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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C.H.베크 세계사 : 1870~1945 - 하나로 연결되는 세계 ㅣ 하버드-C.H.베크 세계사
에밀리 S. 로젠버그 책임편집, 조행복.이순호 옮김 / 민음사 / 2018년 6월
평점 :
실제로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는 종과 자연계를 겨냥한 다른 성격의 전쟁이 대규모로 빠르게 진행되었다.흔히 문명의 확산을 자량했던 이들이 대개 지구에 서식하는 다양한 식물과 동물을 약탈할 의도를 지녔기 때문은 아니다. 의도는 결과를 측정하는 좋은 척도가 아니다. (-26-)
미국은 남북전쟁이 끝나자 1869년에 첫 번째 대륙횡단철도를 연결했다. 15년 뒤인 1885년 캐나다 태평양 철도의 완공은 캐나다 국민의 위대한 서사시로 축하되었다.이느 미국의 대륙횡단 철도 노선에 대한 방어적 대응이었다고 해도 무장하다. (-122-)
19세기 인생의 달콤함을 박살내는 데 제1차 세계대전이 필요했던 곳은 빈이나 파리의 부르주아의 피난처, 런던의 신중한 은행과 클럽들뿐이었다. 1890년대부터 국가들의 세뎨는 폭풍이 몰아치는 해역으로 진입했고 결국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새로운 실험에 착수했다.(-234-)
그리고 제국이 세계적인 상황 전개에 미친 영향을 평가하려면 우연적이고 우발적인 사건들에 주목하지 않은 채 모든 사건이나 관념, 관행, 정책이 불가피하게 제국적일 수 밖에 없는 세계적 헤게모니에 속한다고 생각하지 않도록 유의할 필요가 있다. (-343-)
1850년 무렵 오스만 제국은 증기력의 출현과 유럽의 산업화가 제기한 도전을 인식하고 늘어나는 공장과 제국 함대, 1856년에 개통되어 막 날갯짓을 시작한 철도망에 공급하고자 제국의 석탄자원을 이용하려는 노력에 착수했다. (-424-)
리우데자네이루 북쪽에 있던, 지력이 다한 농장을 버리고 투자자들이 새롭게 옮겨 간 히우그린지두술의 커피 농장으로 독일인, 이탈리아인 , 폴란드인들이 이주한 것이다. 두 번째 이주 국민에서는 이주민의 수효가 대폭 늘었다. (-574-)
유럽인 정착민과 투자자들에 의한 식민지화 과정에서도 원주민 혹은 지역 내 이주자들이 거주지에서 쫓겨나는 결과가 초래되었다.인구밀도가 높은 유럽 정주사회의 농민들이 인적 드문 사회로 이주했다는 것이 식민주의자들의 주장이지만, 정작 인적 '드문' 곳에 거주한 원주민들은 그 관점에 도으이하지 않았다. (-626-)
여러나라의 국제적 카르텔과 컨소시엄,공동투자와 공공 부문과 민간의 혼합 투자가 이렇게 대단히 널리 퍼진 막대한 사업들에 투자하고 그 사업들을 조정했다. 그리하여 근대의 다국적기업 시대가 시작되었다. (-754-)
자본을 더 많이 투입한 고용량 제분소는 농민과 양곡기 창고 운영자로부터 포장하지 않은 상태의 밀을 대량으로 구매했고 철도 회사의 해운 회사가 주는 리베이트와 운송 특혜로 이득을 얻었다, 규모의 경제 덕분에 큰 제분소는 막 싹트기 시작한 해외 시장에 더 잘 응대할 수 있었다. (-819-)
19세기 말 쿄통 ,통신, 금융, 통상에 혁명이 일어나 충성심과 감수성에 변화가 일어나고, 공간적 거리에도 한계가 생기다 못해 심지어 거리 자체가 소멸된 현상은 19세기 중엽에서 20세기 중엽에 이르는 동안 전 세계,갈수록 몸집이 불어난 국제적으로 초국가적인 네트워크들의 탄생을 불러왔다. 지금은 주로 세계화로 불리는 현상으로 향해 가던 그 국면에 크리스토퍼 앨런 베일리는 적절하게도 '대가속'이라는 호칭를 부여했다. (-923-)
하켄베크의 동물원은 관람객 눈에는 도랑과 차폐물이 보이지 않도록 계단식 우리 열을 설치해 동물들이 마치 '자연'서식지에 뛰노는 것과 같은 아프리카와 북극의 '파노라마'를 연출해 보였다. 1907년 하겐베크 동물원이 이렇게 큰 화제를 일으키며 개장한 뒤로 파노라마와 그 밖의 기술을 이용한 자연경관의 시각적 시뮬레이션은 동물 수집, 그리고 하겐베크도 행했던 인간 전시의 필수 배경막이 되었다. (-1035-)
1649년 영국 혁명이 일어났고, 왕정국가의 형태가 무너지게 된다. 1789년~1794년 사이에 일어난 프랑스 혁명, 1917년에서 1932년 사이에 일어안 러시아 혁명, 1760년에서 1820년 사이에 나타는 영국 산업혁명으로 세계는 급변하게 되었다. 국가와 국가가 연결되었고, 지역과 지역이 연결될 수 있었으며, 사람과 사람이 연결될 수 있는 초국가 형태의 네트워크 세계가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서로에 대해서 초접근 상태에서, 이해할 수 있게 되었으며, 삶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를 눈앞에 보고 있었다. 영국의 발빠른 움직임 이후, 프랑스, 독일, 일본이 제국주의길을 걸어가기 위한 씨앗을 뿌리게 되었으며, 교통과 통신,금융,산업, 통상에 큰 변화가 나타날 수 있게 되었다. 즉 철강 산업이 발달하였고, 증기기관차, 증기선, 전신이 우리 삶의 후진성을 근대성으로 바꿔 놓았으며, 동아시에서는 일본이 그 시작점을 알리게 되었다.
한국의 입장에서는 화가 날 수 있는 상황이지만, 일본의 입장에서는 한국의 근대화를 이끈 나라가 일본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가 이 책에 나온다. 하지만 그들의 목적은 한국의 근대화가 아닌 한국의 자원 수탈에 있으며, 석탄과 인력, 자본을 조선에서 일본으로 가져가기 위한 명분에 불과했다. 그 과정에서 전쟁을 일으켰고, 대륙을 침탈하기 위한 야욕을 포기할 수 없었던 건, 우리 스스로 끌어나갈 수 있는 역사적 한계에 있었다. 길을 걸어가기 위한 기본에 대해서 인지하고, 그 인지된 가치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 그 성찰이 역사적인 변화와 역사적 패러다임의 완성으로 이어질 수 있게 되었다. 자연적인 형태의 부족국가가, 근대화를 표방하면서, 하나의 체게화된 초국가의 형태가 만들어질 수 있었으며, 그 시작점은 영국은 산업혁명 이후, 미국은 남북전쟁 이후에 발생하였다.중농주의에서 중상주의로 전환하면서, 전세계 무역의 주도권을 유대인이 가져갈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만들어지게 되었으며, 미국은 대륙횡단철도가 마들어졌고, 러이사는 시베리아 횡단철도가 만들어지면서, 전쟁의 인프라, 자원이동의 핵심 인프라를 만들어 나갔다. 각 대륙마다 집단 학살과 학대, 식민지화가 진행되었다. 더 나아가 삶의 근본적 강제 이주 정책이 발생하였던 이유는 근대화로 인해, 자신의 야욕을 포기 하지 않았던 자본가들의 합목적성이 전쟁의 명분을 스스로 만들었으며, 기독교, 문명, 상업,이 세가지가 상호작용하면서, 맞물려 돌아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