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 - 13세기에서 21세기까지 그림을 통해 읽는 독서의 역사
슈테판 볼만 지음, 조이한.김정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1월
구판절판


독서 능력과 더불어 개인적 친밀함이라는 새로운 종류의 행동 유형이 생겨났는데, 그것은 교회와 세속 당국의 합법성을 지속적으로 위협하게 되었다. 그 당시 책을 읽을 수 있는 여자는 어떤 사람도 들어올 수 없는 자신만의 자유 공간을 획득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통해 독립적인 자존심 또한 얻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밖에도 세상에 대한 자기 나름의 상을 만들어냈으며, 그것은 출생과 전통으로 매개된 모습이나 남자가 보는 모습과는 분명코 일치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이 가부장적 후견에서 여자가 해방된 것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들판을 향해 난 문을 활짝 열어놓았다. (17세기무렵)-27쪽

케르테츠의 사진에서는 세계의 모든 장소에서 가능한 상황이나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상황에서도 책은 읽혀진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독자는 항상 아주 특별한 - '선택된'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싶은 유혹이 들 정도다 - 개인이다. 케르테츠의 카메라는 책 읽는 사람을 주변 세계로부터 고립시킨다. 독서를 위해서 그리고 독서 과정을 통해서 스스로를 주변 세계와 격리시키는 것처럼. 고독한 대중 속에서 그는 내면으로 침잠해가는 개인이고, 외면을 향한 소비자 무리에서 내면으로 시선을 돌린 게으름뱅이다. 시선의 방향을 바꾸지 않은 채로 그는 책이나 신문을 쳐다보고, 접근할 수 없을 것 같은 인상을 관찰자에게 준다. -44쪽

독서는 유쾌한 고립 행위다. 책을 읽으면서 우리는 예의 바르게 자신을 접근하기 힘든 존재로 만든다. 외부 사람을 외한 것이 아닌 이 같은 상태를 보여주는 것이 아마도 화가들이 오래 전부터 책 읽는 사람을 그리는 것에서 매력적이라고 느꼈던 점일 것이다. -47쪽

조용하게 책을 읽는 여인은 책고 동맹을 맺고, 이런 동맹은 사회 그리고 가장 가까운 공동체의 통제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그녀는 오직 자신만이 드나들 수 있는 자유로운 공간을 만들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자의식을 획득하게 된다. 이제 그녀는 전통적인 모습이나 남자의 세계상과 일치하지 않는 자기 나름의 세계상을 만들기 시작했다. -69쪽

개인의 감수성을 가꾸는 일에서 중심적 위치가 독서에 부여되었다. 독서는 종이에 옮겨진 다른 사람의 감정 속으로 자신을 옮겨놓는 것을 의미하며, 자신의 감정적 가능성의 지평을 탐구하고 넓히는 것을 의미한다. -125쪽

열광적으로 책을 읽는 사람들은 독서와 삶을 동일시하는 유혹에 아주 쉽게 그리고 기꺼이 굴복한다. .......... 책 읽기는 삶을 살고 견디도록 이끌고 고무하는 것이다. 독서를 삶과 동일한 것으로 착각하는 것은 책에서 치유력을 빼앗는 것이며 열정에서 고통의 원인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143쪽

독서는 일종의 정식 만찬 사이에 낀 간식 같은 것이다. 현실 속 삶의 곡예사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사람들이 항상 커다란 장면만 기다려야 하는 것은 아니다. 짧은 중간 휴식 시간에도 종종 세상의 취미와 무게에서 생겨난 많은 것이 숨겨져 있다. 그것이 사람들이 삶을 감지하는 순간이다. -149쪽

...... 그녀는 내용에 아주 집중해 있으며 자신과 책 사이의 거리를 되도록이면 줄이려고 하는 것 같다. 책 읽는 사람과 책이 하나로 녹아드는 것, 그들 사이에는 더 이상 어떤 빈 자리도 없다. 이렇게 책을 읽는 여자는 작은 행복을 이루기 위해서 편안한 의자와 등불 그리고 마음을 사로잡는 책만 있으면 된다.
(제임스 애벗 맥닐 휘슬러의 '등잔불 옆에서 책 읽기',1858년)-162쪽

이 평범한 중년의 우수에 찬 현명한 부인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책을 읽는 것은 정신적 삶으로 넘어가는 문지방을 밝고 서 있는 거야. 책은 우리를 정신적 삶으로 안내를 하지. 하지만 독서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야.'
-고흐의 '아를의 여인(지누 부인), 1888년--170쪽

독서가 책에 쓰인 것을 그대로 믿고, 책과 현실을 똑같은 것으로 생각하는 순간부터 책은 더 이상 인간의 삶을 풍부하게 만드는 영혼의 양식이 아니라 오히려 삶에 남은 마지막 광채조차 빼앗아가 삶을 초라한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책은 삶이라는 험난한 항로에서 길을 안내하는 나침반의 기능을 수행하는 대신에 오히려 빠져나올 수 없는 미로 속으로 사람들을 이끌어간다. 넘쳐나는 책 사태 속에서 올바른 책을 선택하는 것은 좋은 책을 읽기 위해서 거쳐야만 하는 필수 과정이다. 그리고 자신에게 맞는 책을 선택하는 것은 자아를 찾아가는 어려운 탐사 여행과 같은 것이 되었다. -182쪽

즉각적이고 공감각적으로 정보를 제공하는 시각 매체가 인간의 지적, 정서적 활동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대중 매체 시대에, 구시대를 표상하는 인쇄 매체인 책을 읽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거의 모든 사람이 이 같은 질문을 한 번쯤은 던져보았을 것이다. 이렇게 변화한 환경 속에서 책을 읽는다는 것은 어쩌면 빠르게 지나가는 삶의 흐름에서 한 발자국 벗어나 세상을 바라보고 정신적 안정을 주는 고정된 발판을 찾으려는 내면적 욕구의 발로일지도 모른다. 마치 특정한 냄새로 행복했던 어린 시절을 기억하게 된 중년 남자처럼, 파편화한 세계에 살고 있는 개인은 책을 통해 이전의 온전했던 삶, 행복했던 지난 시절의 기억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187쪽

책을 읽는 사람이 원하는 것은 어쩌면 세상과 소통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오해려 책을 읽음으로써 자신의 주변에 보이지 않는 벽을 쌓고 세상의 번잡함에서 벗어난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려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책을 통해 얻게 된 고독의 순간은 오래 지속될 수 없다. 고독하게 책을 읽는 사람을 빨아들일 정도로 강한 궤적을 남기면서 삶은 독자의 주위를 지나가고, 책으로 이루어진 보이지 않는 성벽은 삶의 흡인력을 막아낼 정도로 견고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188쪽

마르케는 화가로서 자신은 삶을 추구한다고 말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그림이 아름답거나 흉하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린이 지닌 진정성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는 아름다운 경전 속에서 끄집어낸 듯한 자세의 모델이 아니고, 화가(그리고 관찰자)의 존재를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는 듯 독서에 몰두한 모습의 모델을 보여주는 것이다.
- 알베르 마르케, 서 있는 여인의 나체화, 1910년-206쪽

독서의 보호를 받으면서 우리는 회복될 수 있는 것이다. -228쪽

책 읽는 여자를 과소평가하지 마라! 그녀들은 좀더 영리해지는 것만이 아니다. 또 단지 이기적 즐거움을 누리게 되는 것만이 아니다. 그녀들은 혼자서도 아주 잘 지낼 수 있게 될 것이다. 혼자 있는 것, 자신의 환상과 작가의 환상만이 만나게 되는 것이 독서가 주는 커다란 기쁨 중의 하나다. -263쪽

독서에서 자신감이 자라나고, 자신감에서 자신의 생각에 대한 용기가 자라난다. 남자는 생각하는 여자를 사랑하지 않는다. 고트프리트 벤은 한 편지에서 말한다. "남자는 여자를 통해서 두뇌가 아니라, 전혀 다른 곳이 자극받기를 원한다." 우리 여자는 그것을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책을 읽는다. 나이가 들수록 여자에겐 때때로 책이 남자보다 더 중요하다. 우리는 우리의 심장이 감동받기를 원한다. 시인은 우리를 감동시킨다. -269쪽

"사람은 삶을 통해서 배우며, 독서를 통해서 배운다."라고 귄터데 브로인은 말한다. "그리고 문학 작품을 읽는 것은 항상 다른 사람의 삶에 대한 통찰력을 주기 때문에 사람들은 삶에 대해서 직접 경험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알게 된다. 독서를 하면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삶도 함께 사는 것이다." 나는 그 말을 보충해서 말하겠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사랑을 느끼고 함께 사랑한다'고. -27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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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영화를 캐스팅하다 - Philosophy + Film
이왕주 지음 / 효형출판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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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오해는 하지 말자. 포스트모더니즘은 문화 자체의 틀 바깥에 나서서 이 모든 규칙, 질서, 원리 등을 깡그리 부수고 묵살하고 위반하라고 선동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것에는 그 바깥이 있음을 깨우쳐주려는 것이며, 그 바깥으로 나서려는 의지와 안의 것들에 맞서려는 위반의 정열을 부추기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것은 어쩌면 해방된 영혼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그래서 자신의 삶을 풍요하게 살기 위해서,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 삶의 주인이 되어 살아가기 위해서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전략일지 모른다. -37쪽

도시든 시골이든 결국 아이들은 이 바깥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우리가 일하고, 쉬고, 타인과 만나고 헤어지고, 상승하고 몰락하는 곳은 모니터 속의 '바깥'이 아니라 목숨을 안고 뒹구는 바로 이 바깥이기 때문이다. 거기서 뛰어다니며 넘어져서 상처도 입어보고, 흐르는 피를 손바닥으로 문지르며 버티는 법을 익혀야 한다. 미뤄봐야 소용없다. 손 안의 마우스처럼 마음대로 조작할 수 없는 저 냉엄한 바깥 세계와 마침내 화해할 때가 오고야 만다. -40쪽

우리가 바깥에 나섰을 때 먼저 해야 하는 일은 '길을 묻는 것'이다. 오래 헤매다가 지쳐버리는 것은 바깥에서의 현명한 처신이 아니다. 물론 우리가 길을 물을 때, 언제나 원하는 답을 얻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답을 얻지 못할 때조차 그런 실패를 통해 얻는 게 있다. 그러니 우리가 바깥에 나설 때는 겸손하게 길을 묻는 태도부터 배워야 한다.
(중략)
바깥은 원하는 모든 것을 갖추고 우리를 기다리는 곳이 아니다. 때로 "여긴 당신이 찾는 게 없다"는 말을 듣고 힘없이 발길을 돌려야 할 때가 있으리라. 그러나 그런 순간에도 이제 다시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묻기를 멈추지 않는 게 중요하다. -44쪽

사람이 나이 든다는 것은 바깥들과 만나는 기회들이 점점 많아진다는 것이고, 철이 든다는 것은 그렇게 만나게 되는 바깥의 낯선 것들을 점점 익숙하게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성숙은 익은 감이 나무에서 떨어지듯 시간이 가면 저절로 이뤄지는 일이 아니다. 어떻게든 싸워서만 얻을 수 있는 전리품이다.
그러니 먼저 바깥으로 나서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마을로 가서 이웃을 살피고, 또래들을 만나 자신을 돌아보고, 바깥 자체와 대화하고 소통하려 애써야 하는 것이다. (중략) 소통의 변함없는 비결은 배려, 사랑, 헌신이다. 얘들아, 바깥은 아주 가까이 있다. 컴퓨터 스위치를 끄로 창문만이라도 활짝 열어보렴. 창 밖에 서 있는 그 멋진 손님, 그게 바깥이다. -50쪽

어쨌든 진정으로 자유롭고 창조적인 주체가 되고자 한다면 우리는 타인에 대한 '판단중지' 상태를 버텨낼 수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하자면 타인을 진정으로 이해하려면 우리는 서로에 대해 조금 더 관대해져야 한다는 말이다. -60쪽

근본적인 불행은 변신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의식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61쪽

무엇인가 되고자 할 때 오직 하나 가능한 길은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다.
(중략)
내가 여기서 '자신이 되라'고 한 것은 자기 존재를 긍정하라는 말 이외의 다른 게 아니다.
(중략)
자신의 존재, 자기의 현실을 외면한 채, 타자와의 불가능한 동화만을 꿈꾸며 시간과 기력을 헛되이 소모하고 있지는 않은가. 나는 내 존재의 가능성을 충분히 헤아리며 살아가고 있는가. 나는 나 자신으로 당당히 남아 있는가. -70쪽

내가 이 세상과 진정으로 화해하기 위해 지금 멈춰야 하는 것은 무엇이고 이제 시작해야 하는 것은 또 무엇인가. -105쪽

그런데도 우리는 사랑한다고 믿으면서 선택 앞에서 망설이고,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소유 앞에서 주저한다. -114쪽

시선이 비켜서면 마음도 비켜서게 마련이다. -124쪽

사람들은 '놓쳐버린 열차의 아름다움'에 마음이 쏠려 있거나 '새로 도착하게 될 열차에 대한 상상'으로 들떠 있다. 그래서 자신이 서 있는 현재라는 시간의 플랫폼을 바라보지 못하고, 역사 뒤로 늘어선 나무, 그곳에 불어오는 바람, 쏟아지는 햇살, 날아오르는 이름 모를 벌레들을 보지 못한다. '이미 없는 열차'와 '아직 없는 열차' 때문에 현재 있는 플랫폼과 역사의 풍경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없는 것 때문에 있는 것을 놓치는 셈이다. -135쪽

기술은 살아남는 방편에 불과하다. 예술은 전혀 다른 것으로서, 그것은 살아가는 삶 자체다. (중략) 삶의 예술에 눈 뜨는 것 혹은 인간으로서 자신의 삶에 정직하고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이었다. -172쪽

춤은 고통과 권태와 피로로 부대끼는 삶이 생동하는 육체로써 다시금 싱그러운 긴장과 탄력을 회복하는 몸놀림이고, 대지와 하늘과 바람 속에서 내가 아직은 이토록 건강한 몸으로 살아있음을 자축하는 신명에 찬 몸동작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었다. -228쪽

조너선 리빙스턴만은 오직 나는 것 자체를 한없이 사랑해서 날았다. 낢을 사랑할 수 있었던 것은 먼저 자신이 갈매기임을 긍정했고 자신의 날개를 신뢰했으며 또한 그러한 날개로 날아다닐 저 무한한 공간을 받아들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조너선 갈매기의 낢이 어찌 단순한 날개짓이겠는가. 그것은 그대로 니체가 말하는 삶의 거룩한 긍정으로서의 춤이다. -233쪽

삶에 의미가 있다면 그것은 (중략) 본능적이고 단순하고 직접적인 의식이 섬세해지고 복잡한 성숙된 의식으로 변화해 가는 과정에 깃들어 있을 뿐이다. -276쪽

인생에는 모험 끝에 얻게 되는 보물 같은 것은 없다. 그 편력의 험난한 과정에서 다채롭고 풍요해지며 아름다워지는 삶밖에는. -288쪽

'글은 생각 없이 써야 한다.' 이 말은 이렇게 바꿔볼 수 있다. '글은 손으로 써야 한다.' 머리가 아니라 손이다. 이 때 손은 단순히 글쓰기를 수행하는 신체의 일부를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머리를 굴리느라 휘어져버리기 전에 솟구쳐오르는 언어들을 다침 없이 드러내주는 글쓰기의 진정한 주체다. 손이 머리에 복종하고 만다면 글에는 반드시 어떤 억지가 끼어들기 시작한다. 그러나 머리가 손에 복종하면 가슴에서 솟구치는 언어를 지킬 수 있다. 결국 머리 안에 손이 들어 있는 게 아니라 손 안에서 머리가 들어 있어야 한다. 생각 없이 쓰라는 말은 이런 뜻이다. -298쪽

이해 불가능한 것은 해석 불가능한 것이고 해석 불가능한 것은 허용 불가능한 것이다. -322쪽

사랑은 휴대전화를 눌러대거나 기도하거나 마술을 부리는 게 아니다. 상대를 위해 지금 당장 행동하는 것이다. -329쪽

결국 인식은 나를 알고 상대를 알고 나와 상대가 함께 얽힌 종횡의 맥락을 아는 것이다. 반성은 특히 그것을 흘러간 시간의 지평 위에 되려 놓고 보는 것이다. 인식과 반성이 결여될 때 우리의 사랑은 도구적 사랑, 쾌락적 사랑으로 굴러떨어질 위기에 시나브로 내몰린다. -3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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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쟁이와 모나리자 사계절 1318 문고 15
E. L. 코닉스버그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사계절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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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는 하느님이 아니었다. 맨 처음 만난 날 살라이는 그 사실을 알았고, 이제는 악마의 조수가 아니란 것도 알았다. 레오나르도는 하느님과 악마 사이에 존재하는 무엇이었다. 그것은 살라이도 마찬가지였다. 살라이라 불리는 잔 자코모 데 카프로티 또한 그런 존재였다. -21쪽

"축제란 번개 같은 거야. 번개는 과거도 없고, 미래도 없어. 아주 짧은 한순간, 온 세상을 확 밝히지. 그러고는 사라져 버려. 한순간의 느낌말고는 아무것도 남지 않아. 번개 그 자체는 후세 사람들이 손댈 여지가 없어. 야외극도 예술가한테 번개처럼, 격렬하고 무책임한 무엇처럼 시간을 자유롭게 누비고 다닐 기회를 준단다."-33쪽

레오나르도는 항상 미래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서 현재를 느긋하게 보내지 못했다. 살라이는 레오나르도 같은 천재는 항상 미래를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는, 자기는 천재가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여겼다. 그저 영리하고 재빠르기만 하면 되었다. 살라이의 삶은 언제나 '현재'들의 집합이었다. 결코 미래의 더 큰 행복을 위해 현재의 작은 행복을 포기하는 일 따위는 없었다. 살라이의 삶은 온통 축제이자 격렬한 번갯불이며, 르네상스 시대를 무책임하게 활보하는 것이었다. -34쪽

그러자 살라이는 공작 부인의 눈을 들여다보았고, 베아트리체도 살라이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그 순간 둘은 그 후로도 오랜 세월 동안 서로를 묶어 준 눈길을 나누었다. 서로의 눈 속에서 공감할 수 있는 뭔가를 발견한 것이다. 그것은 바로 순수한 장난기였다. 둘은 그렇게 서로를 바라보다가 스멀스멀 번지는 웃음을 못 이겨 눈의 초점을 잃었다. 다음 순간 살라이와 베아트리체는 아기의 첫 걸음마를 지켜보는 사람들처럼 나직하게 소리내어 웃었다. 상대방한테서 자신의 모습을 볼 때 나오는 웃음이었다. -66쪽

"맞아요, 레오나르도 선생. 그건 당신도 마찬가지겠죠. 하지만 내가 누구인지는 알지만 어떤 사람인지는 모르는 사람들한테 둘러싸여 찬사를 받는다고 해서 외로움을 이길 수 있을까요? 내 까무잡잡하고 못생긴 거죽과 그 위에 붙은 '공작 부인'이라는 칭호가 아닌 다른 것을 보아주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는데, 어떻게 외롭지 않겠어요? 내가 우리 언니처럼 금발 머리에 우아한 얼굴이라면, 사람들은 나의 내면까지 들여다보고 싶어하겠죠. 사람들은 이 칙칙한 포장지 안에서 화사한 색깔을 발견할 거예요. 무지개가 가진 모든 색깔의 색조 하나하나까지 볼 줄 아는 눈과 류트의 음 하나하나를 들을 줄 아는 귀를 발견할 거예요. 온갖 향기, 온갖 감촉, 온갖 맛에 대해 흥분하는 피를 발견할 거라구요."-69쪽

"마님은 용모가 수수하시군요."
그러고는 손에 든 베들레헴의 별꽃으로 눈을 돌렸다.
"이런 소용돌이꼴의 잎 속에서 참으로 수수한 꽃이 피었지요? 제가 연구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 소용돌이꼴의 잎들입니다. 마님께서도 수수한 꽃 같은 얼굴보다는 잎의 모양을 흥미롭게 가꾸는 게 어떨까요?"-70쪽

" 머지않아 네 친구 베아트리체는 우리 마음 속에서 과거가 완전히 묻히는 일은 결코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게다. 그리고 불행한 과거를 극복하는 길은 과거를 껴안고 살아가는 것뿐임을 깨달으려면 좀더 오랜 시간이 지나야겠지."
(중략)
"난 아니에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걸요. 난 그저 '옛날'은 옛날, 지금은 지금, 앞으로는 앞으로'라고 생각해요. 왜 베아트리체는 그렇게 못 하죠?"
레오나르도는 고개를 저었다.
"절대로 그렇게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단다. 과거의 고통 때문에 현재를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고, 또 어떤 사람들은 침묵과 교양으로 자신의 나쁜 기억들을 적당히 가리고 살아가지. 누구나 다 살라이가 될 수는 없는 거야."-104쪽

"레오나르도한테는 격렬함이 필요해. 모든 위대한 예술에는 그것이 필요하지. 섬광처럼 번쩍이면서 훌쩍 도약하는 것. 그 격렬한 요소를 작품에 불어넣는 예술가들도 있지만, 레오나르도는 그렇지 못해. 그 사람은 너무 자의식이 강하거든. 만일 어떤 중요한 고객이 중요한 주제에 대해 중요한 임무를 맡기면, 레오나르도는 자신의 직관을 모두 꽁꽁 묶어버린다고. 자신을 자유롭게 놓아 주지 않고 완벽해지려고 애쓰는 거야. 수도원 식당 벽화는 그 윤곽만 봐도 위대한 작품이 탄생할 기미가 보여. 그 작품을 볼 사람이야 가난한 수도사들같이 하찮은 사람들이니, 레오나르도는 정신적인 여유를 갖고서 신선하고 격렬한 요소들을 받아들인 거지. 살라이, 나는 레오나르도 선생이 작품 속에 격렬한 것, 무책임한 것들을 불어넣을 수 있도록 네가 도와주었으면 좋겠어."-112쪽

"나는 무도회에도 나가고 연극도 할 거야. 우리 아이들과 놀이도 할 거고. 나는 아주, 아주 명랑하게 지낼 거야. 두 번째로 밀려나도 아무렇지 않은 척할 거라구. 살라이, 그게 바로 내가 가장 잘 하는 거란다."-132쪽

다음 순간 살라이는 깨달았다. 베아트리체가 살아 있다면 바로 그 여인과 같은 모습이리라는 것을.
이 여인은 자신이 예쁘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 사실을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법을 터득한 사람이었다. 이 여인은 자신을 인정함으로써 깊고 은은한 아름다움을 갖게 된 사람이었다. 머릿속의 잣대로, 오직 자신의 잣대로 사람들을 바라보는 듯한 표정의 여인, 기쁨을 주는 법과 고통을 주는 법을 아는 여인, 인내하는 법을 아는 여인, 무수한 겹으로 감싸인 여인. -16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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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에서 10까지 사랑의 편지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4
수지 모건스턴 지음, 이정임 옮김 / 비룡소 / 2002년 4월
절판


할머니는 뭘 물어 보는 법이 없었다. 무릇 나날이란, 으레 일어나야 할 일들이 일어났다가 사라질 따름이다. 사람은 누구나 해야 할 일을 할 뿐이다. 그뿐이다. 그 이상은 없다. 한데 갑자기 어네스트가 그 이상을 간절히 원하는 것이다. 하긴 가끔은, 으레 일어나는 일들과 해야 하는 일들 이상의 사소한 무엇이라도 불러일으켜야만 할 때가 있는 법이다. -43쪽

어네스트는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왠지 묘한 뿌듯함이 솟구쳤다. 하지만 그 못지않게 불편함도 커갔다. 할머니와 제르멘 할머니는 말은 없었지만, 눈빛들만은 반짝거렸다. 바야흐로 호기심이, 눈에 불을 켜게 만드는 바로 그 삶의 활기가, 드디어 그들이 살고 있던 묘지 대기소로 스며들고 있는 것 같았다. 문이 열린 것이다. -53쪽

"평생을 너무 힘들게 살아오셨군요. 할머니."
"상처가 깊을수록, 할 말은 적어진단다."-64쪽

'한 번도'란 단어를 단 하나만이라도 지울 수 있게 된 날은 대단한 날이다. 그 '한 번도'를 적어도 세 개 이상 지우고, 대신 그 자리에 '처음으로'란 말을 쓸 수 있게 된다면 그 날은 세 곱절로 대단한 날이다. -71쪽

할머니는 전쟁과 죽은 사람들에 대해서, 아픔과 상실에 대해서 이야기하셨다. 하지만 어쨌거나, 죽은 사람들을 날마다 조금씩 더 죽어가게 내버려두느니 살아 숨쉬도록 하는 게 백 번 낫다. 우리가 죽은 사람들을 기리며 하는 한 마디 한 마디가 죽은 사람들을 살아 있게 한다. 결코 눈물방울이 그들을 살려 내는 건 아닐 것이다.
그건 우리들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사실 살아 있는 사람들이지만 서툴게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쿠스쿠스. 그건 참 멍청해 보인다. 하지만 쿠스쿠스는 어렴풋이나마 내게, 사람은 언제든지 살아가는 법을 배울 수가 있다는 것을 가르쳐 부었다. 단, 거기엔 훌륭한 스승과 강한 의지가 필요할 것이다. 참으로 나는 그런 굳센 의지를 가지고 싶다. -73쪽

빅투와르가 병이 난 지도 벌써 일 주일이 지났다. 그 애가 없는 한, 어네스트도 반 쪽만 있을 뿐이었다. 어네스트는 둘이서 함께 쓰던 책상에 이쪽과 저쪽을 가르는 금이라도 쳐져 있기나 한 것처럼, 차마 그 이상을 넘을 수가 없었다. 마치 그 금이 빅투와르의 팔꿈치라도 되는 양, 그랬다가 행여 자기가 그리는 마음 속의 빅투와르를 으스러뜨리기라도 할까 봐. 그 앤 없었지만 어네스트에게는 그 애가 여전히, 엄연히, 커다랗게 존재하고 있었다. 텅 빈 구멍으로 말이다. 어네스트는 어떻게든 그 구멍에 빠지지 않으려고 에움길로 돌아가려고 했지만, 돌아가려는 생각에만 너무 골똘해진 나머지 결국은 별수 없이 다시 또 그 구멍에 빠져들곤 했다. 수천 가지 말들을 그 애에게 하고 싶었고 그 애의 수천 가지 말들이며 몸짓들이 그리웠다. 그게 바로 휑하니 뚫린 구멍있고, 다할 것 같지 않는 허전함이었다. 학교가 알맹이가 빠져버린 빈 껍데기처럼 휑뎅그렁했다. 이가 없으면 잇몸이 대신 한다지만, 없어선 안 될 사람이란 없다고들 하지만, 어네스트는 그 말이 '틀렸다'고 생각했다. '사람은 누구나 없어서는 안 될, 누구도 대신 해 줄 수 없는 존재들이다. 적어도 그 부모들에게 있어서는!' 어네스트는 어쩌다 자기의 생각이 부모에까지 이르게 되었는지 통 영문을 알 수 없었다. 부모도 없으면서. 때때로 어네스트는 차라리 생각을 끊어 낼 수 있다면 싶었다. -140쪽

"아빤 제가 태어나자마자 사라졌어요. 할머니는 아무것도 말씀해 주지 않으세요. 그것마저도 비밀인가 봐요. 전 비밀이 싫어요! 사람은 누구나 서로 얘기를 나눌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우리는 뭐 저 혼자 숨바꼭질 놀이나 하자고 이 세상에 나온 것은 아니잖아요. 진실을 찾고 진실을 말해야지요. 큰 소리로 당당하게 말이에요!"-159쪽

"모든 사람을 다 좋아할 수는 없어. 좋아하는 사람들을 좋아하는 것만으로도 행운인 줄이나 알아."-1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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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4-30 1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72쪽!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제대로 마음껏 좋아해야겠어요.
섬사이님, 좋은 하루, 힘찬 한 주 시작하세요^^

섬사이 2007-04-30 1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배혜경님,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마음껏 좋아해줄까봐요. 배혜경님도 행복한 한 주 되시길 바래요.
 
순례자
파울로 코엘료 지음, 박명숙 옮김 / 문학동네 / 2006년 8월
구판절판


지혜로 향하는 진정한 길은 세 가지 요소를 포함해야 합니다.
첫째, 그 길은 아가페를 포함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에 관해서는 좀더 나중에 말하도록 하죠. 그 다음으로는, 살아가면서 실제로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지혜는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는 것이죠. 써보지 못한 검이 녹슬어버리고 마는 것과도 같습니다. 마지막으로는, 누구라도 갈 수 있는 길이어야 합니다. 바로 우리가 지금 걷고 있는 산티아고 순례길처럼 말이죠."-41쪽

여행을 하다보면 거듭남의 행위와 관련된 매우 실제적인 경험을 하게 되지요. 당신은 완전히 새로운 상황에 처한 겁니다. 하루는 예전보다 느리게 지나가고, 길에서 만나는 낯선 사람들이 하는 말을 대부분 알아듣지 못합니다. 어머니 배 속에서 갓 나온 아기처럼 말이죠. 갓난아기처럼 주위의 것들에 훨씬 더 많은 중요성을 부여하게 되지요. 그래야만 살아남을 수 있으니까요. 사람들과도 더욱 가까워지게 되지요.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도움을 받을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신들이 베푸는 아주 작은 호의조차 몹시 기쁘게 받아들이죠. 마치 남은 생애 내내 그걸 기억하기라도 할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 이유로 언제나 사람들은 성지 순례가 계시에 이르는 가장 객관적인 방법 중 하나라고 여겼던 것이지요. 자신의 죄를 속죄하기 외해서는, 언제나 조금씩 더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새로운 상황에 적응해가고, 구하는 자에게 삶이 관대하게 베풀어주는 수많은 축복을 답례로 받아들이면서 말이죠. -50쪽

어떤 목표를 향해 움직일 때, 길에 집중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목표에 도달하는 최선의 방법을 가르쳐주는 건 언제나 길이기 때문이죠. 길은 언제나 우리가 걸은 만큼 우리를 풍성하게 해줍니다. 성행위와 비교하자면, 다들 아는 것처럼 오르가슴의 강도를 경정하는 전희와 같은 거라고 말할 수 있지요.
삶의 목표를 가질 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어떤 길을 선택하느냐와 그 길을 어떻게 나아가느냐에 따라, 그 목표는 더 나은 것이 될 수도 있고 더 나쁜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57쪽

나는 가방에서 시계를 꺼내 손목에 찼다.
"그건 별로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시간은 항상 같은 리듬으로 흘러가지 않거든요. 시간의 리듬을 결정하는 건 우리 자신입니다."-59쪽

오늘날엔 신은 과학적으로 증명해낼 하나의 개념일 뿐입니다. 하지만 이 단계에서 역사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고, 모든 것은 다시 시작됩니다. 회귀의 법칙이죠. 호르디 신부가 '너희 보물이 있는 곳에 너희 마음이 있다'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인용했을 때, 그가 하고자 했던 말이 바로 이것입니다. 당신이 신의 모습을 보기 원하는 곳에서, 당신은 신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신을 보기 원치 않는다 해도 달라질 건 하나도 없습니다. 당신의 뜻이 선한 것이기만 하다면 말이죠. 아키텐의 펠리시아가 예배당을 지어 가난한 이들을 돕기 시작할 때, 그녀는 바티칸의 신은 잊어버린 채 가장 원초적이고 지혜로운 모습으로 신을 구현한 것입니다. 바로 사랑이죠. -73쪽

신은 복수가 아닌 사랑입니다. 그분의 유일한 징벌은 사랑의 행위를 중단시킨 사람에게 그것을 계속 이어나가 완성하도록 강제하는 것뿐입니다. -74쪽

당신이 지금 가고 있는 길은 힘의 길입니다. 따라서 당신은 힘을 기르는 훈련만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속히 목적지에 도달하기만을 바랐기 때문에 처음엔 여행이 고문처럼 느껴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젠 그 여행이 기쁨으로 변화하기 시작했지요. 그것은 탐색과 모험이 주는 기쁨입니다. 그렇게 당신은 가장 중요한 당신의 꿈들을 풍요롭게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
인간은 결코 꿈꾸기를 멈출 수가 없습니다. 육체가 음식을 먹어야 사는 것처럼 영혼은 꿈을 먹어야 살 수 있으니까요. 살아가는 동안 이루지 못한 꿈 때문에 실망하고, 충족되지 못한 욕망 때문에 좌절하는 일이 종종 일어나지요. 하지만 그래도 꿈꾸기를 멈춰서는 안 됩니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의 영혼이 죽어버리고, 아가페가 들어갈 자리가 없게 되니까요.
(중략)
선한 싸움은 우리가 간직한 꿈의 이름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젊은 시절, 우리 내면에 간직한 꿈들이 힘차게 꿈틀댈 때면 우린 용기백배하지만, 그땐 아직 싸우는 법을 알지 못했지요. 각고의 노력 끝에 마침내 그 방법을 터득하게 되었을 때는, 전장에 뛰어들 용기가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기 자신을 적대시하게 되고 결국엔 스스로 자신의 가장 큰 적이 되고 마는 것이지요. 자신의 꿈은 유치하다거나, 실행하기 힘들다거나, 인생에 대해 몰랐을 때나 꾸는 꿈이라고 스스로를 합리화함녀서 말이죠. 선한 싸움을 이끌어갈 용기가 없기 때문에 자신의 꿈을 죽여버리는 겁니다. -76쪽

꿈들을 죽일 때 나타나는 첫번째 징후는, 시간이 부족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내가 살면서 알게 된 사람들 중 가장 바빠 보였던 사람조차 무엇이든 할 시간이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늘 피곤하다고 말하고, 정작 자신들이 하는 게 거의 없음을 깨닫지 못하면서 하루가 너무 짧다고 끊임없이 불평을 하지요. 그들은 사실 '선한 싸움'을 벌일 자신이 없는 겁니다.
꿈들이 죽어가는 두번째 징후는, 스스로에 대한 지나친 확신입니다. 삶이 우리 앞에 놓인 거대한 모험이라는 것을 보려 하지 않는 것이죠. 그리고 스스로 현명하고 올바르고 정확하다고 여깁니다. 아주 적은 것만 기대하는 삶 속에 안주하면서 말이죠. 일상의 성벽 안에 머무르면서 세상을 바로보게 되면, 창이 서로 부딪치며 부러지는 소리, 땀과 먼지 냄새, 말에서 추락하는 소리, 정복의 열망으로 목이 마른 전사들의 불꽃같은 눈빛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기쁨, 싸우는 사람의 심장이 느끼는 그 엄청난 희열은 결코 알지 못합니다. 싸우는 그에게는 승리나 패배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직 '선한 싸움'을 치르고 있다는 것만이 중요하지요.
마지막으로, 그 세번째 징후는 평화입니다. 삶이 안온한 일요일 한낮이 되는 것이지요. 우리는 자신에게 대단한 무엇을 요구하지도, 우리가 줄 수 있는 것 이상을 구하지도 않게 됩니다. 그러고는 우리는 자신이 성숙해졌다고 여깁니다. 젊은 날의 환상은 내려놓고 개인적이고 직업적인 성취를 이루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또래의 누군가 아직도 인생에서 이러저러한 것들을 원한다는 말하는 걸 들어면 놀라게 되는 거죠. 하지만 실상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잘 알고 있지요. 우린 자신의 꿈을 위해 싸우기를 포기한 겁니다. 즉 '선한 싸움'을 벌이기를 포기한 것이죠.-78쪽

꿈들을 포기하고 평화를 찾게 되면, 얼마 동안은 평온함을 맛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죽은 꿈들이 우리 안에서 썩어가면서 우리의 존재 전체를 감염시키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주위 사람들에게 잔인해지게 되고, 마침내는 그 잔인성을 자기 자신에게 들이대개 됩니다. 그리고 고통과 강박관념이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싸움에서 만날까봐 두려워 피했던 실망과 패배가 우리 비겁함의 결과로 우리 앞에 나타나게 되는 것이죠. 그리고 어느 날, 죽어서 썩어버린 꿈들 때문에 더는 숨쉴 수도 없게 된 우리는 죽음을 바라게 됩니다. 우리의 확신, 우리의 일, 그리고 일요일 한낮의 끔찍한 평화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게 해줄 죽음을요.-80쪽

우리는 언제라도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을 눈앞에 두고도 우리에게 익숙한 길만을 따라가는 것이죠.
(중략)
우리의 꿈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우리 자신에게 관대해지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에게 징벌을 가하려는 시도는 그것이 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엄격하게 다루어야 합니다. 스스로에게 얼마나 잔인해지는가를 알기 위해서는 죄의식, 자책감, 우유부단함, 비겁함 같은 정신적인 고통이 조금이라도 나타나면 그것을 육체적인 고통으로 변화시켜야 합니다. 정신적인 고통을 육체적인 고통으로 변화시킴으로써 우리는 그것이 야기하는 해악을 알게 될 것입니다. -82쪽

인간이 스스로에게 고통을 주기 위해 찾아낸 모든 방법 중에서 가장 나쁜 것은 사랑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우리를 사랑하지 않는 누군가로 인해, 우리를 떠난 누군가로 인해, 그리고 우리를 떠나려하지 않는 누군가로 인해 고통을 받지요. 혼자인 사람은 아무도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고통받고, 결혼한 사람들은 결혼을 예속 상태로 변화시키지요. 정말 끔찍한 일입니다.
(중략)
신의 아들이 인간 세상에 내려왔을 때, 그는 사랑을 가져다주었습니다. 그러나 인간들은 사랑을 고통과 희생으로만 이해했기 때문에 결국 그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것입니다. 또 그들이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아무도 그의 사랑을 믿지 않았을 것입니다. 모든 인간은 자신의 열정으로 인해 매일 고통받는 것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죠. -84쪽

그리스도는 부정한 여인은 용서했지만, 열매를 맺지 않는 무화과나무는 저주했어요. 나 역시 그저 좋은 사람이나 되려고 여기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104쪽

지금 중요한 것은, 그 노부인이 저주에 익숙해져 있음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녀는 저주를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였고, 세상의 인색함을 수긍했습니다. 아주 적은 것에 만족하는 법을 배운 거죠. 삶은 관대한 것이고, 언제나 우리에게 많은 것을 주고 싶어하는데 말입니다.
(중략)
종종 우린 선을 보여주려고 하고 삶이 관대하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생각이 악마의 것인 양 거부합니다. 아무도 삶에게 많은 걸 바라려고 하지 않아요. 실패를 두려워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선한 싸움'을 이끌고 싶어하는 사람은 세상을 무궁무진한 보물로 바라봅니다. 누군가 발견해서 차지해주기를 바라고 있는 보물을 대하듯 하는 거죠. -122쪽

물웅덩이는 내게 은하수의 별들을 보여주고 오묘한 무늬를 그려 보임으로써, 지금 내가 시간낭비를 하는 게 아니라 세상과 소통하는 새로운 코드를 창조하고 있음을 느끼게 해주었다. 영혼의 비밀스런 코드. 우리 모두 알고는 있지만 거의 귀 기울여 듣지 않는 언어. -129쪽

어떤 종교도 모든 별을 한데 모을 수는 없습니다. 만약 그럴 수 있다면, 우주는 거대한 빈 공간으로 변해버려 그 존재 이유를 잃고 말 겁니다. 각각의 별, 그리고 각각의 인간은 자신만의 공간과 고유한 특성을 지니고 있지요. 초록색, 노란색, 파란색, 하얀색, 혜성, 유성, 운석, 성운, 고리 모양의 각기 다른 별들이 존재하는 것처럼. 여기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똑같이 작은 점처럼 보이는 것들도 실상은, 인간의 이해를 넘어서는 공간에 흩어져 있는 수없이 많은 각기 다른 존재들이죠.
(중략)
저 폭죽들도 아까 낮에는 날이 밝았기 때문에 소리만 들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어둠으로 인해 빛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인간이 바랄 수 있는 유일한 변화입니다.-137쪽

저들은 다른 이들처럼 위선에 갉아 먹히지 않았어요. 겉모습을 볼 때, 농사를 짓는 사람들일 겁니다. 저들은 굶주리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 함게 일할 수밖에 없었겠진요. 람에 관해서는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지만, 당신이 알고 있는 의례들을 아는 거예요. 자신들이 하는 일 속에서 사랑의 힘을 찾아낸 겁니다. 거기서 에로스는 자신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필로스와 하나가 되기 때문이죠.
필로스는 우정의 형태로 나타나는 사랑입니다. 내가 당신과 다른 이들에게 느끼는 것이죠. 에로스가 더는 그 불꽃을 피워올리지 못할 때, 결합된 커플을 유지시켜주는 건 바로 필수죠. -145쪽

우리는 아침 내내 걷고 오후에는 낚시를 했다. 한 마리도 낚지 않았지만 페트루스는 개의치 않았다. 그에 의하면, 낚시는 인간과 세상 사이의 관계를 나타내는 상징과도 같은 것이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계속 노력한다면, 그것을 얻을 수 있다. 다만 목표에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신이 우리를 얼마나 도와주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중요한 결정을 내리기 전에는 시간이 걸리는 행위를 해보는 게 좋습니다. 선승들은 바위가 자라는 소리를 듣는다고 하지요. 내 경우는 낚시하는 걸 좋아하는 거고요."-148쪽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진심으로 무언가를 사랑하고 믿게 되면, 자신이 세상의 그 누구보다 더 강하다고 느끼게 되며 그 어떤 것도 우리의 신념을 깨뜨리지 못할 거라는 확신에 차 평온함을 맛보게 됩니다. 이런 특별한 힘은 적절한 순간에 옳은 결정을 내릴 수 있게 해주죠. 목표를 이룬 우리는 스스로의 능력에 놀라게 됩니다. '선한 싸움'을 이끈느 중에 다른 어떤 것에도 미혹되지 않고 열정에 이끌려 목표에 도달하게 된 덕분이죠.
열정은 대개 우리 삶의 초반부에 가장 순수한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그 시기에 인간은 아직 신적인 것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지요. 자신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에 커다란 애착을 가지고 있어서, 인형은 마치 살아 있는 것 같고 작은 장난감 병정들이 움직이기도 하죠. 천국이 어린아이들의 것이라고 한 예수의 말씀은, 열정의 형태로 나타나는 아가페를 두고 한 말입니다. 어린아이들은 예수께서 행하는 기적이나 지혜로움, 바리새인, 사도들과는 아무 상관 없이 그에게 곧장 왔죠. 오직 열정에 이끌려, 행복한 모습으로 온 것입니다. -157쪽

우리는 존재의 위대함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하는 세속의 일들로 내면의 열정이 빠져나가버리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입니다. '선한 싸움'을 하는 중에 겪게 되는, 사소하지만 우리도 어찌할 수 없는 패배로 인해 열정을 잃고 마는 것이죠. 열정이 궁극의 승리를 가능케 하는 중요한 힘이라는 걸 알지 못하기에, 그것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버리는 걸 그냥 보고만 있는 겁니다. 그렇게 진정한 삶의 의미를 놓친다는 것은 깨닫지 못하면서 말이죠. 그러면서 자신이 느끼는 권태와 패배를 세상의 탓으로 돌려버리죠. 모든 것에 정당함을 부여하는 이 매혹적인 힘, 즉 열정의 형태로 현현하는 아가페를 빠져나가게 하는 것이 바로 우리 자신임은 잊은 채 말이죠.-158쪽

위협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선한 싸움을 이끄는 동안 이 말을 결코 잊어버리지 마세요. 또한, 공격을 하거나 도망을 가는 것도 싸움의 일부라는 것을 잊으면 안됩니다. 다만 싸움에 속하지 않는 것은, 두려움에 마비된 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죠. -174쪽

몇 분 전 내가 경험한 그 죽음은 나의 친구이자 조언자였다. 나로 하여금 남은 삶의 단 하루라도 비겁하게 살지 않을 것을 결심하게 한. 이제부터 그는 페트루스의 안내와 충고보다 내게 더 큰 도움이 될 터였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훗날로 미루는 걸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살아가면서 치러내야 할 싸움들을 피하게 하지도 않을 것이며, '선한 싸움'을 이끌어갈 수 있도록 나를 도와줄 것이다. 이제 나는 결코, 어떤 순간에도, 내가 행하는 아주 작은 몸짓 하나라도 부끄러워하지 않을 것이다. 그가 내 손을 잡고 분명히 말해주었다. 다른 세계로 떠나야 할 순간이 왔을 때, 가장 큰 죄악과 함께 가서는 안 된다고. 그것은 후회라는 죄악이었다. 나는 내 ?있는 그의 존재를 확인하고 그의 다정한 얼굴을 바라보면서, 앞으로 삶이라는 생명수를 마음껏 마시게 되리라는 것을 확신했다. -190쪽

제자는 자신을 이끄는 이의 걸음걸이를 결코 흉내내어서는 안 됩니다. 삶을 바라보고, 고난과 정복을 체험하는 각자의 방식이 있는 것이니까요. 가르친다는 것은 가능한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배운다는 것은 그 가능성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고요. -208쪽

그러나 그 아가페를 활짝 꽃피우려면, 내 삶이 철저히 변화하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사랑한다면, 그것은 가장 이상적인 상황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언제라도 삶을 변화시켜야 한다. 변화가 일어남으로써, 비옥한 토지로 변화한 내면에 창조적인 상상력이 그 씨앗을 뿌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아가페를 포함해 내가 당신에게 가르친 모든 것은, 당신이 스스로에게 만족할 경우에만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당신이 배웠던 훈련들로 인해 당신 안에 필연적으로 변화에 대한 욕구가 생겨날 것입니다. 따라서 그 훈련들이 당신에게 오히려 해가 되게 하지 않으려면, 변화를 허락해야 하는 것이죠.
그 때가 한 인간의 삶에서 가장 어려운 순간입니다. '선한 싸움'이 무엇인지 구별할 수는 있지만, 그것을 이끌기 위해 삶을 바꾸기는 불가능한 시기죠. 그렇게 되면, 그가 알고 있는 것은 그 자신에게 해롭게 작용합니다."
-228쪽

"적은 우리의 약한 면에 대한 상징입니다."
그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것은 신체적 고통에 대한 두려움일 수도 있지만, 승리에 대한 성급한 확신이거나, 전투가 필요없는 것이라 생각하면서 포기해버리려는 마음일 수도 있습니다. 적은 우리에 대한 승리를 점칠 수 있을 때 비로소 싸움을 시작합니다. 자만심으로 인해 우리 스스로가 무적이라고 확신하게 되는 순간이 바로 그 때지요. 싸움을 할 때 우리는 항상 자신의 약한 면만을 방어하려고 하지만, 막상 적이 공격하는 곳은 우리가 방심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우리가 가장 믿고 있는 곳 말이죠.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패배하고 마는 겁니다. 패인은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적에게 싸움의 방식을 선택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이죠. "-251쪽

적은 아가페를 이루는 한 부분입니다. 그는 검을 사용하는 우리의 손과 의지, 그리고 용도를 시험하기 위해 존재하죠. 그가 우리 삶 속으로 들어오고 우리가 그의 삶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다분히 의도적인 것이며 그 의도는 실현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싸움을 피해 도망간다는 것은 최악의 사태인 것이죠. 싸움에서 지는 것보다 더 나쁜 겁니다. 패배를 통해서는 무엇이든지 배울 게 있지만, 도망을 간다면 적의 승리를 선언하는 것밖에는 아무것도 얻을 게 없으니까요. -252쪽

스스로를 지혜롭다고 믿는 이들은 명령을 해야 할 순간에는 우유부단해지고, 복종해야 할 순간에는 반항적이 되지요. 명령을 내리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며, 명령을 따르는 것은 불명예스럽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결코 그렇게 행동하지 마십시오. -274쪽

우리 모두는 누군가 말해주기 전부터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삶은 매 순간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니까요. 따라서 비밀은 단 한 가지밖에 없습니다. 매일의 삶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솔로몬 왕처럼 지혜롭고 알렉산드로스 대왕처럼 강인해질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 -279쪽

그리고 페트루스가 내게 끈질기게 이해시키려고 했던 것, 내가 배운 것과는 반대로 중요한 것은 결과라는 그의 말을 곱씹었다. 노력은 유익하고 필수적인 것이지만, 결과가 따라오지 않는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 그의 말이었다. -300쪽

승리의 무거운 짐을 받아들이는 이들은 많지 않습니다. 우리 중 대부분은 마침내 실현되려는 꿈을 그냥 놓아버립니다. 그들은 자신의 행복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선한 싸움'을 거부합니다. 그들은 세상의 것들에 갇혀 있는 포로들입니다. 무엇을 할지도 모른 채 검을 찾기만을 바랐던 저 자신처럼.....-322쪽

그리고 조금만 더 노력하면 언젠가 나도 알수 있을 거라고. 사람들은 누군가 자신을 기다리는 곳에 가야 할 순간을 거스르지 못하고 결국 제때 그곳에 이르게 되리라는 것을. -3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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