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와 수잔 버티고 시리즈
오스틴 라이트 지음, 박산호 옮김 / 오픈하우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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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영화 <녹터널 애니멀스>가 개봉했다. 영화 <싱글맨>으로 감독 데뷔를 한 탐미주의자 톰 포드 감독의 두 번째 영화로 오스틴 라이트 교수가 1993년에 발표한 다섯 번째 소설을 영화화한 것이라고 한다. 아쉽게도 19금 영화라 그런지 상영관 수도 다른 영화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고, 상영 횟수도 적은 상영관에서는 달랑 한 번 정도다. 내가 사는 곳 근처에 있는 영화관 상영시간은 새벽 12시 반이다. 보라는 건가 말라는 건가. 생전에 오스틴 라이트 교수의 <토니와 수잔>은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고 하는데 사후에 영화화되고 다시 읽히는 걸 보면 역시 걸작은 언제라도 재평가 받게 되는 운명이라고 해야 할까. 소설 표지도 에이미 아담스가 주연을 맡은 영화 포스터를 사용했다.

 

500쪽 가까운 분량이지만, 한 번 빠지게 되면 헤어날 수 없는 그런 마력을 가진 소설이다. 우선 <토니와 수잔>의 구성은 요즘 잘 볼 수 없는 액자식 구성으로 되어 있다. 수잔 모로의 전 남편 에드워드 셰필드가 아직 출간되지 않은 자신의 역작 <녹터널 애니멀스>(야행성 동물)이라는 기묘한 제목의 원고를 보내면서 소설은 시작된다. 시카고의 부유한 여피로 조용하게 살고 있는 수잔에게 에드워드는 어쩌면 찌질한 남편의 초상일지도 모르겠다. 현재 남편 아놀드는 심장전문의로 유명병원 이사 면접을 보기 위해 뉴욕 출장 중이다. 그런 그녀에게 에드워드가 보낸 원고는 작은 파문을 일으키기 시작한다.

 

수잔의 일상이 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한 그런 평온한 일상이라면, 소설에 등장하는 토니 헤이스팅스(분명 에드워드의 분신처럼 보인다)의 재앙은 유혈과 폭력을 동반한 비극이다. 메인 별장으로 떠나던 길에 펜실베이니아 모처의 주간고속도로에서 동네 불량배 삼인조와 사소한 시비가 붙게 되고, 대학 수학교수 출신의 인텔리 가장의 아내와 딸을 불량배들에게 납치되어 비극적인 죽음을 맞게 된다. 과연 토니는 이런 비극을 감당해낼 수 있을까?

 

토니의 재앙이 거친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면, 수잔의 삶 역시 그렇게 순탄하지만은 않다. 3년 전, 남편 아놀드는 올해 49세의 수잔보다 훨씬 젊은 비서 린우드와 불륜을 저질렀다. 시카고 인근의 전문대학에서 영문학을 가르치는 지식인 수잔은 두 번째 파경을 감당할 준비가 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아니,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의 가정을 지키겠다는 자신의 의지에 반하는 결정을 내릴 수 없었던 걸까? 겉으로 완벽해 보이는 수잔과 아놀드의 가정에도 미묘한 균열이 가기 시작한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오스틴 라이트 버금가게 그런 삶의 균열을 포착해 내는데 일가견을 보여 주었던 제임스 설터 작가의 문학세계가 떠올랐다.

 

수잔의 현재와 소설 속 토니의 과거가 계속해서 교차하면서 소설 <토니와 수잔>의 긴장은 고조된다. 액자소설 <녹터널 애니멀스>의 막간마다 현재의 수잔은 과거 자신과 토니의 러브스토리를 들려준다. 15세 때, 에드워드 아버지가 심장마비로 죽고 수잔의 부모는 잠시 에드워드를 거두기도 했지만, 수잔은 자기 가정의 프라이버시가 침해당한다는 이유로 그를 경원했던가. 그 뒤 8년이 지나 시카고에서 영문학 석사과정을 밟고 있던 수잔과 로스쿨에 진학해서 인권 변호사의 꿈을 꾸던 에드워드는 우연히 만나 잠재워 두었던 사랑을 꽃피게 된다. 결국 결혼에 골인한 두 남녀에게 에드워드가 미래의 보장된 성공을 의미하는 로스쿨을 포기하고 오랫동안 꿈꿔 왔던 작가가 되겠다며, 밥벌이를 모두 수잔에게 맡기고 자아를 찾겠다며 숲 속 오두막으로 떠나면서 결혼생활은 파국으로 치닫는다. 때마침 같은 아파트에 살던 유부남 아놀드 모로가 고기 써는 칼을 휘두르며 미쳐 가는 아름다운 셀레나와의 결혼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나머지 부분은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자신의 이상적 결혼을 불륜으로 망쳐 버린 수잔이 수많은 고민 끝에 결국 에드워드와의 말다툼을 꼬투리 잡아 자신의 불륜을 고백하는 장면은 정말 압권이었다. 사랑에서 비롯된 결혼이 어떻게 파국으로 치닫게 되는지에 대한 오스틴 라이트 식의 전개방식이 소설의 DNA를 디테일하게 잡아내기로 유명하다는 영문학 교수님답다는 생각이 번쩍 들 정도로 말이다.

 

수잔은 자신의 불륜과 이혼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자신의 전문가적 능력을 발휘해서 애써 에드워드의 작가적 능력을 폄하한 것처럼 보인다. 자신의 냉혹한 비평에 에드워드가 자살하지 않을까 염려하면서도, 한 때 자신이 사랑한다고 생각했던 남자보다 현재 자신의 평온한 삶이야말로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까지 지켜야 한다는 결연한 의지를 비치면서 말이다. 그런데 에드워드가 쓴 걸작 <녹터널 애니멀스>를 읽으면서, 상대적 빈곤감에 시달리게 된다. 로스쿨에 다니던 미래의 촉망받는 변호사에서 작가 지망생으로 그리고 다시 생업을 위해 보험업에 투신한 자본주의자가 문학 소비자인 자신은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그런 작품을 썼다는 사실을 그녀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25년 동안 갈고 닦은 교육자이자 지식인의 인지부조화라고나 할까? 수잔은 안온한 자신의 삶에 파문을 던진 에드워드의 미완성 원고를 읽으면서, 과연 “인생에는 단순히 책을 읽는 것만으로는 바꿀 수 없는 것들이 존재”한다는 작가의 주장에 전적으로 공감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소설 <토니와 수잔>은 수잔의 그런 내적 갈등을 섬세하게 다루면서, 동시에 사랑하는 아내와 딸을 잃고 나락으로 추락한 토니 삶의 궤적도 놓치지 않고 추적한다.

 

소설 속 소설에서 토니의 조력자로 등장한 바비 안데스 부서장의 역할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무력한 지식인의 상징이자 수잔으로 대치해 봐도 무방할 것 같은 토니를 끊임없이 자극하면서 아내와 딸에 대한 복수를 유도하는 캐릭터라고 해야 할까. <녹터널 애니멀스>의 엔딩 부분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는 바비 안데스에 비해, 무능한 남편 에드워드의 모습은 상대적으로 왜소하게 다가왔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가정을 지키지 못한 남자의 모습이 오롯하게 구현되는 장면도 일품이었다. 한편, 로라와 헬렌을 레이 마커스 일당으로부터 구할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수치심과 굴욕감에 시달리는 토니의 모습은 현실 세계에서 에드워드와의 파경을 막을 수 있었던, 아니 의도적으로 막지 않았던 수잔의 그것과 기묘하게 겹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가 의도한 이런 소설적 구도의 탁월함에 다시 한 번 감탄했다. 역시 놀랍군. 대가라면 이 정도 실력을 갖추어야 한다고 소설 <토니와 수잔>은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잠깐 본 영화 <녹터널 애니멀스>는 디테일에서 사뭇 소설 <토니와 수잔>과 결을 달리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우선 소설의 공간적 배경은 시카고에서 LA로 이동되었고, 주간고속도로의 재앙 역시 펜실베이니아가 아니라 텍사스였다. 수잔이 에드워드에게 받은 원고를 뜯다가 손을 베는 장면도 의미심장했지만 소설에서는 등장하지 않는 장면이었다. 사실 소설의 시작은 에드워드가 자신의 소설에 부족한 무엇인가를 찾아달라는 부탁으로 시작됐지만, 소설이 진행되면서 그다지 영향력을 가지지 못하게 되었다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패션 디자이너 출신 감독인 톰 포드는 탐미주의자답게 영상미 하나는 뛰어나게 연출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기회가 된다면 영화도 보고 싶지만, 지금으로선 불가능하지 싶다.

 

오스틴 라이트 교수는 지금으로부터 14년 전에 작고했다고 한다. 작가는 생전에 모두 8편의 소설들을 발표했는데 국내에는 <토니와 수잔>이 아마 처음으로 소개된 것 같다. 앞으로 작가의 다른 책들도 소개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역시나 문학의 세상은 광활하고 여전히 모르는 작가들이 넘실거리는 그런 대양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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