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식 룰렛
은희경 지음 / 창비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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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4년 전에 나온 은희경 작가의 장편소설 <태연한 인생>을 다 읽었던가. 아마 읽기는 시작했던 것 같은데 마무리지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지금 읽기 시작한 <중국식 룰렛> 보다 그 책부터 읽어야 하는 게 아닐까. 뭐 상관 없겠지, <중국식 룰렛>을 다 읽고 나서 읽는 것도 말이다.

 

바로 전에 읽은 김금희 작가의 소설집의 소설들은 시간의 연대순에 따라 배치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은희경 작가의 <중국식 룰렛>에 실린 6편의 작품들은 모두 발표된 순서대로 빼곡히 들어 앉아 있었다. 표제작인 <중국식 룰렛>은 어느 술집에 모인 화자인 나를 포함한 네 명의 남자들에 대한 이야기다. 세 잔의 싱글몰트 위스키를 서비스하는 바텐더 K가 운영하는 바에 모인 이들은 언제나처럼 모두 사연을 지니고 있다. 위스키 맛을 아는 자만이 제대로 된 서비스를 마실 수 있다는 걸까? 독주를 즐기지 않는 독자로서는 알 도리가 없다. 체리오크향이 배인 위스키 맛에 대해서도. 그저 오래전 친구의 졸업식 때, 한자락 하시는 요리사인 친구 어머니가 대접해 주신 인삼 뿌리와 자니워커 블루의 인연 정도. 위스키를 즐기는 게 고상한 취미일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소설에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로 등장하는 맥캘란 55년산 위스키 맛을 보고 싶다는 생각도 그리고 작가가 처음부터 행운과 불운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나누어질 수도 있다고 설계한 전개가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파경을 앞둔 주인공이 라가불린을 좋아한다는 아내와의 호시절을 기억하며 점점 술에 취해가는 장면이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아리송한 K와의 관계는 위스키가 증류되면서 천사들에게 나눠준다는 몫으로 남겨 둬야 할지도 모르겠다. 소설을 읽다 보면 정작 ‘중국식’ 룰렛이 어떤 룰렛인지 따위는 전혀 관심이 없어진다. 아직도 중국식 룰렛이 무엇인지 난 모른다.

 

그 다음 이야기 <장미의 왕자>는 졸면서 읽어서 그런지 도무지 맥락을 잡을 수가 없었다. 내러티브가 중요하지 않아서 그런 진 몰라도. <대용품>에서는 어린 시절 함께 지내던 동네 천재 소년들의 이야기다. 시골 수재들의 상경길에 교통사고로 친구를 잃은 남자의 이야기다. 모든 게 심드렁한 남자는 매뉴얼대로 세상을 살아가는 법을 익힌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욕망과 거짓을 능숙하게 잘 다룰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했던가. 욕망을 위해 거짓도 서슴지 않는다는 말이겠지. 어린 나이에 그런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도 슬픈 일이지 않을까. 그렇게 적당 자기 일을 하면서 세상으로부터 스스로 격리되어 삶을 살던 중에, 어느 결혼식에서 어린 시절 좋아하던 고향 여자친구를 만나 그 시절을 회상해 본다. 독자는 새로운 로맨스가 시작되는가 조심스레 기대해 보지만 아련한 봄밤의 추억처럼 그렇게 이야기는 스러져 갈 따름이다. 무언가 화끈한 결론이 없는 싱거움의 연속이라고나 할까.

 

<불연속선>에서도 사진가로 살아가는 남자의 처지도 별반 다르지 않다. 드라마 속 재벌가의 상속자처럼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돈이 많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빼어난 재주를 지닌 전문가가 아니라면 이 세상살이는 그저 시큰둥한 모양이다. 주인공 남자는 이제는 철지난 습식사진을 찍는 사진가다. 책을 읽다 보니 예전에 필름 카메라로 찍은 사진들을 현상하고 인화하던 시절의 생각이 났다. 흑과 백 그리고 농담으로 세상이 보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었지 아마. 사진촬영 제반에 걸친 모든 것을 스스로 준비하는 남자는 파리에서 돌아오는 길에 뱅뱅 도는 컨베이어 벨트에 토해져 나오는 가방이 바뀌어 낭패를 당한 상황이다. 아, 그전에 그릇과 가방 혹은 삶을 담보하는 보따리 이야기가 있었지. 미혹과 욕망에 시달리던 여자가 다들 꺼려하는 작업대 위에 올라 사진촬영을 감행하게 되는 사연을 풀어가는 솜씨가 역시나 걸출한 작가답다. 그리고 보면 삶은 연속적이지도 그렇다고 해서 불연속적이지도 않은 그런 게 아닐까. 어쨌거나 그래도 모두의 삶은 계속되지 않은가. 그렇다면 삶은 연속적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걸까, 모르겠다.

 

모두 6개가 실린 소설집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글이 바로 <별의 동굴>이다. 개인적으로는 책의 동굴이라고 불러도 아쉽지 않은 그런 소설이다. 치열한 신자유주의 경쟁에 밀려나 먹고살기가 캄캄해져 자신의 울타리를 정리하려는 시간강사 이야기가 씁쓸하게 다가온다. 그리고 보니 <중국식 룰렛>에 등장하는 주인공 남자들의 초상은 하나 같이 적당히 살자주의로 무장한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다. 하긴 치열한 삶이 내일의 성공을 담보하는 것도 아니지만 말이다. 나는 과연 오늘을 치열하게 살고 있는가 묻는다면 딱히 할 말이 없을 것 같기도 하다. 게다가 부정맥으로 어쩌면 내일 삶을 마감한다해도 보호자 하나 없는 자신의 처지가 참 그럴 지도 모르겠다. 주인공이 주변의 울타리를 정리하기 위해 한 첫 번째 행동이 부동산에 나가 자신의 전세를 월세로 바꾸는 시도였다. 거기서 만난 염색머리 여자와의 인연이 무언가 실마리를 제공해 주는가 하지만 그것도 역시나 여의치 않더라. 두 번째로 주인공은 자신이 그동안 애지중지 모은 책들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이 가장 인상적이었노라고 말하고 싶다. 이미 이런 책정리를 해본 것처럼 작가는 냉정하게 필요해서 남길 책 그리고 이제는 소용이 없어져 처분해야 하는 책으로 이분한다. 모든 책에는 사연이 있기 마련이다. 삶을 정리하겠다는 핑계를 대고 주인공은 책에 얽힌 사연을 캐내는 작업에 몰두한다. 어쩌면 그리도 공감이 가던지 책 속으로 그야말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한 때는 없으면 죽을 것 같이 애정하던 책도 시간이 가고, 무언가를 알게 되면 그 시절의 아우라를 잃기 마련이던가.

 

마지막 <정화된 밤>의 어떻게 해서 오늘의 다니엘이 생기게 되었는가에 대한 분석은 흥미진진하다. 일상에 심드렁한 남자 버전인 젬마는 어느날 가톨릭에 귀의해서 교회오빠 아니 성당오빠 가브리엘에게 호감을 갖지만 엉뚱한 인연으로 요셉의 아내이자 다니엘의 엄마가 된다. 종교모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실패한 로맨스와 가십이 등장하고, 다니엘이 잉태되던 밤이야말로 정화의 시간이 아니었나 하는 추정으로 소설집은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책이 처음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서평단을 신청했지만 보기 좋게 탈락했다. 그래도 인연이 되었는지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되었다. 소설집을 모두 읽었지만 다 읽고 리뷰를 쓰다보니 읽는 순간 만큼의 열정은 식어 버린 듯한 느낌이다. 이래서 리뷰는 책을 읽는 대로 바로바로 써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아쉽다. 벼락맞는 듯한 깨달음을 책에서 캐냈을 때, 바로 메모를 했다면 괜찮은 리뷰가 되었을까? 그것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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