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형, 체 게바라
후안 마르틴 게바라 & 아르멜 뱅상 지음, 민혜련 옮김 / 홍익 / 2017년 1월
평점 :
절판


영원한 혁명가 체 게바라에 대한 이런저런 글들을 읽어 왔다. 전설적 게릴라 체 게바라의 정전처럼 되어 버린 장 코르미에의 체 게바라 평전에서부터 시작해서,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볼리비아 일기까지. 그는 생전에 남아메리카 혁명의 전진기지로 생각했던 볼리비아 냥카우아수 라 이게라에서 볼리비아 정부군의 총에 맞아 숨을 거두기 전까지 불의에 고통 받는 인민들의 해방을 꿈꾸는 혁명가였다. 39살의 나이로 지상에서 영원으로 떠난 혁명가의 이야기는 당연히 전설이 되었다. 과연 그는 전설에서처럼 완전무결한 인간이었을까?

 

에르네스토 게바라의 친동생이었던 후안 마르틴은 영원이 된 혁명가를 다시 지상으로 소환한다. 가족이 쓰는 게바라 전기는 죽음에서 출발해서 몰락한 부르주아 출신으로, 유년 시절부터 심각한 천식을 앓았던 에르네스토의 삶을 관조적 시각으로 추적한다. 탱고 무용수였던 게라바의 아버지는 천생 한량이었다. 항상 무언가를 끊임없이 추구하고, 돈벌이에 나섰지만 다섯 아이의 아버지로서는 부적격한 남자였다. 대신 유복한 부르주아 가문 출신이자 수녀원에서 엄격한 교육을 받은 게바라의 어머니는 훗날 혁명가로 성장하는 아들에게 지대한 미쳤다고 동생은 증언한다.

 

대학에서 원래 공학도였던 에르네스토는 22살에 처음으로 떠난 남아메리카 방랑에서 “양키” 미국제국주의의 주변국가로 전락해서 신음하는 동포들의 참담한 현실을 직접 체험하고 본격적인 마르크스주의자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그의 조국 아르헨티나 역시 군사독재와 횡행하는 매판자본주의의 영향으로 남아메리카의 다른 나라들과 다를 게 없는 상황이었다. 에르네스토는 과테말라 아르벤스 정권이 미국 CIA의 공작으로 전복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혁명에 투신하기로 마음먹은 것 같다. 그의 혁명 활동은 망명지 멕시코에서 쿠바 출신 카스트로 형제를 만나면서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1959년 1월, 시에라 마에스트라에서의 지난한 무장투쟁 끝에 악랄한 풀헨시오 바티스타 정권을 전복시키는데 성공한 삼십대 초반의 에르네스토는 일약 전 세계의 주목을 받기에 이른다. 외국인이라는 신분으로 신생 쿠바의 산업부장관으로 활약하기도 했던 그는 콩고에 잠입해서 게릴라 활동에 참가하기도 했고, 무대를 볼리비아로 옮겨 남아메리카 해방이라는 큰 그림을 그리던 중 결국 최후를 맞이하게 됐다.

 

이 정도가 대략적으로 동생 후안 마르틴이 증언하는 에르네스토에 대한 초상이고, 후반부는 불순분자로 찍혀 조국 아르헨티나에서 장장 8년에 걸친 옥살이를 한 후안 마르틴의 증언이 이어진다. 혁명가의 가족에겐 독재정권에 부역하거나 아니면 먼저 간 혁명가의 길을 따르는 선택 밖에 없었던 걸까? 개인적으로 문득 왜 에르네스토는 조국 아르헨티나의 현실을 잘 알면서도 조국보다 쿠바나 멀리 콩고 혹은 볼리비아에서 혁명을 시도하려고 했던 걸까? 청렴결백했던 에르네스토는 쿠바 혁명이 성공한 뒤, 아바나에서 가족들과 재회를 만끽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버지가 럼주를 제조하는 바카디 사와 특혜를 이용해서 사업을 시도하려고 하자 단칼에 아버지를 본국으로 소환시키기도 했다. 한편, 포클랜드 전쟁의 패배로 “추악한 전쟁”이라 불리던 암울한 군사독재를 종식된 아르헨티나 옥살이에서 석방된 후안 마르틴은 쿠바의 도움을 받아 새로운 삶을 개척하기도 했지만, 모든 게 일장춘몽으로 끝나는 체험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영원에서 지상으로

 

과연 혁명가의 가족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했을까? 피델 카스트로는 체 게바라의 남은 가족들을 확실히 후대했다. 저자인 후안 마르틴은 한사코 허망하게 죽은 형의 죽음을 상업화하는데 반대했지만, 자본주의 3.0 시대에 볼리비아 라 이게라가 관광지가 되고, 그동안 환대받지 못했던 조국 아르헨티나에서도 전설적 게릴라의 자취를 따라가는 관광상품이 되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볼리비아 정글에서 죽었다고 알려졌지만, 과연 죽었는지 유족들이 시신을 확인하지 못한 점도 체 게바라가 “성 에르네스토”가 되어가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체 게바라와 그의 동지들이 목숨을 바친 쿠바 혁명대의는 어떨까? 구 소련이 붕괴하면서 공산권의 지원을 받지 못하고, 세계 초강대국 미국와 1962년 이래 반세기 넘게 엄정한 대결구도를 보이던 쿠바는 마침내 오바마 정부 시절에 미국과 화해하기에 이른다. 작금의 트럼프 행정부에서도 그런 밀월관계가 지속될 지에 대해서는 많은 의문이 들지만, 미국을 괴롭히던 눈엣가시 쿠바가 드디어 자본주의에 대한 문호를 개방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지 않을까.

 

경쟁과 효율을 강조하는 자본주의 억압구조를 후안 마르틴은 비판하면서, 오늘날에도 죽은 형의 사상과 그가 유산으로 남긴 이미지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물론 역설적으로 그의 이미지들이 상업적으로 왜곡되어 소비되고 있다는 점도 무시할 순 없겠지만 말이다. 거리에서 저항의 상징이 된 체의 이미지가 프린트된 티셔츠를 입고 다니는 젊은이들이 체 게바라가 권력의 횡포와 자본의 착취에 맞서 무장투쟁에 나선 반세기 전 혁명가이자 완전에 가까운 세계인이었다는 사실을 과연 알고 있는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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