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 속의 소녀들
톰 롭 스미스 지음, 박산호 옮김 / 노블마인 / 2014년 11월
평점 :
절판


7.5






 내 개인적으로 올 해 읽은 소설 중에, 그야말로 '발견'에 가까운 놀라운 작품이 몇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톰 롭 스미스의 데뷔작인 <차일드44>다. 단순히 작품 내적으로뿐만 아니라 외적인, 이를 테면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라든가 소설 집필에 아주 유용한 팁을 얻는 등 많은 도움을 받은 작품이었다. 정말 좋은 작품이었고 그래서 그 작품을 미처 다 읽기도 전에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이 책이 있는 걸 보고 주저 않고 샀다. 난 본래 책을 사는 건 좀 신중히 하는 편인데 그때는 신중하고 자시고도 없었다.

 책을 신중히 사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다. 일단 사고 싶다고 다 살 수 있을 만큼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편도 아니고 - 내 부모님은 책을 소비하는 걸 전혀 아깝다고 여기시지 않지만 정작 나는... - 산 책을 놓을 자리도 부족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놓고 읽지 않아 읽어야 될 책들이 많아서 무분별한 소비를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이렇게 까다롭게 구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난 모든 책에 반드시 사서 읽을 만한 가치가 없다는 강한 확신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책마다 완성도가 천차만별이니 나의 이 확신을 무를 생각은 들지 않는다. 오히려 더더욱 확신이 강해지기만 할 뿐. 작가가 같은 경우에도 그러는데 뭘.


 이 작품은 <차일드44>에서 내가 겪은 그 모든 것이 결여된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글쎄, 이 작품을 먼저 접했으면 혹시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가정은 무의미하다. 적어도 이 작품이 나에겐 재미없었다는 것만이 중요하다.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 질문을 성인 버전으로 푼 잔혹 동화다. 사실 저 질문은 매우 유치하지만 이 작품에선 결코 그렇지 않다. 정신병원에 들어갈 만큼 엄마가 미쳐버렸다고 전화한 아빠, 이 모든 게 아빠의 모함이며 자신은 미치지 않았다는 엄마의 전화. 주인공의 멘탈 붕괴를 시작으로 이 작품은 주인공의 엄마의 호소로 장기간에 걸쳐 이야기를 쏟아낸다. 엄마가 말하는, 이방인인 자신이 겪어야 했던 그 모든 역경을 얼마나 믿을 수 있느냐가 관건인 이 작품은 가족간의 신뢰와 붕괴를 시사하는 부분에선 인상적이긴 했다. 하지만 소설로선 몰입도가 좋았냐고 물으면 '글쎄, 그건 좀 좀 아니올시다' 였다.


 <차일드44>가 실제 역사적 사실을 재구성한 소설이면 이 작품은 좀 더 자전적인, 그러니까 작가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소설이다. 그래서 더 절절하게 느껴지는 부분은 있는데 이번엔 너무 단순하게 접근했다. 치밀하게 구성 하에 썼다기 보단 실제 자신이 격은 일에 살만 적당히 추가한 느낌에 지나지 않는다. 스웨덴에서 벌어지는 일은 그래도 나름 독특한 맛이 있긴 하지만 과거 회상식의 이야기가 맞지 않으면 상대적으로 집중이 안 될 수가 있다. 예를 들면 나같은 사람이 그렇다. 이야기 구성상 어쩔 수 없긴 했지만 그래도 현재의 사건이 더욱 집중이 가는 나로선 과거를 이야기하는 것만이 극중의 긴장감을 낳게 되는 단조로운 구성은 시시하기만 했다.

 그래서 작품에 대한 감상은 중반을 넘어서기 전부터 대부분 이끌어졌는데 아직도 페이지는 많이 남아서 읽느라 지칠 수밖에 없었다. 후반부와 결말에서 느낌있는 무언가가 시도됐지만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한 것이라서 특별히 기억에 남거나 하진 않았다.

 이거 아무래도 '차일드44' 연작의 후속작을 읽던가 해야겠다. 너무 기대를 했는지 이 작품은 지루하게 읽혀버렸네.

어쩌면 넌 한 번도 이 진실을 제대로 인시갛지 못했는지 모르겠지만, 누군가에게 욕망의 대상이 된다는 건 위험한 거야. 사람의 정신을 사란하게 하고, 집착하고 설레게 만드는 대상이 된다는 거 말이다. 그것보다 더 위험한 건 없어. - 104~10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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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탄생 진구 시리즈 3
도진기 지음 / 시공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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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장중한 제목에 비해 3류 드라마 같은 소재를 들고 온 도진기의 신작.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유산 상속을 둘러싼 싸움을 읽고 있자니 이게 정말 도진기 작가님의 작품인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좀 지루했고 중심이 되는 사건 없이 떡밥만 계속 던지니까 몰입감이 꽤 떨어지긴 했다.

 어둠의 변호사 고진말고도 도진기 작가님은 진구라는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캐릭터를 선보였었다. 옛날에 진구가 활약하는 작품을 재밌게 읽어서 신작이 언제 나오나 궁금했는데 이렇게라도 읽으니 반가웠다. 그런데 생각보다 흡입력이 떨어져서 실망스러웠는데 중반부부터 도진기 작가님의 실력이 발휘됐다. 아, 참고로 진구만이 아니라 고진도 등장하는데 생각보다 활약은 적지만 그래도 비중은 남다르다.


 도진기 작가님은 놀랍게도 현직 판사시다. 판사 업무를 처리하는 것도 바쁠 텐데 추리소설을, 그것도 멋들어진 추리소설도 쓰신다는 것이다. 어쨌든 정말 대단하기 그지없는데 한편으론 판사면서도 은근히 법 이야기를 잘 다루지 않고 본격 추리소설만 쓰셔서 약간 아쉬운 감도 없지않아 있었다. 직업적 특성을 작품 속에 녹이면 대단한 작품이 될 것 같은데 말이다.

 그런 나의 바람을 거의 완벽하게 이뤄준 게 바로 이번 작품이었다. 순전히 돈으로만 연결된 이 막장 가족을 법이라는 이름으로 단죄하는 통쾌한 작품이었다. 솔직히 초중반부가 너무 통속적이고 묘사도 세련되지 못해서 슬슬 바닥이 드러난 게 아닌가 싶을 만큼 걱정도 들었는데 그건 정말 기우였다. 모든 부분에서 재밌을 순 없지만 어쨌든 후반부에서는 실망감을 잘 만회해준다. 분량만 어떻게 좀 줄였으면 좀 더 괜찮을 법도 했는데 말이야.


 뜬금없긴 했어도 <정신자살>에서 모두를 충격과 공포에 빠뜨린 이탁오 박사가 다시 등장한다. 법의 허점을 돌파한 말도 안 되는 범죄를 진구가 깨뜨리는데 이후에 진구, 이탁오, 그리고 고진 변호사가 어떤 식으로 조우할지 정말 기대된다.

돈만 있다면 굳이 행복해질 필요 있어? - 28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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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기억법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9.2





 치매에 걸린 연쇄살인마가 주인공이라. 그 설정만 들었을 때는 자못 독특했다. 김영하의 작품이고 게다가 설경구와 설현 주연의 영화로도 제작됐다니 더욱 읽고 싶어졌다.

 김영하란 이름은 아직 내게 그렇게까지 익숙한 이름은 아니다. 군대에서 전역하기 직전에 그의 작품 <퀴즈쇼>와 전역한 직후에 데뷔작인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를 읽어본 게 다다. 나이는 분명 우리 엄마랑 동갑인데 작품 내용은 적어도 한국 문단에는 파문이 일 만큼 신선하고 공감이 가능한 것들로 이뤄져서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난다.

 이번에 읽은 김영하의 이 작품은 독특해 보이는 소재치곤 꽤 보편적인 이야기를 선보인다. 독특하면서도 재밌는 필력이 가세해 이 보편성을 잘 가려줬다. 짤막 짤막하게 이어지는 주인공의 심리 묘사는 개인적으로 <가위남>에 등장하는 가위남에 비견될 만큼 매력적이었다.


 분명 매력적이긴 해도 상술했듯 이 작품은 보편성이, 그러니까 어딘지 식상한 전개 또한 갖추고 있었다. 연쇄살인마가 자신의 딸이 또다른 살인마에게 살해당하는 걸 알츠하이머도 불사르고 막겠다는 이야기는 그렇게 낯선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솔직히 중반부 이후부터는 못내 지루해졌고 점점 시큰둥해지기까지 했었다.

 그런데... 충분히 예상할 수도 있었는데도 끝내 반전에 의해 충격을 받고야 말았다. 정말 충분히 예상할 법도 했는데 교묘히 오독을 유도해서(통상적인 의미의 서술 트릭은 아니다) 이끌어낸 결말이 정말로 절망적이었다. 우리에겐 수많은 종류의 절망이 있지만 이런 종류의 절망이야말로 그 무엇보다도 치명적인 게 아닐까 싶었다. 제 3자인 내가 느끼기에도 이 정돈데 당사자는 어떨까? 그 생각만 하면 잠시 동안이라도 정말 가슴이 무너지는 심정이 어떤 것인지 체감할 수 있다.


 끝에 해설에서는 다음과 같은 얘기가 나온다. '이 책의 소중한 글'에 내가 가장 마지막에 옮긴 대목이 그것이다. 성숙한 '남성'으로 압축해서 풀어내는 건 좀 거슬렸지만 어쨌든 내용만으로 따졌을 땐 참으로 와 닿는 이야기다. 여기서 첨언을 하자면 이 무기력한 퇴물이 어떻게 주저하고 마는지를 실감나고 느낌 있게 포착한 작품이 바로 <살인자의 기억법>일 것이다. 영화가 이를 어떻게 표현해낼지 궁금하다. 설현이의 연기도 개인적으로 궁금하고. ...영화화 되는 거 맞는 거지?

살인은 시라기보다 산문에 가깝다. 해보면, 누구나 알 수 있다. 살인은 생각보다 번다하고 구질구질한 작업이다. - 8~9p




아무도 읽지 않는 시를 쓰는 마음과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살인을 저지르는 마음이 다르지 않다. - 38p




세상의 모든 전문가는 내가 모르는 분야에 대해 말할 때까지만 전문가로 보인다. - 42p




인간을 틀 몇 개로 재단하면서 평생을 사는 바보들이 있다. 편리하기는 하겠지만 좀 위험하다. 자신들의 그 앙상한 틀에 들어가지 않는 나 같은 인간은 가늠조차 못 할 테니까. - 51p




어리숙한 남자들만이 혼자서 심각한 체하다가 미끼에 속아서 뭔가를 잔뜩 기대하며 부풀어놓고는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고 화를 내며 인생을 저주하다가 얼마 안 가 다시 미끼를 문다. 그런 자들은 이런 일들이 반복되는 사이에 무기력한 퇴물로 늙어간다. 성숙한 남성이 보기에, 인생은 어떤 심오한 계획도 감추고 있지 않고 어떤 믿음직한 약속도 해주지 않는다. 인생은 우리에게 그저 섬뜩하거나 짓궂은 농담을 던질 뿐이다. 인생은 농담을 던지고, 남자는 웃음으로 응수한다. 순수하게 유쾌하지만은 않은 그 웃음을 웃을 수 있는 자가 성숙한 남성이다. - 16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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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이, 대디, 플라이 더 좀비스 시리즈
가네시로 카즈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북폴리오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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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8.4





 법이란 것은 언뜻 보면 합리적으로 만들어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법이란 것은 사람의 본성을 억누르는 일면이 있어 때때로 지나치게 불합리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특히 인간의 복수심이라는 실로 보편적이고 자연스런 감정을 전면 부인하니 그렇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서 법이 당사자보다 마땅히 더 잘 복수해주는 것도 아닌데. 그런 불합리함이야말로 법치사회가 어쩔 수 없이 안고 가야 하는 맹점일 수는 있지만 어쩔 수 없다는 말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경우도 있는 법이다.

 추리소설을 읽으면 이처럼 복수심에 불타는 주인공이 자주 등장한다. 그러다 보니 진정으로 '통쾌한 복수'가 우리 삶에서 실현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 자연스레 떠오른 것 같다. 누가 봐도 '이거다!' 싶은 그런 복수가 과연 있을 수 있을까?


 이 책은 추리소설은 아니다. <GO>와 <레벌루션No.3>으로 유명한 가네시로 가즈키의 '더 좀비스' 시리즈 중 한 작품이다. 일본과 우리나라에서도 영화화된 것으로 유명한 이 원작 소설은 그야말로 복수를 통한 한 아버지의 성장담을 그리고 있다. 복수를 통해 성장하다니, 별 깡패가 다 있다며 질색할 수도 있지만 막상 들여다 보면 이보다 더 처절할 수 없는, 그래서 가네시로 가즈키랑 안 어울려 보이는 그런 이야기였다.

 그림으로 그린 듯한 평범한 샐러리맨인 스즈키. 유일한 자랑이자 삶의 재미는 자신의 딸의 미모다. 길거리 캐스팅을 당할 만큼 어여쁜 외모는 아버지로서 자부심을 갖게 만들었다(외모지상주의적이거나 부덕한 느낌은 결코 아니다). 그런데 그 딸이 어느 날 고등학생 남자애한테 뚜들겨 맞아 만신창이가 된 채 입원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스즈키는 유일한 자부심과 그 이상을 잃고 말았다. 단순히 딸의 외모를 넘어서 부모로서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다는 극심한 자괴감에 빠지고 만 것이다.


 딸은 물론이고 자신의 모든 것을 뭉개버린 남자, 이시하라는 고등학생 권투 챔피언으로 모교 측에서는 곧 있을 중요한 권투 시합 때문에 이런 '불미스런 사건'을 무마하려고 든다. 학교의, 자신들의 명예를 위해 자신의 딸의 아픔을 패대기친 것이다. 이에 분노해 복수하고자 한 스즈키는 부엌 칼을 들고 이시하라의 학교를 찾아간다. 하지만 하필 학교를 잘못 찾아가게 되는데...

 잘못 찾아간 학교에서 '더 좀비스'라는 기묘한 팀원으로 이뤄진 특이한 그룹을 만났다. <레벌루션No.3>에서 유쾌하게 일탈을 선보인 그들은 기구한 사연을 가진 스즈키의 감정에 동조해 마치 원래부터 계획하기라도 한 듯 일사천리로 복수의 장을 마련한다. 이시하라와 권투 시합을 펼칠 수 있는 링을 '더 좀비스' 멤버들이 마련하는 동안 스즈키는 재일 교포인 박순신의 트레이닝을 받는다. 이시하라를 제대로 갈겨주기 위해.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이것이야말로 복수의 미덕임을 새삼 느꼈다. 이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법이 필요한 것도 납득이 갔고. 가령 권투 선수가 그 주먹으로 누군가를 때려눕혔으면 똑같이 주먹으로 갚으면 되는 것이다. 칼을 들고 가지 말고. 물론 칼로 찔러도 상관없지만 그건 너무 쉽고 비겁하고 무엇보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통쾌함을 느낄 수 없을 것이다. 범죄자가 될 뿐더러 상대방을 간단히 무릎 꿇리는 것이다. 공포도 뉘우침도 자존심을 뭉개는 과정도 없이 너무나 빨리, 성의 없게. 복수란 그래선 안 되는 것이다. 그렇게 복수해봤자 얼마나 통쾌하겠는가.

 인간의 복수심은 언제나 긍정하고 지지하지만 적절한 수준의 복수 방법은 모르겠어서 어딘가 답답한 지경이었는데 가네시로 가즈키가 그를 특유의 필치로 풀어내서 묵은 체증이 풀린 기분이었다. 한편으론 복수 하나마저도 허투루 준비해선 안 되고 시간과 공을 들여 이룩해야 한다는 자세, 나아가 삶에 충실하고 노력하고자 하는 자세를 배울 수 있어서 개인적으로 무척 기분 좋은 소설이었다(너무 거창한 게 아닌가 싶겠지만 때론 거창하게 해석해야만 하는 이야기도 있다고 생각한다).


 짧고 강렬한 작품이었다. 작가의 대표작에 약간 못 미치는 느낌은 들지만 그래도 꽤 재밌게 읽었다. 다른 '더 좀비스' 시리즈도 접해봐야겠다.

이상이 없는 놈은 금방 잘못을 범하고 말아. 그리고 안이한 방법을 선택하지. 칼을 들거나. - 68p




자신의 상상력을 믿을 수 없으면 싸우지 않는 게 좋아. 아저씨는 죽을 때까지 누군가의 상상에 꼭두각시처럼 춤을 추며 살아가면 그만이야. - 18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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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메레르 6 - 큰바다뱀들의 땅
나오미 노빅 지음, 공보경 옮김 / 노블마인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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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이 시리즈도 어느덧 6권째로 접어들었다. 나폴레옹 전쟁이라는 거대한 사건이 완결되고 이제 남은 것은 로렌스와 테메레르의 처분이었다. 반란 아닌 반란을 저지른 둘은 호주로 유배되는데 다시금 새로운 땅에서 모험이 펼쳐질 것을 지난 5권에서 예고했다. 그리고 예고대로 호주에서의 활극을 담은 이번 편은, 이젠 슬슬 그만둘 때가 됐지 않나 싶은 부정적인 생각을 들게 만들었다. 정작 작가는 9권까지 이어지는 새로운 이야기의 장을 열고 말았지만.

 용을 실존하는 동물로 가정한 이 가상 역사극은 작가의 실감나면서도 비범한 상상력의 세계관으로 하여금 독자들을 매혹시켰지만 슬슬 약발이 떨어지지 않았나 싶었다. 작품을 내는 주기도 너무 길고(피터 잭슨은 영화화한다고 해놓고 '호빗'이 끝난지 언제인데 소식이 안 들리니... 영화화되면 제대로 주목받을 텐데) 이야기 자체도 질질 끄는 감이 있기 때문이다. 세계관 확장에 치중하느라 정작 주력해야 할 이야기 전개가 밋밋하면 본말 전도 아닌가. 그렇게 심할 정도는 아니지만 대충 읽어도 맥락을 파악할 수 있는 글이라니... 1, 2권을 열광하며 읽은 나로선 정말 안타까운 변화가 아닐 수 없다.


 호주에서의 사건은 실제 호주의 독립 역사를 기반으로 했겠지만 작품의 이야기는 대부분 역사의 줄기 바깥에서 진행된다. 그 강대한 호주의 사막에서 펼쳐지는 모험은 이전처럼 볼거릴 제공해줬지만 몰입도에 있어서 이전보다 달리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명확하게 근거를 대기엔 좀 애매하긴 한데 단순히 약발이 떨어졌다는 식으로 설명되지는 않을 듯싶다. 여전히 흥미로운 세계관이고 로렌스와 테메레르의 행보도 기대됨에도 불구하고 그 과정이 긴박감이 떨어지는 것 같다.

 이렇게 말하면 좀 가슴 아프긴 하지만 전쟁이 끝나니 다소 쉬어가는 느낌의 이야기였던 것 같다. 전쟁이 끝나 평화(일시적이긴 해도)를 찾은 둘한테는 청천벽력같은 얘기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둘은 이번 권 말미에서 택한 어떤 선택으로 인해 또 다음 권에 대한 기대를 높였는데 이게 바로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인연이구나 싶었다.

 이야기는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1권에서의 모습에서 상당히 달라진 로렌스의 과단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시리즈가 시들한 감이 없지 않은데 그래도 여전히 다음이 궁금하긴 하다. 7권도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발견해 미리 사놨으니 조만간 읽어야겠다.

어떤 반대의견에 부딪치더라도 다른 이에게 베푸는 자비로움의 가치를 의심하지 마. - 33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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