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여행자들 오늘의 젊은 작가 3
윤고은 지음 / 민음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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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나는 여행사 정글의 패키지 프로그래머다. 정글은 재난 지역을 배경으로 한 여행 상품을 기획해왔다. 화산, 쓰나미, 지진, 허리케인, 원폭, 경제 재앙 등 삶의 터전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면 그것이 자연재해든 인재든 모두 정글의 패키지 대상이다. 요나는 그곳에서 10년 넘게 재난을 찾아다니고 그것을 상품화하는 일을 했다.


문제는 누구에게나 떠나야 할 시간이 찾아온다는 것이다. 요나는 직장 상사 김에게 노골적 성추행을 당한 이후 그 시간을 어렴풋이 느낀다. 김의 먹잇감은 늘 한물 간 퇴물 직원이었기 때문이다.


요나의 신고는 당연히 묵살된다(그것이 드라마의 암묵적 규칙이다). 회사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여자이자 해당 문제를 처리할 의무가 있는 최는 요나에게 조용히 넘어갈 것을 권고한다. '김좆광!' 그 쓰레기 새끼.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 그런데 김에게 맞서서 이긴 사람은 아무도 없어. 최는 요나의 수치심에 진심으로 공감함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충고한다. 남의 말을 들을 때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떡이는 요나의 습관은 최에게 수긍의 의미로 읽힌다.


요나는 결국 사표를 제출한다. 그러자 김이 뜻밖의 제안을 해온다. 시간을 줄 테니 생각을 좀 해보라는 것이다. 휴직도 휴가도 아니었다. 최근 인기가 시들해진 정글의 패키지 여행지 중 하나인 '무이'로 떠나 그 상품을 계속 팔아도 좋을지 판단을 하라는 것이었다. 미스터리 쇼퍼가 되어 패키지 상품이 제공하는 혜택을 똑같이 누리며 여행을 즐기기만 하면 된다. 이 모든 일은 출장으로 처리될 것이다.


이 대목에서 나는 요나의 선택이 잘 이해되지 않지만, 이것이 보통 보통한 월급쟁이의 지극히 일반적인 마음인 건가, 하는 생각도 든다. 10년이나 다닌 회사다. 게다가 한 번도 이직을 해본 적이 없다면 이미 차 버린 나이가 캄캄한 먹구름처럼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떠나는 게 말처럼 쉽지는 않을 것이다. 속사정을 속속들이 알 수는 없지만 요나는 그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이 소설은, 단순한 직장인의 비애를 지지부진 이어갈 것 같았던 <밤의 여행자들>은, 자못 흥미진진한 미스터리의 세계로 빠져든다.


윤고은은 <밤의 여행자들>로 무려 '대거(The CWA Dagger)' 상 번역추리소설부문에서 수상한다. 사실 요나가 맞이한 위기들이 상당히 비현실적이고, 이야기를 지나치게 짜 맞춘 감은 있지만, 중반까지는 상당히 몰입해서 읽은 것도 사실이다. 무사히 무이 여행을 마치는 줄로만 알았던 요나가 잘려나간 열차의 엉뚱한 부분에 남게 됐을 때, 요나의 말대로 이야기는 모든 것을 바꿔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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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위기 대응 노트 - 역사를 바꾼 리더의 선택들
김준태 지음 / 민음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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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위기 대응 노트>는 왕조 500년간 조선에 닥친 위기에 역대 왕들이 어떻게 대처했는지를 평가한 책이다. 조선에는 태조에서 고종까지 총 26명의 왕이 있었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왕은 10명 남짓이다. 위기란 대응에 성공을 했든 실패를 했든 배울 게 있는 법인데 26명 중 반도 안 되는 수가 등장하는 걸 보면 나머지 왕의 치세 기간에는 위기가 없었거나 있었다 하더라도 뽑아 먹을 게 없었던 모양이다.


이 책은 리더의 선택에 초점을 맞춰 위기 대응법을 논한다. 이런 책은 논지가 명확하다는 장점이 있다. 누가, 어떻게 해서 위기를 벗어났는가. 답안이 단순 명료하다. 다만 그만큼 생각할 여지가 줄어든다는 단점이 있다. 도저히 풀리지 않던 수학 문제의 해답을 봤을 때 이게 이렇게 쉬운 문제였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막상 며칠 뒤 동일한 문제를 또 만났을 때 풀이는 영 생각이 나지 않는다. 생각 없이 해답만 읽었을 때의 문제점이다.


한편 최고 의사결정권자의 역할을 과대평가한다는 문제도 있다. 올바른 방향, 비전, 전략, 중요하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언제나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걸까? 개개인의 바람과 욕망, 지혜가 결집하여 아래서부터 위로, 자연스럽게 흘러들어 가는 건 아닐까? 역사의 주인은 우리라는 말에 그렇지, 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도 현실에서는 늘 위대한 지도자의 강림을 바라는 모순이 도처에서 발견된다.


그래서 이런 책을 읽을 땐 위대한 영도자의 뽕에 취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리더의 선택은 언제나 우리의 바람과 욕망, 지혜에 뿌리를 둔다. 우리가 어떤 생각을 갖느냐에 따라 각기 다른 열매가 맺어지는 것이다. 심지어 왕조 국가인 조선에서조차 왕이 양반의 반대로 원하는 정책을 시행할 수 없었다. 하물며 그 양반들이 직접 투표하여 왕을 뽑는 오늘날에 무슨 말을 더 하겠는가.


<조선의 위기 대응 노트>는 거창한 제목과는 달리 그다지 참신한 시각을 보여주는 책은 아니다. 동아 비즈니스 리뷰에 연재했던 칼럼을 재구성한 것이라는데, 지면의 한계였는지 깊이가 좀 아쉽다. 시간이 없는 리더들은 언제나 원포인트 레슨을 원하는 모양이다. 줄기차게 해답만 본다고 진짜 시험에서 문제를 풀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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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터
유즈키 아사코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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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지마 가나에는 도쿄의 유명 요리교실을 다니며 요리를 익혔다. 그곳 여자들과는 대체로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지 못했는데, 아무래도 가정에서 여성의 역할에 대한 가치관이 크게 달랐기 때문인 듯하다.


기지마는 신화화된 모성의 이미지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거대한 대지가 만물을 품듯 피로와 외로움에 지친 남자를 보살피고 그들이 보내는 절대적 숭배로 자기 존재의 의의를 증명한다. 여기에는 전근대적 세계관이 자리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여성이 남성보다 뛰어나기에 그런 의무를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우월감이 존재한다. 남자들이 다 그렇지 뭐. 아무리 커도 걔들은 애야.


기지마의 이런 세계관은 민감했던 청소년기에 강화된 것으로 보인다. 누구보다 조숙했던 그녀는 또래 아이들보다 훨씬 더 여성에 가까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반 친구들에게 그 모습은 앞서감의 상징이 아니라 괴상망측한 것이었다. 기지마는 또래의 남자애들로부터 거의 아무런 관심도 받지 못한다. 여기서부터 기지마의 괴리가 시작된다. 본인은 확실히 어른에 가까운, 즉 더 우월한 사람임에도 그 세계에 받아들여지지 않는 모순. 그런 기지마가 유일하게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곳은 바로 집이었다. 여동생은 그녀를 잘 따랐다. 아버지와는 유난히, 가까웠다. 기지마는 이런 유대관계가 여성의 의무를 다하지 못하는 엄마의 부족함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엄마는 제대로 된 요리 하나 해주지 않고 밖으로만 나돌아 다닌다. 집은 지저분하고 비위생적이다. 기지마는 본인이 아내와 엄마의 역할을 대신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누구보다 성숙하고, 여성스러운 자신이.


기지마 가나에는 2009년 '수도권 연속 의문 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체포된다. 일명 꽃뱀 살인사건으로 불린 이 사건에서 그녀는 결혼을 미끼로 만난 남자들에게 10억원이 넘는 돈을 갈취하고 그들을 교묘한 방법으로 살해했다는 혐의를 받는다. 기지마의 사진이 매체에 실렸을 때 일본 사람들은 크게 놀랐는데, 일반적으로 생각했던 '꽃뱀'의 이미지와는 너무나도 달랐기 때문이다. 기지마는 100kg이 넘는 못생긴 여자였다. 피해자들은 그녀가 '목소리가 예쁘고 말씨에 기품이 있고 요리를 잘하는 게 큰 매력이었다고 입을 모았다.(p.576)'


기지마 가나에는 2017년에 사형 선고를 받고 현재까지 수감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그녀는 재판을 받는 와중에 유료 블로그에 자신의 수감 생활을 연재했다. 옥중에서 세 번 결혼했으며 현재 남편은 일본에서 가장 잘나가는 극우, 황색 언론 잡지 <슈칸분슌>의 편집자이다.


작가 유즈키 아사코는 2017년 기지마 가나에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 <버터>를 집필한다.


기지마는 <버터>를 읽고 자신의 블로그에 감상평을 남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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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 - 육식주의를 해부한다, 10주년 기념 개정판
멜라니 조이 지음, 노순옥 옮김 / 모멘토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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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을 먹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인가?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기에 답을 해본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이런 질문 자체를 떠올린 적이 없을 것이다. 이것은 동물을 먹는 게 당연한 것이라는 이데올로기가 우리의 삶에 깊숙이 뿌리내렸음을 의미한다.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부당한 권력들은 대부분 이런 방식으로 작동한다. 그것은 습관처럼 전혀 의식되지 않지만 우리가 해야 할 행동을 속속들이 정해놓는다. 우리는 이 이름 없는 이데올로기가 닦아놓은 길을 따라 죽을 때까지, 눈을 가린 채 걸어 나간다.


이미 내면화된 삶의 규범을 떨쳐내기 위해선 그것에 이름을 붙여 세상 밖으로 꺼내야 한다. '육식주의(carnism)'란 말이 탄생한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김춘수의 <꽃>으로 인해 이름 붙이기란 행위는 우리에게는 퍽 낭만적으로 간주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름을 붙이는 건 그렇게 잔잔하기만 한 일이 아니다. 그것이 어떤 개념으로부터 구분되어 떨어져 나갈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세계에서 잘라 광야로 내보내는 것. 이는 분리된 개념이 정상에서 벗어난 것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효과가 있다. 채식주의자라는 말을 들었을 때 어떤 생각이 드는가? 깐깐하고 신경질적인, 별거 아닌 걸 대수롭게 여기는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 이런 편견이 떠올랐다면 이름 붙이기란 행위가 얼마나 잔인하고 교묘한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진짜 부자들은 브랜드가 없는 최고급 옷을 입는다고 했던가? 이 세계를 움직이는 배후의 조정자라면 누군가가 자신을 직시해 인지하는 걸 원치 않을 것이다. 아마 '육식주의'란 이름이 없었다면 채식주의는 영원히 비정상의 범주에 갇혀 부당한 편견에 시달려야 했을 것이다. 레베카 솔닛의 책 제목처럼 이것은 '이름들의 전쟁'이다.


<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 이는 우리가 동물을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으로 구분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기준은 무엇인가? 한 단계만 파고들어도 그 기준이 단단하지 않으며 상당히 임의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것이다.


동물을 대상화하고 하나의 집단으로 추상하는 것도 육식주의를 내면화하는 전략 중 하나다. 우리가 만약 소, 닭, 돼지에게 하나하나 이름을 붙이고 그들을 보통명사가 아닌 그들의 고유한 이름으로 부른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생각해보자.


미주보다는 명노 안심이 맛있어 보이네요. 명노 두 근만 주세요.

혹은,


예진이처럼 적당한 크기가 요리하기 좋더라고요.

혹은,


머리는 버리고요, 혜미 가슴만 세 토막으로 잘라주세요.


유대인 학살에 의심 없이 가담한 SS친위대도 아기 상어 노래와 당근을 좋아하는 외까풀의 6살 소녀 레베카를 칼로 찔러 죽이라는 명령에는 쉽게 복종할 수 없었을 것이다. 대학살이 가능했던 이유는 그들이 몰개성화된, 유대인이라는 집단으로 존재했기 때문이다.


동물을 먹는 건 생명유지에 필수적이라는 신화도 육식주의를 정당화하는 주요 개념 중 하나다. 하지만 곡물을 통해서도 단백질 합성이 가능한 필수 아미노산을 모두 섭취할 수 있다는 건 이미 과학적으로 증명된 사실이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더 게임 체인저스>는 운동 능력을 강화하는 것 또한 알려진 바와 같이 고기가 아니라 채식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러니까 채식은 그럭저럭 단백질 섭취가 가능한 수단을 넘어 UFC 챔피언이 되거나, 발롱드로 수상, 뚜르 드 프랑스 우승을 위한 최고의 방법이라는 것이다.


채식이 더 건강한 삶을 보장하는데도 육식이 멈추지 않는 현실에는 안 될 거라는 회의주의와 잘난 척 말라는 냉소와 나는 도저히 못하겠다는 포기가 자리한다. 그렇다면 이야기를 좀 바꿔보자. 예컨대 조선은 절대 일본의 식민지배를 벗어날 수 없다거나 아무리 잘난 척 떠들어봐야 민주주의는 오지 않을 거라는 이야기로 말이다.


당신이 이런 생각을 갖고 독립투사와 무고한 시민을 잡아다 고문했던 사람이라고 가정해보자. 오늘날 당신의 손주가 당신의 눈을 바라보며 '할머니(또는 할아버지)는 왜 그때 나쁜 놈이 시키는 대로 착한 사람을 잡아다 고문을 했어요?'라고 묻는 말에 '그땐 그게 너무 당연한 일이었지'라며 웃을 자신이 있는 사람이라면 크게 괘념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인간의 육식을 위해 얼마나 많은 동물이 비참하게 살아가는지, 얼마나 많은 동물이 잔인하게 살해되는지, 윤리적 책임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생각해 볼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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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1-09-26 1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저도 이 책 반쯤 읽었어요. <신성한 소>를 다 읽고 나니, 이 책 읽으면서도 좀 다른 시각이 생기네요^^

한깨짱 2021-09-27 18:18   좋아요 1 | URL
오랜만에 재밌게 읽은 책입니다. 좀 중복되는 내용이 있기는 하지만 비건주의 공부를 위한 훌륭한 입문서가 아닐까해요.
 
위험한 과학책 - 지구 생활자들의 엉뚱한 질문에 대한 과학적 답변 위험한 과학책
랜들 먼로 지음, 이지연 옮김, 이명현 감수 / 시공사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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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크리스토퍼 뉴포트 대학에서 물리학 학위를 받은 랜달 패트릭 먼로는 그 해 짧은 기간 미국 우주 항공국에서 계약직 프로그래머이자 로봇 공학자로 일한다. NASA가 그의 계약을 연장하지 않은 게 먼로의 의지였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2006년 NASA를 나와 그는 풀타임 웹툰 작가로 살아가게 된다.


땅도 넓고 사람도 많은 나라. 워낙에 기이한 재능을 가진 사람이 많지만 그래도 물리학과 웹툰이라니, 그것도 그냥 물리학과를 졸업한 수준도 아니고 NASA에서 일할 정도의 실력을 갖춘 사람이 만화를 그린다니 좀 놀랍기는 하다. 물론 그의 그림체를 보고 나면 납득이 되기도 하지만.


코믹 웹툰 xkcd의 성공으로 이름을 얻는 먼로는 몇 권의 책도 내놨는데 <위험한 과학책>이 그중 하나다. 이 책은 독자들이 보내온 다양한 질문에 먼로가 답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를테면 '지구가 자전을 멈추면 어떻게 돼요?'라는 질문에 과학 지식이 동원된 고차원 시뮬레이션 결과를 유머와 섞어 답변하는 식이다. 주로 애들이 궁금해할 만한 내용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글쎄, 그건 설명이 불가한 어른들의 핑계가 아닐까? 질문이 엉뚱하다고 답변을 못하는 게 무마되는 건 아니다. 먼로처럼 충분한 지식이 있고, 활발한 사고 실험이 가능한 사람이라면 세상에 설명하지 못할 일이 없는 것 같다. 아무리 어리석어 보이는 질문이라도 통계와 수학, 과학을 이용해 하나하나 궁금한 점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을 보고 있으면 경이롭다는 생각이 든다. 일종의 지적 서커스를 보고 있는 기분이랄까.


내용은 아주 재미있고 쉽다. 여러 개의 질의응답을 엮은 책이기 때문에 별로 흥미가 생기지 않는 건 건너뛰고 읽어도 무방하다. 읽는 내내 나는 먼로가 얼마나 행복할까 생각했다. 심심할 일이 있을까? 가만히 누워 이런저런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하루는 꼬박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왜 그럴까?라는 질문이 수시로 튀어나오는 사람에게 언제나 답을 찾을 수 있는 능력은, 설령 그 과정이 힘들고 복잡하더라도, 시간을 오래 잡아먹더라도, 일종의 초능력으로 느껴진다. 책 내용을 떠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까지 나는 먼로가 부러웠다.


풀리지 않는 문제를 잡고 씨름하느라 속절없이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아져서 그런지 모른다. 하는 일에 예전만 한 성과가 잘 나오지 않는다. 능력의 한계를 뼈저리게 느끼는 중인데, 먼로같이 척척 답을 내놓는 사람을 보니 더 크게 와닿은 게 있었던 모양이다. 실마리는 아주 기초적인 지식을 사슬처럼 엮어 추론을 반복하는 데 있는 것 같다. 도통 뭘 해야 할지 모른다면, 역시 기본이 부족한 거구나,라고 깨닫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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