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고독에 초대합니다
정민선 지음 / 팩토리나인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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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톡방에 초대를 받았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익명의 공간.

지금이야 오픈채팅방이 익숙하지만, 그래서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익명방이 낯설지 않지만 그래도 소수 정예의 익명방이란 충분히 색다르다. 특히 각자의 삶을 중계하는 브이로그를 찍는 사람들끼리의 만남이라면 더욱 호기심이 가는 게 사실이다.

<제 고독에 초대합니다>(정민선 장편소설 / 팩토리나인 / 2023)는 혼자 살고 있는 6인이 익명방에서 만나 소통하고 마주하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다. 이 책을 쓴 작가는 방송국에서 음악 프로그램의 작가로 오래 일한 경험 때문인지 말랑말랑하고 미묘한 인간의 심리를 세밀하게 다루고 있는 소설이다.

혼자 사는 삶. 하지만 혼자이기 싫은 삶. 그래도 누군가의 간섭은 피하고 싶은 삶.

요즘 1인 가구가 늘어나면서 사람들간의 소통도 점점 줄어가는 게 사실이다. 자신만의 방에서 나오지 않으려고 애쓰는 삶. 하지만 그럴수록 외로움은 더 많이 타게 되고 그만큼 소통이 그리운 시대이기도 하다.



외롭지 않다는 건 거짓말이었다. 나는 지독하게 허전했고, 이 공허를 어찌할 줄 몰랐고, 행여나 나의 허무를 누구라도 눈치챌까 침묵을 택했다. 그러는 동안 나는 물을 주지 않은 화분처럼, 한 줌의 햇빛도 받지 못한 식물처럼 그렇게 시들어갔다.

많은 사람들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 누구나 어울리고, 누구나 외롭다. 단지 나의 외로움을 들키고 싶어 하지 않았을 뿐. '그러는 동안 나는 물을 주지 않은 화분처럼, 한 줌의 햇빛도 받지 못한 식물처럼 그렇게 시들어갔다'는 표현이 무척 와닿았다. 살아 있으나 살아 있지 않는 삶. 활기 없이, 목적 없이 반복되는 삶이 지금의 내 모습을 보는 것만 같았다.



혼자만의 시간 동안 나는 완전한 타인으로서 사람들을 엿보면서 흥미로운 사실을 하나 발견했는데, 수다를 떨고 대화를 하는 무리 가운데 실상 상대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고 있는 사람은거의 없다는 것이다.

겉으로는 공감하는 척하면서 속으로는 비웃거나 다른 생각을 하는 이중성. 이것은 비단 일부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겉으로 보기엔 활발하게 소통하고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듯 보이지만, 사실 눈동자는 내 자신을 향해 있고 지지 역시 보여주기식의 껍데기뿐이라는 것. 이 문장에서 자유로울 사람이 얼마나 될까.



사실 마음이란 게 타인으로 채워지는 게 아닌데, 그걸 종종 잊고 살죠. 타인이 나를 구원할 수 있는지 묻는다면 저는 아니라고 답할 것 같습니다. 인간의 마음이란 게 참 간사한 게 내가 어떤 처지에 놓였는지에 따라 타인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지거든요. 그걸 이해하니까 저는 오히려 편해졌어요. 딱히 기대하는 것도 없어지고.

결국 문제도 해결도 내 자신이란 것. 그러기에 나의 처지에 따라 타인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는 것에 충분히 공감이 갔다. 이 책에는 A. B. C. D, G, N까지 6명이 등장한다. 자신이 드러나지 않도록 이름이 아니라 이니셜로 불리는 사람들. 서로 직업이나 나이도 감추고 온라인 소통을 이어간다. 이내 오프라인 모임으로 이어지고, 그 안에서 드러나는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들이 이어져 무척 흥미로웠다.

다큐 형식으로 되어 있길래 지루할 줄 알았으나 그것은 기우였다. 다큐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마치 한 편의 다큐를 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느껴져서 무척 좋았다. 등장인물들의 성격도 분명하고 반전의 이야기도 있어서 마지막에 어떻게 마무리될까 궁금증과 기대를 하면서 읽었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땐 숨가쁘게 찍은 한 편의 다큐를 보고 난 느낌이었다. 소설이란 허구가 아니라 실제로 내 주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 혹은 (1인 가구는 아니지만) 마치 내 이야기 같은 동질감이 느껴졌다. 그만큼 현대인들이 마주하고 있는 고독이 얼마나 깊은지, 소통이 얼마나 필요한지 깨달을 수 있었다.

<제 고독에 초대합니다>는 지루할 틈 없이 속도감 있게 잘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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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고독에 초대합니다
정민선 지음 / 팩토리나인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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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만큼 소통을 원하는, 지금 우리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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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아, 너의 꽃말은 외로움이다
이동영 지음, 이슬아 그림 / 다반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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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한 외로움을 겪은 작가가 들려주는 힐링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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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아, 너의 꽃말은 외로움이다
이동영 지음, 이슬아 그림 / 다반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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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인스타그램에서 이동영 작가의 글을 자주 보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이번에 새로 나온 에세이가 더 친근하게 다가왔다.

<사람아, 너의 꽃말은 외로움이다>(이동영 글, 이슬아 그림 / 다반 / 2023)를 처음 보자마자 제목이 마음에 큰 울림을 주었다. 이 제목은 11년 전 작가가 쓴 시의 일부라고 한다.

사람아

외로워해도 좋다

너는 꽃이다

흔들리며 피어나는

한 떨기 꽃이란다

바람에 휘청대도 꺾이지 않을

사라지지 않을 너의 향기는

고요하리라

온실을 그리워 말며

끊임없이 상처로 거듭나라

뿌리 깊은 상처가

새로운 바람을 이기게 하리라

사람아,

너의 꽃말은 외로움이다

엄청난 고뇌와 고민이 담겨 있다. 게다가 작가가 20대에 이 시를 썼다고 하니 얼마나 빨리 외로움을 깨달았는가 그 마음이 전해져왔다. 아니나 다를까 작가는 10대와 20대에 지독히도 외로웠다고 했다. 가족에겐 사랑을 듬뿍 받았지만 초중고 시절 학폭을 겪고 군대에서는 구타와 가혹행위를 당했다. 스물한 살이 감당할 수 없었을 지독한 괴롭힘의 무게가 오늘날 작가가 쓴 글이 되고 시가 되었다.

깊은 계곡을 지나와서였을까. 나이보다 더 깊은 생각과 철학을 가진 작가가 책에 드러나 있었다.




그럼 성숙한 인간은 무엇이 다를까. 남과 비교하기보다는 내 과거와 비교하며 살아가는 성숙함을 보이는 사람이 있다. 성인군자만 그런 게 아니다. 누구나 지향하며 살아볼 만한 가치관이다. 상대적 다행감을 내적으로 활용하면서 비교는 자신의 어제와 하고, 남에게는 하나로 더 베푸는 삶. 타인이라는 세상에 도움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삶.

남은 생은 이렇게 살아야겠다.

남들과의 비교는 자기 자신을 더욱 지옥으로 밀어넣는다. 비교할수록 내 자신이 작아지고 비참해지는 것. 그만큼 불행한 삶이 또 있을까.

그런데 작가는 자신의 어제와 비교하라고 말한다.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내가 조금 더 멋지면 좋은 것이고, 오늘의 나보다 내일은 좀 더 나은 내가 되길 바라는 마음. 이런 비교는 매일 해도 좋을 것이다.



만약에1. 이 선택으로 성공했을 미래의 내가 지금 내게 해주고픈 말은 무엇일까?

만약에2. 이 선택으로 실패했을 미래의 내가 지금 내게 해주고픈 말은 무엇일까?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스스로에게 던지면 좋을 질문이다. 어제 한 강연회에 참석했다. 화두는 '질문'이었다. 고민이 있을 때 남들에게는 그렇게 질문을 많이 하면서, 정작 왜 스스로에게는 묻지 않는지에 대한 화두를 던진 것이다. 위의 두 가지 질문을 보면서 어제 강연장에서 들었던 말이 생각났다.

문제에 봉착했을 때 '어쩌지 어떡하지' 발만 동동 구를 것이 아니라 작가처럼 두 개의 질문을 던져보고 어떤 답이 나오는지 깊이 고민해보면 답이 나올 것이다. 미래의 내가 지금 내게 해주고픈 말을 지금 떠올려본다면, 후회할 선택은 하지 않을 테니까.




상을 볼 때는 제일 먼저 기색을 살피고,

다음은 목소리를 듣습니다.

이어 정신 상태를 보고,

피부와 살을 봅니다.

한때 관상이 좋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던 나이지만, 나이가 점점 들수록 거울 속 나는 예전과는 사뭇 달라졌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특히 일이 힘들어서 웃을 일이 없는 요즘의 나는 더더욱 그렇다. 그런데 이 책을 보니, 관상은 바꿀 수 있다고 했다. 관리하기 나름이란 이야기다. 나 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밖에나 신경을 썼지 정작 내 자신에게는 소홀했던 요즘의 나를 반성한다.

이 책은 막연한 용기와 희망을 주지 않는다. 작가가 직접 겪은, 지독히도 외로웠던 시절의 이야기, 또 그 시기를 지나 지금 다른 사람이 된 작가의 모습을 통해 독자가 스스로 변화를 시작해야겠다는 의지를 심어준다. 소극적이던 작가가 이제 적극적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다닌다는 부분을 보면서, 에너지와 활기가 내게도 전해졌다.

살기 팍팍한 요즘, 마음 편히 읽을 수 있는 책 한 권의 여유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편하게 읽기에 좋은 책. 어디를 펼쳐보더라도 힐링이 되는 글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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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의 발견
박영수 지음 / 사람in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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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한계는

세계의 한계다

우리말을 아는 만큼

나의 세계도

넓어진다

박영수 <우리말의 발견>

글을 쓸수록 한글의 위대하다는 걸 새삼 느낀다. 뻔하디 뻔한, 교과서적인 위대함이 아니라 실제로 한글이 가진 신비로움을 알게 되면서부터 한글이 새롭게 다가왔다. 다만 여전히 모르는 우리말이 더 많아서 안타깝지만.

박영수 테마역사문화연구원 원장이 쓴 <우리말의 발견>을 보면, 우리말이 이렇게 예뻤나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부분이 무척 많았다. 우리말을 아는 만큼 나의 세계도 넓어진다는 작가의 말처럼, 나의 세계를 넓히기 위해 우리말을 연구하고 고민하고 알아가는 자세가 필요하다. 특히 내 경우엔 더더욱.

이 책에 수록된 많은 우리말 중, 내가 알고 있던 단어는 소수에 불과했다. 우리말에 관심이 많은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내가 모르는, 하지만 알고보니 너무 좋은 우리말이 참 많았다.



는개. '는'은 주격 조사로만 생각했지, 음절의 맨 앞에 위치하리라곤 생각을 못했다. 특히 '는개'의 뜻이 '안개보다는 조금 굵고 이슬비보다는 조금 가는 비'라는 뜻이라니 감탄할 수밖에 없다. 이뿐만이 아니다. '비'과 관련한 예쁜 우리말이 숨어 있었다. 먼지잼, 비거스렁이. 단어만 들어도 어슴푸레 그 뜻을 알 것만 같은 단어들. 비 하나를 두고도 이렇게 다양하게 표현을 하는 것에서 섬세하고 예민한 우리 조상들의 감각을 엿볼 수 있었다.



책을 읽다보면 '이건 꼭 알아야 해!'라면서 기록을 남기고 싶은 단어들이 있는데 <우리말의 발견>에는 이미 알고 있는 몇 가지 단어를 제외한 나머지가 모두 기록의 대상들이었다.

구뜰하다. 맛맛으로. 머드러기. 게염.

일상에서 자주 접하지 않는 생소한 단어들이지만 이게 무슨 뜻인지 궁금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었다. 같은 글을 쓰더라도 말맛이 다른 글이 있다. 그 중 어휘의 선택이 큰 부분을 차지할 것이다. 이 책에 나온 정감 넘치는 우리말을 자주 써야겠다. 그러면 글맛이 확 달라지리라 확신한다.




띠앗 : 형제나 자매 사이의 우애심

섟 : 서슬에 불끈 일어나는 기분이나 감정. 불끈 일어나는 감정.

이 책이 좋은 이유는 국어사전처럼 뜻풀이만 해주는 것이 아니라 어느 작품에 인용이 되었는지 예시까지 함께 보여준다는 것이다. 만일 국어사전과 같았다면 이렇게 자주 열어보는 게 쉽지 않을 듯하다. 이 책에서 주로 인용한 것은 소설이다. 이토록 아름다운 우리말을 자유자재로 사용한 작가들을 보니 존경하는 마음이 더 커진다. 소설은 서사가 재미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아름다운 우리말을 적절한 곳에 잘 사용하여 작품의 가치를 높이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이다.



'잔인하다'에서 온 '자닝하다', 뭔가 뜻을 알 것만 같은 '아기똥하다', '남과 잘 사귀는 솜씨'라는 뜻의 '너울가지' 등 금방이라도 글에 녹이면 좋을 법한 우리말이 줄줄이 이어졌다.




놀라운 건 '뽀로로'. 펭귄 캐릭터 이름으로만 생각했지 이게 순우리말이라곤 생각해보지 않았다. 뜻을 알고나니 캐릭터 이름을 참 잘 지었구나 생각했다. 의미를 보니 영락없이 개구쟁이 뽀로로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이렇게 이름을 지을 때도, 글을 쓸 때도 숨어 있는 우리말을 찾아보는 게 좋겠다.

마치 사전과 같지만 사전이 아닌 책. <우리말의 발견>을 보는 내내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글을 쓰다보면 생각이 막힐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 그래서 창작의 고통이라는 걸까. 의미로는 알겠는데 그걸 직관적으로 알려주는 딱 그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 이 책에 나온 아름다운 우리말을 펼쳐봐야겠다. 이렇게 예쁜 우리말을 자유자재로 활용하여 '글맛, 말맛' 나는 글을 쓰고 싶다.

<우리말의 발견>은 책상에 올려두고 글을 쓸 때마다 펼쳐보고 싶은 책이다. 뒤날개를 보니 이 책을 시작으로 앞으로도 우리말을 탐구하는 발견 시리즈가 계속 발간될 것이라 한다. 제목을 보니 구매각이다. 7권까지 전부 내게 꼭 필요한 책이다. 벌써 다음 편이 기대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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