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두의 악마 2 학생 아리스 시리즈
아리스가와 아리스 지음, 김선영 옮김 / 시공사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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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스포일러 거의 없음 


 <쌍두의 악마>는 매우 성실한 추리소설가, 덕업일치를 이룬 작가로 평가받는 작가의 출세작이자 작가의 데뷔작이 포함된 '학생 아리스' 시리즈에서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 작품이다. 이 작품의 흥행으로 회사와 집필을 병행하던 아리스가와 아리스는 전업 작가가 됐고 10년 전에 이 작품을 읽은 나는 완전히 작가의 팬이 됐다. 당시 나는 군인이었는데, 1권을 읽고서 2권이 궁금한 나머지 그래선 안 됐음에도 외출 시 허용 지역을 벗어나 서점이 많던 서울로 점프를 하게 만들었던 용기와 아찔한 추억을 떠오르게 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그리고 요번에 교토 여행 중에 이 작품을 가져가 다시 한 번 이 작품을 읽었다. 아리스가와 아리스가 교토에 있는 유명 사립대 도시샤대학교의 추리소설 동호회 소속이었다는 얘길 기억하고서 여행 때 읽을 책으로 선정했던 것이다. 여담이지만 도시샤대학교 출신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윤동주 시인의 시비를 보고자 실제로 여행 중에 도시샤대학교를 방문했다. 그 여행기는 조금만 기다려주시길. 부지런히 진도를 빼서 그날의 감상을 들려주도록 하겠다.



 이건 도시샤대학교 내에 있던 서점에서 발견한 <쌍두의 악마> 원서와 번역본을 함께 찍은 사진이다. 원서는 두 권으로 분권하지 않고 한 권으로 합쳐서 출간했더군. 문고본이라 작고 가벼워 사고 싶었지만, 좋게 말해 그림의 떡이고 결국 애물단지로 전락해 먼지만 쌓일 걸 잘 아는 터라 그냥 구경만 열심히 했다.



 어쨌든 10년 전에 읽어서 기억이 가물가물했기에 오히려 좋았다. 처음 읽는 기분으로 추리하며 읽었지만 요번에도 속절없이 추리는 빗나갔다. 사실 난 그렇게까지 근면한 추리소설 독자는 아닌 지라 어느 순간 스스로 머릴 굴리기보단 나도 모르게 인물들의 추리에 쫓아가기 급급했지만 말이다...ㅋㅋ

 비록 추리는 오래 이어지지 못했지만, 탐정역을 맡은 에가미 부장만이 아니라 아리스를 비롯해 여러 인물이 건설적으로 추리를 전개하고 지혜를 모으는 과정은 사뭇 의미 있고 낭만적인 연출이었다. 추리소설의 본분인 추리하는 재미를 정말 잘 구현했으며 결과와 반전에만 힘주느라 과정이 약하다는 비판을 면치 못하는 여타 추리소설에 경종을 울리는 실로 모범적인 작품이라 생각됐다.


 전개를 위해 작위적으로 인물 수만 채워넣은 게 아니라 각각의 인물들이 존재감과 개성이 특출나 작품이 전체적으로 생동감이 넘쳤던 것이나 에가미 부장이 진실을 밝히려는 원동력은 수수께끼를 해결하려는 지적 욕구 때문이 아닌 범인의 악마 같은 계략에 분노했기 때문이라는 지극히 인간적인 이유였던 것도 이 작품의 여운과 호감을 증폭시키는 요소 중 하나다. 자극적이고 휘발적이며 비인간적인 작품 일색이라는 오해를 사곤 하는 추리소설계에 이런 인간적이고 읽을 맛 넘치는 작품이 있다는 건 확실히 좋은 일이다. 이 정도면 거의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추천할 만한 작품이지 않은가 싶었다.

 논리적이면서 깔끔한 범인 지목 과정도 일품이지만 8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을 감싸고 있는 분위기도 압권이었다. 단절된 두 마을에서의 살인을 다뤘고 몇몇 장면은 명확히 설명되지 않았는데 그 부분을 독자가 상상으로 풀어나가게끔 여지를 남겼다. 이때 범인이 살인을 범하기 위해 혹은 범하기 직전에 지었을 표정과 광기까지 머릿속에 그려질 정도로 <쌍두의 악마>는 밀도 높은 세계관과 설득력을 갖추고 있었다.


 수상하기 그지없던 예술가들의 마을은 알고 보니 예술을 향한 형이상학적인 목표 못지않게 인간적인 욕망도 버젓이 있던 탓에 연쇄살인의 물꼬가 터졌던 것, 반대편 마을은 평범한 줄 알았더니 꿈을 향한 광기가 도사리고 있는 등 이 소설에선 두 마을의 대비가 시종 돋보였다. 꽤나 많은 등장인물, 쉴 틈 없이 벌어지는 사건, 적잖은 수수께끼가 나왔고 그 수수께끼를 전부 풀어내지도 않았지만 상술했던 이 작품만의 분위기에 지배당해 오히려 설명이 부족하다는 결핍마저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공정하게 추리의 도구를 제시한 덕에 머릴 굴릴 수 있던 것처럼 이 작품은 작가와 독자가 같이 만들어내는 기분마저 느끼게 해줬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용두사미에 무책임한 작품처럼 들리겠지만 실상은 정교한 구성과 세계관이 빛나는 작품이라 강조하겠다. 두 단절된 마을에서 벌어진 연쇄살인의 이면엔 범인의 악마와도 같은 계략이 있었고 그 계략의 이면엔 독자의 추리를 유도하는 작가라는 이름의 운명의 신이 존재했던 것이다. 이 작품이 작가의 출세작인 데엔 다 이유가 있었다.


 시리즈의 다음 작품인 <여왕국의 성>도 올해 안에 읽을 생각이다. 그 작품도 읽은 지 10년이 지나서 처음 읽는 기분으로 읽을 수 있을 듯하다. 그나저나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은 언제 출간하려나? 십 년 넘게 소식이 없는데... 작가가 완성도에 공을 들일 수밖에 없는 시리즈인 만큼 시간이 더 걸려도 이해는 간다. 부디 대미를 장식할 그 작품을 차질 없이 접해볼 수 있길 희망한다.


서로 자신의 운명을 담보로 내놓고 아슬아슬한 상황에서 상대를 믿는 행위는 남녀의 사랑과도 흡사합니다. - 2권 338p

공상의 날개가 점점 더 커지네요. 마치 자기가 탄 차가 이미 절벽에서 떨어진 줄도 모르고 열심히 운전하고 있는 것 같군요.
아동용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개그로군요. 그 경우 운전사가 바퀴 밑에 땅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면 차는 계속 달릴 수 있다는 규칙이 있습니다.
당신은 깨닫지 못했나요?
앞만 보고 있으니까요.
밑을 보세요.
목적지에 도착한 후에 보겠습니다. 그곳에 땅이 있다면 그 사이에도 땅 위를 달린 셈이 되니까요. - 2권 341p

인간을 조종하는 건 신이나 운명만으로도 충분해. - 2권 36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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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권일영 옮김 / 예담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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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스포일러 있음 

 다양한 장르의 소설을 능수능란하게 발표하는 오기와라 히로시의 추리소설 <소문>은 다시 읽어도 처음 읽는 것처럼 술술 읽혔다. 캐릭터며 전개며 반전이며 못해도 80% 이상은 기억이 나는 상황이었는데도 말이다. 그 가독성의 비결로 아주 바람직하면서 흐뭇한 경찰 두 명의 캐미를 꼽을 수 있겠다. 흔히 일존 추리소설 속에서 캐리어 경찰과 논캐리어 경찰이 콤비를 이루면 십중팔구 마찰이 생기는데 이 소설은 너무 순조로운 게 아닌가 싶을 만큼 둘이 잘 맞아 수사가 척척 전개된다. 어디 하나 모난 곳 없이 유능한 캐릭터들이 경찰의 본분, 그리고 가족의 본분을 다하려는 모습은 이미 알고 있는 맛임에도 속절없이 탐을 내는 음식처럼 두 번째 접함에도 흡수가 잘 됐다. 요새 심리적으로 지친 탓에 갈등이 비교적 적은 이 작품 속 캐릭터들에 흠뻑 매료된 듯하다. 
 최근 히틀러와 나치의 몰락을 다룬 영화 <다운폴>을 관람하고 난 직후에 이 작품을 읽으니 주요 소재인 'WOM', 일명 소문을 통한 마케팅의 책임감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다. 이 마케팅을 적극 구사한 컴사이트의 사장 쓰에무라는 이렇게 변명하는데, 자기네들이 칼을 팔 때 당연히 누군가 이 칼로 사람을 죽이리라 생각하며 팔지 않으니 그 칼로 살인을 저지르는 사람이 문제라고. 정말 그럴까? 나는 정말로 그렇다고 생각한다. 물건 좀 팔아보겠다고 연쇄살인마 이야길 꾸며 소문으로 퍼뜨린다는 것도 그리 정상으로 보이진 않지만 라이벌 회사의 제품을 인위적으로 비방하는 내용이 아닌 이상 그 행위를 법적으로 제지할 수단은 없다. 

 하지만 실제로 소문을 퍼뜨린 것말곤 딱히 아무런 죄도 저지르지 않은 쓰에무라나 약쟁이에 불과한 아소가 죽거나 검거당할 때 통쾌함을 느낀 이유는 어째서일까? 그건 바로 그들이 인간을 이성적으로만 이해하려는 오만무도함, 그리고 결과적으로 이 사건의 경우엔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을 뿐 들키지 않을 여지만 있다면 더한 짓을 하고도 남을 작자들이란 인상을 강하게 준 탓이리라 본다. 물론 후자의 발언은 당사자들에게 지나친 발언일 수 있겠다. 어쨌든 그들은 실제로 살인을 저지르지도 저지르라 부추긴 적도 부추길 생각 자체도 없었으니까. 허나 분명 누군가 영향을 받아 살인마로 각성되고 말았는데 과연 WOM은 아무런 문제가 없는 광고 전략인 걸까? 쓰에무라의 비유처럼 과연 칼처럼 무해한 것일까? 글쎄, 칼과 달리 말엔 아무리 허무맹랑할 지라도 분명히 의도가 있잖은가. 그럼 완벽히 무고하다고 할 수 있을까? 
 소문에 부화뇌동해 쓰에무라와 컴사이트를 비방하고 실제로 살해를 저지름으로써 복수를 완수한 여고생들도 마찬가지다. 쓰에무라는 입을 잘못 놀린 대가, 여고생들은 단순하다 얕본 대가를 치른 것이나 다름없다. 좀 지나친 대가지만 WOM의 힘을 맹신했다면 그 부작용도 충분히 경계해야 하지 않았을까. 소문을 퍼뜨리는 자들 못지않게 소문만 믿고 바로 복수에 옮긴 여고생들도 문제지만 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연쇄살인마만 죗값을 치르지 않고 스스로에 대한 연민에 취한 채 죽고 말았군. 어쩌면 이게 제일 코미디였다. 그 어떤 향수로도 가리지 못할 역겨운 냄새가 나는 코미디 말이다. 

 여고생들의 은어를 비롯해 광고계의 은어, 형사들의 은어 등 다양한 분야와 업계의 은밀한 요소를 다뤄낸 작가의 시도와 딱히 막히는 구석 없는 문장은 무난함 그 자체라 독서를 어려워하거나 추리소설에 부담을 느끼는 초보 독자들에게 강하게 어필될 만한 요소라 생각됐다. 나도 10년 전에 이 작품을 읽을 땐 아직 독서 경험이 일천해 이 두꺼운 책을 빠르게 독파하는 스스로에 뿌듯함을 느꼈는데, 이렇게 진입 장벽이 낮은 소설은 시간이 흘러 다시 읽으면 허접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다반사인데 <소문>은 오히려 그 낮은 진입 장벽이 확고부동한 장점으로 다가왔다. 쉽게 쓴다는 게 참 쉽지 않은 일이니까. 
 작가의 약력을 보니까 최근에도 활발히 신작을 발표하고 나오키상을 비롯한 다양한 문학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한동안 잘 읽지 않았는데 앞으로 종종 작품을 찾아 읽어볼 생각이다. 일단 나오키상 수상작인 <바다가 보이는 이발소>부터 읽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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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주
유키 하루오 지음, 김은모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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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스포일러 있음


 시놉시스만 봤을 땐 그렇게 구미가 당기지 않았는데 작년에 출간된 일본 추리소설 중 <명탐정의 제물>과 함께 큰 화제를 불러일으킨 작품이라 읽게 됐다. 원래 소문에 끌려 부화뇌동하는 걸 지양하는 편이지만 가끔 이렇게 속는 셈 치고 읽어보는 것도 나쁘진 않지. 뭐든 결국 직접 경험해보기 전까지 모르는 법이라니까. 이 소설이 그랬다. 시놉시스만 보면 전형적인 클로즈드 서클, 탈출이 불가한 공간에서 벌어지는 연쇄살인을 다룬 추리소설이었지만 그 안엔 꽤나 기발한 설정과 디테일한 추리, 그리고 뒷맛이 아찔한 결말이 있어 간만에 흡족한 기분으로 책장을 덮었다.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들었다. 작가가 1993년생으로 나와 동갑인데 이만한 작품을 쓰고 바다 건너 독자에게 인정도 받는구나 싶어 질투를 넘어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물론 단점이 없는 작품은 아니었다. 일단 문장력이 아직 서툰 편으로, 무의미하게 낭비되는 페이지는 없지만 대다수의 문장이 단지 추리를 위해 서술됐다는 느낌이 강해 문학의 묘미는 거의 없다시피 했다. 드문드문 노아의 방주를 연상하는 골때리는 상황이며 슈이치와 마이의 대화, 희생에 대한 작가만의 사유 등이 인상적이었지만 어딘지 얕게 묘사됐다는 게 아쉽다면 아쉬운 부분이다.


 빨리 범인과 범인의 동기를 밝혀내야 하는 조급함이 등장인물 못지않게 작가에게도 있었는지 기껏 흥미로운 소재와 화제를 꺼내놓고도 제대로 갈무리 짓지 못해 아직은 분량의 완급 조절이 숙련되지 못했단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에겐 전개가 속도감 있다며 좋아하겠지만, 이 작품이 문장력과 소설적 구조가 평범하거나 부족하다는 지적을 이구동성으로 당하는 걸 보면 이 부분은 조금 더 발전이 필요한 부분이라 할 수 있겠다.

 반대로 말하면 추리에 집중을 다한 작품인 만큼 범인이 살인을 세 번이나 저질러야 했던 동기와 이 범인을 지목하기까지의 추리 과정이 빈틈이 없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는 장점이라 할 수 있겠다. 작품의 스케일에 비해 범인을 지목하는 소거법의 근거가 너무 소박하다는 것이 처음엔 조금 시시하게 느껴졌지만 탐정역을 맡은 인물의 추리나 작품의 복선이 디테일해 이내 감탄하며 읽어 내려갔다. 그리고 반전! 난 이 소설이 반전의 묘미를 제대로 구사한 것만으로 작품과 작가에게 상당한 호감을 갖게 됐다.


 누누이 말하지만 좋은 반전이란 주인공과 독자의 믿음이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반전이라 생각하는데 이 작품의 반전이 딱 좋은 반전에 속했다. 희생하는 자가 죽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희생하는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반전과 그 반전을 감추기 위해 저지른 세 번의 살인도 모두 합리적이라 통쾌하면서도 산뜻하기까지 했다. 그 반전을 슈이치에게 전하는 심보는 전혀 산뜻하지 않았지만.

산뜻하긴커녕 까놓고 말해 기분 더러웠지. 사랑이 좌절된 것도 모자라 자책하며 죽었을 슈이치를 생각하면 마이는 정말이지 두고두고 잊히지 않을 범인이다. 굳이 슈이치를 위로하자면, 설령 슈이치가 마이를 위해 남았다가 같이 생존했다 하더라도 이후 그 둘의 행보가 마냥 좋을 것 같진 않다. 이건 가정에 불과하지만 생존을 위해 마이가 벌인 행동과 그 행동을 재빠른 두뇌 회전과 연기력으로 완수한 걸 보면 만약 슈이치와 마이가 같이 가정을 꾸릴 시 그건 그것대로 굉장히 불안하고 위험한 일이라 본다. 훗날 슈이치가 마이의 마음에 안 드는 날에 이른다면 마이가 슈이치를 제거하는 건 어린아이 손목을 비트는 것보다 쉬운 일일 테니까... 내가 너무 과몰입한 걸까?

 이게 다 절망적인 결말 때문이다. 슈이치의 마음을 테스트한 것이나, 그 테스트의 결과를 굳이 통보하는 마이의 모습은 그녀가 생존을 위해 저지른 세 번의 살인보다 더 무섭기 그지없었다. 방주에 타기 위해 저지른 짓이야 백 번 양보해 참작의 여지가 있다 하더라도 방주에 타지 못한 사람을 조롱하거나 침을 뱉는 건 경우가 다르잖은가. 마이의 입장을 생각하면 그녀도 슈이치에게 기대가 컸는데 그만큼 배신감도 컸기에 그랬을 테지만... 이것 참 곱씹을수록 뒷맛 사나운 결말이다.


 최근 작가의 데뷔작인 <교수상회>가 출간됐고 현지에서도 이 작품처럼 성경 속 소재를 차용한 작품이 출간했다고 한다. 장래가 촉망되는 작가라 앞으로 작가의 다른 작품도 국내에 많이 소개될 듯한데 <방주>의 결말이 인상적이었던 만큼 다른 작품도 속는 셈 치고 펼쳐볼 것 같다. 다음엔 <교수상회>를 읽을 예정인데 기대되는군.

영화에도 나오잖아. 죽을 위기에 처한 사람이 자기는 연인이 있다든가 가족이 있다면서 목숨을 구걸하는 장면, 그거, 가족이나 연인이 없으면 죽어도 된다는 소리잖아. 이 세상 사람 모두에게 인권이 있다미나, 개중에서 희생자를 뽑는다면 제일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이 뽑히겠지?
그건 데스 게임과 비슷하다고 생각해. 지혜나 체력이 모자란 사람이 탈락하는 데스 게임이 있잖아?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이 죽어야 하는 건, 그것과 마찬가지로 잔혹한 일 아닐까? - 23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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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여행 떠나는 카페
곤도 후미에 지음, 윤선해 옮김 / 황소자리(Taurus)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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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코로나 시국 때 읽었으면 여행에 대한 이 작품의 사유와 낭만에 훨씬 깊게 빠져들었을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코로나가 있긴 했었나 싶을 만큼 해외여행을 가볍게 떠날 수 있게 됐고 그렇다 보니 이 책의 단편들도 가벼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이야기로 다가왔다.

 단편마다 소개되는 디저트의 레시피나 유래를 통해 주인공과 그 주변인들이 사건과 갈등을 해결하는 것이 이 작품집의 주요 골자인데, 작가의 이전 작품들에 비해 깊이도 얕고 너무 초보적으로 이야기들이 진행되고 끝맺어져 상당히 허무했다. 수록된 작품 하나하나가 너무 분량이 적거니와 이야기의 초점을 카페와 디저트에 맞춘 탓에 스케일에 한계가 있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스케일도 문제지만 주인공의 포지션이 애매하다는 것도 몰입을 저해시키는 큰 단점이었다. 주체적인 역할이 아닌 화자에 그치는 정도인데 패턴이 똑같고 주인공의 과거사나 캐릭터성, 주변인들과의 캐미가 지나치게 평범함을 지향하는 것 같은 느낌이라 오히려 몰입의 여지가 적었다. 탐정역을 맡은 마도카도 마찬가지다. 수록작마다 비중이 들쑥날쑥하고 서서히 드러나는 과거사도 본격적으로 다뤄지려다 작품이 싱겁게 마무리돼서 이래저래 탐정역이라 말하기엔 애매한 캐릭터긴 하다.

 게다가 결말에서 드러나는 반전은 너무 뜬금없거니와 그 반전의 의미를 극대화하기 위해 스페인의 디저트 아로쓰 꼰 레쩨Arroz con leche가 동원된 것도, 그 반전을 서술하는 작가의 연출도 어딘지 유치해서... 2006년부터 모교인 오사카 예술대학 문예학과의 객원 부교수로 지내고 있다는데, 내가 그 학교 학생이면 교수님의 이러한 작품을 읽고 전과를 고민해보지 않았을까 싶다. 여담이지만 문예창작과 졸업생으로서 말하는데 이는 내가 실제로 학창 시절 숱하게 했던 고민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카페에 가는 걸 굉장히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작중 주인공과 카페 사장과의 우정에 대한 서술은 보기 좋았는데, 단골 손님과 카페 사장이라는 애매한 관계가 소설적으로 대단히 매력적으로 표현됐는지 의문이 든다. 매월 1일부터 9일까지 여행을 가서 그 여행지의 디저트를 가게에 선보인다는 컨셉은 대단히 마음에 들어서 그런 카페가 실제로도 있으면 좋겠단 생각은 했지만, 열 편의 수록작 내내 그 컨셉이 서사적으로 훌륭하게 작용하기보단 단지 세계 디저트를 소개하기 위한 일종의 설정 정도로만 기능해서 독자 입장에서 낭만 그 이상의 감탄을 느끼진 못했던 것 같다. 정말이지, 열거하면 열거할수록 아쉬움만 가득한 작품이다.

 곤도 후미에는 한때 가장 좋아하는 작가 중 한 명이었다. 당연히 <새크리파이스>의 덕이 크다고 볼 수 있는데 이젠 그 정도 작품을 기대하는 건 너무 큰 욕심인 걸까? 최근 작가의 가벼운 분위기의 작품 위주로 읽은 것 같은데 찾아보니 무거운 분위기의 작품도 몇 편 출간됐더라. 그 작품들도 읽어봐야겠다. 작가 이름만 믿고 펼쳤다가 낭패인 작품일 순 있지만 그것도 결국 펼쳐봐야 알게 될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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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인 오늘의 일본문학 6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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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요시다 슈이치 작가 스스로 감히 대표작으로 단언할 만한 작품이며 나 역시 10년 전에 읽었을 땐 그렇게 생각했다. 그럼 지금은 어떨까? 작가는 아직도 이 작품을 자신의 대표작이라 여길까? 나는 올해 1월 초에 이 작품을 다시 펼쳤지만 다 읽기까지 자그마치 2개월이 넘게 걸렸다. 여러모로 진행도 더뎠고 더 이상은 새로울 게 없고, 또 무엇보다 사건의 진상을 훤히 알고 있으니 이 작품의 사유를 다시 읽어내려가는 것이 더없이 지루하게 느껴진 탓이다. 이런 감상은 주로 트릭과 반전을 내세운 추리소설을 다시 읽을 때 들곤 하는데, 범죄를 다뤘을 뿐 추리소설이 아닌 작품인데 사유가 지루하다니, 한 번은 끊고 다시 읽어볼 수밖에 없었다.

 등장하는 캐릭터들이 모두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안쓰러우면서 환멸을 느끼게도 하는 입체성이 '가관'인 소설이었다. 평소라면 압권이라 표현했겠지만 이번엔 가관이라 표현하고 싶다. 사실상 피해자의 아버지를 제외하면 다들 너무 이해불가할 만큼 돌발적인 언행을 저지르는데 작가는 그에 대해 충분한 분량을 할애해 묘사하지 않는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을 뿐이라고 무마하는 느낌이었는데, 도망친 것도 무고죄를 저지르려는 것도 자수하려다 만류하거나 도피를 하는 것도 외로움을 느껴 서로에게 다가갔다가 배신하는 전개 등 일련의 전개나 묘사가 완급 조절이 들쑥날쑥한 터라 상당한 집중력이 요구됐다.


 조금이라도 딴생각을 하면 전개를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참으로 예측불허했는데, 좋게 말하면 그만큼 등장인물들 하는 짓이 입체적인 걸 넘어 픽션치곤 대단히 현실적인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악인'은, 적어도 우리 상식으로 바라보면 꼭 법의 테두리 안팎의 여부로 깔끔하게 판별되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적절한 연출이라고도 할 수 있다.

 문제는 50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 안에서 이리저리 가치관을 흔들어대는 터라 주제의식이나 내용이나 갈피를 잡기 힘들었다는 것이다. 전에 읽었을 땐 외로운 과거사를 가진 유이치가 가여웠고 경박한 게이고가 역겨웠고 요시노는 살해당한 건 불쌍하지만 일종의 자업자득이라 여겼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랬는지 작품의 청승 떠는 것 같은 시선이 부담없이 흡수돼 무려 10점이나 줬으나 지금은 오히려 이 모든 캐릭터들의 언행이 불편하게만 다가왔다. 뿐만 아니라 유이치와 함께 도피 행각을 한 미쓰요의 경우 그녀의 과거를 내 기준에선 작가가 충분히 다뤘다고 느껴지지 않아서 모든 행동이 다소 작위적으로 다가왔고 때문에 최후반부의 대사도 아무런 여운을 안겨주지 못했다. 여운은커녕 약간 오그라들었다고 말한다면 너무 가혹한 평이려나.


 과거와 달리 내가 이 캐릭터들보다 나이가 많아졌기 때문인 걸까? 내가 다 포용할 수 없을 만큼 어리석으며 감정적으로 행동하니 공감이나 동정보단 차갑게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 하고 반면교사로 삼게 됐다. 훗날 두 번째 읽고서 이렇게나 박하게 평하리라곤 10년 전엔 정말 상상도 못했다...

 이 작가의 <퍼레이드>와 <사요나라 사요나라>, 그리고 <요노스케 이야기>와 함께 정말 좋아한 작품인데 이 작품들도 지금 다시 읽으면 별로일까? 작가의 젊은 감각과 통찰력을 좋아했는데 이번엔 유독 젊기보단 얕게 느껴졌다. 한때 가장 좋아하는 작가였으나 나도 성향이 많이 바뀌었는지 아무리 두 번째 읽은 작품이라지만 인상이 많이 달라져 일종의 격세지감을 느끼기도 했다. 정말 영원한 팬심이란 없는 모양이다.

한 인간이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은 피라미드 꼭대기의 돌이 없어지는 게 아니라, 밑변의 돌 한 개가 없어지는 거로구나 하는 - 439p

요즘 세상엔 소중한 사람이 없는 인간이 너무 많아. 소중한 사람이 없는 인간은 뭐든 할 수 있다고 믿어버리지. 자기에겐 잃을 게 없으니까 자기가 강해진 걸로 착각하거든. 그래서 자기 자신이 여유 있는 인간이라고 착각하고 뭔가를 잃거나 욕심내거나 일희일우하는 인간을 바보 취급하는 시선으로 바라보지. 안 그런가? 실은 그래선 안 되는데 말이야. - 44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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