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르노빌의 봄 핵없는 세상을 위한 탈핵 만화
엠마뉘엘 르파주 지음, 해바라기 프로젝트 옮김 / 길찾기 / 2013년 3월
평점 :
절판


 

우크라이나 키예프에서 백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체르노빌에서 원전사고가 터진 것이 지금으로부터 딱 30년 전의 일이다. <게릴라들: 총을 든 사제>로 처음 만난 프랑스 출신 일러스트 작가 엠마뉘엘 르파주의 그림을 체르노빌 방문기로 다시 만나게 됐다. 얼마 전부터 계속해서 보고 싶다고 생각만 하다가 오늘 드디어 읽을 수가 있었다.

 

다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2008년 엠마뉘엘 르파주를 비롯한 일단의 예술가 그룹이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 터지기 전, 가장 큰 핵재앙이었던 구 소련의 체르노빌을 방문해서 재앙의 잔재를 기록하는 프로젝트를 가동 중이었다. 데생악퇴르 그룹의 일원으로 체르노빌을 방문할 계획을 세우던 이들은 심각한 고민에 사로잡힌다. 그것은 바로 체르노빌 원전사고가 터진 지 22년이나 지났지만 여전히 방사능 피폭에 대한 위협이 가시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들은 체르노빌을 방문하는 동안 먹을 안전한 먹거리 확보부터 시작한다.

 

아무리 안전을 강조한다 하더라도 방사능이 잔존하는 이상, 방사능 피폭이 초래할 암이나 갑상선 질환 같은 각종 질병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는 현실이 제기된다. 바로 그 지점에서 과연 이런 위험요소들을 무릅쓰고 프로젝트를 가동할 충분한 이유가 되는가라는 점에 대해 묻게 된다. 자라나는 엠마뉘엘의 아이들에게 아버지가 필요하다는 식구들의 조언도 무시할 수 없다. 설상가상으로 평생 그림그리기를 업으로 삼아온 엠마뉘엘은 그림을 그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어쩌면 체르노빌이라는 이름이 가진 잠재적 위협에 대한 방어기제가 작동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고민 끝에 르파주는 일단의 동료들과 체르노빌 행을 감행한다. 비행기를 동원한 신속한 방법보다 서구 유럽에서 폴란드를 거쳐 체르노빌에 도달하는 육로는 물리적 거리감을 확인할 수 있는 계기였다.

 

체르노빌 원전사태가 터진 1980년대는 여전히 냉전의 열기가 뜨거운 상태였다. 어느 정부나 그렇듯 공산주의 종주국이었던 구 소련 역시 최악의 원전사태를 숨기기에 급급했다. 방사능 피폭의 후유증을 예상하지 못했던 용감한 이들은 화염에 휩싸인 원전의 불길을 잡고 사태를 진전시키기 위해 일선에서 최선을 다하던 기술자들과 노동자들은 방사능 피폭으로 모두 사망한다. 방사능을 피하기 위해 수십만의 사람들이 정든 고향을 떠나야 했고, 피폭된 2세에서 4세 수많은 아이들이 숨졌다. 어디 그 뿐이던가? 체르노빌의 최전선에서 싸우던 처리반요원들이 없었다면 서구 사회 역시 안전할 수 없었으리라고 작가는 진단한다.

 

금지된 도시에는 현재에도 고향으로 돌아온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데생악퇴르 그룹은 체르노빌 부근에 거처를 구하고 활동을 개시한다. 예술가 집단들은 이방인들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현지인들과 조금씩 소통하고, 그들의 내면세계에 접근을 시도한다. 식탁에서 음식과 보드카를 나누는 교제야말로 아이스브레이킹의 최고의 방법이었지만, 과연 체르노빌 사람들이 권하는 음식을 먹어도 되는지 프랑스 예술가들은 고민에 빠지지만 곧 주저 하지 않고 음식을 나누기 시작한다.

 

엠마뉘엘 르파주는 체르노빌의 암담한 현재를 그려 서방세계에 진실을 알리겠다는 사명으로 체르노빌을 찾았지만, 체르노빌의 아름다운 이면을 발견하고 고민에 빠진다. 틱 틱 거리며 라돈 수치를 보여주는 방사능 측정기를 따라 움직이는 작가의 손길은 곧 원래의 솜씨를 되찾는다. 술자리의 달아오를 흥취에 젖어, 현지인들을 희화화하는 그림을 그리기도 하지만 곧 예술가 본연의 모습을 되찾아 서방인들이 보길 원하는 암울하고 묵시록적인 그림 대신, 당시 체르노빌의 현실을 그리고 싶다는 자신의 바람에 따라 르파주는 그야말로 붓 가는 대로 그리기 시작한다. 그렇기 바로 그게 장인의 예술혼이 아니었던가.

 

자신들을 덮친 핵 재앙으로부터 달아나는 대신 맞서 싸우는 체르노빌 사람들에게서 작가는 희망을 그린다. 체르노빌에서 인류 스스로를 파괴할 수도 있는 기계문명을 대표하는 방사능 오염 물질은 후크 선장의 한쪽 손목을 뺏어간 악어처럼 사람들을 노리는 이미지로 형상되어 등장한다. 그리고 안전하고 저렴하다는 이유로 곳곳에 지금도 지어지고 있는 원자력 발전소가 어느 순간 재앙으로 돌변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바로 이웃나라 후쿠시마 사태에서도 뻔히 보고서도 각성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체르노빌의 봄>을 통해 되돌아보게 됐다. 조금 불편하고 에너지를 덜 소비하는 한이 있더라도, 기존 17기의 원전을 폐쇄하기로 결정한 독일의 선례대로 그린에너지와 재생에너지를 개발해서 누구도 원하지 않는 재앙을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야말로 최선의 원전 대책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해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