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 최적의 노래였어요, 최적의 타이밍에, 최적의 사람과 부른…….

데이지: 노래가 끝나기 직전에야 나는 무대 옆을 건너다봤어요. 커밀라가 거기 있는지 보려고요.

빌리: 그때 난……… (침묵) 맙소사, 내 몸의 온 신경이 팽팽히 당겨져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 같았어요.

데이지: 왜 모르겠어요. 그는 내 사람이 아니라는 걸.
그는 그 여자의 사람이라는 걸.
그 순간 난……… 난 그냥 질렀어요. 그 노래 가사를 빌리가 처음 쓴 대로 불렀어요. 반문이 아닌 내용으로
"꿈꾸던 삶이 우릴 기다리고 있어 언젠가 바다 위로 반짝이는빛을 보게 될 거야/ 날 붙잡아 줘 날 붙잡아 줘. 날 붙잡아 줘 그때까지."
부르면서도, 끝까지 부를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 힘들었어요.

빌리: 데이지가 내가 처음에 쓴 가사대로 노래하는 걸 듣는데, 커밀라와 둘이서 그린 앞날을 그녀의 노래로 듣는데…… 강한 의심이 솟아나는 걸 느꼈어요. 앞으로 평탄한 길만 걸을 수 있다고 말하는나 자신에 대한 강한 의심이었어요. 그런데 난……… (깊은 한숨) 그 가사는 알량한 다짐이었어요. 하지만 데이지는 단 한순간도 내가 - P476

실패할 수 있다는 암시 같은 건 하지 않았어요. 내가 다짐한 대로 해낼 거라는 믿음을 담아 불렀어요. 데이지가 해낸 거예요. 데이지가 내게 그렇게 불러주기 전까진 그게 얼마나 절실한 건지 난 알지 못했어요. 당연히 기분이 좋아졌어요. 동시에 아팠어요.
내가 스스로 바랐던 대로의 남자라고 한다면 그래서 커밀라에게 약속한 인생을 줄 수 있다면-그건……… 음, 그 삶에도 잃는게 있을 테니까요.

데이지: 드디어 진정한 사랑을 찾아냈는데 다가가선 안 될 사랑이었어요. 그런데 난 수도 없이 잘못 판단했고 그렇게 그 사람을 망쳐버렸고 다시는 복구할 수 없게 된 거예요. 그래서 결국 갈 데까지 가기로 작정해 버린 거예요.

빌리: 무대에서 내려와선 데이지를 돌아보았지만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어요. 그녀는 내게 미소 지었지만, 미소를 닮은 입모양이었을 뿐, 미소가 아니었어요. 데이지는 자리를 떴고 내 심장은 쿵 가라앉았어요. 그제야 명백해졌어요. 그동안 난 가능성에 죽자사자 매달려 있었다는 것. 바로 데이지라는 가능성에 그러자 갑자기 절박해졌어요. 그 가능성을 그냥 놓아버린다는 것이 ‘절대 안 돼‘라고 말해야 한다는 것이. - P477

그래도 내 나이가 돼서 옛날을 돌아보며 그때 다른 선택을 했다면 지금 어땠을까 전혀 궁금하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은 상상력이 없는 거겠죠. - P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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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지: 사람들이 날 재능 있는 송라이터로 봐주길 늘 바라 마지않았는데 오로라가 채워줬어요. 내 인정 욕구를 그러자마자 그런 내가 사기꾼이 된 것 같았어요. - P451

데이지: 매일 밤이 고문처럼 느껴지기 시작했어요. 다른 사람과 살면서, 내 감정을 스스로 헤아리지 못하면서, 거짓말로 본심을 감추면서, 빌리와 함께 무대에 올라 노래했으니까요. 사실을 부인하는 일은 나에겐 오랜 세월 덮고 잔 담요 같아요. 그 담요 속으로 기어들어가 몸을 웅크리고 자면 너무 좋았어요. 하지만 니키와 끝냈을때, 생방송에서 빌리와 그 노래를 불렀을 때, 그에게 약을 끊고 싶다고 말했을 때··· 내 손으로 담요를 걷어내 버렸어요. 다시 가져올 방법은 없어요. 그래서 죽을 지경이었어요. 무방비 상태라는 것이, 벌거벗은 상태라는 것이 그런 상태에서 그런 무대로 올라가는 일이 날 죽이고 있었어요. 그와 노래를 부르는 일이.
「어린 별」을 부를 때 빌리가 날 보게 해달라고, 우리가 서로 어떤 이야기를 나누는지 그도 알게 해달라고 기도했어요. 「부탁이야]를 부를 땐 그가 날 눈여겨봐 주기를 애원했어요. [날 원망해」를 부를 땐 분노를 표현해야 하는 게 고역이었어요. 그때 난 화가 난 적이 거의 없었으니까요. 예전과 달라졌으니까요. 난 슬펐어요. 죽을 지경으로 슬펐어요.
그런데 다들 「당신이라는 희망의 라이브를 「SNL」처럼 해주길바랐어요. 그래서 빌리와 난 매번 그대로 연출하지 않으면 안 되었죠. 매일 밤 내 몸이 두 쪽으로 쪼개지는 기분이었어요.
빌리의 옆에 앉아 그에게서 풍기는 애프터 셰이브 향을 맡았어요. 그의 큼지막한 손을, 두툼한 손가락 마디가 피아노 건반 위를 오가는 것을 눈앞에서 보면서 그가 다시 날 사랑해 주길 절절히 원하며 심장 깊은 곳에서 감정을 끌어 올려 노래해야 했어요. - P460

데이지: 내가 열렬히 추구했던 경지에 올랐는데, 간절히 바란 대로내 마음을 표현하고 내 목소리를 내고 나의 언어로 다른 사람을 위로해 줄 수 있게 되었는데, 내 손으로 만든 그 세상이 지옥이 되었고, 내가 직접 짠 우리에 자처해 갇힌 꼴이 되었어요. 내 마음과 고통을 넣어 만든 음악에 환멸을 느끼게 됐어요. 그 노래들에 매여 살게 됐으니까요. 그리고 밤이면 밤마다, 하룻밤도 빼놓지 않고, 빌리에게 그 노래들을 불러줘야 했으니까요. 내 마음을, 그가 옆에 있으면 달라지는 나를 도저히 숨길 수 없게 되었어요.
덕분에 쇼는 아주 멋졌어요. 하지만 내 인생은 쇼가 아니었죠. - P462

노래를 부르기 직전에 그녀를 바라보며 생각했어요-지금도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는데-데이지 존스는 평생을 통틀어 내가 본 여자 중에 가장아름다운 사람이라고. 그런 경우 더 첨예하게 다가오는 것 같아요………… 무슨 말이냐면……… 스치듯 지나가는 사람을 더 세심하게 살펴볼 수 있는 거요. 알죠? 그때 데이지는 스쳐 지나가는 중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녀가 언제고 떠날 것을 알았어요. 어떻게 알았는지는 나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때 알고 있었던 것 같아요. 아니, 몰랐을 수도 있어요. 그냥 느낌이 그래요.
내가 하려는 말은, 우리가 [허니콤]을 부르기 시작했을 때 데이지를 잃게 될 것을 알았거나 알지 못했거나 둘 중 하나라는 거예요. 그녀를 사랑했음을 알았거나 알지 못했거나, 둘 중 하나였고그 순간만큼은 그녀에게 고마웠던 것 같아요…………. 어쩌면 아닐수도 있고요. - P475

데이지: 첫 소절을 부르면서 그를 바라봤어요. 그러자 그도 날 바라봤어요. 그러고는 말이죠? 노래를 부르는 3분 동안 2만 명의 사람들 앞에서 그와 노래를 부른다는 사실을 잊었던 것 같아요. 그의 가족이 무대 옆에서 지켜본다는 사실도 잊었어요. 그와 내가 밴드에서 노래를 부르는 일원이라는 사실도 난 그냥 존재하고 있었어요. 3분 동안, 내가 사랑했던 남자에게 노래를 부르는 상태 그 자체죠. - P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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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런: 그레이엄과 난 절대 오래가지 못할 사이였어요………. 우리 관계는 절대로………. 내겐 오직 공백기에만 필요한 관계였어요. 진짜 인생을 신경 쓰지 않는 시기, 미래를 신경 쓰지 않는 시절, 그날 하루 내 기분 말고는 달리 신경 쓸 것이 없는 시절에 필요한 것. - P389

로드: 데이지와 빌리가 서로 앙숙이라 생각하고 그들 공연을 보면 그 생각을 확신으로 굳힐 만한 증거를 건질 수도 있었겠죠. 반대로 둘이 그렇고 그런 사이라 생각하고 보면? 미움의 탈 뒤에 숨은 전혀 다른 감정을 읽게 되었을걸요. - P414

빌리: 누군가와 함께 곡을 쓴다고 할 때, 노랫말이 그 사람의 사적인 이야기라면 같이 쓸 수 있겠어요? 못 해요. 이런 거죠. 누가 내게 써준 곡의 노랫말이 나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사심없이 부르는 게 가능할까요? 어쩔 수 없이 끌리게 된다고요.
같은 무대에 선 데이지에게 정신 나간 놈처럼 눈을 못 뗀 적이 있느냐고요? 나는요…………… 네, 맞아요. 매체에서 그 투어를 찍은 사진들, 콘서트 때 찍힌 사진들이 있으니……… 아니라고 말해봤자 아무 소용 없겠죠. 데이지와 내가 서로의 눈을 응시하는 순간을 찍은 사진이 어디 한두 장인가요? 내 딴엔 우리 둘 다 연기한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칼로 긋듯 구분할 순 없는 문제죠. 어느 게 연극이고 어느 게 진짜일까요? 어느 게 판 팔려고 꾸며낸 거고 어느게 진심을 보여준 걸까요? 솔직히 말하면, 한때 분간할 수 있었을지 몰라도 이젠, 정말 모르겠어요. - P415

데이지: 니키는 우리의 무대를 보면서 질투할 때가 많았어요.
「어린 별」은 서로 마음이 끌리면서도 부정하는 남녀의 이야기죠. 마음에서 지우려고는 한 사람에 대한 억누를 수 없는 사랑때문에 오히려 그 사랑을 버리려는 사람의 이야기죠. 「못난이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을, 그 사람의 애인보다 더 깊이 헤아리게 된사람의 이야기죠.
부를 때마다 특별한 감정이 느껴지는 노래들이에요. 곡을 쓸때의 감정이 새록새록 되살아났으니까요. 니키도 그런 내 감정을읽었어요. 그래서 니키와 살 때 그 점을 특히 조심했어요. 그의 마음을 편하게 해줘야 한다는 것. 그를 행복하게 해줘야 한다는 것. 그를 즐겁게 해줘야 한다는 것이요.. - P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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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지 내 선택에 따라 그 평온한 순간이 내 인생에서 가장 큰 비극으로 치달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너무도 두려웠어요. 그 생각에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었어요. 우리 모두의 인생이 그렇게 위태로운 기반 위에 있다는 것이 있어선 안 될 일이 벌어질 때 미리 알고 멈출 수 있는 메커니즘 같은 게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그런 생각이 늘 날 두려움에 떨게 했어요.
데이지와 함께 지내면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어요. - P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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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화는 대상이 멀리 있을 때나 가능하다는 걸, 인생에 처참하게 난입하기 시작하면 결코 할 수 없다는 걸 그런 식으로 깨달았다. - P21

이십 대 내내 가장 힘들게 배운 것은 불안을 숨기는 법이었다고 말이다. 불안을 들키면 사람들이 도망간다. 불안하다고 해서 사방팔방에 자기 불안을 던져서는 진짜 어른이 될 수 없다. 가방 안에서도 쏟아지지 않는 텀블러처럼 꽉 다물어야 한다. 삼십 대 초입의 재인은 자주 마음속의 잠금장치들을 확인했다. - P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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