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까 급해서 숟가락 몇 개 썼어요."
"집 안에 저거 말고도 다른 무기가 있었어요?"
내가 물었다.
"부엌쪽 창문을 봐요. 아주 자세히 보면 희미한 실금이 보일 거예요. 저걸 깨면 진짜 유리는 부서지고 특수 가공된 부분만 분리돼요. 도검으로 사용할 수 있죠."
나는 창고 방향으로 난 부엌 창문을 세심히 바라봤다. 빛이 투과하며 가느다란 은실 같은 금이 아른거렸다. 민혜의 말대로 실금은 단도와 장검 모양이었다.
"소파 장식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싸구려 천소파 쿠션 밑에 쇠붙이 장식이 달려서 종아리에 닿았을 텐데?"
빨간색 소파는 아주 어려서부터 이 집의 일부였다. 어느날 갑자기 없던 게 생겼다면 의아해했겠지만, 처음부터 그런 모양새였으니 쇠붙이 장식이 불편하다고 느낀 적이 없었다.
"그럼, 쇠붙이 장식도 무기였나요?"
"컴파운드 보우예요. 활이라고 하면 모양이 그려지죠?
화살은 등받이 안에 들어 있고요." - P120

브라더는 우리가 사용하는 웹이 마치 바다 표면과 같다고 했다. 정보의 파도 위를 서핑하다 간혹 수심이 깊은 바다로 내려가보는 사람도 있을 터였다. 그들이 바로 딥웹이나 다크웹 유저라고 했다. 하지만 반타블랙웹은 그야말로 심해를 의미했다. 특수한 잠수정 없이는 접근조차 할수 없는 곳이었다. 어떤 치명적인 종(種)이 지배하고 있을지 모를 그곳은 알고도 외면하기 마련이었다. 브라더도반타블랙웹에 접속한 건 처음이라고 했다. 세상에서 가장검은 검정색을 의미하는 반타블랙은 딥웹이나 다크웹하고는 차원이 달랐다. 풋내기들끼리 합성 마약이나 포르노를 거래하는 사이트가 아니라는 거였다.
"반타블랙웹에 대해선 브라더보다 내가 더 잘 알아요.
한때 거기 상품이었으니까."
민혜는 브라더가 내어준 의자에 앉아 홀 오브 바빌론에로그인했다. 그러자 화면이 일곱 개의 대문 이미지로 바뀌었다. - P122

"첫 번째 문은 표적 납치와 고문의 방이에요. 30만 불을전자화폐로 결제하면 원하는 사람을 데려다 고문 살해 할수 있어요. 실시간 방송에 방청권은 만 불이고요. 만 불을낸 사람들은 각자 한 가지씩 고문 방법을 제안할 수 있죠."
놀랍도록 덤덤한 표정의 그녀가 마우스로 두 번째 문을가리켰다.
"두 번째 문은 소아성애자들을 위한 방이에요. 중국, 러시아, 캄보디아, 내전 중인 국가의 소녀들이 거래되죠. 아이들은 성인 여자처럼 화장을 하고 교태를 부리며 포르노를 찍어야 해요. 고객들은 필름을 보고 상품을 주문하죠.
나도 여덟 살에 중국 길림성에서 한국 돈 천 5백만 원에팔려 왔어요."
브라더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주먹을 움켜쥔 채식탁을 내리치며 고함을 질렀다.
"창자를 갈아 마실 놈들."
나도 분노와 혐오가 끓어올랐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외려 몸에 힘이 빠지고 머릿속에 안개가 낀 것처럼 멍했다. 같은 여자인 탓이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폭력에 유린당한 여자 앞에서 주먹질과 고함은 아무 위로가 되지않는다. 나는 먹먹하게 민혜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 P123

그녀는 오래전 죽은 생물의 화석 같았다.
"세 번째 문은 총기와 금지약물 거래예요. 진만 씨는 따로 공급선이 있어서 이용하지 않는 걸로 알아요. 네 번째문은 장기밀매. 설명 길게 안 해도 되겠죠? 환자가 브로커에게 주문을 하면 브로커가 여기에 조건을 올려요. 폐쇄적인 국가의 공무원들이 판매자로 등록돼 있어요. 다섯 번째문은 자살 테러예요. 흔히 종교적인 신념으로 벌이는 짓이라고 생각하는데, 실은 그렇지 않아요. 테러 직전에 개종을 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죠. 그들이 자신의 목숨을 바쳐구하고 싶은 건 다름 아닌 가난에 찌든 가족들이니까요."
겹겹의 비밀이 벗겨질수록 민혜의 목소리는 낮아졌다.
"여섯 번째 문 안엔 해킹 전문가들이 포진해 있어요. 기업이나 국가조직, 화폐거래소, 심지어 환율이나 주가도 이들 손안에 있죠. 가장 큰 돈이 움직이는 곳이에요. 그리고마지막, 일곱 번째 문은 암살. 중간 수수료가 없는 머더헬프가 생긴 뒤 폐쇄되다시피 한 공간이죠." - P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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