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
-
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 - 가정용 곤충에 관한 은밀한 에세이 ㅣ 1881 함께 읽는 교양 9
조슈아 아바바넬.제프 스위머 지음, 유자화 옮김 / 함께읽는책 / 2011년 2월
평점 :
얼마 전 겨울 옷가지를 정리하다가 나는 이미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걸 실감했다. 겨우내 서랍 속에서 함께 산 좀벌레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이것들은 내 옷을 갈아 먹으면서 겨울을 난 모양이다. 그것도 폴리에스테르가 섞인 것은 하나도 안 건드리고 백퍼센트 울 제품의 비싼 옷들만을 갉아 먹었다. 찢어진 그물처럼 여기저기 구멍을 내 놓아서 버린 것이 태반이지만 정말 아까워서 버리지 못한 것은 아플리케라도 해야겠다고 골라 두었다.
청소기를 최고 흡입력으로 돌려서 서랍 속을 훑어내고 옷가지들은 햇볕에 널어 말렸다. 난리를 한바탕 치르고 나니 제 풀에 지쳐 소파 위에 나가 떨어졌다. 소파 위를 뒹굴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인간도 벌레와 별로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거다.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땅을 후벼 파고 흐르는 물을 막고 자연의 모든 것들을 착취하고 끊임없이 종족을 번식하고....... 지구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은 어떤 벌레보다도 더 악질의 변종 바이러스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옷 좀 몇 개 갉아먹은 것이 뭐가 그리 대수냐 하는 생각과 함께 갑자기 좀벌레에게 너그러워질 것 같았다. 그런데도 칸칸이 쟁여 넣은 좀약은 치울 수가 없었다.
빈대, 이, 집 먼지 진드기, 모낭진드기와 옴 진드기, 서양 좀벌레와 집게벌레, 파리, 개미, 바퀴벌레, 흰개미, 벼룩과 흡혈진드기, 의류해충과 부엌해충 등이 이 책에 당당하게 활보하고 다니는 것들이다. 어느 것 하나도 낯선 것이 없다. 생물학적 지식과는 전혀 무관하다. 어렸을 때부터 보고 듣고 경험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우리 몸에는 많은 균들이 살고 있다. 당연히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이불, 카펫, 소파, 침대 등에도 균이 있을 것 아닌가. 무좀에 걸린 사람은 무좀균을 키우고 있고, 감기에 걸린 사람은 감기 바이러스와 동거 하고 있는 것이다. 집 먼지 진드기를 박멸한다고 수시로 의료팀을 방불케 하는 청소 팀이 다녀가고 탈탈 털어 햇볕에 말려도 어차피 그것들을 전멸 시키기란 불가능하다. 썩 유쾌한 일은 아니지만 저자의 말처럼 그것들을 박멸하려다 인간이 먼저 박멸 당할지도 모를 일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가끔 내 몸에 균이 침입해와 내 몸을 괴롭힐 때, 고열이 나고 목이 아프고 땅에 발을 디디지 못할 만큼 아플 때 비로소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느낀다. 빈대, 이, 파리, 개미, 바퀴벌레 같은 것들이 귀찮고 성가시게 느껴질 때 아마도 나는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실감할 지도 모르겠다.
드물지만 책을 읽고 나서 짜증이 나는 경우가 더러 있다. 누군가 권해서 읽었는데 도대체 왜 권했는지 알 수 없을 때, 내용이 턱없이 부실 할 때, 도무지 이 글을 왜 썼는지 의도를 알 수 없을 때, 종이 값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 때, 내용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제목으로 농락당했다는 느낌이 들 때, 같은 이야기가 계속 반복된다는 느낌이 들 때 등 등.......
이 책은 이 모든 조건을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갖추었다. 거기다 호화 양장본이다. 벌레를 유난스레 싫어하거나 천적처럼 여기지 않는 나도 이 책을 보는 건 그리 유쾌하지 않았다. 벌레들의 특정 부위를 현미경으로 극대화 시켜 보는 이를 자극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나는 왜 이 책이 인문 사회분야로 분류되는지도 모르겠다. ‘가정용 곤충에 관한 은밀한 에세이’라고 버젓이 부제를 달고 있는데 말이다. 제목도 부제도 장난처럼 느껴진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는 외로운 영혼을 달래는 속삭임같다. '가정용 곤충에 관한 은밀한 에세이' 아니다. 인간을 숙주로 삼아 살고 있는 벌레들의 적나라하지만 지극히 간략한 보고서다.
이 책에서 내가 새롭게 발견한 정보는 세 가지다. 첫째, 파리가 뒤로도 날 수 있는 몇 안 되는 곤충 중의 하나라는 것. 둘째, 빈대의 수정 방법이다. 암컷 빈대의 몸에는 생식기 개구부가 없어서 수컷이 암컷의 배를 갈라 벌리고 그 안에 정자를 넣는다는 것, 곤충학자들은 이것을 외상성 수정이라 부른다는 것이다. 암컷 사마귀가 교미 후에 수컷 사마귀를 머리부터 잘근잘근 씹어 먹는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느꼈던 종족 보존의 잔인함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셋째, 벼룩의 점프 능력이다. 벼룩은 제 키보다 150배 높이 뛸 수 있고 수평으로는 80배 더 멀리 뛸 수 있단다. 엄청난 능력이다. 이 능력의 비밀은 다리에 담겨 있는 레시틴이라는 탄성 단백질이란다. 벼룩의 키를 0.5 센티미터라고 가정한다면 75센티미터를 뛰어 오르고 40센티를 멀리 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봐야 내 허리아래서 놀잖아 생각하다가 인간과 비교해보니 무시할 수 없는 능력이다. 내가 만약 탄성단백질을 가졌다면 나는 24000센티미터 그러니까 240미터를 높이 뛰기 할 수 있고 12960센티미터 그러니까 129.6미터를 멀리 뛰기 할 수 있다. 엄청난 능력이긴 하다. 레시틴을 연구하다가 자신의 몸으로 생체실험을 하고는 지구밖으로 튀쳐나간 인간이 있을 것만 같다. 또 내가 혼자서 너무 멀리가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