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과학> 파트의 주목 신간을 본 페이퍼에 먼 댓글로 달아주세요.
#1. 고민의 흔적
7월의 추천 페이퍼를 쓰려고 하는데 아래의 댓글이 퍼뜩 떠올랐다. 잊고 있었는데 나도 참 뒤끝 작렬이다.
아래의 댓글을 보면 내가 추천한 책이 다른 분이 추천한 책보다 수준이 낮다는 것을 뜻함을 알 수 있다. 소위말해 자신처럼 수준 높은 사람이 택하는 책과 내가 추천하는 책이 질적으로 다르다는 뜻과 같다. 지난 달 <인지 자본주의>가 버거워 걱정을 하고 있던 차에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이웃님 방에서 맞장구좀 쳤다가 (내가 생각하는)평가단 책을 추천하는 과정상의 문제점이 공론화 되면서 어떤 분이 이렇게 답을 단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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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사람님이 선정하신 책과 내용물을 살펴본 결과, 한사람님은 그저 자기 수준보다 어려운 책이 온다고 불평하고 있을 뿐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이런 엉뚱한 댓글을 달면서 '미션오류' 같은 퇴행적인 발언을 할 것이 아니라, 신간평가단을 탈퇴하시는게 맞지 않은가요? 고생하시길. - 예전 평가단이라는 어느 익명의 알라디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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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나는 내가 추천한 책이 선정되지 않아 자기 논리를 만들어 투정부리는 사람이 되었는데 투정을 부린 건 사실이므로 부끄럽지 않으나 계속해서 책을 추천하는 페이퍼를 써야 하는 입장이므로 그냥 무시하자니 목에 가시가 걸린 것처럼 마음이 편치가 않다. 내가 택한 책이 곧 나의 수준을 말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평가단이 있다는 사실이 나로선 위축되는 것이 사실이다. 소설쪽 페이퍼 쓸 땐 어떤 책이 선정되어도 상관이 없었기에 거의 다른 분들을 따라하는 쪽이었다. 마음의 부담도 없었고 또 내가 생각하지 않는 책이 선정되어도 걱정이 되거나 실망이 되지 않았다. (소설분야를 폄하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소설도 분명 어려운 소설이 있다. 그러나 소설은 다분히 취향의 문제이기 때문에 이해 못한다고 해서 수준낮다고 비난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런데 이번엔 내가 문제제기를 한 쪽이라 또 누군가는 나를 주목하고 있을 거라는 소심한 생각이 드는 것이다. 나도 일단은 남들 보기 멋있고 근사하라고(?) 위화감 조성차원에서 부러 어려워 보이는 책위주로 페이퍼를 쓸 수는 있으나 그건 옳지도 아름답지도 못한 대응일 뿐일 터이다.
여기서 한가지 밝혀둘 것은 어려운 책을 읽어낸 것과 어려운 글을 쓰는 것과는 다른 문제임을 짚고 넘어가고 싶다. 극단적으로 말해 서평은 책을 안 읽고도 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서평 마감 시간 때문에 책을 다 못읽고도 얼추 때려잡아 소설 완성하는 경우 단 한번도 없었다고 말할 사람 누구인가) 그건 내가 주로 긴 서평을 쓰고 있고 (기록차원에서)책의 컨텐츠를 부러 꼼꼼하게 파헤치는 쪽이라 누구보다 떳떳하게 말할 수 있다. 속된 말로 대충 넘겨보고서도 어느 정도 필력과 기존 독서량이 있는 사람은 언뜻 보기에 잘된 글의 서평을 쓸 수가 있다는 말씀이다. 즉, 서평을 잘 썼다고 해서 그 사람이 꼭 그 책을 꼼꼼히 읽었고, 완벽하게 이해했고, 또 감동까지 받은 것과는 별개의 문제임을 서로들 인지하자.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혹시나 나같이 남들 의식하는 평가단이 서평의 의무와는 상관없이도 (복합적인 이유로)어려워 보이는 책을 추천할 가능성이 있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이다. 읽기도 좋고 쓰기도 좋고 평가하기도 무난한 책이면 모두가 해피하겠지만 여러번 작업도 반복해보니 이젠 책받으면 절로 견적이 나온다. 이 책은 읽기는 수월하나 쓰기는 만만치 않은 책. 이건 읽기는 쉬워도 평쓰기가 난감한 책. 읽는 건 고충이었으나 보람과 감동으로 서평을 써내고 싶은 책. 뭐 이건 대략 읽기도 쓰기도 감히 토달기도 어려운 책 등등.
위의 같은 평가단 익명자는 당연히 화제가 되는 책이 궁금하고 그 책을 읽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라 말씀 하셨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우리 모두가 신정아, 고현정 에세이를 추천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래서 이번엔 (수준낮은)내 기준에서 여러 기준으로 범위를 확대해보기로 했다. 이른바 객관성의 확보가 중요다하는 생각이다. 물론 이것도 내 성향이 반영된 결과이며 궁극적으로는 내가 읽고 싶은 범위에 국한 되겠지만 어떻든 운영측에까지 투정을 부린 입장이므로 내 스스로 기준을 좀 엄격히 하고 싶다는 바램이다. 이 모든 건 내가 인문학적 소양이 부족해서 벌어진 상황임을 인식하고 앞으로 나부터 추천에 신중함, 객관성, 공신력, 다양성, 형평성 등을 고려해 페이퍼를 작성하겠다.(그러자니 죽을 맛이다) 혹시라도 내 페이퍼로 마음이 상하는 평가단 분들은 없기를 바란다. 나도 남의 글을 스쳐지나가는 입장에서는 콕 집어 나라고 하진 않았지만 괜한 자격지심에 흠칫거릴 경우가 있었다. 내가 예로 든 것은 당신과 나는 아닐 수 있으나 우리 모두일 수는 있는 일 아닐까. 나는 평가단이 무슨 벼슬인 마냥 꽤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기에 이런 나를 웃기다고 해도 할 수 없다.
#2. 고민의 결과
1. 이것이 문화비평이다. / 이택광 / 자음과 모음 ................ (사회과학>문화이론)
이 책은 보기 드문 비평 에세이다. 무엇보다 표지에 끌렸다. 이 사진(손을 수리하는 손, 샤인 윌리스)은 <인지 자본주의>에도 실린 사진으로 인지가 인간의 몸뿐만 아니라 기계와도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하는 사진이라 하였다. 내용은 기억나지 않아도 이 사진은 기억나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이 책에는 2004년 부터 2010년 까지 한국사회에 벌어진 일들을 통해 우리 사회 문화구조를 다각도로 분석하는 심도높은 문화비평이 가득하다. 이 책을 통해 벤야민과 유영철과 신세경의 관계도를 한국적으로 그려볼 수 있으리란 기대를 갖게한다. 사실 문화란 말처럼 언제 어디서나 에두를 수 있고 쉽고 편하게 통속적인 장르적 언어도 없다.
그러나 우리는 일분 일초가 멀다하고 대중문화를 실시간으로 소비하고 있는 문화시민들이고 언제 어디서나 아무런 근거없이 우리끼리의 잣대로 대중문화를 비판, 추종, 수용하고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 책은 문화현상을 어떻게 제대로 비판하는 것인지를 친절히 가르쳐주는 실용성을 미덕으로 갖춘 듯하다. 저자는 한국사회의 문화비평이 곧 정치적 사유와 연결되었음을 주장한다. 대중문화야 말로 정치를 위해 발명된 하위구조이기 때문이다. 지금 시점에서 문화와 정치의 상관관계를 분석하여 여론에 가치판단을 요구하는 것은 꽤 지적이고 흥미로운 선택이 아닐까.
http://wallflower.egloos.com/ 이택광 교수의 블로그에 가면 어제 날짜로 임재범 퍼포먼스를 비판한 진중권에 대한 평가가 있다.
"역시나 진중권이라는 '잠수함의 토끼'는 뭔가 숨이 막힌다 싶으면 경고음을 울리면서 '존재감'을 드러낸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나가수와 그에 이어지는 '폭풍감동'을 보면서 뒷맛이 떨떠름했던 이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진중권씨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 해준 격이니 도리어 시원했을 수도 있겠다."(2011. 6.30)
나는 이 문장을 보고 더욱 그가 궁금해졌다.
참고로 이 책은 자음과 모음에서 발간한 하이브리드 총서의 시리즈인 책이다. 그동안 지식인들에게 주목받았던 하이브리드 시리즈에 대한 소개를 첨부한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03181910515&code=900308
2. 아렌트 읽기 / 엘리자베스-영 브루엘 / 산책자.................... (인문학>현대철학)
내가 아는 한나 아렌트는 정치 철학자, 하이데거의 연인 정도에 불과하다. 한가지 더 있다면 자신은 상부에서 시키는 대로 업무를 수행했을 뿐이라는 유대인 대학살의 주범 아이히만에게 ‘무사유성’(thoughtlessness)의 혐의를 강력하게 추궁한 것인데 이는 주로 우리 사회에서도 조직과 나라를 앞세우며 민간인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공직자들을 논리적, 철학적으로 비판하는 근거로 많이 인용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나는 이 책이 출간되자 마자 로쟈님, 인문 MD를 비롯해 알려진 알라디너 분들이 강력하게 추천하던 것을 기억한다. 궁금하긴 했지만 내 수준에서 그들이 공통으로 추천하지 않았다면 감히 읽어볼 생각을 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많다. 하여 일찌감치 7월에 추천을 하리라 마음을 먹었던 책이기도 하다.
일반 독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장점은 이 책의 저자가 (제자로서) 아렌트의 사상을 세 단계로 나누어 설명하면서 아렌트의 핵심 저서를 대표화하고 있다는 것인데 바로 <전체주의의 기원>, <인간의 조건>, <정신의 삶>을 통해 그 사유의 흐름을 밀도높게 조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번에 한명의 철학자의 책을 여러 권을 읽기 힘든 현실이므로 이 책은 실속면에서도 꽤 알찬 구성인 것이다. 아마도 아렌트가 제시하는 사유의 렌즈를 통해 작금의 (상식과 정의가 사라진)시대를 바라보는 통찰력을 기르는데 유용한 팁을 제공하리라 믿는다.
아렌트가 말하는 전체주의는 ‘이데올로기와 테러에 기초한 신종 통치 형태’이며 20세기 중반의 전체주의 유산이 살아 있는 곳, 예를 들면 일본에서는 제국주의의 역사가 아직도 잘못 가르쳐지고 있다고 말한다.
종교적 이념의 영역 바깥에서 예를 하나 찾자면, 일본의 역사 교과서들은 한국의 잔혹한 식민화를 초래했던 일본의 1890년대 제국주의 역사를 부인한다. 동일한 역사 교과서들은 일본이 2차 세계대전 중에 중국 동북부를 점령하여 1000만 명가량으로 추정되는 민간인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사실을 누락하고 있다. -84p
그러나 추천에 비해서 네티즌들의 리뷰는 거의 없다시피 했는데 언론기사나 온라인 서점들의 소개보다는 출판사의 보도자료가 가장 잘 정리되 있었다. http://flaneurs.tistory.com/73
3. 우리는 왜 빠져드는가? / 폴 블룸 / 살림.............................. (인문학>심리학)
일단 이 책은 심리학의 하위분야에 속한다. 저자도 심리학자이고 부제가 '인간 행동의 숨겨진 비밀을 추적하는 쾌락의 심리학'이다. 심리학이 제목은 흥미로와도 뚜껑을 열면 난해하기로 대표적인 분야이다. 이 책도 직접적인 질문에 비해서 제시하는 답들은 상당히 본질을 추구하는 케이스라 쉽지는 않다는 견해가 주를 이룬다. 철학, 신경과학, 아동발달, 행동경제학을 동원해 사람이 몰입하는 쾌락을 분석한다고 하니 다양한 잣대가 등장할 터이다. 언제나 잣대가 중요하다.
저자는 음식, 예술, 섹스, 물건, 영화, 이야기, 과학, 종교까지 인간이 추구하고 몰입하는 쾌락에 대해 무엇이 사람의 마음을 이끌고 움직이는지 풍부한 실험을 제시하였다.
와인 연구는 자주 논란을 일으킨다. 한 종류의 와인에 상표를 다르게 붙이고 와인전문가를 비롯한 사람들의 맛 평가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알아볼 수 있다. 어느 연구에서는 똑같은 보르도 와인이지만 한쪽에는 최고급 와인을 의미하는 ‘그랑 크뤼 등급’을 붙이고 다른 하나에는 일반 와인을 의미하는 ‘뱅 드 따블’을 붙였다. 와인 전문가들 가운데 40명이 최고 등급이 붙은 와인을 좋은 와인이라고 평가하고 12명만 낮은 등급이 붙은 와인을 좋은 와인으로 평가했다. _82p
'본질주의'가 모든 원인의 답은 아니겠으나 사람의 심리를 대변하는 각종 '본질'에서부터 원인을 정리할 수는 있을 것 같다. 이 책을 추천한 언론은 꽤 많았는데 그중에 가장 성의있는 기사를 첨부한다.
http://books.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6/04/2011060400227.html?b_zinefr
4. 확신의 함정 / 금태섭 / 한겨례.................................... (사회과학>법과 생활)
이 책을 인문 MD가 자세히 소개할 때부터 눈여겨 보았다.
http://blog.aladin.co.kr/bookeditor/4880832
무엇보다 맘에 들었던 건 제목때문인데 성격상 하나의 정답을 고집하고 그것이 옳다고 확신하는 사람들과 많이 부딪혀왔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살면서 더욱 실감하는 것이지만 그 어떤 것도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만이 정답인 듯하다. 그런면에서 '누구나 틀릴 수 있다'는 저자의 지적은 좀 배웠다는 사람들에게 영원히 유효한 충고가 아닐까. 논쟁을 하다보면 어떻게든 자신의 오류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이차, 삼차 논리를 만들어 궤변을 늘어놓고는 상대를 몰아부치는 사람들이 있다. 법조인이라면 더더욱 누구보다 논리 만드는데 전공자들이므로 확신이라는 덫에 빠질 경우가 많을 듯하다. 이 책에는 저자가 검사시절 다루었던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자신이 빠질 수 있었던 딜레마를 마치 소설처럼 전개하는 문학적 구성력이 느껴진다.
조국교수와 소설가 공지영의 추천도 구태의연해 보이지 않았다.
금태섭 변호사는 내가 참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는 선입견에 사로잡히지 않고, 늘 겸손하다. 그러면서도 재치와 예리함을 잃지 않는다. 이 책도 그를 닮았다. 여러 입장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상황이 편견 없이 펼쳐진다. 그 속에서 쉽게 내린 결론이 얼마나 위험한지, 인간의 얼굴이 지워진 법과 정의란 얼마나 공허한지 흥미롭게 전한다. - 공지영
살인·강간·강도 등 중범죄는 사형집행, 형량상승, 거세 등으로 근절될 수 있는가, 체벌은 학생들을 바로잡을 수 있는가, 성매매는 금지되어야 하는가, 혼인의 충실은 형벌권을 사용하여 지켜져야 하는가, 문학과 예술의 표현에 형벌권을 통해 개입하고 통제하는 것은 정당한가, 테러범에게 절차적 권리가 보장되어야 하는가 등의 문제는 첨예한 사회적 논쟁사안이다. 검사 출신 변호사인 저자는 국내외의 사례와 문학작품을 소개하면서 이러한 난제를 풀 수 있는 실마리를 제시한다. ‘문학청년’의 기질과 소양을 가진 저자가 쓴 책이기에 술술 읽히고 흥미만점이다. -조국
5. 책의 미래 / 로버트 단턴 / 교보문고............................. (역사>문명/문화사)
마지막으로 요즘 전자책을 사용해 보면서 더욱 궁금해진 책이다. 사람들이 영화를 집에서 볼 수 있게 되고 극장이 아닌 곳에서도 볼 수 있다면 영화관에는 오는 사람이 줄어들 것이라 말했지만 세상은 영화관을 첨단의 멀티플렉스로 발전시키면서 시스템과 음향, 화질의 기회비용으로 화제를 돌려버렸다. 나같은 사람은 스마트 폰으로 조선일보 앱을 확인하는 것과는 별개로 꼭 야들야들한 신문 종이를 손가락으로 넘겨가며 아날로그적 하루를 시작하는 쪽에 속한다. 오랜 세월 형성해온 습관의 힘을 거스르기는 늦었다고 생각된다.
전자책을 두어개 다운 받아 보면서 느낀 것은 접속하지 않으면 어디에도 내 책은 없다는 물질적 소유감의 상실이었는데 책은 읽었다는 행위도 중요하지만 가졌다는 인식도 중요한 상품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활자가 아닌 화면상의 글은 이상하게도 나중에 잘 기억이 나지 않는 일회성의 속성으로 다가왔다. 이것은 화면상으로 확인한 뉴스에서도 비슷한 느낌이었는데 아무래도 세대간 매체 노출빈도에 의한 감성적 격차가 아닐까 싶다.
이 책의 저자는 하버드대 도서관장이다. 제시하는 견해는 기술의 변화를 통한 매체의 혁명이라기 보다는 주로 책의 보존과 영구출판, 라이브러리 환경에 대해 미래비전을 언급하고 있다. 아무래도 도서관장이니 그 많은 책들의 관리와 운영 및 처리가 중요한 화두였던 것이 아닐까. 관장님이 말하는 '책 없는 도서관'이란. 그리고 그를 통한 자아 발견이란.
‘전자책’은 인쇄된 코덱스와는 달리 피라미드 모양의 여러 단계로 배열되어 있다. 독자들은 텍스트를 다운로드 받을 수 있고 가장 높은 단계를 대충 훑을 수 있고 일반 논문처럼 읽을 수 있다. 그 텍스트가 마음에 들면, 인쇄해서 책으로 제본할 수 있고제본기는 컴퓨터와 프린터에 장착될 수 있다, 사용자 정의대로 단행본 형태로 간편하게 공부할 수 있다. 특별히 관심을 끄는 텍스트를 찾게 되면 아래 단계에 있는 추가적인 에세이나 색인을 클릭할 수 있다. 독자들은 책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갈 수 있다. 문서, 참고서적, 역사기록, 도해, 배경음악 등 내 주제를 완전히 이해하도록 내가 제공하는 모든 것들 속으로 샅샅이 계속 파고들 수 있다. 결국 독자들은 그 연구주제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 것이다. 연구주제를 통해 자신만의 길을 찾을 것이기 때문이다. 횡적으로, 종적으로 또는 대각선으로, 전자적 링크가 연결되어 있는 곳이면 어디나 클릭해서 읽을 것이다. -114p
로쟈님은 이 책을 소개하면서 http://blog.aladin.co.kr/mramor/4891190
'독서의 역사와 함께 책의 미래에 대해서 잠시 숙고해 보는 것도 독서가의 권리이자 의무일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어쩐지 이 책을 읽고 나면 더욱 종이책을 구입하게 되지 않을까.
그건 꼭 손바닥안에서 보는 동영상도 있어야 하지만 가끔 표끊어서 극장에서 보아야 할 영화가 있듯이
사람은 그때그때 다양한 욕망을 기 등장한 매체로부터 취할 것이기 때문이다.
어떻든 전자책의 등장으로 전체 도서 매출은 늘어났다고 하니 이는 출판계에 희소식임이 틀림없다.
미래는 그렇게 한 분야가 쇠락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공존하며 서로를 보완한 상태로 발전하는 패턴을 반복하게 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