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이, 대디, 플라이 더 좀비스 시리즈
가네시로 카즈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북폴리오 / 2006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8.4





 법이란 것은 언뜻 보면 합리적으로 만들어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법이란 것은 사람의 본성을 억누르는 일면이 있어 때때로 지나치게 불합리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특히 인간의 복수심이라는 실로 보편적이고 자연스런 감정을 전면 부인하니 그렇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서 법이 당사자보다 마땅히 더 잘 복수해주는 것도 아닌데. 그런 불합리함이야말로 법치사회가 어쩔 수 없이 안고 가야 하는 맹점일 수는 있지만 어쩔 수 없다는 말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경우도 있는 법이다.

 추리소설을 읽으면 이처럼 복수심에 불타는 주인공이 자주 등장한다. 그러다 보니 진정으로 '통쾌한 복수'가 우리 삶에서 실현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 자연스레 떠오른 것 같다. 누가 봐도 '이거다!' 싶은 그런 복수가 과연 있을 수 있을까?


 이 책은 추리소설은 아니다. <GO>와 <레벌루션No.3>으로 유명한 가네시로 가즈키의 '더 좀비스' 시리즈 중 한 작품이다. 일본과 우리나라에서도 영화화된 것으로 유명한 이 원작 소설은 그야말로 복수를 통한 한 아버지의 성장담을 그리고 있다. 복수를 통해 성장하다니, 별 깡패가 다 있다며 질색할 수도 있지만 막상 들여다 보면 이보다 더 처절할 수 없는, 그래서 가네시로 가즈키랑 안 어울려 보이는 그런 이야기였다.

 그림으로 그린 듯한 평범한 샐러리맨인 스즈키. 유일한 자랑이자 삶의 재미는 자신의 딸의 미모다. 길거리 캐스팅을 당할 만큼 어여쁜 외모는 아버지로서 자부심을 갖게 만들었다(외모지상주의적이거나 부덕한 느낌은 결코 아니다). 그런데 그 딸이 어느 날 고등학생 남자애한테 뚜들겨 맞아 만신창이가 된 채 입원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스즈키는 유일한 자부심과 그 이상을 잃고 말았다. 단순히 딸의 외모를 넘어서 부모로서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다는 극심한 자괴감에 빠지고 만 것이다.


 딸은 물론이고 자신의 모든 것을 뭉개버린 남자, 이시하라는 고등학생 권투 챔피언으로 모교 측에서는 곧 있을 중요한 권투 시합 때문에 이런 '불미스런 사건'을 무마하려고 든다. 학교의, 자신들의 명예를 위해 자신의 딸의 아픔을 패대기친 것이다. 이에 분노해 복수하고자 한 스즈키는 부엌 칼을 들고 이시하라의 학교를 찾아간다. 하지만 하필 학교를 잘못 찾아가게 되는데...

 잘못 찾아간 학교에서 '더 좀비스'라는 기묘한 팀원으로 이뤄진 특이한 그룹을 만났다. <레벌루션No.3>에서 유쾌하게 일탈을 선보인 그들은 기구한 사연을 가진 스즈키의 감정에 동조해 마치 원래부터 계획하기라도 한 듯 일사천리로 복수의 장을 마련한다. 이시하라와 권투 시합을 펼칠 수 있는 링을 '더 좀비스' 멤버들이 마련하는 동안 스즈키는 재일 교포인 박순신의 트레이닝을 받는다. 이시하라를 제대로 갈겨주기 위해.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이것이야말로 복수의 미덕임을 새삼 느꼈다. 이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법이 필요한 것도 납득이 갔고. 가령 권투 선수가 그 주먹으로 누군가를 때려눕혔으면 똑같이 주먹으로 갚으면 되는 것이다. 칼을 들고 가지 말고. 물론 칼로 찔러도 상관없지만 그건 너무 쉽고 비겁하고 무엇보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통쾌함을 느낄 수 없을 것이다. 범죄자가 될 뿐더러 상대방을 간단히 무릎 꿇리는 것이다. 공포도 뉘우침도 자존심을 뭉개는 과정도 없이 너무나 빨리, 성의 없게. 복수란 그래선 안 되는 것이다. 그렇게 복수해봤자 얼마나 통쾌하겠는가.

 인간의 복수심은 언제나 긍정하고 지지하지만 적절한 수준의 복수 방법은 모르겠어서 어딘가 답답한 지경이었는데 가네시로 가즈키가 그를 특유의 필치로 풀어내서 묵은 체증이 풀린 기분이었다. 한편으론 복수 하나마저도 허투루 준비해선 안 되고 시간과 공을 들여 이룩해야 한다는 자세, 나아가 삶에 충실하고 노력하고자 하는 자세를 배울 수 있어서 개인적으로 무척 기분 좋은 소설이었다(너무 거창한 게 아닌가 싶겠지만 때론 거창하게 해석해야만 하는 이야기도 있다고 생각한다).


 짧고 강렬한 작품이었다. 작가의 대표작에 약간 못 미치는 느낌은 들지만 그래도 꽤 재밌게 읽었다. 다른 '더 좀비스' 시리즈도 접해봐야겠다.

이상이 없는 놈은 금방 잘못을 범하고 말아. 그리고 안이한 방법을 선택하지. 칼을 들거나. - 68p




자신의 상상력을 믿을 수 없으면 싸우지 않는 게 좋아. 아저씨는 죽을 때까지 누군가의 상상에 꼭두각시처럼 춤을 추며 살아가면 그만이야. - 18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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