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푼짜리 오페라 - 베르톨트 브레히트 희곡선집 열린책들 세계문학 200
베르톨트 브레히트 지음, 이은희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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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전까지 브레히트는 읽어야 하는 작가였다. 서사극의 대가, 망명생활을 하면서 조국 나치를 진실한 목소리로 비판하는 데 거리낌이 없었던 사람, 탁월한 이론가이면서 동시에 민중의 목소리를 작품에 담아낸 극작가이자 시인. 그의 이름이 가장 강하게 각인된 에피소드는 아마도 브레히트 - 아도르노 - 첼란의 '서정시' 쓰기에 대한 코멘트였던 것 같다. 

 

브레히트의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Schlechte Zeit Fur Lyrik  

 

분량이 짧으니 전문을 한 번 읽어보도록 하자. 

 

 나도 안다, 행복한 자만이

 사랑받고 있음을 그의 음성은 

 듣기 좋고, 그의 얼굴은 잘 생겼다. 

 

 마당방의 구부러진 나무가

 토질 나쁜 땅을 가리키고 있다. 그러나

 지나가는 사람들은 으레 나무를 

 못 생겼다 욕한다. 

 

 해협의 산뜻한 보우트와 즐거운 돛단배들이 

 내게는 보이지 않는다. 내게는 무엇보다 

 어부들의 찢어진 어망이 눈에 띌 뿐이다. 

 왜 나는 자꾸 

 40대의 소작인 처가 허리를 꼬부리고 걸어가는 것만 이야기하는가?

 처녀들의 젖가슴은

 예나 이제나 따스한데. 

 

 나의 시에 운을 맞춘다면 그것은 

 내게 거의 오만처럼 생각된다. 

 엉터리 화가에 대한 경악이 

 나의 가슴 속에서 다투고 있다. 

 그러나 바로 두번쨰 것이 

 나로 하여금 시를 쓰게 한다. 

(1939년)


아도르노는 아우슈비츠 이후 서정시는 없다고 선언했지만 전후 시인 중 가장 중요한 시인 중 한 명인 파울 첼란은 아도르노의 부정을 그의 시로써 부정했다. 


 브레히트의 시집 '살아남은 자의 슬픔'은 프리모 레비의 '살아남은 자의 아픔'과 함께 기억되었고, 시인 브레히트가 기억되는 동안 극작가 브레히트는 잠시 잊혔다. 


 극작가 브레히트를 불러낸 것은 다름 아닌 소리꾼 이자람이었다. 이자람이란 걸출한 아티스트를 알게 되고 그녀의 대표작 중 하나인 억척가의 원작이 브레히트의 '억척 어멈과 그 자식들'이란 사실을 알게 되면서 브레히트는 읽어야 하는 작가에서 읽고 싶은 작가가 되었다. 

 

 열린책들에서 출간된 서푼짜리 오페라는 서푼짜리 오페라와 억척 어멈과 그 자식들 두 작품을 수록된 희곡집이었다. 분량이 조금 아쉬웠지만 두 작품에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기조, '브레히트적'이라 말할 수 있는 예술관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았다. 

 

 서사극이란 장르, 그리고 이 장르를 개척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브레히트의 예술관과 시대적, 역사적 상황은 한나 아렌트의 유명한 말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사유하지 않는 것은 악이다. 이성의 시대에서 반합리주의를 내세우는 파시즘, 나치즘으로 서구가 몰락하기까지,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 - cogito ergo sum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에서 예루살렘에서 열린 재판에서 아이히만의 반성하지 않는, 절망하지 않는 무사유의 악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그 몰락의 시대를 살아가면서 예술가로서, 리얼리스트로서 브레히트는 연극무대를 가상의 공간이 아닌 현실로 만들 필요가 있었다. 

 

 

 일반 사람들보다 잘난 사람들이 나와 몰락하는 과정을 통해 관객들에게 카타르시스를 불러일으키는 비극이 아닌 소위 말하는 밑바닥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 고상하고 고매한 정신적 갈등이 아닌 저열하고 이기적이고 경우에 따라 거리낌없이 비겁해지는 욕망이 서로 물고 늘어지는 이야기, 영웅이나 신화 속 인물이 아닌 내 주변의, 우리네 이야기. 

 

 작품을 낭독하면서 나름대로 이미지를 머릿속에 그려봤는데 억척 어멈이 끄는 수레는 영화 '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극장'에 등장한 수레를 떠올렸다. 온갖 잡다한 물건을 싣고 다니는 '없는 게 없는' 수레, 그래서 정말 있어야 할 것은 없는 수레. 억척 어멈은 수레가 있었기 때문에 집을 가지지 못했다. 아니 사실은 이 문장은 이렇게 고쳐야 더 적절할 것이다. 집을 가질 수 없었기 때문에 수레를 끌게 된 것이라고,  하지만 그렇게 소라게처럼 수레와 평생을 동고동락하며 떠도는 삶을 선택했기 때문에 종국에 가서 억척 어멈은 전쟁을 환영하는, 우리가 평소에 알고 있는 '전쟁광'의 이미지에서 한참 벗어난 특이한 전쟁광의 모습을 하게 된다. 그녀의 곁에는 전쟁이 끝났다고 말해주는 친구도 없었고, 남자들에게 해코지당하지 않으려면 차라리 얼굴에 상처가 나는 게 낫다고 생각할 정도로 연약(하다고 생각되는)한 벙어리 딸과 아들들만 있었을 뿐이다. 

 

 최근에 개봉한 스티브 맥퀸 감독의 '노예 12년'의 대사를 조금 바꿔보면 그녀는 생존해야 했다(have to survive). 그리스에서 말하는 의미 있는 비오스bios의 삶이 아닌 생명 그 자체로의 조에zoe, 의미 있는 삶live이 아닌 심장이 뛰고 피가 도는 생존survive, 당장 내일 눈을 뜰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삶을 말하는 건 그녀에게 사치였을 지도 모른다. 그야말로 억척스럽게 어떻게든 살아남는 것이 지상과제가 되는 삶도 있었고, 이 예외적 삶의 방식은 전쟁이란 바이러스가 퍼지는 곧바로 규칙이 될 수 있는 것이었다. 죽음이 일상이 돼서 삶이 기형이 되는, 죽음이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 돼서 죽은 자들을 대신해 살아'남은' 것 같아 죄스러워지는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나는 모른다. 아직까지 그야말로 삶만을 생각하며 살아본 적이 없다. 더 나은 삶eu zen에 대한 생각을 거미줄처럼 뿌리고 뿌렸을 뿐 삶zen 그 자체가 이뤄지는 콧구멍과 똥구멍을 응시해본 적 없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내가 살아온 이 땅이 OECD 국가 중 자살율 1위라는 것을, 최근에도 불의의 사고로 인해 수많은 죄없는 생명들이 아직까지 캄캄하고 차가운 바닷 속에 '있다'는 것을, 있어야 할 곳이 아닌 곳에 있을 수밖에 없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 거짓말처럼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Ich, Der Uberlebende   살아남은 자의 슬픔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 남았다. 그러나 지난 밤 꿈 속에서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한 자는 살아 남는다."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베르톨트 브레히트, 살아남은 자의 슬픔, 1944년)

70년이 지난 지금 누가 살아 남았는가. 슬픔에서 자유로운 자의 살아남음을 우리는 기뻐해야 하는가, 슬퍼해야 하는가.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살아남았다면, 정말 그랬다면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슬픔은 계속 누군가를 미워하길 부추기도 있다. 이 낯선 선동 앞에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대학로에 가면 이런 글귀가 적혀 있다. '연극은 시대의 정신적 희망이다' 

희망이 진실이라면 희망을 보여주라. 하지만 오직 희망만이 희망을 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절망이 진실이라면 나는 절망을 보여주라 말하고 싶다. 절망의 끝에서('에밀 시오랑') 새로운 시작이 있을 것이다. 진실에 희망이 있다고 믿는 것, 진실이란 희망을 희망하는 것, 이것이 리얼리스트가 불가능한 꿈을 현실적으로 꾸는 방식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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