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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대학에 가는가
EBS [왜 우리는 대학에 가는가] 제작팀 지음 / 해냄 / 2015년 3월
평점 :
1. 청춘
지금의 '청춘'이 갖는 의미는 그 옛날 순진했던 젊음, 해방, 자유, 방황, 갈등, 혼돈 이상의 것이다. 이 모든 불투명한 것과 더불어 '생존'의 의미는 보다 강하게, 희망의 의미는 보다 약해져 버리고 말았으니까. 지금의 구조 하에서 청춘들은 무엇 하나 다짐받지 못한 채, 미래에 대한 막연한 기대과 구체적인 위협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2. 대학
'학문의 상아탑'이라는 오글거리는 수식어는 이미 사라져버린지 오래이다. 대학진학률이 70-80%에 육박하는 현 시점에서 대학은 고등학교의 연장일뿐이며, 졸업을 한다고 해도 별다를 것이 없지만, 안 거쳐가면 불안한 관문이 되어버렸다. 대학이 갖는 의미는 취직이라는 사회진출을 위한 집합소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기업이 대학을 운영하고, 기업에 맞는 인재를 양성한다면서 커리큘럼을 마음대로 바꾸는 시대다. 이에 맞추어 대학생들은 학점, 토익, 어학연수, 자격증, 사회봉사 등 수없는 스펙 경쟁에 시달려야 한다. 그래서 취직이라도 된다면 다행인 분위기이다. 이런 마당에 과연 우리는 대학에 어떠한 기대를 걸 수 있는 것일까.
3. 질문
누구도 질문하지 않는다. 궁금해하지 않는다. 아니, 다른 것에 눈돌릴 여유가 없다. 그저 주어진 것을 충실히 받아들이고 그것을 입증해야 한다. 기업들이 요구하는 인재가 되기 위해 자신을 도구화 하는 반면,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언제가 즐거운지에 대해서는 무관심해야 한다. 아니면, 적어도 유보해야 한다. 그 질문들이 자신의 삶에 보다 위협적으로 다가올 때까지는.
4. 긍정적인 시도 & 아쉬움
대학을 왜 가는지에 대한 질문을 생략한 채 입학을 목표로 12년을 살고, 잠시 숨을 돌릴 새도 없이 취업을 위해 또 다시 전력질주를 해야 하는 대학생들에게 현재의 생활에 '왜'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는 점은 매우 긍정적이다. 그러나 이 '왜'라는 질문을 제시하면서 결국에는 '인재'라는 결론에 맞추어 코칭, 멘토링을 해주는 방법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어찌되었건 대학의 효용은 인재 양성이라는 것인가. 물론 자존감을 잃어버린 채 좌절해 있는 청춘들을 앞에 두고 이런 아쉬움을 표하는 것 조차도 굉장히 사치스러운 게 현실인지도 모르지만.
인재란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는 저마다 다르다. 골드만 삭스, 맥킨지 등 글로벌 인재들의 산실로 불리는 세계적인 기업에서 근무한 일본의 인재 전문가 도쓰카 다카마사는 자신의 저서 <세계 최고의 인재들은 왜 기본에 집중할까>에서 인재는 `기본`에 철저한 존재임을 강조한다. 화려한 스펙이 아니라 누구나 알지만 쉽게 지나치는 인간관계, 여유와 배려, 시간 엄수 등이 인재를 만든다고 말했다. - 67, 68쪽
취업하려면 대학생들에게 학점, 대외활동, 영어, 해외연수 등 원하는 게 정말 많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소위 성공한 사람들이 대중매체에 나와서 `꿈을 가져라` `너만의 길을 가라`고 말해서 학생들은 오히려 혼란스럽다고 했다. 사회가 원하는 `스펙`을 위해 달려왔는데 이제는 `스토리`를 가지라고 말한다. - 69쪽
조벽 교수는 프로페셔널과 아마추어의 차이는 실수한 후에 어떤 태도를 보이느냐에 달렸다고 말했다. 아마추어는 실패 한방에 무너진다. 실패한 사실 때문에 자신에 대한 실망감, 창피함, 굴욕감, 다시 실패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초조함에 의기소침해진다. 부정적 감정이 꼬리를 물고 더 강한 부정적 감정으로 이어지면 결국 사람은 절망하고 쉽게 포기한다. 실패 그 자체가 사람을 망치는 게 아니라 실패에 동반되는 부정적 감정이 독이 되고 그 감정에 매몰되었다가 파괴적으로 변하는 것이다. 반면 조벽 교수는 프로 페셔널은 실수하거나 실패하더라고 곧바로 자신을 진정시키고 평정심을 회복하는 힘이 있다고 강조했다. 실수해서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서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사람은 경험을 축적한다. 경험이 풍부해지면 위기 상황에서도 마음의 여유를 잃지 않게 되고, 그제야 비로소 성숙하고 중심이 잡힌 사람이 된다. - 88쪽
최성애 박사는 기업이 원하는 인재상을 설명하며 `화가`의 비유를 들었다. 기업에서는 창의적인 화가를 원한다고 말하면서 정작 채용할 때는 모작에 뛰어난 상업 화가를 뽑는다는 것이다. 설령 독창적이고 재능이 뛰어난 화가를 뽑았다 해도 그 화가가 창의력을 발휘하면 말을 듣지 않는다고 꾸짖는 식이라고 했다. 상황이 이렇게 될아가면 생업이 필요한 화가는 어쩔 수 없이 기업의 눈치를 보면서 틀에 박힌 그림을 그릴 수밖에 없다. - 116쪽
마윈은 자신의 성공 철학을 역발상에서 찾는다. 뒤집어보고 생각한다는 뜻이다. 대부분 열에 아홉이 찬성하는 아이디어를 채택하지만 그는 이런 아이디어는 버렸다고 한다. 90퍼센트가 찬성하는 아이디어는 어디선가 진행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고 이미 뺏긴 기회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기업의 논리를 벗어난 그의 역발상은 15년 후 알리바바를 중국 최대의 전자 상거래 기업으로 만들었다. - 117쪽
재능 많고 실력 있는 한국의 젊은이들이 힘들어하고 절망하는 이유를 조벽 교수는 자기의 중심이 바깥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중심이 바깥에 있다는 것은 성공과 행복의 잣대가 외부의 인정에 의해 정해진다는 의미다. 자신의 성공과 행복이 외부에 의해 좌지우지되면 스스로 인생의 여러 문제들을 결정하지 못하고 자신을 힘든 상황으로 몰아가게 된다. 순간적인 행복이나 성공은 얻을 수 있어도 오래 가지 않는다. 명문대에 들어가도 대기업에 들어가도 외부의 요인에 의해 흔들려 뿌리 없는 나무처럼 혼란스러워 한다. - 131, 132쪽
"걷기 한 시간, 아니면 뛰기 30분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거에요. 그런데 `(그것을) 일주일에 다섯 번 하라`, 그건 살아가는 방식이에요." 조벽 교수의 말처럼 인재는 살아가는 방식으로 결정된다. 타고난 머리가 좋다고 인재가 되는 건 아니다. 현재 어떻게 살아가고 있느냐가 인재인지를 말해 준다. 과거에 내가 인재가 아니었다고 해서 앞으로 인재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현재의 내가 인재가 아니라는 말도 현재의 살아가는 방식이 인재의 방식이 아니라는 의미 이상은 아니다. - 137, 138쪽
우리는 과거에 대해 두 가지 선택을 할 수 있다. 바로 과거 자신의 잘못을 부각해 스스로 불쌍한 사람으로 만들 것인지, 좋은 점을 찾고 그것을 나의 것으로 만들 것인지 둘 중 하나다. 무엇이 나의 피와 살이 될 지는 온전히 자신의 선택에 달려 있다. - 171쪽
하브루타 교육의 장점을 예시바 대학생 케빈 포이치는 이렇게 말한다. "생각을 말로 표현하고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다 보면 사고가 명확해지고 자신이 배우는 걸 기억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유대인의 격언 중에 `말로 설명할 수 없으면 모르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혼자 생각할 때는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고 느끼지만 막상 말로 표현하면 터무니없는 소리로 들릴 때가 많다는 뜻이다.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생겨 논리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살다 보면 내가 안다고 생각하는 지식과, 실제로 내가 아는 지식을 혼동하는 경우가 많다. 전자의 경우 막상 남에게는 설명하지 못하기 쉬운데 사실상 제대로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하브루타 방식은 이러한 착각에서 벗어나 좀더 명확히 생각하고 지식을 체계화하여 설명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 252, 253쪽
중요한 것은 대학에서 일어나는 배움의 과정에 학생들이 어떻게 반응하고 행동하느냐이다. 유학생에게 좋은 배움이란 토론과 질문 등 이질적인 수업 문화에 어떻게 적응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는 어휘력 이상으로 중요한데도, 한국 유학생들은 이러한 부분을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 유학생들이 중도에 포기하는 또하나의 이유가 있다. 그것을 디렌데 교수는 질문에 대한 사고방식의 차이라고 정리했다. 유럽 학생들은 답이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말하면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우선 말을 하려는 시도부터 한다. 어느 정도 생각이 정리되거나 답이라는 확신이 들 때라야 답을 하는 한국 유학생들과는 다르다. - 262, 263쪽
사람이 질문을 던지면 거기에 답하려고 하는 본능적인 욕구가 있다. 수업에 참여하는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교수가 개입하면 그 욕구를 자제하려고 한다. 결국 학생들은 질문할 기회를 잃어버리고 수업은 처음부터 끝까지 교수가 진행하게 되는 것이다. 만약 교수가 개입하지 않으면 그 분위기는 달라진다. 강의실의 주인은 학생이 된다. 수업을 듣는 학생들은 교수의 생각도 궁금하지만 기본적으로 자기 생각을 남한테 전달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다. 함께 수업을 듣는 다른 학생들의 생각이 어떠한지도 궁금해한다. 그 호기심이 질문의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다. 자발적으로 일어나는 호기심이나 질문은 어떻게 해서든지 해결하려고 한다. 그건 남이 지시해서 되는 일이 아니다. 학생이 질문하고 학생이 답하고, 교수는 그 과정이 잘 진행되고 있는지를 관찰하고, 격려하고, 최종적으로 평가하고, 인정해 주면 된다. - 277쪽
경쟁이 아니라 도전을 시작하세요. 아픔이 찾아오면 스스로 질문을 만들어 보길 권합니다. 우리는 정답을 찾아 살아가지만 진짜 삶은 질문들이 모여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 3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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