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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터
유즈키 아사코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21년 8월
평점 :
기지마 가나에는 도쿄의 유명 요리교실을 다니며 요리를 익혔다. 그곳 여자들과는 대체로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지 못했는데, 아무래도 가정에서 여성의 역할에 대한 가치관이 크게 달랐기 때문인 듯하다.
기지마는 신화화된 모성의 이미지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거대한 대지가 만물을 품듯 피로와 외로움에 지친 남자를 보살피고 그들이 보내는 절대적 숭배로 자기 존재의 의의를 증명한다. 여기에는 전근대적 세계관이 자리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여성이 남성보다 뛰어나기에 그런 의무를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우월감이 존재한다. 남자들이 다 그렇지 뭐. 아무리 커도 걔들은 애야.
기지마의 이런 세계관은 민감했던 청소년기에 강화된 것으로 보인다. 누구보다 조숙했던 그녀는 또래 아이들보다 훨씬 더 여성에 가까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반 친구들에게 그 모습은 앞서감의 상징이 아니라 괴상망측한 것이었다. 기지마는 또래의 남자애들로부터 거의 아무런 관심도 받지 못한다. 여기서부터 기지마의 괴리가 시작된다. 본인은 확실히 어른에 가까운, 즉 더 우월한 사람임에도 그 세계에 받아들여지지 않는 모순. 그런 기지마가 유일하게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곳은 바로 집이었다. 여동생은 그녀를 잘 따랐다. 아버지와는 유난히, 가까웠다. 기지마는 이런 유대관계가 여성의 의무를 다하지 못하는 엄마의 부족함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엄마는 제대로 된 요리 하나 해주지 않고 밖으로만 나돌아 다닌다. 집은 지저분하고 비위생적이다. 기지마는 본인이 아내와 엄마의 역할을 대신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누구보다 성숙하고, 여성스러운 자신이.
기지마 가나에는 2009년 '수도권 연속 의문 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체포된다. 일명 꽃뱀 살인사건으로 불린 이 사건에서 그녀는 결혼을 미끼로 만난 남자들에게 10억원이 넘는 돈을 갈취하고 그들을 교묘한 방법으로 살해했다는 혐의를 받는다. 기지마의 사진이 매체에 실렸을 때 일본 사람들은 크게 놀랐는데, 일반적으로 생각했던 '꽃뱀'의 이미지와는 너무나도 달랐기 때문이다. 기지마는 100kg이 넘는 못생긴 여자였다. 피해자들은 그녀가 '목소리가 예쁘고 말씨에 기품이 있고 요리를 잘하는 게 큰 매력이었다고 입을 모았다.(p.576)'
기지마 가나에는 2017년에 사형 선고를 받고 현재까지 수감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그녀는 재판을 받는 와중에 유료 블로그에 자신의 수감 생활을 연재했다. 옥중에서 세 번 결혼했으며 현재 남편은 일본에서 가장 잘나가는 극우, 황색 언론 잡지 <슈칸분슌>의 편집자이다.
작가 유즈키 아사코는 2017년 기지마 가나에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 <버터>를 집필한다.
기지마는 <버터>를 읽고 자신의 블로그에 감상평을 남기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