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 허풍담 1 - 차가운 처녀
요른 릴 지음, 백선희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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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바지를 벗고 밖으로 뛰어나간 안톤이 15분도 채 되지 않아 뛰어 들어왔다. 그래서 안톤의 고민이 해결되었다는 거야, 아니란 거야? 뒷장에 갑자기 그림이 등장하니까 이야기가 끝난줄 알았다. 독자들의 몫으로 남겨둔 줄 알았더니 "바람이......멎었어요"라고 말하는 안톤때문에 풋, 하고 웃음이 터지고야 말았다. 좋아, 첫 단편 [남동풍]부터 실망시키지 않는군. 그냥 웃고 넘어갈 수 있는 상황임에도 밸프레드는 안톤에게 철학적인 말을 던진다. "여자랑 마찬가지야. 믿고 기대하면 안돼" 뭐냐, 이것이 멈춰버린 바람에게 하는 말이란 말인가. 역시 북극의 그린란드 북동부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결코 평범한 존재들이 아니다.  

 

문명 세계를 '저 아랫것들이라 부르는 괴짜 사냥꾼들의 이야기를 엮어 놓은 '북극 허풍담'이다. 그러나 그들이 하는 일이라고는 사냥을 조금 하고 과거의 기억속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극야'의 시간을 홀로 보내다 외로우면 다른 사람을 방문하는 삶을 보낸다. 이런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우리들이 문명 세계를 살아간다고 '저 아랫것들'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인가. 북극의 그린란드 북동부에서 괴짜 사냥꾼으로 살아가는 것이 <세계사의 본보기>라고 주장하는 비요르켄도 있지만 이 괴짜 사냥꾼들의 마음 속에는 온통 외로움이라는 단어가 꽉 들어차 있다. 자신들이 내버려두고 온 문명 세계를 여전히 떠올리고 그리워한다. 절대 그렇지 않다고? 온통 눈과 빙산, 1년의 반은 밤이고 반은 낮인 이곳에서 살아가는 것이 문명 세계 사람들보다 낫다고 생각한다고? 그러면 왜 그들은 문신 예술가 요엔손 씨가 왔을 때 힘들게 모은 재산들을 선뜻 내어놓고 몸에 문신을 새겼을까. 빌리암은 엄마를 보지 못했지만 문신을 새겨 엄마를 갖게 되고 비요르켄은 꿈틀거리는 용을 등에 새기며 즐거워 한다. 아직 이들은 완전하게 문명 세계를 떠나지 못한 것이다. 하긴 그 누가 과거의 기억에서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매스 매슨이 만든 가상의 차가운 여자 '엠마'는 빌리암과 비요르켄에게 무슨 짓을 한 것인지, 한마디로 어이가 없는 상황이다. 실체가 없는, 머릿속에서나 만날 수 있는 가상의 인물일 뿐인데 매스 매슨의 입에서 사과 도넛을 닮은 '엠마'라는 이름이 튀어나오는 순간 그녀는 핑크빛의 아름다운 여인이 된다. 빌리암이 사랑하는 엠마는 매스 매슨이 말한 엠마와 다른 사람일 것이며 비요르켄까지 그녀에게 반했다고 하지만 분명히 그의 마음속에 있는 엠마도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다. 자신만의 엠마를 갖고 싶은 빌리암과 비요르켄이 자신들이 가진 재산을 내어놓으면서까지 그녀의 사랑을 차지하려는 모습은 이 사람들이 제정신인가 의구심을 가지게 하지만 이들은 꽤 진지하다. 내가 어이없어 하는 것이 이상할 정도다.

 

그렇다고 이 사람들 정말 순진하구나, 이렇게 단정해 버리면 큰일난다. 괴짜 사냥꾼들을 훈련시키려는 한센 중위가 어떻게 되었는가. 구덩이에 갇혀서 고생하고 사냥이나 하면서 살겠다고 다짐하지 않던가. 자신의 삶에 조금이라고 불편함을 주거나 문명 세계가 끼어들 여지가 있다면 이렇게 냉정하게 행동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얄의 죽음에 슬퍼하기 보다 '좋은 사람이었지' 회상하며 죽은 얄과 함께 식탁에 앉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며 우리들이 생각하는 상식과 사회 규범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이지만 북극의 그린란드 북동부에서는 자신의 삶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화장실 문제를 해결하려면 개 한 마리를 데리고 외진 곳에 가야하지만 주변의 경치를 볼 수 있고 추위를 막아줄 수 있는 화장실이 있다면 기꺼이 이를 받아들이고 즐길 수 있는 사람들, 그러나 화장실을 갖는다는 것이 자신의 삶에 어떤 의미를 던져주는지 결코 잊지 않고 있는 사람들, 그들이 바로 괴짜 사냥꾼들이다. 문명 세계에서 살아가는 우리들과 다른 삶을 살아가지만 그들은 결코 불행해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유쾌한 이들의 이야기가 갑자기 공포소설로 바뀌는 것은 뭔가. 그래서 올슨이 크리스마스 때 뭘 잡아 먹었다는 거지. 사람들이 거의 살지 않는 외지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이렇게 정신을 놓아버릴 수도 있는 힘든 일인데, 그들이 계속 이곳에서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에 대한 답은 '북극 허풍담'을 계속 읽으면 얻을 수 있을 테지만  나는 역시 화장실 문제와 먹는 것이 해결되어야만 겨우 이곳을 방문할 생각을 할 수 있을것 같다. 이곳의 매력에는 또 뭐가 있을까.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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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교과서 - 아이랑 엄마랑 함께 행복해지는 육아
박경순 지음 / 비룡소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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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정상 발달과정에 심리학까지 더해지니 무너뜨릴 수 없는 벽이 완성된다. 그동안 아이를 키우면서 사랑으로 감싸줬다는 변명 아래 아이에게 얼마나 많은 상처를 줬을까. 그동안 부모에게 받았던 상처로 아이의 마음 속에 어떤 이야기가 만들어져 있을까. '엄마 교과서'를 읽으면서 내내 나를 괴롭힌 이 의문들은 마지막 책장을 덮는 순간까지도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내가 죽을 때까지 이 의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순 없을 것이다. 좋은 부모가 되는 것? 부모는 만들어지는 것이다? 아니, 내가 이 책을 통해 얻을 수 있었던 것이라면 아이의 마음에 불안한 감정이 깃들어 있다면 그 어떤 이유도 나 자신을 위한 변명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무조건적인 사랑만으로도 아이를 잘 키울 순 없는 것이다. 

 

'엄마 교과서'는 나에게 좋은 부모가 되는 해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요즘 아이의 배변훈련이 되지 않아 처음에 그 부분부터 펼쳐 보았는데 "이렇게 해야 한다"와 같은 답은 없었다. 아이의 정상 발달과정을 설명하며 거기에 아이의 마음까지 보여주고 있지만 육아에 대한 전체적인 윤곽만 그려줄 뿐 개개인에 대한, 아이의 발달에 대한 것은 오롯이 우리들의 몫으로 남겨 두었다.

 

이 책의 목차를 들여다보면 '구강기, 항문기, 남근기'로 나누어 설명하는 부분을 볼 수 있다. 공부할 때나 들어봤던 말이다. 육아에 대한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들어보았을 말이지만 이렇게 체계적으로 설명하니 그동안 속 끓였던 것이 모두 아이가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나타날 수 있는 과정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무례함?' '공격성?' '부모는 유아로 하여금 보복에 대한 두려움 없이 부모를 공격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니 처음에 이 문장을 보았을 때 나도 이런 생각을 했다. '버릇 나빠지면 어쩌려고?' 같은 질문을 들은 남편도 똑같은 대답을 했다. "그럼 아이가 때리면 계속 맞고 있으란 말인가?"라고. 정말 작가가 말하는 것 처럼 부모 마음이 얼마나 살가워야 무례한 짓을 해도 아이가 예뻐 보일까. 나는 아이의 무례함이나 공격성을 그냥 두고볼 수 있는 성격이 아니기에 이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았다. 작가에게도 이것은 오랫동안 화두로 삼을만큼 큰 깨달음을 주었던 문구라고 하니 누구나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말은 아니다.

 

"내 아이가 최고"라고 느끼게 해주는 것이 아이에게 꼭 필요한 과정이라는 것을 알지만 이렇게 구체적으로 과정과 결과까지 제시한 육아서를 보진 못했다. 요즘들어 아이에게 예쁘다, 귀엽다라는 말을 자주 하긴 하지만 내 아이가 최고라는 느낌을 전해주진 못했다. 어떻게 하면 아이가 "내가 세상에서 제일 잘났다"고 생각하게 될까. '내가 세상에서 제일 잘났다'고 믿는 산의 정상에 오른 후 나르시시즘의 정상인 이 산에서 내려갈 일만 남은 아이가 앞으로 어떤 상태에 놓이게 되는지, 이것이 아이에게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지에 대해 코헛은 이것을 아이가 견딜 수 있을 만큼의 좌절인 '적절한 좌절의 과정'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육아가 어렵긴 하지만 이렇게 자세한 설명까지 곁들이니 가슴이 떨릴 정도로 아이의 미래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끊임없이 남편에게 아이를 이렇게 대했는데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을 정도로 그동안의 육아에 대해 자신할 수 없다. 나는 아이에게 '착한 아이 증후군'을 심어준 것이 아닌가 반성했다. 타인에게 내 아이가 착해 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아이를 버릇없이 키우지 않고 잘 키웠다는 말을 들으며 안도했던 나의 마음은, 아이의 마음까지 살피지 못했다는 자괴감에 빠져 오랜시간 나를 괴롭힌다. 지금부터 잘 하면 될거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면 돼, 라고 위로해 보지만 똑같은 상황에 놓였을 때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을지 자신할 수 없다. 이것에 대한 답은 어른보다 감정 조절이 불완전한 아이를 배려해야 한다는 것 밖에 답하지 못하겠다. 이것으로 되었는가. 

 

이 책을 읽고 조금 달라진 것이 있다면 아이가 무례한 행동을 할 경우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남편에게 "아이가 때리면 아프다는 표현을 해야 하고 혼내고 때리는 것이 아니라 아프다고 울고 찡그리고 몸으로 아이에게 표현을 해야 한다고 되어 있다"라고 말해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겨우 한발짝 정도 떼긴 했지만 '엄마 교과서'를 읽은 후 나의 마음이 조금 달라진 것을 느낀다. 이렇게 말해도 아이가 어른을 때리고 버릇없이 구는 상황이 오면 또 혼내고 때리기부터 하겠지만 적어도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한번쯤 생각하지 않겠는가. 지금은 그것으로도 충분하다. 처음부터 잘할 순 없으니까. 이러다 아이가 다 커버리면 무슨 소용이 있나. 금방 바꿔져야지, 라는 생각도 나지만 나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방에도 아직 성숙되지 못한 자아가 있고, 어린 시절 겪었던 일들이 잊혀지지 않으니 쉽게 되진 않을 것이다. 다만, 내 아이는 행복한 삶을 살아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고 아이를 대한다면 조금씩 나아질 것이라고 믿는다.

 

아이가 행복했으면 한다. 아이의 마음이 어떠한지, 지금의 감정이 어떠한지 잘 살펴서 아이가 행복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한다면 지금과 다른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은, 참으로 고맙게도 불완전한 부모를 생각하여 부모를 위한 교과서가 지금 출간되었다는 것이다. 또 여기에서 나를 위한 변명을 찾고 있지만 '엄마 교과서'는 모든 부모들이 완벽하고 완전한 존재일 수 없다는 전제를 가지고 출발하고 있기에 누구에게나 기회가 있음을 말하고 있다. 아이도, 나도 온 가족이 행복할 수 있는 길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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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마술사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2-5 링컨 라임 시리즈 5
제프리 디버 지음, 유소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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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컨 라임은 연쇄살인범을 '요술쟁이'라고 칭했지만 나는 환상마술을 이용하여 사람을 죽이는 자신을 '말레릭'으로 칭한 범인을 따라서 앞으로 '말레릭'이라 부르겠다. 도대체 몇 번인지, 아니 몇 십번인지도 모를 정도로 반전에 반전이 이루어지는 '사라진 마술사'는 책을 덮고 난 후에도 몇 번을 돌이켜보고 그동안 가졌던 의문에 대한 해답을 스스로 내리고나서야 완전하게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이다. 제대로 된 정체도 파악되지 않는 살인자 말레릭을 잡는다는 것이 가능하기나 할까. 아니 잡아넣고서도 그가 탈출하지 않고 법의 심판을 받을 수는 있는 것일까. 좀처럼 말레릭의 정체를 파악할 수가 없다.

 

링컨 라임이 지금까지 맡았던 사건들도 그리 쉽게 해결되지 않았으나 이번에는 정말 어려운 상대를 만났다. 마술에 대한 자문을 구하기 위해 카라의 도움을 받긴 하지만 모습을 여러 번 바꾸는 범인을 잡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오로지 믿을 수 있는 것은 증거들 뿐, 링컨 라임는 그가 믿는대로 따라가지만 그 끝에 이르면 상상도 하지 못할 진실이 기다리고 있다.

 

왜 말레릭은 여러 명을 죽인 연쇄살인범이 되었는가. 자신의 미래를 위해 필요한 일이었다고 해도 이렇게 살해동기도 찾아낼 수 없을 정도로 무차별적으로 사람들을 선택하여 죽여야 할 이유가 있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링컨 라임과 말레릭이 주고 받는 게임으로 보인다. 말레릭이 보여준 증거대로 따라가는 링컨 라임, 말레릭이 보여주지 않으려 한 증거들을 따라가는 링컨 라임, 결국에는 링컨 라임이 모든 퍼즐을 맞추고 사건을 해결하겠지만 그동안 말레릭이 저지른 사건은 그야말로 무모한 일이었고 어리석은 짓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그 누구라도 링컨 라임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을테니까. 무대에서 하는 마술 공연처럼 완벽하게 모든 것을 보여주려한 말레릭의 판단으로 인해 링컨 라임은 그에게 다가갈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었다. 처음부터 간단하게 사건을 이끌고 갔더라면 말레릭은 자신이 세운 계획을 이루었을지도 모른다.

 

그리 많은 시간이 흐르지 않았음에도 너무나 많은 공연을 보았음인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려 먼 길을 돌아온 느낌이다. 지금까지 시리즈들과 다르게 화려하지만 꼭 필요한 이야기들이었나 하는 생각이 드니 말이다. '사라진 마술사'는 사건이 끝났음에도 아직 들려줄 이야기가 남은 듯 꽤 많은 페이지가 남아 있어 긴장감을 준다. 또 무슨 반전이 남아 있는 것은 아닌지 긴장되는 것이다. 그러나 링컨 라임과 색스그리도 두 사람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좀 더 들려주느라 그랬다는 것을 알게 되니 이제서야 증거가 아닌 살아있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사건들이 현실적으로 느껴지지 않으니 오히려 링컨 라임의 삶이 현실적으로 느껴져 그가 낯선 사람들과도 인연을 맺으며 예전의 삶으로 조금씩 돌아오는 모습을 보는 것이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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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졌다! 사계절 그림책
서현 글.그림 / 사계절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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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상상력이란 그 끝이 어디일까. 키가 작은 아이의 키가 크고 싶다는 바람은 지구를 넘어 온 우주를 집어삼킬 정도로 간절하다. 땅에 뿌리를 내리고 비를 맞으니 저 하늘 끝까지 커지고 지구를 넘어 우주까지 커버린 아이는 그야말로 신이 났다. 새 친구도 사귀고 별똥별 사탕도 먹고 그러다가 지구까지 삼켜 버린다. "엇, 갑자기 어두워지네. 무슨 일이지?"하며 사람들은 깜짝 놀랐을 것이다. 모든 것을 다 뱉어낸 다음에야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아이는 우주에서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다. 아빠의 목에 떨어진 아이는 엄마, 아빠와 함께 밥을 먹으며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들려준다.

 

커지고 싶다는 바람이 어른이 되고 싶다는 바람은 아니다. 친구보다 작은 아이의 바람으로 키가 커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키가 컸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다리를 밀대로 밀고 천장에 거꾸로 매달리고 철봉에 매달려 다리에 고기를 묶어 개가 잡아당기게 하는 행동을 해야할 정도로 간절하다. 머리와 허리를 잔뜩 구부려 다리를 밀대로 미는 모습은 우습긴 하지만 우유를 많이 마시고 음식들을 많이 먹으면 커질까 싶어 열심인 먹는 모습은 애처롭기까지 하다. 그러나 아이는 어떤 일이든 키가 커질 수 있다면 모두 다 해볼 작정이다. "얼른 크면 좋겠어요" 간절한 마음으로.

 

서현의 "커졌다"는 아이의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세계를 그리고 있다. 천정에 테이프만을 붙여 어떻게 매달릴 수 있겠으며 밀대로 민다고 키가 커지겠는가. 어느날 책에서 나무가 자라는 걸 본 후 나무처럼 비를 맞은 후 엄청나게 커지게 되기까지 그야말로 모두 상상의 세계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아이의 발가락 끝으로 뿌리가 보이는 것을 보니 나무가 된 모양이다. 비를 맞으니 나무처럼 쑥쑥 자라난다. 버스를 스케이트처럼 타고 다니는 아이의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경악을 하고 아이의 모습을 사진으로 마구 찍어대는데 지나가던 사람들이 아이의 발에 밝힐 정도이니 이것은 그야말로 이건 재앙 수준이다.

 

몸이 자라니 목이 마르면 물을 엄청나게 마셔야 하고 마트를 통째로 털어 넣어야 허기가 가시는데 이미 커질대로 커 버린 몸이 비를 맞으면서 또 자꾸만 커져간다. 아이는 구름을 뚫고 우주까지 갈 수 있어 신이나지만 계속 커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은 하지 않는다. 새로운 세계가 마냥 신나고 즐겁기만 하다. 다행히도 삼켜 버린 모든 것을 뱉고 나니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오는데 비록 다시 예전의 작은 몸으로 돌아왔지만 아이는 행복해 보인다. 잠시동안이지만 꿈을 이루었다는 것, 다른 사람들이 가보지 못한 곳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고 새로운 세상을 볼 수 있어 행복하다. 엄마, 아빠에게 그동안 겪은 모험을 이야기하는 아이는 즐겁다.

 

누구나 다 키가 크길 바란다. 키가 작은 아이의 마음이 얼마나 간절한지 그 마음을 들여다 보면서 나의 마음은 슬프기까지 한다. 성장이 끝났을 때 아이의 키가 작다면 어쩌나. 키는 작을지라도 꿈을 크게 가지면 된다는 위로만으로 아이가 슬픔을 떨칠 수 있을까. 서현의 "커졌다"에 등장하는 아이처럼 비를 맞아 몸이 점점 커져서 우주로 나가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고 온다면 마음이 넉넉해질까. 별별 생각이 다 난다. 이렇게 상상만으로도 큰 세상을 그려볼 수 있다니 아이의 상상력은 그 끝을 알 수가 없구나. 역시 어른이 된다는 것은 그리 즐거운 일만은 아닌 것 같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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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란 세트 - 전3권 - 개정판 기란
비연 지음 / 파란(파란미디어)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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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건이 마무리 된지 고작 10년 뒤만을 보여주다니, 이 책이 '기란'의 일생을 그리고 있지는 않지만 다른 로맨스 소설과 같이 결말을 맺는 것은 역시 양기란답지 않은 일이다. 양기란, 그녀는 황제의 후궁이지만 양기란으로 살고자 했다. 황제보다 자신을 더 사랑한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여인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황제가 있음으로서 할 수 있는 말이 아닐까. '유령'이라는 드라마에서 박기영이 하는 말을 따라해보자면 "소설을 한 번 써 보자면 황제 윤이 오랫동안 살아 왕권을 강화시켜 놓았을 때만이 기란의 행복도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만약에 윤이 일찍 죽는다면 기란의 삶 또한 자불태후나 효열태후와 다르지 않다고 그 누가 말할 수 있을까. 윤이 오래오래 살고 후계 문제가 확실히 매듭지어진 다음에야 기란은 멀고 먼 서촉에서 살았던 때처럼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나. 고작 10년 뒤에 기란과 황제 윤, 이친왕까지 행복해 보인다고 모든 것이 다 잘되었으니 안심할 수 있다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아직 양기란은 살아있고 자신의 삶을 살아내야 한다. 그러니 여기에서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단지 이것 하나 뿐이다. 지금 그녀는 행복하고 앞으로 얼마나 될지 모르지만 꽤 오랜시간 행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끝나지 않은 기란의 삶을 상상하며 소설을 써 보자면 하는 말인데 그녀는 황제가 있든 없든, 죽을때까지 양기란으로써 살아가고자 노력할 것이다"

 

자불태후와 효열태후는 황제의 사랑을 받았던 그 시절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한 삶을 살아간다. 다른 여인의 품 속에 있는 황제를 보는 것이 괴롭고, 자신이 점점 늙어가는 것이 원망스럽다. 모든 것은 자신들이 선택한 삶의 결과이지만 도통 인정할줄 모르는 그녀들은 하나같이 똑같은 말만을 외쳐댄다. "이가의 남자들이란......" 그녀들도 이가의 남자를 사랑했으면서 더이상 사랑받지 못하는 삶을 타인의 삶을 파괴하는 즐거움으로 자신의 고통을 덜어내기 위해 타인의 생살을 뜯어 먹으며 살아간다. 이런 그녀들에게 황제 윤의 사랑을 받는 양기란은 죽여야 마땅할 여인일 뿐이다. 자신만을 바라본 황제 윤이 여색만을 탐하는 것은 황제로써 절대 할 수 없는 행동이다. 자불태후는 기필코 양기란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야 말 것이며 호열태후는 그녀가 죽어가는 모습을 보며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릴 것이다.

 

구중궁궐 안에서 후궁들간에 암투가 벌어진 것이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권력자에 의해 모든 사건이 오랜세월 짜임새 있게 사건이 만들어져 가는 것은 정말이지 너무나 섬뜩해서 지켜볼 수가 없다.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인지 아는 사람은 있을까. 촘촘하게 펼쳐진 그물을 피해갈 수 있는 이가 있을까. 그물을 만든 이조차도 이 그물이 무엇을 만들어 놓았는지 몰라 온몸이 감겨 죽어버릴 정도로 치명적인 독까지 품고 있다. 이 속에서 양기란이 살아남을 확율이란 거의 없을 것이다. 기란이 야맥처럼 정치적인 술수를 부리는 사람이 되는 것은 싫지만 너무나 순수하게 사랑만을 원하는 그녀는 너무나 바보같아서 답답하다. 냉궁에 내쳐진 후 윤의 품으로 다시 돌아온 그녀가 선택한 것이 자유로운 삶이라고? 과연 그럴까. 사랑을 미끼로 자신의 안정된 미래를 보장받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소소가 함께 떠나자고 했을 때 선뜻 따라나서지 못한 그녀다. 황제가 정말 그녀의 바람대로 놓아줬다면 자유롭게 훨훨 날아서 과거의 사랑을 추억하며 행복하게 살아갔을까.

 

단지 기란이 선택한 것이라면, 효열태후 앞에서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은 황제 윤의 사랑이 자신을 떠나갔을 때 자신은 그의 곁을 떠날 것이란 말이었다. 사랑을 잃고 권력만을 손 안에 움켜쥔 채 늙어가며 타인에게 고통만 주는 효열태후에게 할 수 있는 가장 무서운 말이지만 자불태후, 효열태후, 황후, 야맥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목숨을 지켜야 하는 기란이 한 일은 결국 황제의 사랑에 기댄 것 밖에 없다는 것이다. 황제의 사랑이 떠나가면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은 삶을 기란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비연의 '기란'은 아주 잘 만들어진 로맨스 소설이다. 사건들이 끊이지 않고 한 여자를 지키기 위해 남자가 아닌 황제가 되어야 하는 윤의 마음을 잘 표현해내고 있으며 황제의 사랑만을 바라고 그 안에서 설레임을 느끼는 기란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기란이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다. 황제가 지켜주지 않으면 자신의 안전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후궁의 삶을 보여줄 뿐이다. 권력의 다툼에서 물러나 행복만을 추구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허나 이는 스스로 만든 것이 아니라 윤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야맥은 아주 치졸하고 끔찍한 방법을 썼지만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삶을 살아갔고 자신이 선택한 삶의 결과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함께 자란 야맥에게조차 배신당한 기란이 권력자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을 보여준 적이 있었던가.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에 대한 의문조차 가지지 못했다. 적어도 자식을 지켜내기 위해 처절하게 싸우는 부모의 모습이라도 볼 수 있다면 다행이다 싶을 정도로 강한 어머니의 모습조차 보여주지 않는다. 왕권이 안정되었으니 강한 어머니의 모습조차 보여줄 필요가 없다. 황제와 사랑을 나누는 기란의 모습이 잦은 것이 답답할 정도로 여기에는 황제의 후궁 양귀인만 있을 뿐 진정으로 그녀가 원했던, 그렇게 살아갈 것이라고 말했던 양기란의 삶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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