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중국 당대문학 걸작선 1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읽고 싶은 모든 책들을 다 살 수가 없어 지난 토요일날 도서관에 가서 류전윈 작가과 옌롄커 작가의 책들을 네 권이나 빌려 왔다. 그 이유 중의 하나는 품절, 절판되어 도서관이나 중고서점 말고는 구할 수가 없는 책도 있기 때문이었다. 이런 이유 때문에라도 책을 구할 수 있을 때 사야겠다는 자기합리화가 작동되기도 한다. 사실 옌롄커 작가의 이 책은 아주 오래 전에 이마 사둔 책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오래 되어 도무지 어디에 두었는지 찾을 수가 없어 하는 수 없이 도서관에서 빌렸고, 작가의 말대로 그다지 많은 분량이 아니라 하룻만에 다 읽을 수가 있었다. 내가 처음으로 다 읽은 옌롄커 작가의 책이다. 읽게될 책은 언제고 읽게 되는구나 싶었다. 참고로 <풍아송>은 한 절반 가량 읽었다. 소장한 책이다 보니 독서순위에서 좀 밀린 느낌이라고나 할까.

 

소설의 제목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중국 말로는 “웨이 런민 푸우”라고 했던가. 그 유명한 마오쩌둥 주석의 연설에서 따온 제목으로, 소설의 표지가 암시하듯 혁명과 정치와는 상관없는 두 남녀 간의 상열지사를 주로 다룬 소설이라 상당 부분 삭제되어 출간되었음에도 단박에 판금조치를 받은 악명 높은 작품이기도 하다. 물론 그런 판금조치에 고무받은 이들에게 더 큰 사랑을 받았음은 불문가지일 것이다.

 

올해 28세 우다왕은 사단 중대 소속 취사원이자 공무원으로 사단장과 사단장의 가정에 복무 중이다. 농촌 출신으로 성공의 사다리를 밟기 위해 군을 선택한 이 청년은 사회주의 혁명에 대한 투철한 신념과 성실함을 상부로부터 인정받아 고달프기는 하지만 성공이 보장된 사단장 취사원으로 맹렬하게 오늘도 밥을 짓고, 채소밭에서 채마를 기르기에 여념이 없다. 문제는 사단장의 사모이자 양저우 출신으로 군병원에서 간부였던 류롄의 존재다. 우다왕보다 고작 4살 많은 미모의 사단장 사모는 사단장이 사용하는 고배율 망원경으로 취사원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한다. 뭐 이 정도면 대충 앞으로 어떤 일들이 벌어질 지는 다 알고 있으리라 믿는다.

 

게다가 사단장이 장기간에 걸친 휴가를 떠나게 되었다니 스파크만 당기면 불이 활활 타오를 것 같은 두 남녀에게 만반의 준비가 다 된 것처럼 보인다. 말하지 말 것을 말하지 않으며, 묻지 말아야 할 것도 역시 묻지 않는 그야말로 충성스러운 남자 우다왕은 자신을 누님이라고 부르라는 류롄의 파상적 육탄공세에 도저히 이겨낼 방법이 없다. 그나마 남은 충성스러운 사회주의 혁명전사의 패기를 가동해서 유혹에 간신히 저항해 보지만, 류롄이 자신을 해고시키겠다는 협박에 못이겨 결국 누님의 구애에 넘어가고 만다. 아니, 그게 아니라 옌롄커 작가가 구성한 대로 모든 것이 준비된 배우로서 철저하게 예비된 무대에 오를 태세를 마친 것일 지도 모르겠다. 그런 그에게 도래한 류롄과의 성애는 과연 축복이었을까. 미래에 대한 혼돈과 무지 속에서도 우다왕과 류롄은 거침없이 쾌락 속으로 뛰어들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어쩌면 금지된 것에 대한 격정이 폭발했을지도.

 

마오주석이 남긴 어록을 모두 외울 정도로 철저한 당성을 자랑하는 사단장 사모 류롄도 침대에서는 한 명의 여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던 걸까? 혁명정신이나 정치도 남녀 간의 불꽃 튀는 상열지사를 막을 수 없다는 본성에 기인한 작가의 에로틱한 서술은 작년에 읽으면서 낯이 뜨거울 정도였던 필립 로스의 <죽어가는 짐승>의 그것을 능가한다. 여전히 관제 하에 있는 중국에서 왜 이 소설이 판금조치를 받았는지 바로 이해가 갔다. 소설에서 우다왕은 입버릇처럼 자신은 인민을 위해 복무하겠노라고 주절거리는데, 왜 사단장의 사모라는 특정 인민을 위해서는 (성적인 서비스로) 봉사할 수 없냐고 매혹적인 류롄이 묻는 것 같이 느껴졌다. 해방군 출신 작가 옌롄커는 이런 역설적 방식으로 개인의 욕망을 얽매는 사회주의 본질을 겨냥한 강속구를 투구한다.

 

또 한편으로, 작가는 우다왕의 존엄성에 초점을 맞춘다. 허난성 시골 마을 우자거우 출신으로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전사 우다왕은 위중한 어머니의 바람대로 아내를 얻기 위해 사랑 없는 결혼에 골인하게 되고, 첫날밤의 방사조차 제대로 치르지 못한 채 군 간부가 되기 위해 사력을 다한다. 마치 아내와 아이를 도시인으로 만들기 위한 결혼생활에 사랑이 존재할 리가 만무하다. 우다왕이 군에서 당원가입과 간부가 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것에 대한 댓가에 대한 조건으로 몸을 허락하는 아내는 남편의 존엄을 가열차게 짓밟는 것이다. 반면, 류롄 누님과의 격정적인 사랑은 어떠한가. 그것은 마치 영화 <블레이드 러너>에서 릭 데커드와 레이철이 보이지 않는 미래를 향해 달려가는 것 같은 느낌이지 않은가.

 

옌롄커 작가는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라는 지엄한 마오주석의 말이 담긴 팻말을 두 남녀가 그야말로 짐승 같이 원초적 성애의 시그널로 사용하는 엄청난 패러디를 작성했다. 한술 더 떠서, 우다왕과 류롄이 서로에 대한 강렬한 사랑을 증명하기 위해 사단장 거처인 원자 1호에 진열된 마오 주석의 석고상을 부수고, 초상을 찢고 훼손하고 심지어 못질까지 마다하지 않고, 마오어록을 갈기갈기 찢는 퍼포먼스까지 선보인다. 이 정도면 공산주의 국가의 지도자에 대한 신성모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그런 격정이 지나간 후에, 도래한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은 서글프다. 류롄과의 격렬했던 사랑이 한단지몽 같은 부질없는 꿈이었다면 우자거우에 있는 아내와 아이를 책임져야 하는 남자의 운명은 엄존하는 현실이다.

 

나에게 옌롄커 작가는 광장에서 사람들을 상대하는 저글러(juggler, 곡예사) 같다는 느낌이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거창한 구호로 무장한 사회주의 혁명이나 정치도 사랑과 존엄이라는 인간의 본성을 능가할 수 없다는 걸까. 평생 잊을 수 없는 가히 충격적인 체험을 한 우다왕과 류롄은 다시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었으리라. 위정자나 기득권층은 분명 이런 위험한 곡예를 원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같은 독자 친구들로서는 이런 저글링이야말로 최음제 같은 책읽기의 즐거움이 아니겠는가. 놀랍다. <풍아송>을 마저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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