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 신학
헨드릭 크래머 지음, 홍병룡 옮김 / 아바서원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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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단하고도 복잡한 세상의 한복판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믿음의 삶을 살아내기 위해 고군분투합니다. 때로는 혼란에 빠지기도 하고 교회와 세상의 간극으로 인해 깊은 좌절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잠깐의 주일예배로는 한주의 영적 전투가 버겁습니다.


교회의 대다수는 평신도들입니다. 이전에 비해 논의가 늘어났긴 했지만 여전히 평신도의 신학적 지위는 중심부에 있지 않습니다. 1958년에 출간된 『평신도 신학』 이후로도 충분하게 후속 연구가 영글지 않은 듯 보입니다. 교회 안에서 경험하는 평신도의 위치 또한 획기적인 개선을 보이지는 못했습니다.


네덜란드의 선교학자인 헨드릭 크래머(Hendrik Kramer)는 불모지와 다름없는 '평신도에 대한 신학'을 과감하게 선보입니다. 그의 저술 5년 전에 가톨릭 신학자인 이브스 콩가르(Yves M.J. Congar)가 『교회 안의 평신도』라는 책을 냈지만, 가톨릭 신학 안에서 저술된 책이 개신교의 교회론과는 다른 지점이 존재했습니다.


크래머는 콩가르의 저술에 대해 가치와 의의를 인정하며, 이 책 『평신도 신학』에서도 그 책을 많이 소개하고 인용을 합니다. 더하여 개신교의 교회론에서 평신도의 신분과 사명에 대해 새롭게 정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책은 교회의 대부분을 구성하는 평신도들에 대한 신학적 조명과 성찰을 개신교 내에서 한 최초의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저자는 이미 역사 속에 존재했던 평신도들의 발자취를 훑어갑니다. 우리가 성직자라고 오해하는 많은 사람들이 이에 속합니다. 테르툴리아누스(Tertullianus), 키프리아누스(Cyprianus),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는 모두 유능한 평신도였습니다.


교부들뿐만 아니라 중세의 수도원 운동을 이끌었던 많은 사람들은 평신도 활동의 실례입니다. 종교개혁 또한 평신도의 역할이 매우 중요했습니다. 특별히 위대한 종교개혁자 칼뱅(Jean Calvin)은 평신도 때 『기독교강요』를 집필합니다. 이를 통해 개혁교회의 기본적이고 중추적인 틀을 마련합니다.


이렇듯 역사적으로 평신도들의 역할이 중차대했지만 교회에서의 지위는 매우 약했습니다. '왕 같은 제사장직'이라는 명제를 들고나온 종교개혁으로 '성직자'와 '평신도'의 구별이 사라진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설교하는 직분의 탁월성을 강조함으로 인해 오히려 더욱 특별한 자격을 요구하는 아이러니가 빚어졌습니다.


평신도 신학이 제대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그것이 하나의 동떨어진 논의로 그쳐서는 안됩니다. 평신도 신학이 진정한 의미를 가지기 위해서는 교회의 소명과 함께 가야 합니다. 평신도 신학이 교회론의 일부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평신도가 책임 있는 동반자 관계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평신도와 동반자 관계를 맺는 교회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교회는 종교 기관으로서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고대하는 공동체입니다. 이러한 교회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신뢰하며 의존합니다. 이것이 세상의 다른 공동체와 구별되는 독특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그 자신이 아니라 세상을 향해 부름받았다는 인식을 항상 가져야 합니다. 그렇기에 교회는 선교적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선교하며 사역해야 합니다. 이러한 본질을 중심에 둔다면 평신도의 책임 있는 참여는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세상의 최전선에서 교회를 대표해 있는 그들이야말로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행위 이전에 존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는 존재가 되어 우리는 세상 속에 침투해야 합니다. 세상과 소통하고 대화할 수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교회는 교회의 본질과 소명에 입각하여, 증언과 섬김을 위해 세상에 보내진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성도들의 정체성을 근거 삼아 동역을 요청해야 합니다. 세상 가운데 살아가면서도 세상에 속할 수 없는 그들이야말로 교회의 주체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사역자는 그들을 돕고, 또한 도움받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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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란 종교생활의 특정한 형태로서 다양한 사람들을 내포하는 하나의 유기체이며, 어떤 형식의 예배와 신경에 기반을 두고 그 하나 됨과 전통이 모종의 우월한 영적 권위로 표현되는 유기체를 말한다. - P95

교회의 본질과 소명을 증언할 때, 그 구성원들의 자격이 아니라 모든 구성원과 관련된 본질과 소명에 내재된 재창조의 능력에 의존해야 평신도 문제의 전모가 나타날 수 있다. - P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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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위 하나님과 함께 사랑하라, 살아가라, 선교하라
마이클 리브스 지음, 김명희 옮김 / 아바서원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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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욕망이나 필요에 의해 관계를 좌지우지하려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한 사람들은 자신만을 사랑합니다. 실제로 그것을 사랑이라 부르지는 않습니다. 사랑은 자기만족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자신만을 아끼고 위하는 것은 '이기심'이라 부릅니다.


'사랑'이 풍성한 사람은 그 안에 사랑이 흘러넘칩니다. 존재를 안아주는 사랑을 이미 누리고 있기에, 어떤 관계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너'와 함께 하는 이유가 '나'를 위해서가 아닙니다. '우리'의 풍성함을 나누어주고 싶기에 '당신'을 초대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그러합니다. 사랑은 나눌수록 풍성합니다. 자연스럽게 흘러넘칩니다. 때로는 나를 돌아보지 않더라도, 서로의 따스함으로 인해 어느새 '나'는 이미 충만합니다. '너'를 돌보는 것이 곧 '나'를 돌아보는 것이기에 그 사랑 안에는 어떤 시기나 이기심, 편애가 없습니다.


궁극적으로 이러한 사랑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충만한 사랑 가운데 가능합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풍성한 사랑은 우리에게로 흘러들어옵니다. 성부와 성자, 성령은 이미 그분들 안에서 행복하셨으며, 서로를 기뻐하셨습니다. 그분들에게는 부족함이 전혀 없습니다. 그 기쁘고 즐거운 사랑의 잔치에 그저 우리를 초대하고 싶으십니다.


마이클 리브스(Michael Reeves)는 『삼위 하나님과 함께 사랑하라, 살아가라, 선교하라』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차고 넘치는 사랑을 설득력 있게 풀어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이해만이 우리를 풍성하게 합니다. 그러한 이해는 우리의 삶과 선교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풍성한 사랑과 은혜는 바깥으로 흘러넘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 사랑으로 초대하십니다. 우리가 그 사랑 가운데 거한다면 우리 또한 그 사랑의 삶에 동참하게 됩니다. 그것은 곧 기쁨과 자비를 누리는 행동이며, 전하는 모습으로 자연스럽게 드러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영광은 예수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을 통해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우리 주님은 죄인을 만나셨고, 함께 먹으셨으며, 치유해 주시고, 회복시켜 주십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홀로 빛나는 그 무엇이 아니었습니다. 친히 백성들에게 내려오시며, 그것을 나누어주시는 영광입니다.


선교는 하나님의 그 영광의 빛을 세상에 널리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으로부터 그 영광과 찬란함은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를 어두움 가운데서 빛으로 부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우리가 세상의 빛이 되게 하십니다.


그러하기에 선교는 우리의 무엇이 아닙니다. 어떤 자격이 갖추어져야 시작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깨어진 상태 그대로 하나님께 우리를 맡길 때 비로소 시작되는 것입니다. 선교는 하나님의 존재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분의 영광, 사랑은 우리를 고칠 뿐만 아니라, 우리를 통해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세상은 탁월함을 원합니다. 더 멋들어지고 위엄 있기를 원합니다. 인기와 명예, 권력을 탐합니다. 그것이 승리를 가져다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랑의 하나님은 우리가 깨어진 상태 그대로 오기를 원하십니다. 낮아진 그 상태가 가장 적절한 상태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에 우리는 동참하기만 하면 될 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누군가의 비위를 맞추거나 죄책감으로 인해 행동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그런 동기로 이 땅에 오시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충만한 사랑으로 인하여 이 땅에 오셨고, 사셨고, 죽으셨습니다. 사랑이 차고 넘치는 아들은 세상에 사랑을 쏟아부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과 하나님의 자녀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감동을 주기 위해 행동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받고 누린 그 사랑과 기쁨이 흘러넘치기에 어찌할 수 없는 벅찬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을 쏟아내며, 기쁨을 나누어주는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성령 하나님은 우리에게 풍성한 사랑을 지속적으로 공급하실 것입니다. 각박한 세상 한가운데 끙끙대며 살아가지만,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주시는 충만함을 성령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전달해 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 하나님은 사랑으로 풍성하십니다. 이제 우리는 그것으로 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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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성령과의 관계를 유지하시며 아들에게 사랑으로 생명을 주신다. 이분이 진짜 하나님이다. 예수님으로 시작하여 그분 안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을 발견할 때, 당신은 비길 데 없이 무한한 아름다움과 사랑과 사랑스러움을 지니신 하나님을 발견한다. - P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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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묻고 아빠가 답하다 - 성서학자 아빠가 들려주는 복음 이야기
이상환 지음 / 도서출판 학영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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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자신의 위치에 걸맞은 역할을 해야 합니다. 주어진 위치에는 책임이 따릅니다. 부르심에는 소명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맞게 살아가는 것은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이 해야 할 바를 성실하게 감당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르심에 합당한 삶이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입니다.


창조 시의 세계는 경이로웠습니다. 그 이유는 질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각자가 자신의 자리에서 맡은 바를 했기에 평안했습니다. 보시기에 좋았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인정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질서의 핵심입니다.


하지만 세상은 무질서합니다. 주어진 위치에서 그에 합당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마치 상하(주종) 관계처럼 상대방을 압박하고 억누릅니다. 피조 세계는 고통 가운데 신음합니다. 아름다웠던 창조세계는 왜 이렇게 변해버린 걸까요? 어떤 방법으로 깨어져 버린 세상을 새롭게 회복할 수 있을까요?


전작인 『Re : 성경을 읽다』와 『신들과 함께』를 통해, 성경 해석의 방법과 고대 근동의 신개념에 대해 이해하기 쉬우면서도, 탁월하고 깊게 소개한 이상환. 저자는 이 책 『아이가 묻고 아빠가 답하다』를 통해, 성경이 말하고 있는 참된 질서가 무엇인지와 그 질서가 왜 깨어졌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조직신학적인 질문에 성서신학적인 대답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조직신학의 핵심적 주제는 신, 인간, 죄, 구속, 회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이 타락함으로 인해 발생한 사건입니다. 저자는 창세기 1~3장을 통해 성경의 굵직한 주제들을 섬세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마치 인간이 하나님께서 불어넣어주신 "생명의 기운"으로 하나님의 작품이 되듯, 교리라는 다소 건조할 수 있는 주제에 장인의 손길을 더함으로 따뜻하고 생명력 있는 하나의 작품이 되었습니다. 시종일관 진행되는 사랑의 대화에서 그 태도와 내용 모두를 통해 자연스레 하나님과 그분의 사랑을 알아갑니다.


저자는 그리스도인들이라면 가질 수 있는 원초적인 질문들에 답합니다. 아이들이 던지는 질문은 날카롭습니다. 사실 매우 까다로운 물음이라 대답을 꺼려 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질문들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본래 말씀하고자 하는 의도를 곡해하고 잘못 적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집니다.


본래 아름다웠던 질서의 피조 세계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을 통해 다스려지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반영할 수 있는 존재였지만,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만 하는 존재였습니다. 그러한 경계가 깨어진다면 이 세상은 무질서로 혼탁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저자는 질서의 하나님께서 무질서의 상태 가운데 놓인 피조 세계를 다시금 어떻게 회복하시는지를 감격스럽게 전합니다. 아이들과 아빠의 대화는 시종일관 흥미롭습니다. 아이들이 던지는 색다른 질문은 우리가 그동안 보지 못했던 새로운 측면을 볼 수 있는 길을 열어줍니다.


저자와 아이들이 쌓아 올린 질문과 대답들은 서로 촘촘하게 연결됩니다. 1장은 2장을 위해, 2장을 3장을 위해 고안된 고도의 장치와 같습니다. 결국 10장 '예수 그리스도'는 1장부터 9장까지의 내용이 모두 반영된 이 책의 놀라운 결과물이 됩니다. 창세기로부터 요한계시록까지의 대장정이 마무리되는 순간입니다.


우리는 저자를 통해 혼란 가운데 있는 이 세상이 새롭게 회복될 수 있는 감동의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우리로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는 무질서의 상태를 예수 그리스도는 완전하게 바로잡아주십니다. 이 거대한 서사 앞에 우리는 경외감을 느낍니다. 놀라운 이야기 한가운데서 어떻게 아름다운 이야기를 함께 써 내려갈지를 기대하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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