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농장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
조지 오웰 지음, 도정일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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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가 도정일이라는 이유만으로 선뜻 집어들었다. 오래전 『시인은 숲으로 가지 못한다』를 읽고 그의 글쓰기에 매료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내게 비평적 글을 읽는 일이 즐거움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고 詩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을 열어주었다. 그의 책은 더이상 나오지 않았지만 가뭄에 콩나듯 계간지나 언론매체들을 통해서 몇 번 접할 수 있었던 그의 글은 한번도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이 책이 다른 책들보다 얼마나 더 잘 번역되었는가는 내 능력밖의 일이지만 책의 뒷부분에 수록된 작품해설 역시 쉽고 명료하게 전달된다. 1945년 8월 17일 출판된 이 책은 영미 두나라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고 한다. 이런 성공은 『동물농장』이 1917년 볼세비키 혁명 이후 스탈린 시대에 이르기까지의 소련에서의 정치상황을 그대로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상 최초의 사회주의 혁명인 볼세비키 혁명 세력이 유럽 국가들과는 전혀 다른 정책(착취계급제거, 평등의 실현, 생산수단의 공유화등)을 펼치는데, 많은 사람들이 과연 이런 사회주의가 러시아에서 실현될수 있을까하는 궁금증때문에 이 책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동물농장』에서 오웰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사회주의 혁명 자체이거나 사회주의의 몰락을 예견하는 것이 아니라, '타락한 독재권력'이며, '혁명의 배반'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발빠르게 번역된 이 소설은 그러나 오웰의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반공문학으로 오독되고 있는 모양이다. 학창시절 나도 책읽기를 종용당했지만 워낙 정치와 무관하고, 정치에 무식한 탓에 내용파악만 하고 있었을뿐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았었다. 뒤늦게 뒷북치듯 책을 읽으면서 머릿속에 왜 우리나라 대통령의 얼굴들이 줄을 서는지 왜 이명박 정부가 떠오르는지 모르겠다. 특히 소설 속에서 나폴레옹의 대변인 역할을 하는 스퀼러에게 나는 자꾸만 눈이 가고 마음이 갔다. 책속의 스퀼러는 러시아 혁명세력의 기관지로 쌍트페테부르크에서 창간되고 모스크바에서 발행되는 일간신문 '프라우다'를 상징하고 있다. '진리'를 의미한다는 이 단어가 스퀼러에 의해 끊임없이 조작되는 것을 보고 있으면 조중동의 편파 보도나 우리 정부의 언론 비보도 압력 등을 보고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오웰은 그의 산문 <나는 왜 쓰는가>에서 그가 "책을 쓰는 이유는 내가 폭로하고 싶은 어떤 거짓말이 있기 때문이고 사람들을 주목하게 하고 싶은 어떤 진실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또 그는 "정치적 목적이 결여되었을 때일수록 나는 어김없이 생명력 없는 책들을 썼고 분홍색의 화려한 단락과 의미 없는 문장과 수식형용사들 속으로 속아넘어갔으며 그래서 대체로 허튼 소리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다."고 밝혀 놓았다. 그가 '정치적'이라고 밝힌 것이 반드시 사회주의체제하의 소련의 정치상황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오웰도, 번역을 한 도정일도 밝히고 있듯이 '정치적'이라는 말은 좀더 시간적 공간적 한계를 넘어 폭넚게 이해되어야 할것이다.

도정일은 '풍자(satire)는 무엇보다 당대성의 서사장르'라고 규정하고 '풍자가 물어뜯고 비꼬고 우스갯감으로 만드는 것은 그 풍자가 생산되어 나온 당대 사회의 실존 인물, 사회환경과 제도, 이데올로기, 사건, 편견 같은 것'이라고 덧붙인다. 또 그는『동물농장』은 역사적 정치풍자 소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동물농장』을 특정의 시대에 얽매이는 역사적 풍자소설로만 볼 것이 아니라, 그 의미와 함의의 폭이 훨씬 넓은 우화(fable)이기도 하다는 점에 주목할 것을 요구한다. 우화는 생산의 시간과 공간을 벗어나 다른 시공간으로 이동하면서도 효력을 상실하지 않는다. 이솝 우화가 2천 6백여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하듯이 『동물농장』을 우화로 읽을 때 독재 일반에 대한 정치풍자로 그 범위가 확장 되기 때문이다.  

『동물농장』의 주인은 인간 존스에서 스노볼로 또 나폴레옹으로 바뀌지만 정작 농장의 구성원인 동물들의 생활은 전혀 나아지지 않는다. 오웰은 '권력 자체만을 목표로 하는 혁명은 주인만 바꾸는 것으로 끝날 뿐 본질적 사회변화를 가져오지는 못한다는 것, 대중이 살아 깨어 있으면서 지도자들을 감시 비판하고 질타할 수 있을 때에만 혁명은 성공한다는 것 등'이 그가 『동물농장』을 통해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라 말하고 있다. 오웰은 권력 주체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의 무지 또한 같은 비중으로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뒤적이다 자꾸 미루어둔 오웰의 산문 『코끼리를 쏘다』와 영남대 교수이고 아나키스트인 박홍규가 쓴 조지 오웰의 평전 『조지 오웰-자유, 자연,반권력의 정신』를 함께 읽어두어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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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9-02-12 0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동물농장'을 상당히 인상깊게 읽어서 리뷰를 쓰려 했는데, 님의 글을 읽고 그냥 단념했습니다. 제가 쓰고 싶었지만 머리가 나쁜지라 글로 표현이 전혀 안되는 것들을 님께서 너무 잘 써주셔서요.^^ 좋은 리뷰 감사합니당~

반딧불이 2009-02-13 1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에~ 무슨 말씀을요. 제 리뷰는 제 '머릿속의 지우개'때문에 언제든 다시 보기 위한것일 뿐인걸요.
 
핀치의 부리 - 갈라파고스에서 보내온 '생명과 진화에 대한 보고서'
조너던 와이너 지음, 이한음 옮김, 최재천 추천 / 이끌리오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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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치는 새 이름이다. 이 새는 대프니 메이저에 산다. 대프니 메이저는 갈라파고스 군도에 있는 작은 화산섬이다. 갈라파고스 군도는 남미의 태평양 해안, 에콰도르 영토이다. 이 화산섬에는 인간이 먹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물도 전혀 없다. 찰스 다윈은 1836년 이 곳에 2주 동안 머물렀다. 다윈은 이 섬에서 핀치라는 새 31마리를 채집했다. 다윈 자신은 갈라파고스 군도에 다시 가보지는 못했지만 그의 발자취를 좇아 수많은 자연과학자들이 그곳을 여행했다. 피터 그랜트와 로즈메리 그랜트는 각각 그들 여행자 중의 하나다.  이 부부는 20년 동안 대프니 메이저와 그들의 연구실이 있는 프린스턴을 오가며 핀치를 연구한다. 자연과학자들은 이 핀치를 다양한 기준으로 분류했다. 땅핀치는 이런 다양한 기준으로 분류한 핀치의 한 종이다. 그러나 이 땅핀치는 깃털이나 몸의 크기, 형태, 사는 곳 등으로 분류할 수 없고, 단지 부리로만 분류할 수 있다. 이 핀치들은 부리의 크기에 따라 각기 다른 크기의 씨앗을 먹고 산다.

 

 

대프니 메이저는 지면의 온도가 섭씨 50도를 넘고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가뭄이 계속될 때도 있고, 3년에서 6년 기간을 두고 불규칙하게 발생하는 엘리뇨로 인해 몇 주 동안 무시무시하게 비가 내리기도 한다. 가뭄은 종을 말살시킬 지경까지 핀치들을 내몰고, 비가 퍼붓고 난 후에는 태어난 지 석 달도 채 안된 핀치들까지  광란의 교미를 한다. 가뭄을 견디고 끝까지 살아남는 핀치가 있고 홍수 후에 더욱 번성하는 핀치가 있다. 대프니 메이저에서 연구한 많은 자연과학자들은 이런 자연환경 이후의 핀치들을 연구한 결과 가뭄 때에는 큰 부리가 살아남지만 홍수가 지난 뒤에는 크기가 작은 부리가 살아남는다는 것을 알았다.

 

 

가뭄과 홍수를 되풀이 하는 변덕스러운 자연은 각각의 환경에 알맞은 종을 선택한다. ‘자연선택’ 혹은 ‘적자생존’은 이렇게 주어진 환경에 대해서 보다 적합한 개체가 살아남는다는 것을 뜻한다. 우리는 여기에서 진화라는 말을 떠올릴 수 있는데 다윈에 따르면 자연선택 자체는 진화가 아니다. 그것은 단지 진화를 이끌 수 있는 메커니즘일 뿐이다.  

 

그렇다면 진화는 화살을 쏜 것처럼 같은 방향으로 계속될까, 아니면 역전될까? 다윈 이후에 대프니 메이저에 사는 핀치의 수만큼이나 많은 학자들이 그 해답을 얻기 위해 그곳을 다녀갔다. 그들은 생물이 진화한다는 다윈의 ‘예측’을 관찰과 실험을 통해 ‘사실’로 바꾸어 놓았다. 그들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자연선택은 세대 내에서 일어나지만, 진화는 세대를 가로질러 일어난다. 또 진화는 한 방향으로 계속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성의 생성’이다. 이것이 이 책의 제목 『핀치의 부리』에 등장하는 주인공인 핀치가 지구상에서 가장 유명한  새가 된 이유다. 

영국은 나폴레옹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자 그들의 주무대인 바다를 더욱 연구할 계획을 세웠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태운 해군측량선 비글호는 남아메리카, 남태평양의 여러섬 특히 갈라파고스 군도, 오스트레일리아 등을 항해하고 귀국한다. 이 배에 박물학을 공부하던 22세의 찰스 다윈이 탑승했고 그는 돌아와  『비글호 항해기』, 『종의 기원』, 『인간의 기원』등의 책을 썼다. 

 

 1831년 비글호를 탈때까지만해도 독실한 창조론자였던 다윈은 귀국후에는 진화론자로 변해버렸다.『종의 기원』의 원래 제목은『자연선택 또는 생존 경쟁에서 선호되는 혈통의 보존에 따른 종의 기원에 관하여』이다. 동식물에 관심이 많았던 다윈은 특히 갈라파고스 군도에서 채집한 새들의 연구에 골몰했고 이 동식물의 과거를, 역사를, 조상을 가계를 생각했다. 그랜트 부부는 갈라파고스 군도에 20여년을 살면서 다윈의 이런 생각들을 증명하기도 하고 진척시키기도 한다. 그들이 주로 연구한 것은 핀치였지만 다른 종들의 기원에도 적용할 수 있고 인간 역시 예외가 아니다. 인간은 신의 피조물이라는 것을 아무도 의심치 않았던 시대에 신이 인간을 만든 것이 아니라 원숭이로부터 진화한 것이라는 다윈의 생각은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보다 더 폭탄선언이 아니었을까.

 

 

추천의 글에서 최재천 교수가 “고통 없이 배우는 것처럼 행복한 배움이 또 있을까”라고 말하는 것처럼, 학교에서 수없이 외우고 학습해왔지만 입술에서만 나불거리던 다윈의 개념들을 그랜트 부부의 관찰과 연구를 통해 쉽고 재미있게 익힐 수 있다.  

 

이 신비롭고도 아름운 섬을 여행하고 오신 분이 있다. 언젠가 반드시 내 발을 디디게 될때까지 위안으로 이 사진들을 보며 위안으로 삼는다.  

 

http://blog.naver.com/leenadd/100049217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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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 증보판 리라이팅 클래식 1
고미숙 지음 / 그린비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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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은 그린비에서 펴내는 리라이팅 클래식 001번이다. 리라이팅이 고전을 현대의 시각으로 재해석 하는 것이라면, 어떤 안경을 쓰느냐에 따라 고전은 다양한 모습으로 재탄생할 것이다. 고미숙은 박지원을 읽는데 들뢰즈-가타리의 안경을 선택 했다. 그런데 이 안경의 렌즈는 아무래도 다초점 렌즈인 것 같다.어디를 바라보아도 망막에 정확하게 상이 맺히기 때문이다. 책에서 그녀가 자처하고 있듯이 그녀는 박지원의 열성팬이고,『열하일기』의 중독자다. 그런데 나는 궁금하다. 그녀가 들뢰즈-가타리의 안경을 쓰기전에 박지원의 열성팬이고 『열하일기』의 중독자였는지 혹은 들뢰즈 가타리의 안경을 쓰고 더욱 박지원에게 열광하게 되었는지가. 어찌되었든 고미숙이 박지원의 열성팬이 되는 덕택에 나까지 즐거운 것을 숨기고 싶지 않다. 나는 그녀가 들뢰즈-가타리를 박지원에 대한 찬탄을 보낼때마다 그녀의 변죽을 울려야하는 운명에 놓이게 하는 것이 마냥 즐겁다. 

 

고미숙이 사용하는 들뢰즈-가타리의 주요 개념들은 고전의 입문자인 내게 고전으로 들어가는 오솔길을 만들어 주었다. 고미숙의 글쓰기는 경쾌하고, 고미숙의 책 읽기는 유쾌하다. 고미숙은 18세기를 산 박지원과 21세기의 들뢰즈-가타리, 거의 지구 반대편에 위치하는 프랑스 현대철학과 봉건조선의 문장가와의 만남을 주선하는 뚜쟁이의 역할을 완벽하게 해내고 있다. 박지원과 고미숙과 들뢰즈-가타리. 시공을 넘어 이렇게 궁합이 잘맞는 삼각관계라니! 글을 쓰다보니 어째 고미숙이 박지원에게 보내는 열정을 내가 그대로 답습하여 고미숙에게 보내고 있는 꼴이 되어버리는것 같다. 

 

어쨌거나 들뢰즈-가타리의 『천개의 고원』에 실린 기본적인 개념들을 어느정도 이해한 다음이라면 훨씬 더 유쾌한 탄력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들뢰즈-가타리가 사용하는 주요용어들을 이해하는 일은 쉽지 않다. 들뢰즈를 번역하는데 있어서도 『천개의 고원』번역자인 김재인이나 그 책에 대한 해설서를 펴낸 김진경, 또다른 들뢰즈 연구자 이정우 등이 들뢰즈의 주요용어들을 우리말로 옮기는 과정에 미묘한 차이들을 보이고 있는 것 같다. 책의 제목에서조차 김재인이나 이정우는 『천개의 고원』이 아닌 『천의 고원』을 더 선호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미묘한 차이들이 고미숙의 박지원을 읽는데는 크게 해가 되지 않는 것 같다.

 

존재론적으로 세계의 중심을 상정할때, 중세적 세계관은 線形的으로 배열된다. 이런 위계적 세계관은 근대적 사유가 시작되면서 주체를 중심으로 圓形的으로 재배열되었다. 현대적 사유는 근대적 주체를 파기하고 어떤 중심도 없는 場으로 인식하며, 이 場은 관계들이 끊임없이 생성되어가는 곳이다. 들뢰즈-가타리는 바로 이런 현대적 사유의 출발점인듯 하다. 들뢰즈-가타리와 박지원이 공명하는 곳도 바로 이곳이 아닐까. 박지원의 몸은 근대화가 시작되기 전 시대 (위계질서가 선형적으로 배열된)를 살았지만 이미 그의 정신은 근현대를 넘나들고 있었던 것일까. 고미숙은 들뢰즈-가타리와 박지원의 '사이'를 끊임없이 넘나들며 그들과 '관계' 맺기를하고 있다. 내가 이해한 바대로라면, 그리하여 그녀는 현대와 고전의 '경계'를 허물고 시간과 공간의 '탈영토화'를 시도하고 있는 셈인데, 내가 들뢰즈-가타리의 용어들을 사용하는 것이 왠지 고미숙의 그것보다 뻑뻑하고 이물스럽다. 하지만 어떠랴. "한 권의 책은 대상도 주체도 가지지 않는다"고 "책을 한 사람의 주체에게 귀속시키지 말라"고 들뢰즈-가타리가 말하지 않았는가. 고미숙의 말처럼 만약 내가 들뢰즈-가타리의 개념을 잘못 사용하고 있다면 그건 내 책임이 아니라 순전히 들뢰즈-가타리의 탓이다.

함께 볼 책

http://blog.aladin.co.kr/734872133/2065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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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고미숙, 몸과 우주의 유쾌한 시공간 '동의보감'을 만나다
    from 그린비출판사 2011-10-20 16:53 
    리라이팅 클래식 15 『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출간!!! 병처럼 낯설고 병처럼 친숙한 존재가 있을까. 병이 없는 일상은 생각하기 어렵다. 누구나 그러하듯이, 나 역시 살아오면서 수많은 병들을 앓았다. 봄가을로 찾아오는 심한 몸살, 알레르기 비염, 복숭아 알러지로 인한 토사곽란, 임파선 결핵 등등. 하지만 한번도 병에 대해 궁금한 적이 없었다. 다만 얼른 떠나보내기에만 급급해했을 뿐. 마치 어느 먼 곳에서 실수로 들이닥친 불...
 
 
 
정조와 철인정치의 시대 2 - 정조 시대를 읽는 18가지 시선
이덕일 지음 / 고즈윈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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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와 철인정치의 시대1』권이 정조와 노론과의 대립구도 속 정치, 사회문제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2권은 정조라는 임금의 개인사에 포커스를 맞추었다. 사도세자의 묘소를 이장하기 위해 건설한 화성 신도시, 어린시절부터 암살의 위협으로 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밤 늦도록 깨어있어야 하는 생활에서 비롯된 독서습관, 자신을 살리기 위해 죽음을 택했던 아버지 사도세자와 노론의 일원으로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아간 어머니, 강화도에 유배된 이복형제 등 가족관계가 밀도 있게 그려진다. 

노론은 숙종의 차남이었던 연잉군 금을 영조로 추대하였지만, 그의 아들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고 굶겨 죽이는데 앞장섰다. 정조는 자신의 어린시절 한여름 뒤주에 갇혀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한 채 죽어가는 아버지를 지켜보아야했던 기억을 지울 수 없다. 연산군은 생모가 사사당했다는 말을 듣고 폭군이 되었는데, 하물며 죽어가는 아버지의 모습을 지켜본 정조의 가슴은 어떠했을까. 외적환경은 폭군 연산보다도 더 비통했지만 그는  한 사람의 아들이기보다 한 나라의 왕이기를 택했다. 하지만 정조는 평생동안 자신이 사도세자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잊어본 적이 없었다. 그는 아버지의 묘소를 이장하기 위해 축조한 화성 신도시를 건설하는데 있어서도 단 한명의 원성도 사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임했다. 정약용, 조심태 등을 기용하여 처음으로 강제 부역이 아닌 도급제 임금노동을 실시한 것 등이 그 예이다. 
 
그는 비단옷도 사양하고 거친 무명옷을 즐겼고, 사형수의 심리도 직접 하였으며,과거시험 문제 또한 직접 출제하였으며 경연장에서는 어느 신하보다 깊고 빼어난 학자였다. 평생을 일에 파묻혀 살았어도 자신이 계획한 바를 다 이루지 못하고 의문사를 당해 안타까움을 더해준다.
 
책 끝에 부록으로 첨부된 <정조어록>은 정조의 시문집인 『홍재전서』와 『일득록』에 실린 정조의 육성을 그대로 옮겨 놓았다. 책을 좋아한 정조의 독서에 대한 어록은 깊이 새겨두어야할 것들이 많다.웬만한 독서에 관한 책보다 훨씬 울림이 크다. 일과를 정해놓고 글을 읽고, 많이 읽기보다 치밀하게 읽기에 힘쓰고, 신기한 것을 보려고 힘쓰기 보다 평상적인 것을 보려 힘쓸 것 등 그의 체험에서 우러나오는 말들이 힘을 지닌다. 책의 본문에도 나오지만 新民과 親民의 글자 한 자의 차이에도 깊이 천착한 독서군주의 남다른 모습에 깊이 고개가 숙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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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크 없는 문화 - 문화 엘리트와 대중
테어도르 데일림플 지음, 채계병 옮김 / 이카루스미디어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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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어도르 데일림플은 영국의 정신과 의사다.
그런데 무슨 의사가 글을 이렇게 잘 쓰냐구!!

아무래도 그는 정신과에서 아무 쓸모 없는 메스를 영국 사회의 환부를 도려내는데 사용하고 있는 것 같다. 그가 휘두르고 있는 정신의 메스. 예리하고 아프지만 부럽기 짝이 없다. 최근 읽고 있는 책들 - 수잔 손택의 『타인의 고통』, 아룬다티 로이의 『9월이여, 오라』, 리차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등이  모두 겨냥하고 있는 과녁이 미국의 부시 정권이라는 특징을 지닌다. 물론 그들의 일차적 겨냥은 부시정권이지만 보다 근원은 절대적인 복종을 요구하는 종교, 신의 이름으로 전쟁을 합법화하고 그곳에서 자신의 부를 챙기는 그 누구라도 예외는 아닐것이다. 부시가 '우리는 평화를 사랑한다'고 말한 이후에 평화와 전쟁이 동의어가 되었듯이 고양이는 쥐가 되고, 늑대는 사슴이 되지 않았는가. 세계의 곳곳에 평화 혹은 신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온갖 문제들을 추문으로 만드는 지식인들이 있고 그들의 글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른다. 

 책의 원제가 Our culture, What's left of it.으로 되어있는데 나는 <브레이크 없는 문화>라는 번역이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문화는 끊임없이 변화해가고 있고 그런 면에서 문화에 브레이크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저자는 브레이크 없는 문화를 그저 지켜보는 것이 아니라 문화 이면에 있는 그 무엇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문화라는 현상을 보면서 그런 현상이 생겨나기까지 간과되었던 혹은 누구도 의식하지 못했던 다양한 문제들을 읽어내면서 문화라는 현상에 딴지걸기 혹은 문화의 가속화에 브레이크를 밟고 있다.      
 

두 파트로 구성되어 있는 이책은 1부는 예술과 문학, 2부는 정치와 사회라는 제목아래 각각 12편과 13편의 에세이가 실려있다. 1부에서는 문학, 사진, 회화 등 작품을 다루고 2부는 사회적 현상들을 통해 정치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보이지 않는 부분들까지 파헤치고 있다. 테어도르 데일림플은 정신과 의사였는데 영국 빈민가 병원과 교도소 등에서 일한 경험을 통해 어떤 현상의 이면을 보는 눈을 키운 것 같다. 그는 영국 어린아이의 40%가 사생아이며 그 비율은 여전히 증가하고 있고 음주, 약물남용, 10대 임신, 범죄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다고 거침없이 말한다. 이러한 결과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이 가능하겠지만 무엇보다도 자신의 순간적 쾌락을 우선시하는 악의 천박함 때문이라고 규정하고 있다.또 그는 이런 재난에는 지적, 정치적 엘리트들의 도덕적 비겁함이 단단히 한 몫 하고 있다고 일갈한다.

 베트남 전쟁시 목숨을 잃은 사진작가들이 베트남 전쟁을 찍은 사진 전시회 "레퀴엠"을 열었을때 테어도르는 그들에게서 '위험에 대한 취향'을 읽어낸다. 이들 사진작가들은 전쟁을 증오하지만 동시에 전쟁을 사랑하기도 하며 위험의 비할 데 없는 매력을 알고 있는 자들이라는 것이다. 그들에게 위험은 내성이 강한 마약과 같아서 똑같은 효과를 얻기 위해 그들은 훨씬 더 많은 약을 복용하고 싶어하게 된다. 어쩌면 그들은 태평성대의 평화로움을 증오할지도 모른다는 말이 옳을지도 모르겠다.셰익스피어가 불멸인 이유, 로렌스가 포르노그래피 작가인 이유 등은 설득력있게 다가왔다. 또 다이애너 왕세자비를 '가정에서 시련을 겪는 자들의 여신'으로 읽어내고, 가족해체와 영양실조를 연결짓는 그의 시선은 중층적이다. 글쓰기의 풍요로운 배경이 되고 있는 그의 의사로서의 경험과 그가 가진 정신의 메스가 부럽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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