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촌은 욕조에 뜨거운 물을 받으며 접이식 면도 나이프를 꺼냈다. 그는 뜨거운 김이 피어나는 욕조에 몸을 둥글게 말고 들어앉았다. 수없이 많은 흉을 몸에 새긴 나의 삼촌이 아물지 않을 마지막 상처를 준비하고 있었다. - P135

영상은 끝났다. 삼촌의 당부를 배신하고 정민은 파일을 지우지 않았다.
"괜찮아요?"
브라더가 플레이어를 종료시키고 물었다.
"네. 안 봤으면 후회했을 거예요."
나는 예전의 나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마치 깜빡 잠이 들었다 눈을 떠보니, 버스 차고지에 덜렁 혼자 남은 기분이었다. 버스는 이제 운행을 끝마쳤다. 집에 돌아가는 길은 요원하지만 밤 또한 길었다. - P136

복수란 본디 참고 참고 참다 터지는 압력솥의 증기 같은 것이리라. 거대한 압력이 뿜어내는 수증기엔 오래 참아 속살까지 허물어진 쌀알의 시취가 달큰하게 배어날 터였다. - P153

"보다시피 내친구들은 우마 서먼이나 키아누 리브스처럼 간지 뚝뚝 떨어지는 고독한 킬러가 아냐. 다들 부상으로 어디 한 군데씩은 장애를 갖고 있어. 항우울제나 신경안정제를 콩 주워 먹듯 해야 간신히 운전대 잡고 마트라도 갈 수 있지."
"삼촌, 난 킬러가 되려는 게 아니잖아!"
"난 그들의 일부야. 다르지 않다고. 수입을 일정 비율로 나누듯, 죄책감과 후유증도 의당 내 몫이 있어." - P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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