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 사장 분투기 - 개정판, 자영업으로 보는 대한민국 경제 생태계
강도현 지음 / 북인더갭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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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영업 대란'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지금이라도 정부는 자영업자들이 절벽 아래로 계속 떨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를 바꿔줘야 한다. 무엇보다 부동산 거품을 빼서 자영업자의 임대료 부담을 줄여야 한다. 법적 성격이 명확하지 않은 권리금 문제도 정리해야 한다. 또한 재벌 독식 구조를 없애 산업 생태계를 살아나게 해 중소 기업이 숨을 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내실 있는 안정적 일자리들이 생겨나 이미 과포화 상태인 자연업으로 유입되는 은퇴자들을 흡수할 수 있다. 더불어 현재 SSM과 대형 마트들의 입점 및 영업일 규제를 강화해 영세 서비스업과 자영업 기반이 붕괴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한편 대기업 프렌차이즈 업체들의 과도한 인테리어 비용 및 가맹비 등을 줄일 수 있도록 규제하고 부당한 본사의 요구에 대해서는 불공정거래 행위로 제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47쪽

"사실 자영업자는 자신의 능력과 상관 없이 망하는 경우가 많어. 말하자면 구조적인 문제 때문에 말이지. 경기 탓도 그 중 하나고. 그런데 정말 심각한 문제는 정부의 무대책이야. 기본적으로 자영업자가 너무 많아. 이곳에도 반경 500m에 편의점이 10개가 넘어. 이 동네 유동 인구가 많기는 하지만 지금보다 얼마나 더 늘어나겠어? 그런데 10개 점포가 나눠 가지려니 당연히 그 중 몇 개는 문을 닫을 수밖에 없지. 그런데도 계속해서 생겨나. 이렇게 자영업자가 많이 늘어나는데 정부는 대책이 없어."-74쪽

헨리 조지는 산업혁명 이후 산업화된 도시에서 고질적인 빈곤이 발생하는 원인을 토지에서 발생하는 불로소득으로 파악했다. 빈곤 문제뿐 아니라 자본주의 시스템이 주기적으로 붕괴되는 현상 또한 토지 불로소득에 기인한 것으로 본다. 이에 대해 헨리 조지는 토지에서 발생하는 모든 불로소득, 즉 임대 수익을 세금으로 환수할 것을 주장한다. 얼핏 들으면 굉장히 파격적인 주장이지만 카를 마르크스의 사회주의 혹은 공산주의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자체를 변증법적 모순으로 파악했지만 헨리 조지는 자본주의 원리가 더 충실히 적용되기 위해서 토지 불로소득을 사회가 환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니까 헨리 조지는 자유시장경제의 수호자였다. 더 확실한 자유시장경제를 위해 불로소득을 환수할 것을 주장한다.-126-127쪽

정당한 보상은 사후 보상이 아닌 '사전 보상'을 핵심으로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입자의 임차권을 지상권 수준으로 강화하여 개인의 재산권에 해당하는 시설 권리금과 영업 권리금을 보장해주어야 한다. 대신 임대료로 전환되지 못한 바닥 권리금은 지역 상권과 도시공동체가 함께 창출한 것이기 때문에 조세로 환수해야 한다. 물론 임대인이 그동안 누려왔던 임대료 중에서 사회공동체가 창출한 토지분 임대료 역시 환수의 대상이 된다. 이렇게 하면 그동안 유통되었던 바닥 권리금이 더 이상 시장에서 존재하지 못하게 되어 거래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 <프레시안> 2012년 2월 9일자 요약-133쪽

필자는 모든 공간에 스토리가 구현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게 무엇이 되었든 자自영업이면 자아自我가 드러나야 한다. 편의점을 해도 유통업에 대한 주인장의 고민과 해석이 그 작은 공간을 통해 나타나야 한다. 단순히 생존을 위한 방법론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삶의 방식과 성공의 잣대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무엇이 자영업자의 성공인가? 업의 본질을 얼마나 충실히 드러내느냐가 성공의 기준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야 삶이 더 재미있고 보람 있다. 일과를 끝내고 물건을 얼마나 팔았는지 셈하는 것이 장사의 목적이 되어버리면 하루 일과가 얼마나 무미건조하고 재미없을까? 고객과의 관계는 '돈' 그 이상, 이하도 아닌 삭막한 관계가 될 것이고 공간은 그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돈을 벌어서 쓰는 재미도 있겠지만 업의 본질 자체가 주는 재미를 발견해야 장수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149쪽

비록 세입자이지만 수십 년 지역에 살아오고, 지역의 상권을 발전시켜온 지역 '주민'이, 개발 현수막이 나부끼는 순간 '철거민'이 되고, 구청은 '철거민'을 더 이상 지역의 주민으로 대하지 않는다. 이제 그들의 이야기는 정당한 권리를 말하는 지역 주민들의 민원이 아니라, 그저 귀찮고 시끄럽게 하는 '떼잡이'들의 '생떼거리'로 취급된다. 그리고 그들의 생존을 건 저항은 '도심테러'로 매도된다.
그렇게 '보장'이 없는 터무니없는 보상과 용역깡패의 폭력, 그리고 경찰과 구청의 외면 속에서 쫓겨날 수밖에 없었던 용산 철거민들은 마지막 사는 방법이라는 생각으로 망루에 올랐던 것이다.-196쪽

'삶'을 빼앗아가는 개발, 벼랑 끝으로 내모는 개발,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퇴거를 수반하고 진행되는 개발 사업이라면 주거 세입자건 상가 세임자건 퇴거를 당해야 하는 이들에게 '이전과 동등한 수준으로 살거나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대책을 보장해주어야 한다. '건물은 철거해도 삶은 철거하지 말라'는 철거민들의 구호처럼, 그곳에 그들의 '삶'이 있기 때문이다.-19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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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작은 회사에 다닌다 - 그래서 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정래.전민진 지음 / 남해의봄날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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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향한 물음표가 늘어날수록 다른 이들의 물음표와 답은 무엇인지 궁금했다.-8쪽

친구들은 가끔 묻는다. 작은 회사에서 바쁘게 일하면서 많이 고되지 않느냐고. 나는 답한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때 느끼는 자유와 뿌듯함을 아느냐고. 그리고는 '자유로운 구성원 속에서 새로운 시각을 얻기도 하고 일하는 것으로부터 얻는 참 자유를 느낄 수 있는 곳이 얼마나 될까?' 하고 속으로 되묻는다.-25쪽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지 고민하고, 스스로에게 즐겁게 일하려면 어떤 일을 해야 하는가를 묻게 됐다.
"주위 친구들로부터 취업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너무 안타깝고 마음이 아파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해요. 회사를 선택하기 전에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를 먼저 정하는 게 맞는 것 아닐까? 스스로가 인생에서 제일 중요하게 여기는 게 뭔지 생각해 보면 지금의 고민들을 조금 덜 수 있지 않을까요?"-102쪽

그는 다른 사람이 인정해 주는 자신의 모습보다 자신이 어떻게 살고 싶은지가 중요하다고 했다. 집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 그곳에서 무슨 일을 하고, 어떤 경험을 하며 인생을 보내느냐에 회사 선택의 기준을 둬야 한다는 것이다.
"진짜 즐길 수 있는지, 아니면 그냥 억지로 일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요. 대기업에 입사하는 게 나쁜 건 아니죠. 가치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에 부합한다면. 그런데 어느 정도는 사회에서 조장하는 분위기에 휩쓸려 회사를 결정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대기업에서 에너지 넘치게 일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조직 체계에 갑갑함을 느끼는 사람도 있고, 작은 회사에서 일하는 게 저처럼 즐거운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한계를 느끼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죠. 그 사람들이 각자 자기 자리를 찾아갈 수 있길 바랄 뿐이에요."-103쪽

"원래 한탕을 바라거나 유명해지기 위해 사진을 시작한 게 아니에요. 나는 평생 사진 찍는 사람으로 살기를 원하기에 지금처럼 나아가고 있는 것뿐이에요. 주변 사람들은 힘들겠다, 안쓰럽다 말을 많이 하는데 솔직히 남들이 제 일을 그렇게 평가하는 기준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어요.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고, 멋진 사부들 밑에서 차곡차곡 성장해 나가는 재미. 그거면 된 거 아닐까요. 게다가 사진 한 컷에 사람과 사람이 소통하는 이야기를 담는 방법을 진정으로 배울 수 있는 이곳에서요."-133쪽

"아이들에게 앞으로 커서 무엇이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아요. 그저 현재를 해치며 살아나가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니까요. 그래서 저도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오늘을 살고 싶지 않아요. 순간순간 선택하는 것에 후회하지 않을 직관을 키우는 게 꿈이라면 꿈이죠."-2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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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조합, 참 좋다 - 세계 99%를 위한 기업을 배우다 푸른지식 협동조합 시리즈
김현대.하종란.차형석 지음 / 푸른지식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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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은행과 달리 일하는 문화가 자유롭습니다. 기업 문화가 다르지요. 다른 은행은 상사가 지시하는 대로 일하지만,우리는 고객의 가치를 위해 일합니다. 그 가치가 내 급여의 일부라고 생각합니다."-108쪽

"환경과 경제가 위기에 봉착한 지금, 우리 경제 구조에 대해 다시 생각해봐야 할 때라고 생각해요. 저는 지금 우리 사회가 가는 방향이 지속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가 살고 싶어 하는 열린 경제구조가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소외된 사람들을 다시 노동에 복귀시키는 사람도 필요하고, 환경을 가꾸는 사람도 필요하고, 또 사람들을 부자로 만들기보다는 행복하게 만드는 사람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우리가 하는 프로젝트가 바로 그런 일이죠."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려는 젊은 청년의 꿈과 열정과 노력이 '사회적 기업'과 '협동조합'이라는 기업 모델을 통해서 사회적 약자인 노숙자의 삶을 바꾸는 모습. 덴마크 한 청년의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사람을 부자로 만들기보다 행복하게 만드는 일'에 진정을 바치는 것. 협동조합이 가능하게 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131쪽

"협동조합의 속성은 자본을 없애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자본의 진정한 기능을 노동이 이용하는 도구로 한정하고 그만큼만 대가를 취하도록 하는 것이다." - 샤를 지드(Charles Gide)-132쪽

협동조합은 힘 있는 한 사람이 모두 가져가지 않는다. 서로 의논해서 사업을 벌이고 모두 고르게 나누려고 한다. "나는 너를 위해 일하고, 그러면 너는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한다. 그것이 돌고 돌아 나한테도 도움이 된다." 호혜의 정신은 이런 것이다.-261쪽

협동조합은 인간의 필요를 추구하지, 탐욕을 추구하지 않으니까요.-269쪽

금융 위기를 겪으면서 사람들이 협동조합을 다시 들여다보게 됐습니다. 그전에는 돈이 전부라고 생각했다면 이제는 다른 것을 생각하게 됐습니다. 내가 쓴 돈의 흐름을 알 수 있고, 그 돈이 지역에서 재투자되고, 윤리적으로 사업하고, 노동자와 환경을 존중하는 협동조합 기업의 가치를 재인식하게 됐습니다. 내가 민주적으로 소유하고 민주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조직이니까 신뢰할 수 있겠다는 믿음이 확산된 겁니다.-28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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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 - 시칠리아에서 온 편지
김영하 글 사진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월
구판절판


우리 인생의 어떤 순간에는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이 자기 운명에 대한 예언이 된다.-26쪽

어느새 나는 그렇게 돼 있었다. 생각해보면 모든 게 '어느새' 그렇게 돼 있었다. 이런 '어느새'에는 어떤 값싼 자기도취가 있고 그 안에 오래 머물고 싶은 달콤한 유혹이 있다.-27쪽

'어느새' 나는 이런 인간이 되어 있었다. 모텔에서 그날의 일정을 가늠하며 눈을 뜨는, 노트북과 휴대폰의 배터리 잔량을 걱정하는, 서울의 은행에서 빠져나갈 자동이체 공과금들을 생각하는 그런사람.
내 안의 어린 예술가는 어디로 갔는가? 아직 무사한 것일까?-28쪽

내 삶에 들러붙어 있던 이 모든 것들, 그러니까 물건, 약정, 계약, 자동이체, 그리고 이런저런 의무사항들을 털어내면서 나는 이제는 삶의 방식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나는 쓸데없는 것들을 정말이지 너무도 많이 가지고 있었으며 그것들로부터 도움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그것들을 위해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읽지 않는 책들, 보지 않은 DVD들, 듣지 않는 CD들이 너무 많았다. 인터넷 서점에서 습관적으로 사들인 책들이 왜 자기를 읽어주지 않느냐고 일제히 나를 비난하고 있었다. 그런 비난이 두려워 우리는 후회의 순간을 미래로 이월해버린다. 나중에는 보겠지. 언젠가 들을 날이 있을 거야. 그러나 그런 날은 여간해서 오지 않는다. 새로운 물건들이 계속 도착하기 때문이다. 나는 한순간의 만족을 위해 사들인, '너무 오래 존재하는 것들'과 결별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사서 축적하는 삶이 아니라 모든 게 왔다가 그대로 가도록 하는 삶, 시냇물이 그러하듯 잠시 머물다 다시 제 길을 찾아 흘러가는 삶. 음악이, 영화가, 소설이, 내게로 와서 잠시 머물다 다시 떠나가는 삶. 어차피 모든 것을 기억하고 간직할 수 없는 일 아니냐.-33쪽

그들에게 있어 훌륭한 인간이란 많은 것을 소유한 자가 아니라 많은 것이 잘 지나가도록 자신을 열어두는 사람이다. 하나의 사상이 나라는 필터를 거쳐 한 권의 책이 되고 한 곡의 음악이 나라는 필터를 거쳐 아름다운 문장이 된다. 이럴 때 나의 힘은 더욱 순수하고 강해진다. 모든 것이 막힌 것 없이 흘러가며 그 과정에서 본래의 자신이 아닌 그 어떤 것을 생성하게 될 때, 인간은 성숙하고 그 '힘'은 더욱 강해지는 것이다. -33-34쪽

설거지를 마치면 이내 졸음이 쏟아지고 우리는 잠자리에 든다. 아무것도 걱정할 게 없을 것 같은 평온한 하루. 걱정은 종일토록 잠복해 있다가 밤을 틈타 우리를 내습한다. 서울에 남겨놓고 온 것들, 아직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이 꿈을 빌려 나의 밤을 괴롭힌다.-76쪽

뜨거운 태양, 흰색 페인트로 칠해진 네무진 건물들, 그 안에 살고 있는 모두가 다른 모두를 아는 도시에서 반복되는 권태로운 일상, 그리고 바다. 눈이 부시도록 파란 지중해는 그들에게 희망과 열정 대신 막막한 고립감을 부여한다. 한낮의 어떤 순간, 리파리에는 갑자기 소개 명령이라도 내린 듯한 뜨거운 고요와 정적이 찾아온다.-95쪽

나는 미美란 하나의 거대한 오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에게 미란 정욕을 불러일으키는 음란한 매혹이며 또 누군가에게 미란 다다를 수 없는 천상의 특질이며 또 누군가에게 미란 정복함으로써만 소유 가능한 일종의 재산이며 또 누군가에게 미는 끝내 이해 불가능한 난해한 개념이며 또 누군가에게 미는 즉각 제거해야 할 불길한 미혹인 것이다. 미는 끝내 정의되지 않은 채 천상의 도시 깊은 곳에서 풍문과 더불어 존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183-184쪽

"가이드북 보니까 이탈리아에 이런 속담이 있대. 사랑은 무엇이나 가능하게 한다. 돈은 모든 것을 이긴다. 시간은 모든 것을 먹어치운다. 그리고 죽음이 모든 것을 끝장낸다."-282쪽

오히려 내가 잃어버린 것들은 모두 서울에 있었다. 전광판을 보며 나는 지난 세월 잃어버린 것들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편안한 집과 익숙한 일상에서 나는 삶과 정면으로 맞장 뜨는 야성을 잊어버렸다. 의외성을 즐기고 예기치 않은 상황에 처한 자신을 내려다보며 내가 어떤 인간이었는지를 즉각적으로 감지하는 감각도 잃어버렸다.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 나날들에서 평화를 느끼며 자신과 세계에 집중하는 법도 망각했다. 나는 모든 것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그 어느 것에 대해서도 골똘히 생각할 필요가 없었는지 모른다.-291쪽

늙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세상과 인생에 대해 더 이상 호기심을 느끼지 않게 되는 과정이다. 호기심은 한편 피곤한 감정이다. 우리를 어딘가로 움직이게 하고 무엇이든 질문하게 하고 이미 말려진 것들을 의심하게 만드니까.
Memory Lost.-2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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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바꾸는 책 읽기 - 세상 모든 책을 삶의 재료로 쓰는 법
정혜윤 지음 / 민음사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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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내가 그것을 원해서 했어."라는 말이 중요한 것은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에겐 복종만이 남기 때문입니다. 니체는 복종하는 자는 결코 자신의 내면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해야만 했다."라는 말 아래 외부의 명령에 따라서만 행동하면 우리는 많은 것을 잃게 됩니다. 시키는 대로 하다 보면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자신에게 무슨 능력이 있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아예 잊어버리고 살게 되기도 합니다. 그건 자긍심을 갖고 한 인간으로 사는 것, 한 인간으로 기쁘게 사는 것과 가장 멀어지는 길입니다. 게다가 이렇게 살다 보면 자신이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있는 기회조차 없어져 버립니다.-51-52쪽

능력은 천부적 자질이나 고난도의 기술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을 잊지 않고 포기하지 않으려는 데서 나옵니다.-52쪽

어떤 분야에 정말 능력이 있는 사람이 제일 먼저 알게 되는 것은 자신에게 뭐가 부족한가 하는 점입니다. 넘쳐 나는 재능 때문에 계속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부족한지를 알기 때문에 계속합니다. 들라크루아라는 화가는 천재적인 인간을 만드는 것은 새로운 생각이 아니라 그를 사로잡고 놓지 않는 생각, 즉 지금까지 말해진 것이 아직 충분히 만족스러운 방식으로 말해지지 않았다는 생각이라고 했습니다.-59쪽

진짜 잠재력은 다른 사람이 될 가능성입니다. 다른 존재가 되려면 질문이 필요합니다.-116쪽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모두가 괴로움에 다 같이 시달린다는 사실을 깨닫게만 된다면" 구원은 오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책은 우리 영혼을 통해 꿈을 꾸는 존재입니다. 책은 누군가 미래를 위해, 다가올 세대를 위해, 한마디 남겨 놓은 흔적들입니다.-123쪽

모든 것을 공유할 수 있는 디지털 세계에 살면서도 우리에겐 뭔가 남과 진정으로 공유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괴로움이 있습니다. 우린 공감이 중요하다는 말을 합니다. 그건 상대방이 달라도 그냥 너그럽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상대방이 달라 보여도 나와 같은 인간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뜻입니다.-142쪽

우린 죽음이란 운명을 의식하고 그것을 받아들입니다. 아킬레우스는 분명히 새로운 명예를 얻었어요. 그것은 동료 인간에게 보여 준 관용에서 나온 겁니다. 동료 인간에 대한 존중과 동정심에서 나온 거에요. 이렇게 해서 아킬레우스는 인간의 운명과 더불어 인간의 성장 가능성, 거기서 비롯되는 위대함을 보여줬어요. 우린 죽기 때문에 신도 하지 못하는 일을 하는 거에요. 죽음이란 얼마나 소중한지, 사랑이나 용기도 우리가 죽기 때문에 나옵니다. 죽을 수밖에 없아는 약점을 강점으로 바꾸는 것이 우리에게 신적인 위치를 부여하는 일이에요.-176-177쪽

<인간의 대지>에서 '나'는 길을 잃기 전날 밤새도록 지도를 탐독합니다. 하지만 아무 소용 없는 일이었습니다. 자신의 위치가 어디인지 알지 못했기 때문이지요. 자신의 위치가 어디인지 모르면 지도도 쓸모없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마련이지만 '나'는 그럼에도 '종교 시설', '마르지 않는 우물'처럼 인간의 존재를 드러내는 모든 기호들 위로 몸을 숙여 들여다봅니다. 제겐 아마 책 읽기도 비슷할 겁니다. 책이 당장 직접적인 도움은 주지 못할 수 있어도 그래도 인간의 흔적을 들여다보고 거기서 길을 찾으려 하는 것은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다, 라고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192쪽

조르바의 세계에선 푸짐한 밥상, 오렌지 꽃향기, 따뜻한 화덕 같은 사소한 육신의 즐거움이 엄청난 정신의 즐거움으로 변합니다. 조르바는 여자, 먹을 것, 마시는 것, 춤추고 노래하는 것에서 결코 관심을 끊은 적이 없습니다. 책 속에서 '나'는 이렇게 말합니다. "주위 세계에 함몰된 그 소박하고 단순한 모습, 모든 것(여자, 빵, 물, 고기, 잠)이 유쾌하게 육화하여 조르바가 된 데 탄복했다."-216쪽

끝까지 잊지 말아야 할 건 우리에겐 선택권이 있다는 점입니다. 이탈로 칼비노의 <보이지 않는 도시들>에서 쿠빌라이 칸은 여행자 마르코 폴로와 도시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칸은 폴로에게 유토피아, 태양의 땅 같은 약속의 땅에 대해 묻습니다. 폴로는 그러한 항구들로 가는 길을 지도 위에 그릴 수 없다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칸은 최후의 상륙지가 야후의 나라, 바빌로니아 같은 지옥의 도시들일 수밖에 없다면 우리의 여행이란 부질없는 게 아니냐고 말합니다. -232쪽

여기서 폴로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살아 있는 사람들의 지옥은 미래의 어떤 것이 아니라 이미 이곳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지옥에서 살고 있고 함께 지옥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지옥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 방법은 많은 사람들이 쉽게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지옥을 받아들이고 그 지옥이 더 이상 보이지 않을 정도로 그것의 일부분이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 방법은 위험하고 주의를 기울이며 계속 배워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즉 지옥의 한가운데서 지옥 속에 살지 않는 사람과 지옥이 아닌 것을 찾아내려 하고 그것을 구별해 내어 지속시키고 그것들에게 공간을 부여하는 것입니다.-232-233쪽

우리 앞길에도 두 가지 선택이 있습니다. 쉬운 길과 어려운 길입니다. 쉬운 길은 다수가 택하는 것을 다수가 택한다는 이유만으로 택해 그 사회의 일부가 되는 겁니다. 나중엔 그것이 지옥 같은 것이란 것도 알아채지 못하게 되지만 그래도 그것은 선택하기 훨씬 쉽습니다. 어려운 길은 지옥 같은 세상에 살면서도 마치 지옥이 아닌 것처럼 살고 있는 사람을 찾아내 그 사람들이 살도록 자리를 넓혀 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어려운 것은 그런 사람이 드물어서가 아닙니다. 분명히 주위에 있습니다. 그것이 어려운 것은 그걸 지키기 위해선 나도 지옥과 싸워야만 하기 때문입니다.-2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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