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사르 1 - 5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5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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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콜린 매컬로가 돌아왔다. 지난 3년간 교유서가에서 꾸준하게 소개해온 매컬로의 <마스터스 오브 로마> 시리즈가 드디어 대망의 완간을 앞두게 되었다. 올해 안으로 완간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마리우스와 술라 같은 공화정 로마의 한 시기를 장식했던 인물들이 명멸해 왔고, 정복 보다 더 치열했던 내전을 거쳐 제정으로 가는 길목에 등장했던 위대한 장군이자 사랑꾼, 정치인 그리고 역사가였던 줄리어스 카이사르의 시대가 마침내 도래했다. 폼페이우스 마그누스와 장사꾼 크라수스와 더불어 루카 컨퍼런스로 삼두정치 시스템으로 미래의 제국을 삼분했던 카이사르는 자신이 맡은 갈리아 정복에 전념하는 중이었다. 갈리아 정복의 완성을 2년 앞둔 기원전 54년 두 번째 브리타니아 원정으로 위대한 팩션은 시작한다.

 

기존의 시리즈에서 원사료 부족 때문에 고생했다면 최소한 카이사르의 갈리아 정복 과정에서만큼은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카이사르가 직접 저술한 <갈리아 원정기>가 남아 있으니 말이다. 게다가 훌륭한 원사료에 후대의 2차 사료들까지 차고 넘치는 무슨 걱정이 필요할까. 아니다, 어쩌면 사료의 적음보다 많음이 더 문제가 아닐까. 부족한 부분은 작가의 문학적 상상력으로 창조된 부분으로 채워 넣으면 되지만, 방대한 사료의 바다에서 취사선택이야말로 더 어려운 문제라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인생의 역작인 <마스터스 오브 로마>의 저술을 위해 얼마나 자료들을 접했으면 저술을 마치고 시력을 잃게 되었을까.

 


카이사르는 뼛속까지 정치인이자 군인이었던 모양이다. 본국 이탈리아에서 멀리 떨어진 오늘의 영국인 브리타니아와 프랑스 벨기에를 아우르는 갈리아에서 있으면서도 본국에서 들려오는 소식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폼페이우스나 크라수스 같은 다른 유력자들보다 유독 자신에게 더 적대적인 키케로와 카토 같은 골수 공화주의자들의 동태 파악에 관한 정보도 빼놓지 않았다. 어쩌면 그들은 다른 삼두들보다 카이사르가 가진 야심이야말로 공화정 로마에 대한 최대 위협이라고 판단했던게 아닐까. 팩션에 나오는 “자신이 로마다”라는 표현보다 그가 앞으로 벌일 사업을 규정짓는 더 적합한 표현이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그를 추종하는 로마 군단의 병사들도 카이사르를 하나의 상징으로 인식하고 사령관과 함께라면 활활 타오르는 지옥불에라도 뛰어들 것 같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던가.

 

한편, 카이사르는 천재적 군사전략가답게 효율적인 군대 운영을 위해서라도 정보는 필수적 요소라는 사실을 파악하고, 정보 수집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게다가 군대 운용에 있어 절대적인 병참은 물론이고, 온통 적대적인 압도적 다수의 야만족에 포위될 것에 대비한 농성전에 필수적인 담수 확보와 부대의 위생 문제에도 지대한 관심을 기울였다. 무엇보다 자신이 개인위생과 청결에 전력했다고 저자는 멋지게 그리고 있다. 물론 소설적 상상에 입각해서 서술했겠지만.

 

공화정 로마를 지탱해온 시스템의 유효성이 다 했다고 판단한 카이사르는 일인자(독재자일 수도 있다)가 지배하는 새로운 제국 스타일의 통치 시스템을 구상하고 있었을까. 아마 그러기 위해서는 마리우스와 술라 시대에 이은 또 다른 내전이 필수적이라는 사실도 자각하고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황금에 눈이 먼 크라수스는 차치하고서라도 피케눔 출신의 자타가 공인하는 로마 일인자이자 자신의 사위였던 나이우스 폼페이우스 마그누스와의 대결은 필연일 수밖에 없었다. 자신과 폼페이우스를 혈연관계로 맺어주던 유일한 혈육 율리아가 출산 중에 사망하고, 자신의 정신적 지주였던 어머니 아우렐리아를 연달아 잃으면서 미래의 종신독재관은 깊은 내상을 깊은 것 같다. 하지만, 우리네 같은 범인(凡人)과 달리 카이사르는 짧은 애도기간을 마치고, 바로 본격적인 갈리아 원정에 나서게 된다.

 


첫 번째 도전자는 벨가이 에부로네스족 암비오릭스였다. 자신의 영토 내에 있던 아투아투카 요새에서 주둔 중인 사비누스와 코타의 13군단이 유력한 상대였다. 갈리아 전역이 봉기해서 그들 요새 역시 위협에 빠질 수 있다는 거짓 정보로 로마 군단을 유인해낸 암비오릭스는 수적 우세로 로마 군단을 전멸시켰다. 카이사르의 명령대로, 요새에서 월동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던 코타와 백인대장 고르곤의 어이없는 죽음 앞에 급보를 받고 달려온 사령관 카이사르는 한줄기 눈물을 흘린다. 기세가 오른 암비오릭스는 퀸투스 키케로가 이끄는 9군단을 불시에 습격해서 사비누스 군단을 전멸시킨 이간책을 다시 시도해 보지만, 키케로가 준비한 치밀한 농성전으로 구원군이 도착하면서 마침내 포위가 풀린다. 야만인에 가까운 부사령관 라비에누스는 신속하게 갈리아 반란군을 진압한다.

 


벨가이와 갈리아 전역에서 벌어진 전쟁은 본질은 라인강 너머 숲속에 사는 진짜 야만인 게르만족의 위협으로부터 갈리아 사람들을 지켜 주겠다는 로마인들과 협력하느냐 마냐의 문제였다. 카이사르가 이끄는 로마 군대의 강력한 전투력과 우수함에 수긍한 많은 갈리아인들이 팍스 로마나에 편입되었지만, 또 상대적으로 게르만족이나 로마나 다를 게 없다는 주장을 펴며 자신들만의 고유한 문화를 옹호하며 자유를 외치는 세력들도 상당수였다. 가중되는 게르만족의 위협으로부터 이탈리아 본토를 지키기 위해 완충지대 갈리아의 로마화야말로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인식을 하고 있던 카이사르에게 갈리아 정복은 필수불가결한 지상과제였다. 그는 분열하고 반목 중인 많은 갈리아 부족들을 각개격파하는 방식으로 유력한 부족들을 차례로 복속시켜 나가면서 우직하게 고모부 마리우스 이래 추진되어온 갈리아의 팍스 로마나를 밀어 붙였다. 갈리아에도 그런 카이사르의 의중을 꿰뚫어 본 지도자가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바로 아르베르니족 출신의 베르킹게토릭스였다.

 


아무래도 콜린 매컬로 작가의 소설적 창작으로 보이는 갈리아 공주 출신이라는 리안논의 사촌으로 소개된 베르킹게토릭스가 범갈리아 회의가 끝난 뒤, 카이사르의 사저에서 갈리아 사령관과 대면하는 장면은 <카이사르>에서 최고의 한 장면이다. 갈리아 부족 고유의 문화를 유지하겠다며 왕정이야말로 반드시 필요하다는 젊은 지도자 베르킹게토릭스와 실제로는 왕에 가까운 독재자의 지위를 원하면서도 로마 공화정 시스템이야말로 최고라고 주장하는 카이사르의 논쟁은 그야말로 당대 시대정신을 규정하는 거대 담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본격적인 무력 충돌을 앞둔 갈리아와 로마의 긴장이 최고조로 달하는 장면으로 일단 마무리하고, 다시 로마로 매컬로 작가는 무대를 옮긴다.

 

나이우스 폼페이우스 마그누스는 젊은 날의 기상을 잃은 대신, 노회한 정객으로 당시 로마 사회에 만연한 폭력적인 분위기를 일소할 독재관의 자리를 원한다. 하지만 원로원 내 보니파의 핵심인사들인 카토, 비불루스 그리고 아헤노바르부스 등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자리를 폼페이우스에게 내줄 생각이 전혀 없다. 한편 카이사르는 갈리아 정복의 마지막 단계를 위해 자신의 임페리움을 유지하면서, 부재 중 집정관 선출을 위한 공작을 개시한다. 보니 파들은 허영과 오만으로 가득한 폼페이우스보다 카이사르가 공화정 로마에 더 위협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고, 양자 간의 공수동맹을 와해시켜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의 대결을 위한 준비를 착착 진행시킨다.

 

다시 한 번 2천년 전, 갈리아의 완전한 로마화라는 웅대한 꿈을 가지고 갈리아 정복에 나선 시대의 지도자 카이사르를 완벽하게 고증해낸 콜린 매컬로 작가의 역량에 감탄했다. 일개 야만족 수장인 암비오릭스가 전투에 나서기에 앞서 일체의 장신구를 갖춘 모습에 대해서도 고증을 소홀히 하지 않고 투철한 사명감으로 거의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상세한 묘사를 하는 장면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로마와 이탈리아 전역이 운명공동체라는 사실을 정확하게 깨닫고, 시민권의 확대와 지중해를 석권한 거대한 제국으로 확장해 가는 과정에 태생적으로 보수적일 수밖에 없는 원로원 의원들을 설득해서 새로운 국가의 정체성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는 카이사르의 모습에서 시대를 초월한 국가지도자의 품격을 엿볼 수가 있었다. 이제 막 출범한 새로운 정부를 카이사르가 구상한 새로운 국가상에 견주어 보는 것이 과연 무리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약 고전의 반열에 오른 <마스터스 오브 로마> 시리즈가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들을 우리에게 던져주는 이유가 바로 그 점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비록 제국의 건설은 카이사르가 시작했지만, 완성은 양자 옥타비아누스가 하게 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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