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쇄 미정 - 말단 편집자의 하루하루
가와사키 쇼헤이 지음, 김연한 옮김 / 그리조아(GRIJOA)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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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북스에서 나온 출판물 <중쇄를 찍자>를 먼저 읽고 싶었는데 후발 주자인 <중쇄 미정>을 읽게 됐다. 연초 서적유통 업계의 송인서적 부도 사태로 도서유통을 의뢰했던 중소 출판사들이 큰 타격을 받았다는 뉴스를 들은 게 불과 얼마 되지 않은 느낌이다. 난마처럼 얽힌 출판업계의 관행 문제에서부터 시작해서, 무엇보다 이제는 더 이상 책을 가까이 하지 않는 세태로 출판계의 불황 행진은 단군 이래 계속 이어지고 있는 중이다.

 

그런 와중에도 책을 꾸역꾸역 읽는 동지들이 있는가 하면 활자 대신 모바일의 신세계에 빠져 책을 멀리 하는 이들도 있는 모양이다. <중쇄 미정>의 저자 가와사키 쇼헤이 씨는 일본 가상의 표류사라는 작은 출판사를 바탕으로 출판계를 다룬 멋진 스토리텔링을 보여준다.

 

마감에 쫓기는 편집자의 일상에서부터 시작해서, 오탈자 없는 책은 없다며 신출내기 편집자를 위로하는 편집장, 마작에 빠진 저자로부터 원고를 받아 내기 위해 마작판에 직접 뛰어 들어 손해를 만회하는 실력을 보여 주는 주인공의 모험담이 쉴 새 없이 전개된다. 역시 극화라는 점을 고려해 본다면, 재미도 있으면서 또 출판강국이라는 바다 건너 이웃 나라에서 소규모 출판사들이 거의 하루에 한 개씩 무너져 가는 현실에 대해서도 가감 없이 그대로 보여준다. 물론 수십만권씩 팔리는 베스트셀러를 취급하는 대형 출판사는 문제가 없겠지만, 권종을 늘리고 변덕스러운 독자들의 취향에 맞는 책을 만들기 위해 무엇보다 자신이 독자라는 입장에서 책을 만들고 싶다는 편집자들의 고군분투가 아주 실감나게 그려졌다는 점을 높이 평가하고 싶다.

 

편집자란 무엇일까? 가장 저렴한 비용의 문화생활을 위한 소재를 공급하기 위한 산업전사일까? 아니면 책의 창조자라고 할 수 있는 저자와 소비자인 독자를 연결하는 중매쟁이라고 해야 할까. <중쇄 미정>을 읽으면서 다양한 상상을 해보게 된다. 계속되는 출판계의 불황을 도서정가제 탓으로 돌리기도 하는 것 같은데 독서 및 출판강국 일본에서는 전면적인 형태의 도서정가제가 실시되고 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온라인 서점을 중심으로 해서 자행되고 있는 도서할인율 때문에 할인을 처음부터 고려한 거품이 책 가격에 형성된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가 없다. 책 가격이 비싸니 도서관이나 중고서점을 이용하게 되는 것도 사실이 아닌가. 사실 책 본연의 목적이 독서에 있다면 굳이 소장하지 않아도 읽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닐까? 물론 책이 가진 여러 가지 특성 중에 지질감이 느껴지는 물성과 소장에 도달하게 된다면 또다른 이야기가 되겠지만 말이다.

 

일본 출판계의 또다른 특징이라고 한다면, 두 개 정도의 도서유통사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책을 잘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책의 유통을 위해서는 책을 전국에 뿌릴 도서유통사의 마음에 드는 것도 무척이나 중요하다는 것이다. 하루키 같은 초대형 베스트셀러 작가의 경우는 다르겠지만, 군소출판사들 같은 경우는 열심히 만든 책 샘플을 가지고 심판의 날에 앞서 배급수량을 판정받는 게 향후 이어질 중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작은 출판사일수록 중쇄를 찍어야 돈을 더 벌 수 있다는 것 아닌가. 그만큼 책이 잘 팔린다는 말이겠지. 전국에 최소한 2,000명의 든든한 후원자들만 있다면 얼마든지 책을 만들겠다는 그들의 결기가 남다르게 들렸다. 어느 출판사 사장님은 예전에 술자리에서 전국 2,000개 도서관에서 납본할 수만 있다면 꼭 찍고 싶은 책이 있다고 말하셨지 아마.

 

기획회의에서 잘 팔릴 책을 만드는 게 중요하냐 아니면 편집자들이 만들고 싶은 책을 만드는 게 중요하냐는 논의를 보면서, 어쩌다 걸리는 베스트셀러 책을 발판으로 삼아 안 팔리지지만 소수의 독자를 위한 책을 내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한 어느 편집자의 말이 생각나기도 한다. 그게 우리의 엄연한 현실이니까. 세상 사람들이 모두 김밥이나 짜장면만 먹는다고 생각해 보시라 얼마나 답답한가. 가끔은 파스타도 먹고 삼겹살도 먹어줘야 하는 게 아닌가. 하긴 또 누군 그걸 주식으로 삼을 지도 모르겠지만.

 

역시 출판사도 사업을 영위해야 하고 이익이 중요하기 때문에 분기 말 결산을 앞두고 표류사 직원들이 한 데 모여 배틀 로열을 하는 장면은 정말 압권이었다. 보너스를 지급하라는 주장과 유급휴가를 보장하라는 요청이 난무하고, 책을 더 팔아먹기 위해 이벤트도 하고 영업력을 강화하라는 장면을 보니 세상사는 건 어디나 다 똑같구나 싶어졌다. 물론 그들은 문화사업의 최전선에서 우리 독자를 위해 대신 싸우는 전사들이라는 점이 다를 뿐.

 

배틀 로열이 끝나고 연이은 적자 때문에 도산이 임박했다는 소식을 듣고 돈 많이 받는다며 편집장이 사표를 날릴 쯤, 갑자기 등장한 싸장님이 자신이 가진 산을 팔아 손해를 벌충하겠다며 나선다. 멋진 싸장님이 아닐 수 없다. 물론 만화 같은 설정이 아닐 수 없겠지만. 뭐 이런 재미라도 있어야 아무리 출판업계를 다룬 만화라지만, 만화 같은 재미를 느낄 수 있지 않은가.

 

지난 화요일날 회식 때 들고 다니던 책도 잃어버리고 잠시 책읽기 슬럼프에 빠졌었는데, <중쇄 미정>으로 본궤도에 올랐으면 하는 그런 바램이다. <중쇄를 찍자>도 읽고 싶은데 타이밍이 좀 엇갈렸다. 이제 진짜 봄이다, 책읽기에 더욱 매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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