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여행 떠나는 카페
곤도 후미에 지음, 윤선해 옮김 / 황소자리(Taurus) / 2023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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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코로나 시국 때 읽었으면 여행에 대한 이 작품의 사유와 낭만에 훨씬 깊게 빠져들었을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코로나가 있긴 했었나 싶을 만큼 해외여행을 가볍게 떠날 수 있게 됐고 그렇다 보니 이 책의 단편들도 가벼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이야기로 다가왔다.

 단편마다 소개되는 디저트의 레시피나 유래를 통해 주인공과 그 주변인들이 사건과 갈등을 해결하는 것이 이 작품집의 주요 골자인데, 작가의 이전 작품들에 비해 깊이도 얕고 너무 초보적으로 이야기들이 진행되고 끝맺어져 상당히 허무했다. 수록된 작품 하나하나가 너무 분량이 적거니와 이야기의 초점을 카페와 디저트에 맞춘 탓에 스케일에 한계가 있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스케일도 문제지만 주인공의 포지션이 애매하다는 것도 몰입을 저해시키는 큰 단점이었다. 주체적인 역할이 아닌 화자에 그치는 정도인데 패턴이 똑같고 주인공의 과거사나 캐릭터성, 주변인들과의 캐미가 지나치게 평범함을 지향하는 것 같은 느낌이라 오히려 몰입의 여지가 적었다. 탐정역을 맡은 마도카도 마찬가지다. 수록작마다 비중이 들쑥날쑥하고 서서히 드러나는 과거사도 본격적으로 다뤄지려다 작품이 싱겁게 마무리돼서 이래저래 탐정역이라 말하기엔 애매한 캐릭터긴 하다.

 게다가 결말에서 드러나는 반전은 너무 뜬금없거니와 그 반전의 의미를 극대화하기 위해 스페인의 디저트 아로쓰 꼰 레쩨Arroz con leche가 동원된 것도, 그 반전을 서술하는 작가의 연출도 어딘지 유치해서... 2006년부터 모교인 오사카 예술대학 문예학과의 객원 부교수로 지내고 있다는데, 내가 그 학교 학생이면 교수님의 이러한 작품을 읽고 전과를 고민해보지 않았을까 싶다. 여담이지만 문예창작과 졸업생으로서 말하는데 이는 내가 실제로 학창 시절 숱하게 했던 고민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카페에 가는 걸 굉장히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작중 주인공과 카페 사장과의 우정에 대한 서술은 보기 좋았는데, 단골 손님과 카페 사장이라는 애매한 관계가 소설적으로 대단히 매력적으로 표현됐는지 의문이 든다. 매월 1일부터 9일까지 여행을 가서 그 여행지의 디저트를 가게에 선보인다는 컨셉은 대단히 마음에 들어서 그런 카페가 실제로도 있으면 좋겠단 생각은 했지만, 열 편의 수록작 내내 그 컨셉이 서사적으로 훌륭하게 작용하기보단 단지 세계 디저트를 소개하기 위한 일종의 설정 정도로만 기능해서 독자 입장에서 낭만 그 이상의 감탄을 느끼진 못했던 것 같다. 정말이지, 열거하면 열거할수록 아쉬움만 가득한 작품이다.

 곤도 후미에는 한때 가장 좋아하는 작가 중 한 명이었다. 당연히 <새크리파이스>의 덕이 크다고 볼 수 있는데 이젠 그 정도 작품을 기대하는 건 너무 큰 욕심인 걸까? 최근 작가의 가벼운 분위기의 작품 위주로 읽은 것 같은데 찾아보니 무거운 분위기의 작품도 몇 편 출간됐더라. 그 작품들도 읽어봐야겠다. 작가 이름만 믿고 펼쳤다가 낭패인 작품일 순 있지만 그것도 결국 펼쳐봐야 알게 될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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