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초록빛 숲 사이로 지나가느뇨.

봄 물결로 그녀를 온통 치장하고?

누가 경쾌하게 초록빛 숲 사이로 지나가느뇨.

그걸 한층 즐겁게 하려고?

 

누가 햇빛 속으로 지나가느뇨.

가벼운 발걸음 알아채는 길로?

누가 경쾌한 햇빛 속으로 지나가느뇨.

그토록 순결한 용모를 하고?

 

수풀의 길들이

포근하고 금빛 불로 온통 번쩍이니...

(이하 생략)

<실내악> 제 VIII수 中에서

 

 

, 하나 재밌는 얘기로 시작해야겠다. 그의 시집 실내악의 제목이 정해진 에피소드인데, 제임스 조이스는 한 여인에게 실내악에 수록된 몇 편의 시를 읊어대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여인이 조용히 일어나더니 방의 칸막이 뒤에 있던 요기(尿器)에서 소리가 나더란다. 아이쿠! 시집 제목을 실내악이라하자. 라고 했다나?....ㅋㅋ

 

 

 

제임스 조이스피네간의 경야를 읽기에 앞서 일종의 워밍업을 시작했다. 그의 시집인 실내악 (Chamber Music)부터 중편 시()지아코모 조이스, 그리고 '꼼꼼한 비속성의 문체라 불리는 더블린 사람들, ’스티븐 데덜러스라는 유명한 소설 속 인물을 낳은 젊은 예술가의 초상을 거쳐 율리시즈의 몇 장()을 읽는 사전 학습을 시도하기로 한 것이다. 그의 작품들이 상호 문체와 주제의 연계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내 독서 행위에서 이렇게 사전 작업을 하는 것은 처음이다. 사실 내 딴에는 야심찬 도전인데, 수많은 외래어들의 중첩과 언어유희, 텍스트의 복잡성 등 피네간의 경야를 읽어 내겠다는 소심한 의지라고 할 수 있겠다. 영문학에 대한 전문적 식견을 전혀 지니지 않은 내겐 올 한 해를 꼬박 넘기는 지리한 독서 행위가 될 것 같다.

 

이렇게 사전적 독서 중, 생각지 못한 아름다움에 빠지게 되었는데, 1914년 쓰여진 조이스의 자전적 경험이 배어있는 지아코모 조이스(Giacomo Joyce)라는 산문시가 그것이다. 이 작품은 고려대 김종건 교수가 편역한 제임스 조이스의 아름다운 글들이라는 책에 수록되어 있는데, 조이스의 여느 소설들과는 달리 섬세하고 평이한 언어로 구성되어 있어 친근하게 읽어 낼 수 있다는 반가움이랄 수 있다.

 

자신에게 영어과외를 받던 학생에 대한 연정을 그리려 했던 듯 한 작품이다. 영문학사에 있어서도 산문시의 새로운 창조로 문학적 혁신의 의미를 지닌다고 평가받는 작품으로 알려져 있어, 더욱 호감을 불러일으킨다. 또한 젊은 예술가의 초상을 탈고하고 율리시즈를 쓰기 시작할 무렵인 그의 성숙기 산물이어서 아주 잘 익은 과일을 먹는 느낌을 준다.

 

미지의 여학생을 향한 조이스의 에로틱한 감정의 관찰과 표현이 단연 압권이다. 아래의 시는 전체의 극히 일부분을 발췌 인용한 것이다. 시는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누구? 짙고 향기 어린 모피에 둘러싸인 창백한 얼굴, 그녀의 동작이 수줍고 신경질 적이다.”

 

아주 작은 움직임에까지 미세한 관찰의 시선이 느껴진다. 사랑에 빠진 누군가의...., 그러니 외국어가 튀어나오는 목소리는 유식함으로 여겨지고, 작은 깜빡임조차 그의 시선을 장악하곤 떨림으로 어쩔 줄 모르게 한다.

 

맥 빠진 비엔나식 이태리어로 가르랑 거린다: 정말 유식하지! 긴 눈꺼풀이 깜박이며 치뜬다: 따끔한 바늘 끝이 벨벳 홍채 속을 찌르며 전율한다.”

 

억누를 수 없는 욕망을 자책하는, 대상의 순결과 무심한 아름다움이 반어적으로 표현된 것 같다.

그렇게 그녀는 단테 곁에 순진한 자만심으로 걸었다. 그리고 그렇게, 피와 폭력에 결백한 채, 첸치의 딸, 비아트리체는 그녀의 죽음을 향해:”

 

나의 수치가 그 위에 영원히 이글거릴, 불결하고 아름다운, 책장들을 매만졌다. 부드럽고, 차갑고, 순결한 손가락들, 저들은 결코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던가?”

 

결구: 나를 사랑하라. 나의 우산을 사랑하라.”

- 제임스 조이스의 아름다운 글들김종건 편역(어문학사, 2012.10) 에서

  

이제 나의 조국의 도덕사이자 나의 사랑하는 불결한 더블린(Dear Dirty Dublin)"15작품의 독서로 생각을 옮겨야겠다. 가끔은 예기치 않은 문학적 수확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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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onSoo 2018-05-09 1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작가를 잘 모르지만 사놓고 미루던 ‘더블린 사람들‘을 어제야 다시 읽었어요. 사람들을 포착한 모양이 보통 아니라고 느꼈어요. 촘촘하고 예리한 풍속화를 보는 듯. 일단 첫인상이 그랬는데요. 제겐 아직 낯설어요.

필리아 2018-05-09 19:44   좋아요 0 | URL
‘제임스 조이스‘는 <더블린 사람들>을 이렇게 말했다네요. 중하위 계층(아마 서민층을 말한 듯 해요) 더블린 사람들의 생활에 가해지는 정치,문화,경제적 힘의 압박으로 인한 고통의 객관적, 심리적 사실의 스케치라고요. 풍속화를 본듯한 인상이란 말씀은 이러한 이유일거예요. 댓글 고맙습니다. YoonSoo님~
 

혹자들은 말한다. 마르크시즘(Marxism)은 더 이상 오늘의 사회에는 유용하지 않으며, 폐기되었다고. 헛소리! 인간과 자연 사이의 모순, 인간과 인간사이의 모순이 극복된 사회질서를 논의하는 것이며, 인간 개체 자신의 힘에 관한 지식을 획득하고 이 힘을 사회적 힘으로 조직하며, 바로 이 사회적 힘이 더 이상 정치적 형태의 힘으로 자신과 유리되지 않도록 하여 자신의 해방을 실현시키려는 시도라는 그의 사상 중 극히 일부만으로도 너무도 많은 것들을 인간과 인간사회에 시사하고 있다.

  

이를테면 당대의 문학거인이었던 빅토르 위고가 그의 소설에서 19세기 중엽 프랑스 사회의 인간 소외를 개인의 악으로 그릇된 통찰을 하였다고 작품전체가 폐기되지 않는 이유와 같다. 마르크시즘을 구성하는 핵심적 사상의 하나인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이 서로 대립 충돌함으로서 역사의 모순이 발생한다는 통찰, 즉 생산력과 생산관계, 생산관계의 전 체계가 정치적 상부구조 및 사회 형태와의 연관성을 가진다는 지적은 여전히 사회의 권력관계를 분석하는 중요한 토대가 된다. 더구나 마르크시즘을 형성하고 있는 무수한 저술들과 실천행위의 기록들은 한낱 낡아빠진 독단론의 집합이거나 기회주의의 은신처에 똬리를 틀고 있는 현실의 삶과 괴리된 이론적 이념이 아니다.

 

마르크시즘은 자본의 하부에서 임금 노동을 하는 절대 다수의 대중이 스스로 삶의 주체임을 깨닫게 하고 그러함으로써 자기소외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와 평등을 누리며, 인간 존재에 끊임없는 모욕을 가하며 인간정신을 공허와 환멸에 차도록 방치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내적 모순을 제거하려는 휴머니즘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오늘 우리네는 새로운 세계관으로 제시되었던 그의 사상에서 여전히 배워야 할 것, 이해하여야 할 것을 발견 할 수 있으며, 실천적 가치로서 적용할 수도 있다.

 

201855일이면, 마르크스의 탄생 200주년이 된다. 19세기 인류 사회를 온통 적셔댄 자본주의의 발흥에 수반된 계급 전쟁, 사회관계의 상층부를 장악하려는 첨예한 갈등으로 점철된 시간의 족적들을 더듬어가며 대다수의 사람들이 임금 노동자인 21세기 오늘을 투영해보는 것이 아무런 의미를 지니지 못하는 것은 분명 아닐 것이다. 알지 못한 채 마르크시즘은 실패한 이론이기에 이제는 관심을 가질 가치조차 없다고 떠벌리는 우매함과 오만을 넘어 무지의 편협은 짜증스럽기까지 하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저작들을 인용, 재인용하거나 해석 또는 비판의 글들이 난무하다보니 그 왜곡과 몰이해가 지나치게 판을 치는 모양을 보게 된다.

 

마침 다행스럽게도 1989년 번역 소개된 이래 절판과 복간을 반복하다가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의 해를 맞이하여 새롭게 편집된 마르크스 레닌주의 연구소마르크스 전기 1, 2가 재출간 되었다. 이 책은 마르크시즘 이해의 척추를 세우는 최고의 저작이 되어주는데, 마르크시즘을 개관(槪觀)하는 역작(力作)으로서 그가 집필하고 발표한 저술들의 동기는 물론 이것들의 주체적 사상과 의도와 해설을 포함한 내용 소개까지 더해 갈증을 느끼던 무지를 거의 완벽하게 해소시켜준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저술이 빛을 발하는 첫 번째의 가치는 헤겔 법철학 비판, 1844년 경제학철학초고, 신성가족 또는 비판적 비판에 비판,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 독일 이데올로기, 공산당 선언, 철학의 빈곤, 정치경제학 비판, 프랑스의 계급투쟁,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 자본등 위대한 저술들이 역사적 시간과 어울려 가히 풍부하고 참된 의미로 전달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 둘째는 1840년대의 프랑스, 독일을 비롯한 유럽전역에서 일어난 혁명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과학적 공산주의를 이념적 기반으로 하는 최초의 국제 노동계급 조직인 공산주의자 동맹의 결성과 이를 통한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지도자로서 실천적 행동가의 전략과 전술은 물론 그 사상적 토대의 발현을 목격케 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마 마르크시즘(Marxism)의 본질을 이해하는 견고한 기초의 터전이라 해도 그릇된 표현이 아닐 것이다.

 

특히 과학적이라는 수식어와 관념론적 이론이 아닌 실천 행위로서의 이념이라는 어휘는 마르크시즘을 여타 유사 이데올로기와 구별하는 중대한 요소임을 발견하게 한다. 19세기 산업 자본주의 사회가 몰고 온 사회적 모순의 대두는 유럽사회 정치체제의 급변을 요구하게 되는데, 자본 계급의 임금 노동자에 대한 착취는 계급적 충돌의 불가피한 귀결을 내재한다. 결국 자본주의가 지닌 내적 모순에 대한 대안은 다양한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내지만, ‘공상적, 혹은 유토피아적 공산주의, ‘진정한 사회주의와 같이 감상적, 관념적 인류 해방을 부르짖으며, 자신의 계급적 이해를 지니지 못한 기회주의적 이해에 머무는 것들이다 이같은 실태가 바로 실천적 사상으로서의 과학적 공산주의를 정식화시키려는 마르크스의 저술들이며,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역사적 현장에서의 지도적 역할이라는 행위이다.

 

이러한 단적인 예는 유토피아적 공산주의를 주창하던 프루동과의 논쟁으로부터 철학의 빈곤이라는 유명한 저술이 집필되는 것으로 확인하게 된다. “역사가 객관적 조건과는 무관하게 자의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주의주의적 역사개념에 입각해 있으며, 사적 소유의 기원은 물론 소유 집중 이유도 알지 못하는 프티부르주아의 한낱 심적 열망에 불과한 빈곤의 철학이라는 프루동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으며, 가치와 화폐 이론을 포함한 자본이론의 맹아(萌芽)로서의 위치를 갖는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저술행위는 이처럼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위한 자기인식의 명료화와 심화, 대중 확산을 위한 실천적 도구로서의 역할을 지닌다할 수 있다.

 

마르크스의 유물사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출발점인 포이어바흐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으며, 변증법은 또한 헤겔을 피할 수 없는데, 청년기 헤겔 좌파로 불리는 청년헤겔학파의 일원으로서, 인간의 실천행위, 특히 집단적 행동을 과소평가했다고 헤겔의 주관주의적 역사관을 비판한 헤겔 법철학 비판이나, 인간을 자연적이고 본능적인 존재로 파악한 포이어바흐와 달리 인간을 사회적 존재로, 역사에 뿌리박은 사회적 제 관계의 산물로 파악하며, 유물론적 관점을 정식화한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는 마르크스의 유물론적 변증법을 이해하는 관문임을 알게 되기도 한다.

 

또한 청년헤겔학파의 브루노 바우어와 그 일파에 대한 비판으로 작성된 신성가족, 비판적 비판에 대한 비판은 프롤레타리아 이데올로기의 기초를 제공한, 마르크시즘의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저작이다. 노동자의 자기 소외의 원천으로서 재산, 자본, 산업, 그리고 임노동임과, 모든 역사적 시대마다 특정한 경제구조와 이에 상응하는 정치체제를 가지고 있음을 과학적으로 규명함으로써 헤겔의 완전한 극복을 이뤄낸다. 훗날 혹자들은 이를 두고 헤겔 논리학의 병기창에 있는 무기를 사용하는데 뛰어난 재능을 발휘했다고 전하기도 한다.

 

한편 독일 이데올로기를 쓰게 된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당시 임박한 분노도 보게 되는데,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역사적 자기 이해를 방해하는 진정한 사회자들과 같은 이념적 반대파들을 잠재우기 위한 작업의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부르주아 사회가 내재한 인간 존재에 대한 모욕의 본성과 모든 계급간의 충돌 대립은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에 기인한다는 역사성의 발견을 비롯한 정치적 상부구조와 사회적 의식 형태와의 연관성 규명을 통해 프롤레타리아 계급에게 부르주아 및 프티부르주아와의 연대나 이용행위에 대한 환상을 차단하기 위한 도구적 의미를 지니고 있었음을 이해하게 된다.

 

마르크시즘의 정식화는 물론 인류 사상사에 있어서도 중요한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는 1848년 프랑스 6월 혁명이 지닌 역사적 의미로부터의 깨달음인데,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와의 인류 최초의 내전이다. 프랑스공화국의 심화된 내부 모순을 시정하기 위한 민주공화국 확립 요구에 대한 반혁명세력인 부르주아지의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처참한 학살로 맺은 피의 투쟁이 준 교훈이다. 여기에는 사상적 차이가 아니라 사회 각 계급들의 서로 다른 지위, 즉 사회적 관계의 우열인 물질적, 경제적 생활조건이 만들어낸 자본주의가 애초에 내재하고 있는 적대관계라는 것이다. 프롤레타리아트가 지니고 있던 환상, 프티부르주아가, 부르주아가 될 수 있다는 계급적 믿음이란 공허한 꿈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산업, 금융 자본의 임금 노동자인 프롤레타리아의 계급적 자기 인식의 필요를 절실하게 각성하는 사건이었다는 점이다. 이것은 임금노동과 자본이라는 마르크스의 저서로 표현되고 있는데, 노동계급 결집의 강한 필요성을 이들 집단에게 이해시키기 위한 작업의 일환이다.

 

이처럼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저술 작업은 역사 현장에서의 체험과 통찰이라는 실천적 행위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1848~1849년의 독일에서의 혁명운동 또한 융커 등 대지주 봉건세력과 부르주아세력의 연대, 프티부르주아의 노동계급에 대한 배반과 같은 반혁명 세력과 노동계급의 계급의식 미성숙 등 혁명의 좌절은 마르크스와 엥겔스 등 공산주의자동맹의 일원들을 독일에서, 프랑스 파리로, 벨기에 브뤼셀로, 지속되는 추방과 체포 구금의 위협으로 내몰고, 마침내 마르크스는 영구 정착지가 될 영국 런던의 망명길로 오르게 한다.

 

따라서 혁명의 좌절과 반혁명 세력의 승리 이후, 1850년대는 마르크스와 엥겔스에게는 반동의 시기로서 극도의 궁핍에 시달리며 그들 이론의 정교화와 저술 작업을 위한 시간이 된다. 어쩌면 오늘날 우리네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저술의 하나라 할 수 있는 그의 자본을 읽을 수 있게 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절대주의 체계가 다시 부활한 반동세력이 유럽을 지배하던, 마르크스와 엥겔스에게는 곤경의 시기였던 바로 그 시간의 덕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경제학을 비롯한 정치, 역사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키고, 자료를 수집하고, 노동계급의 연대를 복원하는 이 역사적 시간이 안타까운 한편 숭고한 시간으로 여겨지기까지 한다.

 

이처럼 오늘 우리네는 새로운 세계관으로 제시되었던 그의 사상에서 여전히 많은 배움을 얻는다. 마르크스 전기 1, 2는 역사적 인물의 사적 생활을 묘사한 단순한 전기(傳記)물이 아니다. 마르크시즘의 형성과 정식화의 여정에서 서술된 위대한 저작물들의 핵심 내용의 도출과 그 역사적 분석으로 이루어져 있다. 오늘 우리들은 여기서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인간을 향한, 자본으로부터 소외된 인간의 해방을 위한 인류애를 발견 할 수 있을 것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저술들을 읽으려는 모든 이들의 유용한 안내서이자 지침서가 되어줄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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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만 발견해도 입이 헤 벌어지게 하는 작가가 있다. 행복 바이러스가 내 몸 속에 잔뜩 주입되어 절로 유쾌한 기분이 온 몸을 돌게 하는, 그래서 얼굴이 발그레해지고 윤이나는 듯 하며, 밝은 인상으로 어께가 쫙 펴지는 자신감으로 가득하게 하는 이야기가 그저 그려지는.

 

일상의 언어를 풍요롭고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사람, 가슴 따뜻한 시선과 건강성이 유쾌하게 지면을 꽉 채우는 그런 소설을 보여주는 작가. ‘에릭 오르세나는 내겐 그런 작가이다.

국내에 이미 소개되어 잘 알려진 오래 오래』에서 가브리엘 부자(父子)의 미소가 뚝뚝 떨어지게 하는 우아함 넘치는 쾌활함의 기억, 두 해 여름의 섬을 가득 채우던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에이다>번역에 열중하는 섬마을에 퍼진 기운의 기발한 은유의 문장은 잊혀지지 않는다.

 

섬의 어디에나 색정의 기운이 감돌고 있음을 느낌으로 알고 있었다. (中略) 향긋한 냄새로 미루어 근처 어디에선가 교접이 한바탕 벌어지고 있으려니 짐작하고 있었다.”ㅋㅋ (두해 여름 에서)

 

그의 최근 출간작 프랑스 남자의 사랑의 국내 번역 출간 소식은 정말 반갑기 그지없다. 역시 'happy Virus'를 예상케 하는 출판사 홍보 문구가 시선을 끈다.

 

 “종횡무진 뻗어나가는 유머와 지성의 향연, 프랑스적 재치와 수다로 버무려진 사랑의 유전학이란다.

 

어찌 지르지 않을 수가 있던가작가 엠마뉘엘 카레르는 자신의 어머니가 너도 에릭 오르세나처럼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던 기억을 고백할 정도이니, 그의 허구에 담긴 사랑의 이야기가 발산하는 정체의 위력은 가히 진실을 삼킬 만큼 위력적임을 그 누가 부정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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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vages - song by 'marina and the diamonds'

 

 

 

 

영국의 가수 마리나(Marina and the Diamonds)의 이 노래를 듣다보면 곡의 흥겨움과 세련된 리듬에

빠져들기도 하지만, 그 가사가 말하는 오늘의 인류에 대한 노골적인 비판이 예사롭지 않음에 더욱 매혹된다.

DNA에 각인된 인간의 특성에 대해서, 이 신랄한 야만성과 동물성, 그리고 수많은 모순을 지닌 인간의 모든

행동양식과 학습의 미명하에 이루어지는 졸렬한 본성의 본색에 대해서...

신(神)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녀가 인간은 두렵다고 노래한다...

 

Murder lives forever

And so does war

Its survival of the fittest

Rich against the poor

At the end of the day

Its a human trait

Sewn deep down inside of our DNA

One man can build a bomb

Another run a race

To save somebodys life

And have it blow up in his face

Im not the only one who

Finds it hard to understand

Im not afraid of God

I am afraid of Man

 

Is it running in our blood

Is it running in our veins

Is it running in our genes

Is it in our DNA

Humans arent gonna behave

As we think we always should

Yeah, we can be as bad as we can good

 

Underneath it all, were just savages

Hidden behind shirts, ties and marriages

How could we expect anything at all

Were just animals, still learning how to crawl

 

We live, we die

We steal, we kill, we lie

Just like animals

But with far less grace

We laugh, we cry

Like babies in the night

Forever running wild

In the human race

 

Another day, another tale of rape

Another ticking bomb to bury deep and detonate

Im not the only one who finds it hard to understand

Im not afraid of God

Im afraid of Man

 

You can see it on the news

You can watch it on TV

You can read it on your phone

You can say its troubling

Humans arent gonna behave

As we think we always should

Yeah, we can be as bad as we can good

 

Underneath it all, were just savages

Hidden behind shirts, ties and marriages

How could we expect anything at all

Were just animals, still learning how to crawl

Underneath it all, were just savages

Hidden behind shirts, ties and marriages

Truth is in us all, cradle to the grave

Were just animals still learning how to behave

 

All the hate coming out from a generation

Who got everything, and nothing guided by temptation

We were born to abuse, shoot a gun and run

Or has something deep inside of us come undone

Is it a human trait, or is it learned behavior

Are you killing for yourself, or killing for your savior

 

Underneath it all, we’re just savages

Hidden behind shirts, ties and marriages

How could we expect anything at all?

We’re just animals still learning how to crawl

Underneath it all, we’re just savages

Hidden behind shirts, ties & marriages

Truth is in us all, cradle to the grave

We’re just animals still learning to beha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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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더스 헉슬리멋진 신세계에서 그려낸 유전자 카스트의 디스토피아 세계, 프랑켄슈타인의 폐쇄적인 과학기술의 맹목성이 만들어내는 괴물의 세계가 마침내 인류의 손아귀에 들어왔다. 뭔 뜬금없는 소리를 지껄이고 있냐고 나무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전혀 헛소리가 아니다. 인간 게놈(genome)DNA 염기서열 중 특정부분을 잘랐다 붙였다, 혹은 끼워 넣거나, 아예 없애버릴 수도 있는 완벽한 유전자편집 능력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2013, 캘리포니아주립대 버클리캠퍼스의 생화학자인 제니퍼 다우드나가 개발한 정교한 유전자 가위로 불리는 분자의 기능이다. 이 놀라운 분자기계는 돌연변이를 일으키는 DNA염기 서열의 위치를 찾아내 해당 지점을 정확하게 절단하고 정상 DNA로 교체 수정한다. 다시 말하자면 인간의 의도대로 유전정보를 바꿀 수 있는 엄청난 도구, 온전히 인간의 상상력으로만 지구상 모든 종의 가능성이 재단되는 그러한 시대와 마주했다는 얘기이다.

 

모든 세포(세균)는 외부에서 침입하려는 바이러스(박테리아)와 무기경쟁을 벌여왔다. 바이러스는 세포에 결착해서 자신의 DNA를 주입하고 복제 확산하여 세포를 점령했지만, 세포 또한 무기력하게 당하지만은 않았다. 크리스퍼(CLISPR; 앞뒤가 동일한 서열인 짧은 회문(回文)구조가 간격을 두고 반복되는 구조의 집합체)라는 특정유전자 발현을 억제하는 분자체계를 발전시켜 침략 바이러스와 동일한 DNA를 파괴하는 면역체계를 갖추었다.

 

여기에 착안하여 과학은 자신의 DNA를 단단히 보호하고 있는 박테리오파지의 DNA를 제거하여 수정하고자 하는 정상 RNA를 크리스퍼 구조에 탑재한 후 세포에 보내 세포내 DNA를 교체하기로 한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돌연변이를 일으킨 특정 DNA염기 서열만 잘라내고 해당 위치에 자신이 끼어 붙으면 여타 DNA의 손상이나 혼란 없이 깔끔하게 정상화 될 수 있는 방법에는 부족함이 있다. 드디어 원하는 DNA서열을 인식해서 해당 위치를 정확하게 그것도 모터 달린 전지가위처럼 효율적으로 고속으로 잘라내는 캐스9’ 이라 명명한 단백질 효소를 찾아낸 것이다.

 

이제 인간은 작은 가이드 RNA만 교체해서 캐스9 단백질과 함께 세포에 주입하면 의도한 대로 세포내 DNA를 수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자의적으로 유전자를 수정, 교체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인간의 욕심이란 것이 어찌 선한 목적으로만 이용하던가? 이 획기적이며 가공(可恐)할 기술로 인해 너무도 간편하고 정확하게 유전자 암호의 결함을 교정, 변형할 수 있게 되자, 이 인류 초유 기술의 성배(聖杯)는 남용 및 악용의 우려를 낳고 있다. 설혹 정상적 사용에서조차 예기치 않은 재앙을 초래할 수 있는 내재적 위험을 자각하게 된 것이다.

 

유전자를 마음대로 바꿀 수 있으며 나아가 지구상에 지금까지 출현한 적이 없었던 새로운 생명체를 창조해 낼 수 있게 된 인간이 제일 먼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를 생각해보자.

소위 인본주의에 도사린 인간의 무한한 욕망, 그것을 이기심이라고 단순하게 좁혀보면 아마도 지능의 개선, 음악재능, 수학적 기량, 큰 키, 놀라운 미모, 운동능력과 같은 비의료적 개선에 모아질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되면 부와 권력을 지닌 계층이 생식세포의 유전자편집 혜택을 압도적으로 많이 보게 될 것은 당연한 귀결일 것이다.

 

모두(冒頭)에서 올더스 헉슬리의 소설을 이야기한 것은 바로 이러한 유전자 카스트가 만들어 낼 유전자 간극으로 인한 인간 불평등의 심화이다. 소설은 외부 생식’, 즉 생식세포의 유전자 편집을 통한 인간 생산이라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예정된 사회계급별로 인공 배양되고 부화 조건이 차별된 인간 생산 시스템의 디스토피아다. 끔찍한 세계이다. 내 본능적인 직관은 거부와 두려움의 감정으로 휩싸인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 개별의 수용과 거부의 의식을 떠나서도 최초의 혁신적인 유전자 가위인 크리스퍼-캐스9’의 개발자인 제니퍼 다우드나 교수의 자각처럼 인간유전학의 총체적 지식이 우리가 관여해도 될 만큼, 그리고 최악의 부정적인 결과를 피할 만큼 충분히 발전할지 확신 할 수 없으며, 인류 역사에 비추어 볼 때 인간사회를 파멸로 이끌 잠재적 위험을 외면할 수도 없다는 점에 이 기술의 특이성이 있다.

 

그리고 다우드나 교수의 과학자로서의 폐쇄적 연구심성의 반성은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 박사를 떠오르게 한다. 자신의 연구가 불러올 결과와 타당성에 대한 고려없이 새로운 연구 분야에 무턱대고 뛰어든 결과에 대한 도덕적 물음의 선행에 대한 인식이다. 이것이 없을 때 유전자 조작 기술의 남용은 곧 괴물이라는 파괴와 죽음의 은유와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생명체의 자의적 조작을 다루는 기술, 즉 인류 전체가 참여하여 숙고하여야 하는 거대 담론에 속한 질문을 외면하고 친숙한 자신들의 과학계라는 우물 속만 들여다 볼 경우 그 위험의 강도는 너무도 참담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 기술의 사용에 대한 국제적 합의는 물론, 일본과 중국처럼 아무런 규제와 입법조치가 없는 국가들의 무책임한 임상실험은 가슴을 쓸어내리게 한다. 20154월 중국 광저우 한 대학의 연구팀은 인간 생식세포인 배아 86개에 크리스퍼를 주입하는 심히 의심스러운 임상실험을 발표했다. 이 무모하고 허섭한 실험이 실패로 끝났기 망정이지 인류전체를 괴멸로 이끌 가능성을 내포한 위험천만하고 무책임한 실험이었다. 이런 힘이 과학자의 손 안에만 들어있을 경우, 인류 사회 전체가 볼모가 되는 위험천만한 사태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다우드나 교수는 우리는 충분히 준비되지 않았다"고 현 인류의 유전자지식에 대한 불완전성을 주장하고 있다. 준비되지 않은 사람들이 이 기술을 사용할 때 발생할 가공의 재앙을 제어하기 위해서라도 국제적 사용의 표준과 도덕적 지침이 시급히 마련되어야 할 당위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할 것이다. 지구 탄생 이래 대면한 적 없는 이 기술을 현 인류는 과연 감당해 낼 수 있겠는가? 아마 이 감당에 대한 논의는 가장 큰 인류의 도전이 될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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