 모르겠지만 죽음으로 인해 '빈집'에 갇힌 사랑의 노래, 자기위로와 연인-사랑하는 이에게 보내는 연서 같은 레퀴엠이다. 소장하고 있지만 아직 읽어보지 못한 '페레이라가 주장하다'가 있는데 추천글을 보니 레퀴엠을 먼저 읽어보고 싶어진다. 페소아의 일기를 모은 불안의 책이 있지만 배수아 작가가 새롭게 번역한(완역한) 불안의 서와 함께 페소아, 리스본, 타부키 - 꿈, 환상, 현실이 뒤섞인 아름다운 세계로 훌쩍 떠나보는 건 어떨까?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작, 김윤하 옮김


나보코프의 유작. 그는 가족에게 이 미완성 원고를 불태워달라고 부탁했지만 카프카의 원고들처럼 다행히 세상의 빛을 보게 된 작품들(근데 태우고 싶은데 자기가 태우지 왜 이렇게 지인에게 부탁을 하는 걸까요? 갑자기 궁금해지네... 하긴 소송 같은 작품을 보면 대가들이 생각하는 '완성'과 범인이 생각하는 '완성'의 갭이 좀 큰 것 같긴 하지만 ㅜㅜ) 고등학교 때 읽었던 작품들 중에 기억이 전혀 안 나는 몇몇 작품이 있는데 나보코프의 롤리타도 그 중 하나였다(그 그룹의 대장들은 조이스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등등이 있다...) 롤리타, 절망 같은 작품들을 갖고 있는데 나보코프의 창작노트를 엿볼 수 있는 이 책을 읽고 나면 조금은 더 수월하게 그 책들을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김중혁 저 


빨간 책방에서 흑임자로 맹활약 중이신 김중혁 작가의 신작 장편소설. 펭귄뉴스에 수록된 단편 몇 개와 이상문학상 수상집에 수록된 3개의 식탁, 3개의 담배, 장편소설 좀비들 정도를 읽어봤다. 최근 한국과 영어로 두 개의 언어로 쓰여진 바이링궐에디션 시리즈에서 김중혁 작가의 작품이 하나 실렸는데 카테고리가 '유머'란다. 적절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최대 무기는 유머라고 생각한다. 웃음으로 상대방의 긴장을 풀게 만들면서 조금씩 접근해 보통 같으면 기억에 남는 강펀치 한 방을 날리고 퇴장할 텐데 그는... 조금 다른 것 같다. 읽을 때는 무슨 내용인지 다 알 것 같은 기분이었는데 다 읽고 나면 뭐가 뭔지 헷갈려 다시 읽게 되는... 

뛰어난 가독성과 유머로 정신없이 페이지를 넘기다 책장을 덮고 나면 이상한 꿈을 꾼 듯한 찝찝한 기분이랄까, 눈 뜨고 코 베인 격이랄까. 역시 '구들링'(구들장에서 뒹글뒹글하며 몽상을 하는 것)의 달인답다. 리드미컬한 문장과 재기발랄한 상상력이 독자를 소설의 '막장'까지 쉴 틈 없이 끌고 간다. 아마도 그와 주파수가 맞는 독자라면 그 열차는 'express'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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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도 합시다
이철희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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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대선은 내 생애 첫 대선이었다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었기에 선거는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닌 내 일이었다나의 내일을 위한 내 일선거. 4대강용산참사한진 등 최고의 후보에서 최악의 대통령으로 소개된 MB정권의 행보를 지켜보면서 소중한 한 표를 행사했지만 다시 도돌이표처럼 이명박근혜 보수정권10년을 견뎌내야 하는 상황이다인터넷에 올린 유아인 씨의 글처럼 어쨌든 51대 48, 국민의 반끼리 분열할 것이 아니라 현실을 받아들이고 현대통령이 잘해낼 수 있도록 지지해주자는 의견에는 동의하는 바이다자신의 이념감정에 휘둘려 현상을 왜곡시키고 본질을 외면한다면 그것은 정치올바르게 다스림이 될 수 없을 것이다물론 대의민주주의 체제에서 책에서 말하는 보통사람’, 일반시민이 지배의 주체는 아니다그렇다고 해서 정치의 주체에서 배제되는 것 또한 아니다자신의 뜻을 관철시켜줄 수 있는 후보를 물색하고최적의 후보에게 한 표를 행사하고그 후보에 당선돼 공직을 해나가는데 있어서 잘못된 부분을 비판하고감시하는 역할을 한다면 총선이나 대선 때 투표용지에 한 번씩 도장이나 찍는 선거의 주체가 아니라 정치의 주체로 시민이 거듭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이 부분에 대해 최근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에서 본 서용순 교수의 글을 인용해보려고 한다.

 

 <주체성을 잃은 아우성>

바디우가 말하는 사건의 주체성이란 이러한 자본-의회주의적 담론에서 벗어나 불가능한 것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으로 접근하는 실천적 주체성이다말하자면이 주체성은 기존의 모든 지배 논리에서 벗어나 새로운 가능성을 가늠하게 하는 실천적 동력인 것이다도대체 뭘 어쩌란 말인가하루하루 살기 바쁜 이 마당에 무슨 다른 생각을 하란 말인가이런 생각이 든다면 당신은 여전히 지배 논리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바디우의 철학이 반감을 불러일으키는 지점은 정확하게 오늘날의 세계를 지배하는 자본-의회주의적 논리와 일치한다이 실천적 주체성은 열성과 인내를 요구한다그저 몇 년에 한 번 투표장에 나가 지지하는 후보에게 투표하고곧 실망하고 마는 자본-의회주의의 정치 행위와는 전혀 다른 실천의 지속을 요구하는 것이다사실 오늘날의 대의제 정치는 순전히 게으름뱅이의 정치다이것저것 귀찮고살기 바쁘다.정치는 그냥 정치인이 해라그렇게 사람들은 직업 정치인에게 나라의 운명을 맡기고그게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아우성을 친다그리고 다음 선거를 기다린다또 투표하고또 실망한다이 과정은 무한히 반복된다대의제 정치를 유일하게 가능한 것으로 받아들일 때우리에게 남는 것은 그 구조의 무한 반복일 뿐이다어떤 경우에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세계의 변화는 오늘날의 대의제 정치라는 유일한 가능성에서 벗어나 능동적으로 다른 가능성을 찾을 때만 가능하다그리고 그 다른 가능성은 오늘날 불가능한 것으로 낙인찍힌 것에서 나온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62] 2013년 12월 19일 ()바디우가 우리에게 남긴 것 -

  이 지점에서 이철희 소장의 뭐라도 합시다는 결국 우리의 삶을 바꿀 수 있는 최적의그리고 어쩌면 유일한 수단인 정치를 통해서 뭐라도 하자는시민이 자신의 생계에 쫓겨 혹은 바뀌지 않은 세상 때문에 느낀 정치에 대한 환멸에 의해 형성된 정치적 무관심으로부터 벗어나 정치적 주체로 거듭날 것을 각성하는 구호가 될 것이다.

 대부분 자기계발서가 저지르는 만행-사회구조적 문제를 개인의 노력부족잘못으로 돌리는 우를 이 책은 범하고 있다고 생각되지 않는다정치의 경우아니 정확히 말하면 대한민국과 같은 민주주의 국가의 경우1=1선거 안에서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권력이 많든 적든 남자는 여자든 건강한 사람이든 장애인이든 이성애자든 동성애자든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똑같이 한 표를 행사한다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정치를 외면할수록 누군가는 이득을 본다는 이 띠지의 말은 의미심장하다민주주의란 현 단계에서 최선의 체제 속에서(민주화를 위해 얼마나 많은 선조들이 목숨을 바쳤는가우리가 최소한의 행동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쌓이고 쌓여 최대한의 피해를 돌아올 수 있다는 섬뜩한 전언이 되는 것이다별것도 아닌 담벼락에 욕이라도 하는‘, 그렇다는 것은 최소한 정치와 시사에 최소한의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반증일 것이므로최소한의 행동을 하지 않으면 내 생활을 바꿀 수 없고정책을 바꿀 수 없고나라를 바꿀 수 없고,세상을 바꿀 수 없는 것이다.

 본격 현실정치를 다룬 책은 얼마 본적이 없어 사실 책을 읽기 전에 조금 겁먹었던 게 사실이다그런데 책을 펼치는 순간 소설책 못지않게 가독성이 뛰어나고무엇보다 재미가 있어서 깜짝 놀랐다한국의 정치사부터 다음 대선에 대한 분석 및 전망까지 정말 알차고 재밌었다한 가지 아쉬운 건 외국의 사례를 들 때 미국으로 조금 편중된 경향이 없지 않아 있었던 것 같다아무래도 대한민국이 미국식 민주주의를 표방하고많은 정치학자들이 미국에서 공부하는(이철희 소장도 그랬는지 잘 모르겠지만경향이 있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책 후반부에 나오는 것처럼 독일식 사회민주주의발전보다는 복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최근 흐름에 맞게 유럽의 사례가 좀 더 소개되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시간이 되신다면 박근혜 대통령이 이 책을 읽고 대통령을 향한 뼈가 되고살이 되는 조언을국민의 목소리를 들어주셨으면 한다.(문학동네 팟캐스트 문학이야기에 소개된 이신조 소설가의 '각하, 문학을 읽으십시오' 서경식 교수의 저서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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