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어제
김현주 지음 / 모모북스 / 202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는 어쩌면 많은 것을 잃었는지도 모르겠어요. 가장 소중한 것을 말이죠. '돈'이 최고의 가치가 되어버린 지금, 나와 함께 하는 '너'를 어떻게 생각할까요? 조직의 관리자들은 자신에게 엄청난 힘이 있는 것처럼 '사람'보다는 '돈'을 선택합니다. 그것이 합리적이라면서요.


맞습니다. 제가 리더가 된다 해도 어떤 결정을 내릴지 알 수 없습니다. 자신이 없긴 해요. 당장 지금도 '너'보다는 '나'의 힘겨움을 생각하니까요. 온전하게 '너'를 생각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당신의 유익과 연결되어 있지 않다면, 저는 어떤 존재여야 하나요.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무감각하게 보고 있는지도요. 그저 편하고 자연스럽다는 이유로 무채색으로 살고 있지는 않나요? 수많은 내일과 어제를 보내면서 같은 생각과 감정을 반복하고 있을지도요. 그 안에 고요하게 일렁이는 진정한 '나'를 향한 갈망을 보고 있나요?


김현주 작가의 『내일의 어제』는 라디오 작가 정민의 삶을 통해 우리의 일상을 돌아보게 만들어줍니다. 무엇인가 변수가 있는 것보다 안정감을 택하는 정민은 반복되는 삶에 불편함을 느끼지 못합니다. 평범한 삶에서 만족감을 느끼지만, 정작 '자신'은 잃어버리고 있었죠.


친구의 아픔을 귀담아듣는 줄 알았지만, 어느새 그것을 라디오 방송을 위한 소재로 사용합니다. 어쩌면 마음을 터놓고 지낼 수 있는 유일한 친구였음에도 그의 이야기가 나의 유익을 위한 도구로 전락해버리는 순간입니다. 약간의 미안함이 있었지만, 그 사실이 밝혀지고도 오히려 더 당당하게 친구에게 따질 수 있을 정도가 되어버렸죠.


우리 또한 그런 삶을 살아갑니다. 소중했던 누군가가 어느새 나의 유익을 위해 존재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죠. 사실 서로가 잘 알지 못할 수는 있습니다. 그 사람의 상황과 감정이 궁금하기 이전에 나의 무엇인가가 더 크게 느껴진다면 조금은 조심해야 할 단계가 아닌가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일상에는 늘 변수가 존재합니다. 이 소설에서는 강아지 '모모'가 개입하고부터입니다. 자신이 그동안 누려왔던 일상이 깨어지는 상황입니다. 처음에는 이러한 상황이 매우 불편합니다. 다시금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변수는 우리에게 일상이 됩니다.


정민은 자신이 참으로 외로웠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동안은 남편과 행복하고 소소하게 살고 있다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채워지지 않는 마음의 헛헛함을 느끼게 됩니다. 터놓고 존재와 존재로 이야기한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 옵니다.


일상의 변수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이야기합니다. 행복이라 생각하며 살아왔지만, 그것이 허울 좋은 이상이었음을 알게 되는 것이죠. 실제 나의 마음이 상하고 있다는 것, 병들고 있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됩니다. 소설 속 주인공은 다른 방식을 찾지만,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을 찾아 나설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요? 누군가의 선택으로 철저하게 소외당하고, 내쳐지는 경험 뒤에야 '나'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더하여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한 사람 한 사람 진정한 '너'로 여기며 귀 기울여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나'를 위한 '너'가 아니라, 그저 '너'로 존재해 주기를 바라면서요.



*이 리뷰는 모모북스(@momo_books__)으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살아 있다는 것이 봄날 - 제1회 "어르신의 재치와 유머" 짧은 시 공모전 수상 작품집
성백광 외 지음, 김우현 그림, 나태주 해설 / 문학세계사 / 202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모두가 나이가 들고, 노인이 됩니다. 하지만 그것을 인정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몸은 쇠약해지나, 마음으로는 청춘처럼 살아가고 싶기 때문입니다. 주변 사람들이 늙어가는 것은 보이지만, 정작 자신이 나이들어가는 것은 잘 보이지가 않습니다.


하나 둘 복용해야 할 약이 늘어납니다. 거뜬하게 오르내리던 길이었는데, 어느샌가 헉헉 거리게 됩니다. 이전에는 전자제품 최신 업데이트를 미리 챙겨봤었는데, 이제는 그런 것에 관심조차 없습니다. 새로나온 기능이 더 편리하다고 이야기하지만 기존의 것이 더 쉽게만 느껴집니다.


아무래도 어르신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적다보니 그들의 고민과 아픔을 깊게 알지 못합니다. 그저 추상적으로만 생각할뿐입니다. '힘드시고 외롭겠지' 정도로 생각하지만, 그들의 고통이 우리의 아픔이 되지는 못했습니다. 더 세심하게 그들의 마음을 살피지 않았던 것입니다.


『살아 있다는 것이 봄날』은 (사)한국시인협회와 (사)대한노인회가 공동 주최한 제1회 "어르신의 재치와 유머" 짧은 시 공모전에서 발굴한 시를 엮은 시집입니다. 총 5,800여편의 작품 가운데 예심을 거친 100편의 작품이 본심(심사위원: 김종해, 나태주, 유자효)을 거쳐 수상자로 선정되었습니다.


만60세 이상의 어르신들은 솔직담백하게 자신들의 일상을 표현합니다. 유쾌하면서도 연륜이 묻어나는 문장들로 우리에게 말을 건넵니다. 추리고 추려서 건져 올린 짧은 문장은 깊고도 따뜻합니다. 그 안에는 오랜 시간이 담겨 있고, 그들의 이야기가 숨겨져 있습니다.


아주 평범한 일상을 표현하지만 지혜가 담긴 비범함이 빛납니다. 유쾌하게 표현한 문장들 사이로 외로움과 서글픔, 서운함과 비통함이 묻어납니다. 인생의 마지막을 향한 양가감정이 절묘하게 교차합니다. 모든 문장은 생동감이 넘치며, 살아있음을 뽐내고 있습니다.


끝이 있음을 인정하며 사는 겸손한 인생은 아름답습니다. 영원하지 않은 것에 온 마음을 다하는 인생은 불행합니다. 비록 지금은 불편하고 힘들어도, 선물로 주어진 인생을 어르신들의 지혜로 채워나가다보면, 우리 삶도 충분히 아름답고 경이로울 것입니다.



*이 리뷰는 문학세계사(@munse_books)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리마인더스 오브 힘
콜린 후버 지음, 박지민 옮김 / 미래지향 / 202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는 생각보다 쉽게 사람을 판단합니다. 짧은 한순간의 만남으로 그 사람을 단정 지을 때도 있습니다. 혹은 근거 없는 소문에 의지할 때도 있지요. 한 사람의 인생은 몇 문장으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한 사람의 서사는 매우 많은 사건과 이야기가 얽혀 있는 우주와 같습니다.


한 사람을 이해하는 과정은 지난합니다. 꽤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객관적으로 한 사람을 분석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저 마음을 열고 조금씩 그 사람을 받아들이면, 어느 순간 서로 안에 신뢰가 쌓이고, 진정한 소통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콜린 후버(Colleen Hoover)는 그러한 한 사람의 강점 변화를 매우 잘 표현할 수 있는 작가입니다. 전작인 『베러티』에서 보여주었던 숨 막히는 사건 전개는 등장인물의 세심한 감정을 드러내었기에 더욱 흥미진진했습니다. 이 책 『리마인더스 오브 힘』은 더욱 세밀하게 등장인물의 감정에 주목합니다.


주인공인 케나는 남자친구인 스코티를 죽음으로 몰고 간 인물입니다. 감옥에서 출산을 하였지만, 딸 디엠과는 한 번도 마주치지 못했던 불운의 주인공입니다. 여러 복잡한 감정을 가지고 있지만, 그녀에게서 느낄 수 있는 것은 슬픔과 불안, 두려움일 것입니다.


케나는 출소 이후에 딸을 한 번이라도 만나보기 위해 딸이 살고 있는 마을로 찾아갑니다. 그곳은 남자친구가 살았던 곳이며, 그들의 추억이 깃든 공간입니다. 쓰라린 기억들이 밀려오지만, 오로지 딸을 보기 위한 엄마의 절절함은 그 어떤 것도 그녀를 막을 수 없습니다.


그곳에서 우연히도 스코티의 가장 친한 친구인 렛저를 만나게 됩니다. 둘도 없던 친구였던 그는 스코티의 죽음 이후에 스코티의 부모님과 함께 케나와 스코티의 딸을 돌보고 있었습니다. 렛저와 스코티의 부모님은 아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케나를 원망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스코티의 부모님은 자신들의 손녀를 그 어떤 불행으로부터 보호해 주고 싶었습니다. 드넓은 사랑으로 보살펴주고, 아껴줍니다. 렛저는 스코티의 가장 친한 친구로서 그의 부모님을 돕는 동시에 스코티의 딸을 자신의 딸처럼 대하고 아껴줍니다.


그런 그에게 운명과 같은 만남이 일어납니다. 렛저는 너무나 혼란스러워합니다. 어떤 목적으로 케나가 여기에 왔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그리고 처음부터 자신을 이용하기 위해 이 사람이 자신에게 접근했는지를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딸을 향한 순수한 사랑, 후회와 절망 등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렛저는 아주 천천히 그녀에게 스며듭니다. 정말 진심으로 딸을 한 번이라도 만나기 위해 모든 것을 버려두고 이곳으로 왔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작가의 심리 묘사는 레저와 케나의 행동과 표정, 생각과 말투를 통해 세심하게 독자에게 전달됩니다.


우리는 너무도 쉽게 사람을 재단할 때가 많습니다. 아주 위험하며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식으로 대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어떤 사람도 처음부터 나빴던 사람은 없습니다. 혹여나 큰 실수가 있다고 할지라도 그 사람은 여전히 한 사람으로 존재해야 합니다. 그렇게 콜린 후버의 소설은 잔잔하게 우리에게 작은 메시지를 던져주는 듯합니다.



*이 리뷰는 미래지향(@miraejihyang_book)으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 지음, 홍한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각자의 역할이 있습니다. 가령 판사는 법을, 의사는 생명을, 목사는 복음을 붙들어야 합니다. 기본적인 것이 지켜져야 마땅합니다. 공간과 시간에는 대부분 목적이 있습니다. 우선적인 가치가 있습니다. 그러한 원칙들이 무너진다면 존재의 이유 또한 사라집니다.



조금씩 원칙이 무너질 때, 매우 사소한 것이니 괜찮다고 말합니다. 이미 오랜 시간을 그러했다는 관행은 우리를 무뎌지게 만듭니다. 혹은 이미 형성된 사회 질서를 균열 시킬 때 발생하는 불이익을 감수하기 싫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양심은 현재의 힘겨운 상황 앞에 침묵을 강요받습니다.



하지만 작은 것에서 우리는 큰 의미를 보게 됩니다. 우리가 지나쳤던 작은 일상에 깊은 사랑이 묻어나 있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은 행동으로 한 사람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작은 목소리가 모여서 우렁찬 외침이 됩니다. 손잡고 안아줘야 할 많은 사람들은 우리의 작은 몸부림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간결하면서도 섬세하게 사건과 인물을 묘사하며 독자들의 상상력을 발휘하게 하는 클레어 키건(Claire Keegan). 그녀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여백으로 인해 우리는 동일한 작품에서 수많은 서사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나'의 이야기는 '너'의 이야기가 되고, '우리'의 이야기로 울려 퍼집니다.



『맡겨진 소녀』 이후 11년 만에 출간된 『이처럼 사소한 것들』. 오랜 기다림만큼이나 우리의 기대를 훨씬 뛰어넘는 작품을 우리에게 안겨줍니다. 이 소설에서도 작가는 긴 설명이나 구구절절 감정 표현을 하지 않습니다. 숨겨놓은 등장인물들의 절제된 감정은 그들의 짧은 말이나 손짓을 통해 조금씩 우리에게 밀려들어옵니다.



아일랜드의 막달레나 세탁소에서 있었던 은폐와 감금, 감제 노역의 실제 사건은 키건을 통해 보다 생생하게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가톨릭교회와 아일랜드 국가의 자금을 지원받으면서도 철저하게 자신들의 악행을 숨기며, 오히려 그 지역에서 폭넓은 권력을 행사했던 모자 보호소.



흩어지고 사라진 기록들만큼이나 그 안에서 고통당했을 3만 명의 여성들은 제대로 된 사과 한번 받지 못한 채 기억 저편에 머물 뿐입니다. 모자 보호소를 관리했던 사람들은 자신들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자신들의 탐욕을 채우고, 자신들의 권리를 지키려고만 했습니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분명하게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목도하는 불의가 우리의 삶을 위협하지 않을 때, 우리는 아주 소소한 우리의 일상을 택할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을 말입니다. 아주 사소한 것을 위해 겪지 않아도 되는 고통과 불안을 겪고 있는 사람들의 힘겨움을 무시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주인공인 '빌 펄롱'을 통해 희망 또한 발견합니다. 끊임없는 자책과 자신의 양심의 소리와의 싸움 이후에 그는 평범한 일상을 뒤로합니다. 모두가 눈치 주고 자신의 일상이 위협받을 수 있음에도 그는 사랑을 택합니다. 그가 받은 사랑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현재 우리가 누리는 작은 일상은 누군가의 희생과 섬김으로 가능합니다. 거창한 무엇은 아니었지만, 끊임없는 사랑이 우리를 지금 이 자리에 있게 만들어주었습니다. 그 사람들의 손길과 몸짓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더하여 우리 또한 우리가 할 수 있는 소소하지만 위대한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믿을 인간 하나도 없다고 말하는 세상입니다. 오로지 나를 위해 살아야 한다 말합니다. 사랑과 정의가 무슨 힘이 있냐고 조롱하는 시대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압니다. 결국 우리를 이끌었던 힘은 사랑이었음을요. 세상을 바꾸는 위대한 힘은 바로 사랑입니다. 그 사랑만이 우리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푸른개 파랑새 그림책 17
나자 글 그림 / 주니어파랑새(파랑새어린이) / 1998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홀로 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소중한 사람과의 만남은 필요합니다. 어떤 사람이라도 나의 존재를 귀하게 여기는 사람과의 교제는 새로운 힘을 더하여줍니다. 이름 없는 사람으로 스쳐 지나갈 수 있었지만, 특별한 계기는 '나와 너'의 의미 있는 관계를 만들어줍니다.



짧은 인사지만 마음을 다하면 그것이 우리만은 사건이 될 수도 있습니다. 작은 배려의 몸짓과 한 마디가 한 사람을 살리는 크나큰 힘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거창한 것을 기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외적인 조건보다도 중심과 존재를 보고자 하는 마음을 기대합니다.



하지만 어느새 힘겹고 각박한 세상에서 휩쓸리다 보면, 우리 또한 거칠어지기 일쑤입니다. 내면보다는 외형이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사회적인 시선으로 사람을 재단하기도 합니다. 한 사람으로 대하기보다 여러 명 중에 하나 정도로 가벼이 여길 때가 있습니다.



『푸른 개』의 저자인 나자(Nadja)는 짧은 동화를 통해 묵직한 울림과 통찰을 던져줍니다. 가장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정작 그 사람의 마음속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요. 가장 귀하다고 '말'은 하지만, 우리의 행동은 상대방의 기대에 한참 미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아주 조그마한 바람인데 말입니다.



주인공인 샤를로뜨는 커다란 개가 자기에게 왔을 때 작은 환대를 베풀어줍니다. 진심 어린 눈빛으로 불쌍히 여깁니다. 개를 쓰다듬고 초코빵을 나누어 먹습니다. 샤를로뜨는 푸른 개에게 아무것도 기대한 바가 없습니다. 그저 불쌍히 여기며, 자기가 가진 것을 나누어줍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만남이 주는 유익을 생각합니다. 어떤 영향을 받을 것인지, 우리에게 유의미한지를 묻습니다. 이 책에서 엄마가 그러합니다. 푸른 개는 더럽고 위험하다고 말합니다. 엄마는 아이를 위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아이가 진정 원했던 것은 편안하고 즐거운 관계입니다.



모든 것을 통제하고 부정한다면 진정한 관계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최소한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요청하기 위해서는 책임지는 자세라도 있어야 합니다. 상대방의 안위를 위한 말이나 행동이라고 가정한다면 이후에 그에 합당한 책임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샤를로뜨에게 있어 엄마는 함께 있어 주는 존재는 아니었습니다. 산딸기를 따기 위해 숲속에 혼자 보내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모습처럼 말입니다. 아이의 슬픔 때문에 교외에 나왔는데, 정작 아이와 함께 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이중성입니다. 말이나 생각은 때로 참으로 교묘하고 허무합니다.



샤를로뜨를 어둠과 악, 위험으로부터 지켜주는 대상은 부모가 아닌 그 개였습니다. 푸른 개는 따뜻하게 불을 피워줍니다. 함께 있어 줍니다. 자신의 목숨을 걸고 악과 대항합니다. 아이가 아무것도 모른 채 평온하게 잠을 자고 있을 때, 푸른 개는 밤을 새워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어 아이를 지킵니다.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던 아빠는 단 한마디만 합니다. "(개의) 이름을 뭐라고 할까?" 엄마가 아이를 다그칠 때도, 아이의 슬픔을 자신의 방식으로 풀어주려 할 때도 아빠는 이 책에서 부재한 것처럼 그려집니다. 눈빛이 전혀 보이지 않는 그림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단 한순간 아빠는 의미 있는 질문을 던집니다. 그때야 아빠의 눈빛은 따뜻하게 개를 향합니다. 나와 네가 관계를 맺는 순간입니다. 아이에게만 의미 있던 푸른 개는 이제 이 가족들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됩니다. 진정한 관계의 시작은 너의 이름을 물어보는 순간일지도 모릅니다.



가족의 일원이 된 푸른 개는 머리맡에서 샤를로뜨에게 말합니다. "맘 푹 놓고 자. 난 언제나 네 곁에 있을 거야." 그러고 보니 마음을 푹 놓고 잔 적이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습니다. 늘 스트레스나 분노, 의심과 염려가 우리를 불안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듣고 싶었던 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항상 너 옆에 있어줄게." 어려움과 고난의 순간, 세상은 무채색으로 변하는 듯합니다. 모든 것이 의미를 잃어버립니다. 그때 단지 옆에 있어 주는 존재는 우리를 버티게 하는 힘입니다. 돌이켜보면 그가 힘들 때 마음 모아 그 옆에 있어주기만 했는데 말이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