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보스 되다 - 멋진 리더로 이끄는 10가지 전략
케이틀린 프리드먼.킴벌리 요리오 지음, 김소정 옮김 / 이끌리오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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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CEO가 없다는 것은 여성들이 차별받고 있다는 증거일지 모르지만 여성 간부중에서 CEO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고 이 책은 말한다. 그 이유는 가정일과 병행하기엔 희생이 많이 따르기 때문일 것이다. 아직은 아이에 대한 사랑과 가족에 대한 소중함이 더 크게 작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마음 깊은 곳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보스의 길을 마다할 여성은 없다. 성공한 삶을 살고 싶다는 욕망이 깊은 곳에 잠자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왜냐구? 이건 인간의 기본 욕구이니까. 멋져 보이는 모습 이면에 책임감과 고뇌가 따르긴 하지만 말이다. 나? 물론 나도 여성 보스가 되고 싶다. 언제까지고 주어진 일만 하고 이끌려 가는 삶은 살고 싶지 않으니까. 세상에 태어나 존재 이유를 갖고 화려하게 멋진 인생을 살아보고 싶다. 

"멋진 리더로 이끄는 10가지 전략"은 그래서 아주 매혹적으로 나에게 손짓해 온다. 아직 리더가 되었든 되지 않았든 훌륭한 지침서가 되어 주는 것이다. 나의 상태는 그저 아주 지극히 평범하다. 회사에 취직이 된 상태도 아닌 그저 집안에서 가정경영이나 하는 신세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사회에 다시 발을 들여놓았을때 화려하게 복귀하고 싶다는 욕심을 가지고 있다. 이 욕심만 가지고 냉정한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장담할 순 없지만 한번뿐인 인생 정말 멋지게 살아 보고 싶다. 

관리자의 길은 많이 외로워 보인다. 내가 사원일때 바라본 팀장들은 늘 인상을 찌푸리고 고래고래 소리지르는 정말 무서운 존재들이었다. 부하직원이 뭔가 잘못하길 기다리는 존재들. 그래서 모이면 상사에 대한 욕이 태반이었다. 사우나나 다니면서 윗 상사에게 아부하는 팀장도 있고 세상이 어찌 돌아가려는지 나의 진가를 알아봐 주지 않는 회사에 대해 실망만 하는 생활들이었다. 하지만 월급만 받아가고 그저 시간 때우기 식으로 살아온 나도 별 할말은 없다. 내가 리더의 위치에 섰을때 그 사람들보다 나은 면이 뭐가 있었겠는가. 감정적인 면만 내세워 냉정한 모습을 유지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사악한 여우, 까다로운 여우, 착한마녀"라고 이름 붙여 예를 드는 여성 보스의 이야기들은 솔직히 심기 불편하여 책을 놓고만 싶어진다. 아마 내가 여자이므로 무조건적으로 여자편에 서서 옹호해 주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자들에게 붙여지는 이름이 아닌 여자에게만 붙여지는 보스들의 유형이고 보면 정말 화가난다. 대체적으로 남성들이 리더로 있는 사회이고 보면 여성들이 이 자리를 비집고 들어가기 힘들기도 하지만 이런 유형으로 불리우는 것조차 여성의 자리를 없애고자 밀어내는 듯 여겨지니 말이다. 어쩌면 여성들의 적은 같은 성을 가진 여성들일 것이다. 사촌이 땅을 사서 배가 아픈 것도 아닌데 여자 보스라면 아예 곱지 않은 시선을 가지고 "어디 잘하나 두고 보자"식으로 바라보게 된다. 이런 여성들이 많아지면 나에게 해가 되는 일이 없을텐데도 말이다. 왜 이렇게 꼬여있는걸까? 참 알 수 없다. 남자들과 일하는게 편하다는 의견들이 많은 것을 보면 여성 보스의 길은 참 험난하기 이를데 없다. 하지만 능력만 놓고 볼 때 남자보다 뛰어난 여성들도 많다. 나도 그 대열에 끼어들고자 하니 꼬여있는 심사부터 달래는게 우선일 것이다.  

여성 보스에게 필요한 자질은 꼭 여성들에게만 필요한 자질은 아니지만 분명 약한 부분일 것이다. 신입사원 채용부터 일을 맡기고 진두지휘 해야 하는 일은 냉철해야 하겠지만 일을 해 냈을 때의 성취감 또한 크기 때문에 외롭고 힘든 싸움일지라도 자신과의 싸움에 인생을 걸게 되리라. 여전히 마음속으로는 직장에서 가정일을 고민 해야하고 남자보다 두 세배의 노력을 해야 가까스로 유지할 수 있는 자리에 앉아 있지만 그래도 그녀들의 모습은 멋지다. 섬세한 감정으로 부하직원을 따뜻히 챙기고 편안한 회사로 만들 수 있다면 감정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하여도 이것 또한 리더의 모습이라고 생각된다. 여성적인 모습을 오히려 가둬두고 감추려고 애쓰기 보다는 단점을 장점으로 만느는 능력 또한 리더의 자질이 아닐까. 여성이라는 성은 모든게 마이너스의 조건은 아니다. 충분히 플러스로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냉정하지 못한 여성이라는 존재에 대해 적힌 글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나에게만 유리한 조건들만 읽게 되지만 그래도 잠재되어 있는 여성의 보스 기질을 충분히 깨어나게 할 수 있다는 전제로 쓰여진 책인 듯 하여 마음 뿌듯하게 읽은 시간들이었다.  

여성 보스가 되고 싶은가? 모든걸 완벽하게 잘 해야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지 않길 바란다. 남성과 경쟁하여 이겨야 된다는 마음이야 말로 나의 감춰져 있는 자질이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막는 일일 것이다. 내 안에 숨겨진 본능을 깨우고 능력을 키워 최선을 다해 나아갈 수 있다면 그것으로 내 인생의 보스가 되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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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개의 포춘쿠키 - 행복한 철학자가 건네준
존 러벅 지음, 윤영삼 옮김 / 21세기북스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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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모아 가만히 들여다 보고 있으니 무엇이든 움켜쥐고 놓지 않아 이것 저것 잡동사니들이 구석구석 쌓여가고 있었다. 이것들의 이름을 뭐라 붙이면 좋을까. 사랑? 욕심? 애증? 욕망? 아집? 독선? 이 작은 손에 이렇게 많은 것들이 들어 있었나? 그러나 내 삶만 쥐고 있었느냐 하면 아니다. 타인의 삶까지 움켜쥐고 있는 모습에 '내가 왜 이러고 살고 있나' 하는 한숨과 함께 쥐고 있던 것들을 당장에 떨쳐버리고 싶어진다. 그러면 행복한 기억의 모습까지 모두 떨어져 버리니 버릴 수도 없다. 하나 하나 내 삶들과 마주하니 한숨이 나오지만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다. 다른 형태의 모습으로 바꿀 수 있다면 움켜쥐고 있는 손에 따스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일곱개의 포춘 쿠키라면 나의 독선과 아집으로 만들어진 이 불행의 덩어리들을 달콤한 쿠키로 만들어 줄 수 있을까. 여덟번째의 포춘 쿠키로 탄생될 수 있을까.  

진실로 내 삶과 직접 마주하고 있었던 적이 없다. 내 자신조차도 나의 모습을 완전히 알지 못하기에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고 다듬어지지 않았을 뿐이라고 큰소리치지만 무미건조한 삶속에 또아리 틀고 가둬버린건 이또한 '나'임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이 작은 포춘 쿠키를 통해 단조로운 인생에 약간의 행복감을 던져 넣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점괘가 들어있는 중국과자"라고 하는 이 포춘 쿠키는 그래서 이름조차도 행운을 몰고 오는 듯 느껴진다. 새해가 다가오면 늘 뭔가 좋은 일이 일어났으면 하는 바램에 점을 보러 다니곤 했었다. 미래에는 좋은 일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란 기대감에 나를 점집으로 향하게 하는 것이다. 내가 기다리는 좋은 일이란 무엇일까? 가만히 생각해 보면 "돈과 건강, 성공"으로 압축된다. 돈이 많이 들어온다고 하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고 내 자신 성공한 인생을 살아간다고 이야기 하면 달라질 내 모습을 상상하며 돈을 내고 와도 기분이 좋아 날아갈 것 같다. 그러나 현실은 바뀌지 않고 늘 제자리일 뿐이다. 점집에 가서 내고 온 돈만 축났을 뿐이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무미건조한 인생을 바꿀 수 있는 힘은 무엇일까' 생각도 해 보지 않은채 가만히 있어도 삶이 바뀔꺼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라니 참 우스운 꼴이다. 

이제 하루 하루 나에게 행운을 선사해 줄 쿠키를 먹어야 할 시간. 물론 먹기만 해서는 안된다. 마음에 새기고 그렇게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오늘은 기인을 만날 것이다, 남쪽으로 가면 큰 복이 온다" 등 이런 말들을 기대하고 봤는데 머릿속에 들어있는 이 이미지를 거둬내야겠다. 결코 이런 주제를 다루는게 아니다. 철학적인 내용들이 나를 반기고 있다. 녹록지 않은 시간들. 이 시간조차 소중히 생각하며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읽어야겠다. 거울에 비친 나의 모습과 마주한 시간들을 통해 작은 것에도 감사할 줄 모르고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 내놓은 시간조차 없는 나의 삶이 보인다. 내가 지니고 있는 건 그나마 이 '시간'뿐인데 말이다. 철학자가 건네준 쿠키라 그런지 아주 심오한 내용들. 이름만 들으면 아는 아주 유명한 분들의 글귀들. 아~어렵다. 하지만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은 유익한 시간들이다. 일곱개의 포춘 쿠키들을 받으면 인생이 참 행복해 질 것 같다. 어차피 살아가는 의미는 행복이지 않는가. 이 행복을 위해 그렇게 땀흘려 살아가니 말이다.  

일곱개를 다 먹었는데도 부족하다. 아직도 내 안에 "성공 할 겁니다"라는 글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하지만 한결 가벼워진 나의 손. 불행한 모습의 덩어리들이 다른 모습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삶의 지혜들이 필요할때 하나씩 열어봐야 하는데 이놈의 욕심으로 또 손 안에 다 쥐어 버렸다. 하지만 손을 꽉채운 쿠키들이 다른 녀석들을 변화시켜 줄 것이다. 물론 그것을 빚어내는 몫은 내가 되어야겠지만. 이제 여덟번째 포투 쿠키 안에 들어있는 점괘는 '나를 사랑하기'다. 그러면 타인의 것을 욕심내지 않아도 될테니 변화된 내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좀 더 여유로운 삶을 즐기고자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을 계속해 보련다. 욕심 같겠지만 게속 포춘 쿠키들을 먹을 수 있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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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니발 라이징
토머스 해리스 지음, 박슬라 옮김 / 창해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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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뜩하게 다가오는 책 표지를 보며 나름대로 한니발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놓았는지도 모른다. 결코 평범한 사람이 아닌 악당 내지는 괴물로 말이다. 그런데 책을 다 읽고 난 지금은 전쟁으로 인한 상처받은 영혼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의 감정까지 혼란스럽다. 그가 괴물로 변할 수 밖에 없는 상황들에게 어떤 당위성을 부과하는 것은 아니지만 여동생 '미샤'의 죽음은 그에게 감정을 사라지게 만든 큰 충격적인 사건임에는 틀림이 없다. 이 상황이 되면 누구든 변할 수 밖에 없겠지만 그는 너무도 잔인한 모습으로 변했다. 감정이 없는 빈껍데기를 가진 모습으로 말이다. 책을 펼치고 마지막까지 시종일관 눈을 뗄 수가 없었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던 무렵 올바른 정신을 가진 사람은 아마 없었을 것이다. 살인, 학살, 굶주림 등 사람으로서 견디기도 힘든 인권이 유린되는 상황들을 거치면서 내가 이들과 함께 그 당시 살았다고 해도 도저히 제정신으로 살아가지는 못했을 것이다. 생존했을지조차 의심스럽다. 그래서 굶주림에 지쳐 인육을 먹게 되는 모습은 섬뜩하게 다가오며 구역질이 나지만 그들은 몰랐을 것이다. 하필 한니발의 여동생 '미샤'를 먹게 되는 행동이 훗날 뼈져리게 후회를 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목숨마저 내 놓아야 할정도로 위험천만한 일이었음을. 전쟁이라는 특수한 경우라고 해도 그것을 목격한 사람에게는 얘기가 달라진다. 지켜주지 못한 아픔과 마지막 모습은 분명 가슴에 상흔이 되어 절대 떨어지지 않으니 말이다.  

법의 심판을 받게 해도 좋으련만 굳이 한사람씩 처단하는 한니발. 나의 예상과 다르게 엉성하게 처리하는 복수, 어쩌면 인간적인 모습을 엿보인게 아니었을까. '미샤'의 팔찌를 차고 있는 아이를 죽이지 않고 그저 팔찌만 가져오는 모습은 가슴을 쓸어내리게 한다. 그루타스를 죽이는데 실패하여 레이디 무라사키가 그루타스에게 납치 당하는 모습은 아직은 한니발이 괴물로 완전히 모습을 바꾸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듯 하여 그의 영혼도 쉴수 있게 되지 않을까 조금의 기대를 가지게 되었다. 자신의 영혼을 받아줄 수 있는 사람인 레이디 무라사키가 그의 인생에 존재하는건 그래서 작은 축복일 것이다.  

내 안에 나도 모르는 잔악한 면이 숨어있었는가 보다. 한니발이 처단하는 사람들을 당연히 죽어야 하는 사람으로 분류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전범이고 많은 사람을 학살했으므로 법의 심판 없이 죽이는 한니발이 잘못 되었다고 말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책을 읽으며 충분히 동조를 하고 있었던 듯 하다. 시종일관 불안한 마음으로 책장을 넘겼으나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박함은 찾을 수가 없다. 치밀하게 두뇌를 회전해야 하는 두뇌게임조차 장치되어 있지 않다. "양들의 침묵"을 보고 이 책안에서 한니발과의 심리전을 기대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떤 책을 읽기 전에 미리 무슨 내용일까 유추하는 재미가 있지만 이 책은 그 기대감을 반감시킨 책이다. 잔인한 악당으로 묘사되었다면 꼭 잡아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거나 희대의 살인마로 묘사되었다면 온갖 욕을 하며 등골 서늘함을 간간이 느끼며 책을 읽었을 것이다. 여기엔 그저 누구나 한니발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한 인간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한니발 렉터는 분명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존재이고 그의 악마적 본성은 가슴을 섬뜩하게 만드니 이 책을 읽기 전에 따뜻한 가슴을 꽁꽁 싸매고 읽기 바란다. 그에게 나의 따뜻한 감정을 빼앗기지 않으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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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헤스와 불멸의 오랑우탄
루이스 페르난두 베리시무 지음, 김라합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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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자로 죽어있는 시체와 탁자위에 있는 카드 3장.  

이것으로 살인자를 밝혀야 한다. 이는 살인사건 현장을 처음 목격한 포겔슈타인의 증언을 통해 드러난 단서이다. 경찰이 도착하기전 시체마저 훼손되어 있고 탁자에 있다던 카드 3장도 사라진 상태로 어떻게 파헤칠지 두통만 온다는 쿠에르보와 포겔슈타인, 보르헤스 이렇게 세사람이 로트코프의 살인범을 잡기 위해 모였다. 과학적인 수사를 하고 싶은 쿠에르보와는 다르게 포겔슈타인과 보르헤스는 에드거 앨런 포의 문학과 살인수법을 비교하며 추리를 하니 쿠에르보 못지 않게 수사의 방향을 지켜보는 나도 참 답답해진다. 어찌 보면 셜록홈즈의 사건 해결 방식을 보는 듯 하여 하나씩 풀어질 범인의 모습에 기대를 걸며 이 두사람의 문학적인 추리에 인내심을 가지고 들어보지만 '불멸의 오랑우탄'까지 범인으로 지목하는데는 나도 두손두발 다 든 상태다. 

모름지기 추리소설은 긴박감이 있어야 하는데 좀체 긴장감을 주지 않는다. 대체 범인을 잡을 수는 있을 것인가? 보르헤스에게 이야기 하는 형식으로 이 사건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포겔슈타인은 천부적인 이야기꾼은 아니다. 어찌나 지루한지 한장 한장 넘기기가 힘이 들 정도이니 추리소설 작가를 하기엔 무리가 따르는 듯 하다. 문학사를 헤집으며 대화하는 그들속에 자세한 설명을 곁들인 인물들 소개까지 정보는 다양하지만 정작 나에게 보여주고자 한 주제는 비켜간 듯 하다. 황당한 추리 같지만 어쩌면 로트코프 시신의 V자 모습을 X에서 O로 계속적으로 추리를 해 나가는 모습은 포겔슈타인의 머릿속에 있던 시신의 모습이 좀 더 정확성을 보임에 따른 모습의 변화이지만 조금씩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가는 듯 해 보이기도 한다.  

으례 사건이 벌이지고 나면 범인이 누구인지 대충 유추하기 마련이라 문을 빼꼼히 열어두고 같은 층을 쓰는 로트코프를 지켜보고 있던 이 사람이 범인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칵테일 파티에서 로트코프가 두번을 밀어 넘어 뜨렸다고 해서 사람을 죽일 증오심을 가졌다고 보긴 힘들지만 의외로 범인이라 생각하지 않던 사람이 범인으로 나타나는 예가 많으므로 내 나름대로 고민을 했으나 단지 근거도 없는 추론이라 설득력을 가지긴 힘들어 보인다. 살인에 사용된 칼이 발견됨으로써 사건이 진전하는 듯 보이나 점점 미궁속에 빠져드는 모습은 성질 급한 사람이 읽으면 숨 넘어갈만큼 전개가 느리다.  

현미경으로 칼에 묻은 피를 찾아내는 모습은 현대에 살고 있는 내가 봐도 참 답답한 노릇이다. 이래서 언제 범인을 잡겠나? 문학에 빗대어 범인을 추론하는 두사람 포겔슈타인과 보르헤스만이 여유로운 모습이다. 지문 채취도 하는데 이때는 어떻게 채취했을까 하는 생각도 잠시 책꽂이에 꽂혀 있는 책이 펼쳐진채로 발치에 떨어져 어떤 단서를 줄지도 모른다고 이야기 하는 부분에선 죽은 사람만 불쌍해지는 듯 생각된다. 죽은 사람은 V자로 무얼 보여주려고 한 것일까? 범인의 이니셜? 아니면 왜 죽게 되었는지 이야기 하는 것일까? 이 궁금한 마음이 책을 한장씩 넘기게 하였으나 점차 시간이 갈 수록 범인이 누구일까의 관심보다 어서 범인이 잡혔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든다.  

보르헤스에게 사건을 주제로 쓴 글을 주며 결말을 부탁하는 포겔슈타인, 보르헤스에게 동경하는 마음을 가진 것은 알겠으나 살인사건의 결말인 꼬리부분을 만들어 달라는 요청은 보르헤스의 말대로 쿠에르보에게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나에게 결말을 부탁한다면 난 보르헤스가 만든 결말과 다르게 앞에서 언급한바와 같이 로트코프를 지켜보고 있던 일본인을 범인으로 만들 것이다. 독자에게 어떤 모습으로 다가가는 책을 만들지 나도 자신할 수 없지만 어쨌든 내가 생각하는 범인을 내세워 추리소설을 완성해 갈 것이다. 쿠에르보에게 던저질 결말을 여러분은 어떻게 마무리 지을 것인가. 다른 사람은 어떤 이야기를 이끌어 가게 될지. 어떤 결말을 지었는지 상상하게 된다면 나에게도 알려주기 바란다. 포겔슈타인과 보르헤스처럼 문학을 주제로 대화를 나눌 순 없으나 이 사건을 가지고 충분한 대화를 나눠 볼 수 있을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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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가계부
제윤경 지음 / Tb(티비)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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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정관념이란 것은 약에 쓸래야 쓸데가 없다. 그저 걸림돌이 될 뿐인 듯 하다. '가계부를 여자가 써야한다'고 누가 그랬나 말한 사람도 없는데 난 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결혼하고 가계부란걸 써 보겠다고 달려들어 보았지만 도대체가 수입과 지출이 맞지 않아 답답한 마음에 집어 던진 것이 한두번이 아니다. 그래서 남편에게 가계부를 떠 넘겨 볼 요량으로 권유한적은 있지만 별반 기대하지 않았기에 '남자가 가계부를? 아니지' 하며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들을 지워버렸기에 "아버지의 가계부"는 나의 생각이 짧았음을 지적해줌과 동시에 나의 고정관념을 여지없이 깨 버린 책이었다.  

"물려받은 재산이나 로또 당첨 없는 내가 진짜 부자가 된다" 참 솔깃하는 말이다. 재테크 관련책을 읽다 보면 재테크에 대해 문외한에 이쪽에 발조차 내밀지 않은 나를 참으로 부끄럽게 만들었었다. 전업주부이지만 화려하게 재테크를 해서 집안 살림을 반들반들 윤이나게 하는 사람들은 분명 내가 고개를 들고 쳐다볼 엄두조차 못내는 별 세계의 사람들이었다. 남편이 주식에 손을 대고 있지만 불안한 마음에 어서 정리해 주길 바라는 내게 이 책은 내가 할 수 있는 분야를 계획적으로 미래 설계를 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고 있었다.   

하늘, 광수, 문식, 재벌 이 4명의 친구들이 마흔살의 문턱에서 인생을 다시 돌아보는 시간은 나에게도 끔찍하게 생각되는 시간들이다. 아직 30대 초반이긴 하지만 아이를 낳고 양육하는 문제에 노후자금까지 마련하려면 이들처럼 가슴 서늘해지고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한다. 거기다 아직 집 장만도 못했으니 상황은 좋지가 않다. 얼마전 종신보험에 가입하면서 재무설계를 받아보았는데 대체 언제까지 돈을 벌어야 하는지 남편의 정년퇴직 시기는 멀지 않고 눈앞이 캄캄해져 왔었다. 하지만 아끼고 저축하면 된다고 애써 자위하며 마음을 진정시켜 왔었다. 그러나 이젠 정면으로 맞서야 할 때가 왔다. "이렇게 집에만 있어도 될까? 맞벌이 해야하는거 아닐까?" 한가한 시간이면 늘 이런 생각들이 나의 머릿속을 헤집곤 한다. 아직은 돈을 벌수 있음에도 너무 안일하게 대응하는 것이 아닌지. 뻔한 살림에 지출목록 다 알고 있다고 대충 가계부를 써 왔는데 이것 또한 문제가 심각한 것 같다.   

난 이 4명중 어떤 부부 유형일까 생각해 보았다. 어쩌면 하늘 부부처럼 사는 게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나는 전업주부로 돈을 벌지 않으니 이들 부부보다 처지가 나은건 아니다. 하지만 가계부를 쓰고 미래 여유자금을 지금 당겨쓰지 않고 충동구매 없이 알뜰하게 살 수 있다면 그리 갑갑한 상황은 아닐 것이다. 물론 지금의 나의 모습은 아껴 쓴다고 하지만 여전히 신용카드는 쓰고 있고 흔히들 들고 다니는 체크카드 사용도 하지 않고 그저 예산없이 대충 돈을 들고 장을 보러 가는건 다반사에 물건을 살 때 이리저리 비교하지 않고 그냥 막 사는 내 모습은 아직은 절약한다고 남에게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나 자신과 마주보고 설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 희망적인 미래를 꿈 꿔 볼 수 있는 시간들이었다. 어쩌면 남편에게 넘겨주기 싫은 고유권한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제부턴 가족이 함께 쓰는 가계부를 만들어 가야겠다. 남편이 어찌 받아들일지. 조용히 이 책을 권한다고 읽진 않을텐데 과연 내가 조리있게 잘 설득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마 우리집은 가계부를 쓰기 이전에 "가계부는 여자가 쓴다"는 고정관념부터 부셔버려야 할 것 같다.  

분명 이 시대를 살아가는 아버지의 모습은 힘 없고 약해보이는 모습이지만 '하늘'의 아버지가 가족을 위해 쓴 가계부를 보고 있노라면 가족들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마음이 느껴진다. 나도 나이 들어 자녀에게 나의 가계부를 물려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시작이 반이라고 하지 않나. 이제부터 노력하여 저축할 돈이 없다고 생각하며 늘 돈을 쫓아 다니며 사는 것이 아닌 돈에 휘둘리지 않는 삶, 행복한 삶을 설계하여 나의 마흔살은 여유롭게 맞이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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