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한다는 걸 느낄 때는 니체의 글을 볼 때보다 미스터 빅의 오래된 노래를 들을 때가 나는 존재한다고 느낀다. 틴에이저, 십 대에 덕질의 문을 열게 한 밴드 중 한 밴드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친구도 몇 없었지만 시끄러운 헤비메탈을 듣고 난 뒤부터는 더욱더 친구들이 없었다. 그래도 취미가 비슷한 인간들은 어디에나 꼭 있기 마련이라 먼지 같은 애들과 메탈밴드들의 소식을 주고받으며 이야기를 하며 보냈던 추억 때문인지 오래된 노래를 들으면 오래된 책을 읽을 때보다 존재라는 것에 좀 더 밀착되는 것 같다. 그래서 노래는 사라지지 않는구나, 없어질 수 없구나 같은 쓸데없는 생각을 한다.


사실 스웨이드, 엑스제팬의 히데, 라디오헤드나 곤센로즈, 메가데스, 본조비, 메탈리카가 나의 의식 한 구석에 뿌리를 내리고 단단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서 여타 포이즌, 뎀 양키즈, 파이어 하우스나 미스터 빅이 의식의 자리에 들어오기는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스터 빅의 말랑한 곡들이 아닌 가차가 폭주하는 듯한 노래들은 내내 듣고 싶어서 앨범을 마구마구 돌려서 들었다. 요컨대 데디 부라더 러버 리럴 보이 같은 곡은 잔상처럼 내내 따라다녔다.


무엇보다 케이트 블란쳇을 떠올리게 하는 소녀소년한 얼굴의 애릭 마틴이 내지를 때 나오는 그 허어스이키한 보이스는 넘나 매력적이었다. 게다가 드릴 공수 연주를 선보였다. 우리끼리는 꽤나 회자되는 이야기였다.


이 음악이라는 게 너무나 기묘해서 술을 마시고(술 안 마신 지 너무 오래되었지만) 미스터 빅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몸이 붕 떠서 엑설런트 어드벤처처럼 과거로 기가 막히게 도달해서 미스터 빅의 음악을 들으며 몸이 부서져라 폴더폰처럼 반으로 접었다 폈다 하고 있는 주옥같은 상황이 펼쳐진다.


기묘한 일이지만 미스터 빅은 여자애들에게도 인기가 많았다. 잘생긴 존 본조비보다 더 존잘인 포이즌보다 미스터 빅이 인기가 좋았다. 당연하게도 애릭 마틴의 얼굴과 서타일 때문이었다. 물론 모든 여자들에게 인기가 있었다는 건 아니겠지만 말이다.


이런 스타일이 요즘에 다시 유행하는 거 같다. 뉴진스가 일단 온통 그 붐에 불을 붙였다. 일전에 본 겨울연가의 준땅이가 민형이 되었을 때 그 청바지를 요즘 여기저기서 입고 다니데.


미스터 빅 같은 밴드를 LA 메탈이라고 하는데 헤비메탈보다 좀 말랑말랑하다고 해서 편애를 받았지만 노래들이 아주 좋다. 노래가 좋지 않은데 LA 메탈이 인기가 많을 수가 있나.


그러니까 미스터 빅 같은 밴드는 강력한 헤비 한 사운드뿐만 아니라 팝 발라드까지 다 어울리는 밴드다. 유튜브를 찾아보면 무대 매너까지 굉장히 좋다네. 추억팔이는 존재를 느낄 수 있어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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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진동 집에는 친구 허준, 정근양이 거의 매일 놀러 오다시피 하였다. 백석을 포함해 이 세 사람이 늘 붙어 다니는 걸 보고 자야는 이렇게 말했다.


"세 분은 さんばがらす 같아요"


이 말은 세 마리의 까마귀, 즉 '삼우오'를 일본 말로 표현한 것인데, 매우 절친한 친구 삼총사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청진동 집에는 함대훈과 아동문학가 방정환, 영화감독 박기채도 가끔씩 들렀다. 이 무렵 이상은 종로 우미관 뒤편에서 기생 금홍과 살림을 차려 동거를 하고 있었다. 자야는 내 사랑 백석에서 남신주의 유동 박시봉방에 나오는 아내와 같이 갈던 집이 바로 청진동 집이라고 회고했다. 하지만 백석에게 자야는 아내보다 연인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 내 사랑 백석 중에서


당시에 백석은 방응모의 지원을 받아 이강섭, 문동표, 정근양 등과 함께 당시 일본에서 가장 학비가 비싸다는 아오야마가쿠인 영어 사범과에 다닐 수가 있었다. 방응모는 일제강점기 조선일보 사장이었다. 9대 조선일보 사주를 역임했다. 친일 반민족행위자로 알려져 있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처음에는 만해에게 독립자금을 대주는 등 반일이었는데 일본의 총기사업에 참여하면서 친일언론사가 되었다고 나는 알고 있는데 확실하지 않으니 궁금한 사람은 찾아보기 바람.


자야가 마지막 순간까지 쓴 에세이 ‘내 사랑 백석’은 소설에 가까운 형식이다. 두 사람의 사랑이 절절하며 애틋하고 몹시 사랑스럽다. 백석은 자야를 사랑할 때 빛나는 시가 나왔던 것 같다. 백석이 좋아한 릴케 역시 그랬다. 릴케도 연인 루(살로메)를 사랑했을 때 가장 찬란한 시가 나왔다. 릴케는 루가 아니면 죽음을 선택할 정도로 루를 사랑했다. 루를 사랑하려면 경쟁 상대가 만만찮았다. 신을 죽여 버린 니체도, 정신분석학의 대가 프로이트까지. 물론 프로이트는 릴케와 헤어진 후 만났지만. 루는 릴케보다 14살 누나였다.


보들레르 역시 흑백혼혈 잔 뒤발을 사랑할 때 ‘악의 꽃’ 중 ‘레테’를 써냈다. 이 시는 사람을 중독시켜 죽음으로 이끈다 하여 프랑스에서 금지시키시도 했다. 보들레르는 벌금형을 선고받고 시 6편을 삭제하게 된다. 보들레르의 시는 현재의 20대 문학도들까지 가장 사랑하는 시로 칭송받고 있다. 단테 역시 베아트리체를 만났을 때, 또는 그녀와 이야기를 하거나 그녀를 떠올릴 때 찬란한 글이 나왔다.


사랑이란 이토록 위대하고 위대하고 정말 위대하여라. 였다. 사랑은 한 단어로 충분한데 한 문장으로 모자라며 한 권의 책으로는 절대 설명할 수 없는 기묘하고 이상한 관념인 것이다. 백석과 자야는 이 기묘하고 이상한 감정의 사랑을 깊고 깊게 했다.


자야는 이 에세이를 다 쓰고 난 후 죽음을 맞이했다. 자야는 대원각을 법정에게 조건 없이 건네준다. 무소유를 읽고 감명받은 자야는 법정을 찾아가 대원각 요정의 터 7천 평과 40여 채의 건물을 시주하니 절을 세워달라고 했다. 법정은 거절했으나, 10년이 지난 후 1995년에 와서 결국 자야의 간청을 받아들여 대한불교조계종 송광사의 말사로 등록하여 길상사를 세운다. 이 때문에 또 많은 사람들이 법정을 무소유를 주장하더니 돈을 받아 처먹었다며 욕을 하기도 했다. 대원각은 길상사가 되었고 지금 많은 사람들에게 개방이 되었다. 자야는 권번 출신으로 16살에 진향이라는 이름의 기생이 되었다. 자야는 문학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고 대원각의 권번출신들을 전부 공부를 시킨 것으로도 유명하다.


말년에 자야의 백석과의 사랑 이야기를 듣고 백석 전문가들 중에는 그 말이 사실이 아니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백석 연구가 송준은 살아생전 김영한(김자야의 본명) 여사를 인터뷰했는데 백석이 유명해지니 관계를 인위적으로 만들기 위해 그런 것이 아닐까? 하고 추측을 했다. 또 백석 전문가 이자 영남대 교수 이동순은 백색과 김영한의 사랑은 실제가 아니며, 조작되고 윤색된 이야기라고 기고했다.


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백석은 누구나 다 알고 있고, 백석과 자야의 이야기도 여기저기서 보고 들어서 알고 있는 사람도 많다. 물론 백석과의 관계는 백 퍼센트 자야의 주장이고 객관적인 근거는 없다. 지금 현재 이 모든 것들을 받아들이는 건 순전히 독자의 몫이다. 우리는 늘 선택의 문턱에서 고민을 한다. 하지만 선택은 해야 하고 거기에 따라오는 결과는 자신의 몫이자 감당해야 한다. 어떻든 소설만큼 재미있는 에세이 ‘내 사랑 백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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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소설 속 무진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여귀가 뿜어내 놓은 듯한 안개가 가득했다. 나는 안개라 생각하고 싶지만 이는 연무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미세먼지가 연일 많았고, 오전이 아니라 밤이며 온전한 수증기 보다 연기나 먼지 같은 미세한 입자가 가득 한 연무에 가깝다고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연무가 낀 거리가 딱 1킬로미터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거기서 벗어나면 그저 일반적인 밤의 세계였다. 안개라면 좀 더 확장된 거리, 좀 더 이른 오전이나, 먼지가 많지 않을 때 끼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연무보다는 안개라는 말이 훨씬 좋기에 안개라고 부르고 싶다. 강변을 조깅하는데 지금까지 살면서 이렇게 안개가 가득한 광경은 처음이었다. 신기했다. 사진으로는 표현되지 못하지만 평소에 보이는 거리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안으로, 안으로 계속 들어가면 꼭 평행하는 다른 세계로 빠져버릴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거의 매일 이 코스를 일정한 시간 달리지만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안개는 처음이었다. 안갯속을 달린다는 건 구름 위를 걷는 기분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안갯속에 수증기가 가득 배어 있어서 숨을 쉬면 폐 속으로 안개가 가득가득 들어왔다.


폐는 안개를 마시고 새로운 숨을 내뿜는다. 그건 시간이었다. 나는 시간을 내뿜고 있는 것이다. 빛으로 색이 바래듯 시간으로 기억이 바랜다. 그럴 수밖에 없었노라고. 시간이란 약의 성분은 망각과 포기인지도 몰라. 얼마나 아팠는지 잊어버리고, 흉터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 – 황경신의 말처럼 나의 시간은 이렇게 안개처럼 뿌옇게 바래져 있다.

달리 말하자면 나는 시간과 함께 뿌옇게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내 몸이 점점 뿌옇게 변할수록 나는 좀 더 나다워지는 것이다. 뿌옇지만, 흐릿하지만 흥미로운 내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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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 바닷가이니 가끔 바닷가를 조깅할 때가 있다. 평소에는 일하는 곳 주위를 조깅하는데 바다와 좀 떨어져 있고 강변이다. 그러다가 집 근처 바닷가를 조깅할 때가 있는데 바닷가에 붙어 있는 여러 군데의 편의점 중에 바다가 제일 잘 보이는 편의점 테라스에 앉아서 컵라면을 먹는다.


우리동네 풍경 https://brunch.co.kr/@drillmasteer/2437#comment


컵라면만 먹기에 뭔가 모자란다 싶어서 칼스버그 캔맥주도 사고, 무엇 때문인지 방울토마토도 구입했다. 방울토마토는 왜 구입했는지 모르겠다. 내가 빨간색을 좋아해서 그랬는지 토마토가 먹고 싶었는지. 방울토마토를 대충 씻은 다음 아작아작 깨물어 먹어도 양이 많아서 한 열 개 정도 컵라면에 넣었다.


칼스버그도 4캔이나 사버렸다. 조깅 후 먹기에는 뭔가 헤비헤비하다. 홀가분하게 조깅으로 집에 들어와야 하는데 배는 배대로 무겁고, 손은 손대로 자유롭지 못하다. 남은 캔맥주와 남은 방울토마토까지 들고 와야 하니. 왜 이렇게 귀찮게 살지? 나는 왜 그랬을까 싶다가도 뭐 어쩌다가 그런 건데, 마 이까.


사실 맛만으로 따지면 토마토는 가열해서 먹는 게 훨씬 맛있다. 매운 라면을 끓여 먹을 때 큰 토마토를 왕왕 넣어서 먹다 보니 컵라면 안에도 방울토마토를 넣어 버렸다. 우리나라 토마토는 집구석에서 곱게 자란 도련님 같은 분위기다. 그러나 토마토의 본고장, 토마토 축제가 열리고 상대방에게 토마토를 집어던져 핀지 토마톤지 구분도 안 되게 하는 주옥같은 상황에서도 즐거운 이태리의 토마토는 불타오르는 성욕을 주체할 수 없는 소년기를 갓 넘긴 청춘의 느낌이다.


얼마 전에 영화 ‘탐정 홍길동’을 봤다. 이 영화는 저짝 천조국의 ‘씬시티’를 옮겨 놓은 듯했지만 나름 재미있다. 그 재미 속에는 말순이가 있었다. 말순이 덕분에 영화가 재미있게 보였다. 나만 그렇게 생각하겠지만 말순이는 어린이 멜리사 맥카시의 모습 같았다. 멜리사 맥카시가 ‘스파이’에 나왔을 때 스파이로 분장을 해야 하는데, 풍성한 아줌마, 캐롤 젠킨스로 신분세탁을 해야 한다고 했을 때 실망하는 얼굴이 말순이의 표정과 비슷했다. 이게 무슨 말인가 방군가.


홍길동에서 김성균의 안경이 반짝이는 건 ‘씬시티 2’에서  에바 그린을 찾아간 유부남이었던 모트의 안경이 반짝이는 것을 떠올리게 했다. 에바 그린은 정말 여러 장르, 모든 장르물에 어울리는 배우 같다. 특히 에바 그린의 목소리가 악역에도 어울렸다. 내가 뭘 안다고 큭큭큭. 아무튼 많은 배우들이 씬시티 2에 나오는데(쓰고 보니 너무 당연한 얘기 아님) 레이디 가가도 나온다. 무슨 역으로 나왔을까요.


씬시티에서 조니 역으로 나오는 조셉 고든 레빗을 보면 카세 료가 생각난다. 역시 나만 그런 것이겠지만. 카세 료는 재벌집 아들로 연기를 재미로 할 것 같은데 또 그렇지는 않다. 연예인이 아니라 배우라는 느낌이 강하다. 스님 역을 해도, 질투에 불타는 지질한 놈팡이 역을 해도, 은행원을 해도, 그저 그렇게 태어난 것 같다. 많은 성공한 배우들이 한결 같이 생활고에 시달리다 절망 끝에 다다르면 연기가 꽃처럼 피어난다고 하지만 미래에 대한 불안함에 쫓기지 않아서 어쩌면 연기를 잘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연기는 타고나는 것도 있겠지만 동선이나 행동, 상황 모두가 과학이라 정교하게 이루어져 노력 또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은 타고 나는 경우가 거의 다라고 해도 무방하다, 고 생각한다. 노력으로 어느 선까지는 글을 적을 수 있겠지만 그 너머의 글은 그 사람이 타고나야 하는 것 같다. 타고났는데 어떤 식으로든 방향을 잡지 못하니까 노력을 통해서 발가락 끝 세포까지 글을 쓰는 방법을 알게 되어서 날아다닐 수 있게 된다. 또 타고났는데도 노력 또 노력을 하는 사람도 있다.


베토벤이다. 베토벤이 그랬다. 2층에 살고 있었는데 비가 오고 난 후 계속 1층 천장으로 물이 떨어졌다. 집주인이 빡이 돌아서 올라가 보니 피아노를 치다가 손에 통증이 오면 받아놓은 빗물에 손을 담가 통증을 완화시키면서 피아노를 연습하고 있었다. 집주인이 그대로 계단을 타고 내려갔다고 한다. 천재적으로 타고난 베토벤도 통증을 참아가며 연습에 연습, 노력에 노력을 했다. 베토벤은 임현정, 쇼팽은 조성진, 리스트는 백건우로 정리 끝. 비발디 사계 겨울은 주미강!으로 정리한다.


빌리 조얼도 그랬다. 피아노 맨이 터지기 전까지 그는 모든 게 실패였다. 실패하는 게 자신의 실력이라고 생각한 그였지만 음악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생활고에 시달리던 그는 결국 한 바에서 피아노를 치며 파트타임으로 노래를 불렀다. 그 이야기를 만든 게 ‘피아노 맨’이었다. 이상하지만, 그래서 그런지 그 노래를 듣고 있으면 어떤 지점에서 코끝이 시큰거린다. 오늘의 맥락 빻은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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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성이는 어머니가 새어머니였다. 그렇지만 새어머니라고 해서 동화에서처럼 버림을 받거나 사이가 나쁘거나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새어머니와 희성이는 사이가 좋았다. 새어머니와 희성이는 나이차이가 그렇게 많이 나지도 않았다.

희성이는 형과 누나가 있고 아버지는 동네에서 선망받는 철학관을 운영하고 있었다. 희성이는 새어머니와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어린 동생을 너무나 좋아했다. 아주 귀여운 꼬마였다. 우리도 저렇게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어린 동생이 있다면 마구마구 귀여워해주고 싶었다.

희성이는 늘 밝은 모습인데 그 안에 서늘함 같은 게 있었다. 희성이는 가끔 친구들을 집으로 놀러 오게 했다. 우리는 보통 친구들 집에 놀러 가서 라면 끓여 먹고 부모님 몰래 소주나 맥주를 홀짝거렸다. 친구들의 방은 거의 나의 방처럼 생각했다. 그런데 희성이네 집은 다른 집에 비해 한문이 새겨진 액자도 많고, 가지런하고 고고한 장식품 때문에 엄숙해야만 할 분위기가 있었다.

희성이는 우리를 불러 자기 방에서 술을 마시지 않고 꼭 거실에 붙어 있는 아버지의 철학관 사무실에서 술을 마셨다. 사람들이 대기하는 공간에서 친구들이 모여 앉아서 술을 마셨지만 왜 그런지 다른 친구들 집처럼 깔깔거리며 마구 떠들며 놀 수 없는 분위기였다. 희성이는 아직 십 대였고 나름대로 아버지에게 저항을 하고 있었다.

희성이는 가끔 우리를 친 어머니에게도 데리고 갔다. 희성이 어머니는 곱창전골 집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희성이와 가면 어머니는 친구들 왔다며 맛있게 곱창전골을 끓여 주었다. 붉은 양념이 지글지글 끓어오르는 가운데 그 속의 곱이 가득한 곱창이 잘 익어 갔다. 맛있는 냄새가 풍겼다. 희성이는 어머니 앞에서는 무뚝뚝했다. 되려 우리가 민망할 정도였다. 이게 진짜 곱창전골 맛이야. 라며 고개를 숙이고 자작자작 끓어오르는 곱창전골을 퍼먹었다.

곱창전골은 정말 밥도둑이다. 물론 술안주로도 좋지만 하얀 밥 위에 퍼지는 붉은 양념의 곱창전골은 그야말로 위장을 쥐어짠다. 한 입 떠서 입안에 넣었을 때 톡 터지는 곱의 맛이란. 고등학생 주제에 너무나 일찍 곱창의 맛을 알아버렸다.

요즘은 곱창전골 집에는 거의 가지 않는다. 집에서 가끔 해 먹는 정도다. 집에서 해 먹는 곱창전골은 전문점만큼 맛은 없다. 그러나 곱창이 아닌가. 곱창이 들어가면 어지간하면 전골은 막 끓여도 맛있다. 집에서 해 먹는 전골의 장점은 상상력의 산물이 된다는 것이다. 전골 속에 이것저것 막 넣어서 끓일 수 있다. 단점은 맛을 보장하지 못한다.

야! 곱창전골에 왜 만두야!

그럼 만두는 내가 먹을게.

그렇지만 바닥에 깔린 곱창을 먹기 전 눈에 보이는 두부와 만두를 먼저 건져 먹어도 먹을 만하다. 전골의 진짜 단점은 천천히 먹게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뜨거울 때 후후 불어 빨리 먹게 된다. 그래야 좀 더 맛있고, 좀 더 전골답게 먹을 수 있다. 그 단점이 장점이기도 하다. 그나저나 희성이는 잘 지내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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